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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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9시 40분, 세상에서 가장 마음 편한 고등학교 동창생 9명이 의기투합해 한탄강 물윗길 걷기에 나섰다. ‘철원 한탄강 물윗길’은 직탕폭포에서 순담계곡까지 8.5km 협곡을 물 위에서 걸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됐다는 주상절리와 마주했다. 5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현무암 주상절리는 30미터가 넘는 길이도 길이려니와 마치 한 땀 한 땀 예리한 바위기둥을 조각칼로 깎아낸 듯 그지없이 정교했다. 자연이라는 마술사가 작은 돌들을 어떻게 저렇게 세밀하게 이어 붙였을까! 보면 볼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한탄강의 그 유명한 ‘직탕폭포(直湯瀑布)’도 직접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편평한 현무암 위에 강폭에 넓게 펼쳐져 있어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린다고 했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너른 폭포가 겨우내 꽉 막혀 있던 내 마음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내 인생도 저 폭포처럼 시원하게 펼쳐지기를…. 아마도 함께 직탕폭포를 만난 등반 친구들의 같은 소망이었을 것이다.
강바람을 맞으며 온몸으로 밟고 가는 한탄강(漢灘江)은, 이름 그대로 험한 여울이 이어지는 큰 강이자 바위와 돌의 전시장 이었다. 지구 내부의 마그마가 분출해 식으면서 형성된 화강암과 현무암 무더기들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찢겨 속살을 드러낸 채 제각기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이에 질세라 바람·물·빙하가 모래·진흙·조개껍질 등을 운반해 오랜 시간 압력을 받아 굳어져 생긴 사암과 이암도 더없이 넓은 퇴적지역에서 돌섬을 이루고 있었다. 세상을 해탈한 듯 이미 있던 암석이 강한 압력과 높은 열을 받아 성질이 변한 석회암과 대리암, 편마암들은 소심하게 강변 여기저기에 흩어져 멋을 부리고 있었다. 그렇게 한탄강에서 만난 돌들은 저마다 죽지 않고, 묵묵히 자연에 순응해 순환하며 지구의 역사를 말없이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었다.
한탄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차가운 물길 위에 플라스틱 부표로 엮어 만든 사람이 만든 길과, 비바람이 온몸으로 뚫어 만든 자연이 만든 길을 번갈아 가며 걸어야 했다. 물 위에 길을 냈기에 뒤뚱뒤뚱 걸을 수밖에 없는 그 물윗길은 우리네 인생길처럼 흔들거렸다. 응달이 나오면 곧 따뜻한 양달이 나오고, 좁고 굽은 길이 나오면 곧 넓고 곧은 큰길이 나왔다. 어느 한순간, 저 멀리 낭떠러지 끝에 마치 지게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모양의 고드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현듯 수정처럼 맑고, 지게처럼 힘들게 살다 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내 가슴속에서 파도를 쳤다.
내 아버지는 지게셨다. 일제강점기에 광산김씨 양반집 도련님으로 태어나셨지만 큰아버지가 힘 있는 일본인과 벌인 재판에서 이겨 버리자 미움을 받아 한순간 지게가 되셨다. 많은 재산을 잃은 일본인이 앙갚음으로 큰아버지와 가족들의 목숨을 위협하며 망나니춤을 추었다. 풍비박산 난 양반가 여린 생명들은 그렇게 민들레 홀씨가 되어 저 멀리 만주에서 백양사 깊은 산골까지 쫓겨와 이름 없는 들풀로 다시 태어났다.
하늘 천 따지 천자문이 무거운 지게가 되고, 양반집 도련님이 산골 머슴 ‘양식이 아재’가 되었다. 하늘나라 깊은 곳으로 소풍 가신 아버지 옷을 입고, 젖둥이를 등가슴에 매달고, 남의 집 부엌데기가 된 13살 소녀였던 내 어머니. 열여덟 한 떨기 이름 없는 꽃망울로 산골 머슴 양식이 아재의 씨앗을 담아 여섯 명의 새 생명을 잉태하셨다.
“남의 귀한 처자 데려다 놓고 굶겨 죽일 참이오∼.”
찢어지게 가난하던 부부는 다행히 작은아버지의 쌀 한 가마니에 힘입어 죽을 고비를 넘기고 희망이란 태양을 가슴에 품었다.
힘이 난 양식이 아재가 이슬도 곤히 잠든 새벽아침 뒷밭에 두엄을 내고, 산더미 같은 소깔을 베어 지게에 지고, 눈꺼풀 천근만근 몸으로 달님을 동무 삼아 사립문을 넘는다. 모락모락 쇠죽을 끓여 누렁소에게 밥을 주고, 후루룩 후루룩 찬밥을 한술 뜬 후 핏덩이 붉은 해가 앞산을 오르기 전에 재 넘어 천수답 쟁기질을 마친다. 게 눈 감추듯 아침 한술을 더 뜨시고는 별들의 깊은 사랑을 엿보며 날품팔이 지게와 잠시 이별을 하신다. 그리고는 오밤중까지 새끼를 꼬시다가 잠이 들었다. 잘 익은 갈대마냥 남에게 연신 허리를 굽히고, 매일 장성 덕진골을 지게로 누비신 양식이 아재는 아들딸 곱게 키워 시집장가 보내고, 해병대 전우들과 휴전선 땅굴을 견학한 후 귀향길에 호두과자 하나 먹은 게 딱 목에 걸려 그렇게 허망하게 78세에 지게에 우주를 짊어지시고 당신이 살던 덕진골 양지바른 땅으로 돌아가셨다.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 한탄강 물윗길에서 아버지를 만나다니…. 아버지를 생각하면 지게가 생각나고, 지게를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가슴에 알알이 맺히는데, 지게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듯한 벼랑 끝 고드름을 보자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아! 아버지∼ 그곳에서는 지게 안 짊어지시고 영롱하고 고운 얼음이 되고, 반짝반짝 빛나는 돌이 되셨네요! 우리 6남매와 배우자들이 12명, 손자손녀 17명, 도합 29명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강인한 유전자와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을 이어받아 모진 비바람 태풍 같은 풍랑에도, 작지만 가치 있는 삶을 꽃피우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마음 편히 지게 벗어 놓으시고 그곳에서 편히 사세요!’
그렇게 지게를 담은 그 고드름에 마음속으로 절을 한 후 다시 길을 재촉했다. 바위에 매달린 고드름과 바위에 낀 이끼. 파란 하늘과 한탄강 위를 오가는 두루미, 낭떠러지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푸른 소나무들까지 수많은 자연 친구들이 제자리에서 자기만의 역할로 자존심을 지켜 가면서 차가운 겨울을 견뎌 내고 있었다. 크건 작건, 예쁘건 예쁘지 않건 제각기 자존감을 뽐내면서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 내고 있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쓰임새가 있듯이 우리들 인생도 다 소중하고 위대하고 훌륭하다. 그러니 올 한 해도 너만의 고유함으로 아름답게 살아가거라!’
한탄강 물윗길에서 만난 아버지가 내게 그렇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시는 듯했다. 한탄강 매서운 강바람 속에 봄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