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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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흐렸다. 진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차를 돌려 나오니 굵은 눈보라가 사선을 그렸다. 운전에 신경 쓰느라 고적한 설경을 놓치는 게 아쉬웠다.
병원을 벗어나자 눈발이 더 세졌다. 운전석 유리창으로 떨어지는 눈이 갓난아기 손바닥만 했다. 와이퍼로 밀어내도 눈송이는 또다시 유리창에 철퍼덕 붙었다. 겨울의 낭만을 느끼기보다 갑자기 몰아치는 눈보라에 조심히 운전해야겠다는 경고등이 머릿속에서 깜박였다.
집까지 약 40분 거리, 회전교차로를 지나 가산디지털단지역 앞에서 신호 대기를 하고 있었다. 흰 눈은 바람에 휘둘리며 더 맹렬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차례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 종종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들의 발걸음은 어기적거렸지만 어깨는 춤을 추듯 들썩였다.
털모자에 목도리를 뒤집어쓴 사람, 패딩 모자를 눈 밑까지 내려쓴 사람, 두툼한 털 장화를 신고 보란 듯이 걸어가는 아주머니, 고개를 숙여 긴 생머리로 눈보라를 막는 여자아이, 청년 모두 눈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된 듯했다.
무슨 약속이 있을까, 어디로 향하는 걸까. 눈송이 사이로 지하철역 이후 장면을 그려보았다. 승강장에서 지인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약속 장소로 가거나 가볍게 쇼핑하는 달뜬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새 우박처럼 쏟아지는 눈이 친숙하게 느껴졌다. 유리창에 매달린 눈사람 요정들이 손을 내밀며 미끄러지기를 반복했다.
‘눈도 손이 있네. 이제 저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가 보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힘든 치료 과정 속에서 나는 글쓰기를 시작했다. 당시 나는 외형적으로 누가 봐도 아픈 사람이었다.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이 드물다는 건 알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걱정이 나를 눌렀다. 밖으로 나가 매일 운동을 하며 무탈하게 하루가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나는 삶도 죽음도 아닌 공중에 떠다니는 존재였다. 미래도 없었지만 과거도 그리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루를 보내는 게 완성이고 눈을 뜨는 게 새로움이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이 일이 나를 살린다거나 글을 쓰기 위해 살아야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문학 속에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다고 믿었다. 비록 건강하진 않지만 글을 통해 나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내게 큰 병이 찾아오기 전 친정어머니는 기억이 흐려지셨다. 젊어서부터 워낙 똑똑하고 셈도 정확하신 분이셨다. 노인정에서 지인들과 고스톱을 칠 때도 잃는 법이 없었고 내기에서 딴 수입으로 간식을 사서 돌리셨다. 더군다나 늘 밝게 사시던 분이라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점점 변하는 친정어머니의 모습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고생을 하셨는데 여생조차 편안하게 누리지 못하고 자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불쌍한 마음에 눈물도 많이 흘렸다. 나는 슬픔과 절망에 빠졌고 노년에 대한 서글픔에 휩싸였다.
모든 것에 의욕을 잃고 남모르게 오래 살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그러다가 죽음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나는 그동안 품었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만한 것인지 깨달았다.
눈보라 속에서 전래동화 한 편이 떠올랐다. 눈 요정들이 내미는 손이 하얀 동아줄이 내려온 것이라 여겨졌다.
어린 시절 겨울이면 아랫목에 앉아 언니들과 동화책을 읽곤 했다. 둘째 언니는 손톱을 세운 두 손을 얼굴 위에 올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어흥,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그 목소리가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곧이어 오누이의 간절한 기도를 읊는 부분에서 함께 두 손을 모았다.
“하느님 저희를 구해 주시려거든 새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나는 언니에게 하느님께 그냥 새 동아줄을 내려 달라고 하지 썩은 동아줄 얘기를 왜 하냐고 고쳐 물었다. 그러다가 오누이가 튼튼한 동아줄을 타고 올라갔다고 하면 좋아서 박수를 치고 사나운 호랑이가 잡은 동아줄이 끊어지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에서 돌아오던 그날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하얀 동아줄을 내려줄 테니 잡으라고 나에게 손 내미는 것 같았다. 창을 열어 손을 펼쳤다. 손바닥 위에서 흰눈이 녹았다가 다시 내리기를 반복했다. 사라졌다가도 다시 생기는 세상 무엇보다도 질긴 동아줄이었다. 힘들어도 이겨내야지 하늘도 얼마나 답답했으면 눈 동아줄을 내릴까. 살아 있는 동안 꿋꿋하게 버티겠다고 기도드렸다. 이번에도 차마 썩은 동아줄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그저 감사하다고만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뭐 먹어?”
학교 다녀온 아이가 먹을 것을 찾았다.
“엄마가 떡볶이 사 갈까?”
나는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더 씩씩해지기로 했다.
그렇게 5년이 흘렀다. 치료 중 나는 이전보다 많이 책을 읽고 글도 썼다. 문학의 세계를 걸어 다니며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닌 즐거운 사람이 되었다. 아픈 것도 잊고 지냈다.
이제 곧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다. 하얀 동아줄은 봄꽃이 되어 내려올 것이다. 여름에는 시원한 소나기가 그리고 찬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되면 낙엽이 동아줄의 모습으로 내려올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오는 문학의 세계를 사랑한다. 그곳에는 푸근한 웃음과 빛나는 시선과 따뜻한 마음이 섞여 있다.
장갑을 벗고 길가에 심어진 나무를 쓸어 보았다. 아직 바람이 차지만 한낮에 햇볕이 따뜻한지 벌써 가지마다 통통한 동아줄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