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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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격동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지나 생성형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나는 자주 발걸음을 늦춘다. 변화는 언제나 속도를 요구하지만, 삶은 속도로만 이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하게 체감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말한다. 삶은 어렵다고. 이 말은 더 이상 특정 세대의 푸념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입에서도, 이미 충분히 살아온 어른의 목소리에서도 비슷한 체념이 스며 나온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 특이점 같은 낯선 언어들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자기 삶의 결함처럼 받아들인다. 아직 무엇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뒤처진 것 같은 감각이 일상이 되었다.
기술은 늘 인간의 손에서 태어났다. 편의를 약속하며 삶 속으로 들어온 도구들은 어느새 삶의 구조와 리듬을 바꾸어 놓았다. 인공지능 역시 다르지 않다. 그것은 지식과 노동, 창작의 경계를 허문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은 너무 쉽게 권력과 결합한다. 효율과 속도가 가치의 기준이 되는 순간, 인간의 삶은 비교와 평가의 대상이 된다. 나는 이 눈부신 진보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지를 자주 되묻게 된다.
이 질문의 시간 속에서 나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A New Earth』를 읽고 있다. 그의 사유는 미래를 예언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의식의 상태를 묻는다. 그는 삶을 끊임없이 다음 단계로 미루는 사고방식 자체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스스로를 미완성으로 여기며 살아온 시간이 하나의 습관처럼 느껴진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 앞에서 마음이 느슨해지고, 고요 속에서 비로소 자신을 회복한다. 더 많은 정보를 손에 쥐었지만, 삶이 더 분명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실패한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자기 삶을 쉽게 축소한다.
반면에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사소한 삶은 없다는 것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불릴 인생 역시 없다는 것을. 삶은 언제나 진행 중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시적인 상태는 아니다. 숨 쉬고, 견디고, 하루를 살아내는 그 자체로, 인생은 이미 하나의 형식을 갖춘다. 성취나 성공 이전에, 존재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
인공지능은 이제 인간의 언어를 닮은 문장을 만들어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삶을 귀하게 여기는 일일 것이다. 속도와 비교의 기준에서 벗어나, 지금의 자신을 함부로 포기하지 않는 자기 존중감. 이런 마음과 감각은 어떤 기술로도 대체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더 앞서 나가는 글이 아니라, 이미 충분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그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주는 글. 변화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고 느끼는 이에게, 당신의 삶은 이미 여기에서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 글을 쓰고 싶다.
지금, 나는 여기에 앉아 이 문장을 적고 있다. 창밖의 빛이 서서히 기울고, 하루의 소음이 낮아진다. 이 평범한 순간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인생은 언젠가 완성될 무엇이 아니라, 이미 살아내고 있는 하나의 완성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질문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