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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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 곁에 온 여러분, 하늘의 영주인 위대한 신 호루스의 신전에서 예배를 올리는 여러분, 그분은 하늘을 여행하시지만, 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신다. 그분은 만사가 공정할 때 여러분에게 만족하신다.
함부로 비의에 입문하지 말라. 불순한 상태로 신전에 들어서지 말라. 이 성소에서 거짓을 말하지 말라. 재물을 탐하지 말라. 정확하지 않은 말을 하지 말라. 부패를 용납하지 말라. 가난한 자와 힘센 자를 차별하지 말라. 무게와 크기를 부풀리지 말라. 신전의 신비들 속에서 본 것을 폭로하지 말라. 신의 재산을 감히 훔치려 들지 말라. 마음속에 생기는 속된 생각을 멀리하라. 부유한 일생보다는 신께 봉사하며 보낸 한순간이 더욱 풍요롭다.”
이집트의 에두프, 호루스 신전이다. 여행 안내인이 신전 벽에 적혀 있는 글귀를 우리말로 바꾸어 설명해 준다. 마치 신들과 마주 선 듯, 한 마디 한 마디가 죽비로 일깨우듯, 경외감이 느껴진다.
하늘을 찌를 듯한 오벨리스크, 호루스 신전을 웅장하게 떠받치는 각각의 기둥들은 천장을 지탱하는 동시에 신성한 자연의 순환을 상징한다. 신의 집은 생명을 지키는 성역임을 의미하며 여러 조각품도 각각 뜻을 지닌다. 기둥 위의 야자수 조각은 사막 속 생명의 근원과도 같다. 연꽃 조각도 있다. 연꽃은 해가 뜰 때 피고, 질 때 꽃잎을 닫는 특징이 있어 태양의 순환과 사후세계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한다. 파피루스 조각은 어떤가. 파피루스는 이집트 신화에서 창조신이 물속에서 솟구칠 때 등장한 첫 생명초(生命草)였다 한다.
조각들 외에도 신전의 웅장함과 고대 이집트 문명을 보여 주는 벽화를 보며 교과서에서 배우고 말로만 듣던 이집트를 실감하며 흠뻑 빠져든다.
신전을 돌아보던 중 유달리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 카르나크 신전 안쪽, 비교적 아담한 돌기둥 위에 쇠똥구리가 의연히 앉아 있다. 이집트의 신전, 특히 카르나크 신전에 있는 쇠똥구리(스카라브, Scarab) 동상은 많은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소원을 비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쇠똥구리는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에서는 재생, 부활, 창조, 영원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케프리는 매일 아침, 태양을 수평선 위로 밀어 올리는 신으로, 스스로 다시 태어나는 존재다. 쇠똥구리 또한 태양신과 연결되었고 매일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영원한 순환과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고 그 안에 알을 낳는 것처럼 그들은 그것을 “자기 자신을 창조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 더럽다고 멀리서 바라보던 쇠똥구리, 말똥구리라고 했던 곤충이 이렇게 신성시되고 숭배의 대상이라니, 한편 신기하고 반갑기도 하다. 신전 벽화에서 쇠똥구리를 발견한 일행 중 한 선생님은 ‘행운의 벌레’라며 행운을 잡은 듯 좋아한다.
내가 어릴 때 익히 보고 자란 쇠똥구리가 고대로부터 이어져 멀고 먼 이집트에서도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어릴 때 뒷산 밤나무 밑에 소들이 매어 있었고 거기에 쇠똥구리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뒷발을 이용해 쇠똥을 뒤로 굴린다고 쇠똥구리라고 불렀지만, 똥밭에 구르며 똥을 먹고 사는 벌레라니, 쇠똥구리가 바글바글 모여 도토리만 한 공을 만들어 뒷발로 굴리고 가면 개구쟁이 사내애들은 발로 차기도 했다. 오늘 그 벌레에게 행운을 빌면서도 기분은 좋다. 이제는 거의 멸종 위기에 있어 비싼 값에 거래가 되기도 한단다. 여성들은 쇠똥구리 장신구를 즐기기도 한다. 까마득히 잊었던 쇠똥구리를 만나고, 그 상징성까지 알고 나니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쇠똥구리는 땅속에서 집을 지어 가족 단위로 살아간다. 말똥이나 쇠똥 중 오래되지 않은, 신선하고 적당히 수분을 함유한 것만을 식량으로 한다. 쇠똥구리는 먹이를 발견하게 되면 암수 한 쌍의 부부가 부지런히 쇠똥을 뭉치고 다듬고 또 다져서 깨어지지 않는 둥근 경단을 만든다. 이들이 둥근 먹이를 만드는 것은, 자기 집까지 굴려 가기 쉽게 하기 위함이고, 식구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먹이가 없어질 겨울을 대비하여 충분한 월동 식량을 비축하기 위해서다. 두 뒷발로 쇠똥 구슬을 뒤로 굴려서 간다는 것이 이 벌레들 말고 또 있을까.
여행 안내인이 일러 준 대로 쇠똥구리 동상 주변을 돌았다. “쇠똥구리 동상을 시계 방향으로 세 번 돌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일곱 번 돌면 부자가 되며, 아홉 번 돌면 다시 이집트에 돌아오게 됩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일행은 쳐다만 보고 이미 떠났는데 나는 욕심이 발동하여 열 바퀴를 애써 채워 돌았다. 열 바퀴는 행운이 아니려나. 행운도 빌어 본다.
쇠똥구리 동상을 돌다 보니 글쓰기가 떠오른다. 글이 단단해지려면 다듬고 다지고 굴려야 한다는데, 나는 쇠똥구리처럼 굴리는 재주가 없다. 이를테면 쇠똥구리가 경단을 만들 듯, 소재를 포착하여 사유를 단단하게 확장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일이다. 쇠똥구리는 뭉치고 다져서 자기 덩치보다 커진 공을 뒤로 굴려서 간다. 낮은 곳에서 작은 것을 묵묵히 굴려 태양신에 비유되는 행운의 벌레, 쇠똥구리가 가진 재주와 태양신의 행운을 받고 싶다.
세월을 품고 조용히 흐르는 나일강, 말없이 우뚝 서서 영생을 사는 룩소르의 기둥들을 뒤로하며 신성한 기운이 내 안에 스며들기를, 안목이 넓어지기를 빌었다.
나는 수천 년 신비가 깃든 그곳에서 새로운 도약을 조용히 다짐했다. 내 영혼은 오늘도 이집트 땅을 여행하며 창조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쇠똥구리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