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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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만에 다시 찾은 봉정사 아침은 숲으로 우거져 여전히 싱그럽다. 바윗골을 타고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명옥대를 오르니 퇴계 선생 시가 생각난다. ‘낙수대’가 밋밋하다며 ‘명옥대(鳴玉臺)’로 명명했다는데 과연 물소리가 명징하다. 사방에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 서정시를 쓰는 짙은 여름이다.
퇴계 선생이 숙부인 송재 이우의 주선으로 이수령, 권민의, 강한과 함께 16세에 이곳에서 석 달간 공부하였다. 50년이 지나 66세에 다시 찾은 명옥대에서 깊은 감회로 읊은 시를 음미하며 소나무 터널을 오른다.
오십 년 전 그 어느 날 이곳에 와서 놀 제
온갖 꽃 그 앞에서 봄빛에 취했더니
손잡고 함께 온 사람 이젠 어디 갔단 말고
푸른 바위 흰 폭포만 예와 다름없을 뿐일세
푸른 바위 흰 물굽이 그 경계가 기이하거늘
구경 손님 가고 나면 시내 숲도 슬퍼하리라
다른 때 호사자가 예 와서 묻거든
일찍이 계옹(溪翁)이 시 읊었다 일러다오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극락전은 단아하고 대웅전은 다포 건물에 단청이 고풍스럽다. 대웅전의 서쪽에 자리한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서방정토를 관장하신다. 대웅전의 석가모니와 함께 보개(寶蓋) 천장을 한 닫집 안에 앉으셨다. 지금은 마루가 깔렸지만 전돌 위를 탑돌이 하듯 부처님을 기준으로 기도하며 돌았을 터.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연 안고 묵묵하신 불타!
극락전 정면에 고금당과 화엄강당을 잇는 7칸의 우화루와 대웅전 앞마당으로 올라가는 문이던 3칸의 진여문이 1969년 고금당 해체 복원 공사를 할 때까지 있었다고 한다.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설법할 때 꽃비가 내렸다는 데서 차운한 ‘우화루’는 지금 영산암 입구로 옮겼다.
봉정사는 본 마당에 신도들의 예배 공간으로 대웅전과 극락전이 있다. 그리고 스님들의 수행 공간인 고금당과 화엄강당, 스님들의 거주 공간인 무량해회와 요사채 건물로 구성된다. 자연 친화적이고 유가의 형태를 갖춘 아름다운 암자 영산암에서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나랏말싸미> <동승>을 촬영해서 영화감독이 영상미상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질 때 안동의 유림이 의병을 일으키자고 최초로 영산암에서 논의하고 문인들의 문집이 발간되기도 했다.
2018년 봉정사,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7개 사찰이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천등산 봉정사도 최고의 목조건축물에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과 완전성으로 유무형의 문화적 전통이 살아 있어서 등재될 수 있었다.
진계와 사바세계를 가르는 일주문을 내려오며 고개 들어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란 현판 글씨를 본다. 글씨를 쓴 은초 정명수는 진주 출생으로 개목사에서 공부한 포은 정몽주의 13대 후손이다. 개목사는 원래 ‘흥국사’였는데 안동부사가 개목사(開目寺)로 명명하자 안질이 좋지 않던 안동 시민들의 눈이 밝아졌다고 전해진다.
일주문에서 이정표 따라 우측으로 약 30분 거리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개목사 원통전이 있다. 개목사 뜰에는 아름드리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고 정몽주의 「단심가」가 고시조와 함께 두 개의 빗돌로 새겨져 정몽주가 머물렀던 흔적을 시조로 말해 주며 고졸한 멋을 보여 준다.
금계포란형의 명당인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사가 수도를 한 후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린 곳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봉정사에는 역대 왕들과 지도자가 다녀가거나 머물렀던 곳이다. 병산전투에서 삼태사의 도움으로 견훤에 승리한 왕건은 삼태사에게 성(姓)을 내리고, 지역 이름을 ‘고창’에서 동쪽에 편안한 고장 ‘안동(安東)’이라 하였다.
고려 말기 공민왕은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몽진 오는데 이때 지방민들이 마중을 나와 왕과 노국공주를 쉽게 개울을 건너도록 일렬로 허리를 굽혀 인교(人橋)를 만들어 건너게 해 주었고 그에 감동한 공민왕은 2년간 안동에 머물렀다. 그리고 출생하는 왕자의 태를 봉정사 아랫마을에 묻었다 하여 이 마을 이름이 태장리가 되었다. 그때 부녀자들의 인교가 지금의 안동놋다리밟기이고 왕건과 견훤의 전투가 차전놀이인 민속놀이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봉정사 문화재를 감상했고, 1999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봉정사를 방문하고, 20년 후인 2019년에는 여왕의 차남인 앤드류 왕자가 봉정사를 방문하여 영국 왕실의 대를 이은 봉정사 사랑을 나타냈다. 오늘도 많은 사람이 천등산 봉정사를 오르며 합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