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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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백세 시대라고 한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아흔을 넘어 백세를 바라보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연세가 그렇게 많다면 어딘가 건강이 안 좋을 만도 한데, 건강은 또 건강대로 좋아서 일상생활을 아무 불편 없이 해내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음을 본다.
내가 아는 지인의 어머니는 올해(2022년) 아흔다섯인데도 혼자서 밥하고 빨래도 하면서 건강한 나날을 보내고 있고, 또 다른 한 분은 아흔셋이나 되셨지만 아직도 바깥나들이가 활발하실 정도다.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나신 <전국노래자랑>의 국민 사회자 송해 선생도 아흔여섯 살을 건강하게 살다가 가셨고, 철학자이자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김형석 선생도 올해 백세 살이신데도 아직 건강하신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또 한 분 연세대 명예교수이며 전 국회의원이신 김동길 박사도 1928년생으로서 올해 아흔다섯이신데 아직껏 건재하고 계신다. 요즘은 이렇게 백세를 넘겼거나 백세 가까이 건강하게 사시는 어르신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닌 세상이 되어 있는 게 사실이다. 이 같은 사실은 참 큰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건강한 가운데 오래 사는 것이 저마다의 소원이고 보면, 구십을 넘어 백세를 살면서도 이렇듯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참 좋다. 조선 시대에는 물론이고, 지금으로부터 불과 반세기쯤 전인 지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여기저기서 회갑이나 진갑잔치를 하면서 서로 축하하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백세 시대를 넘어 백이십세 시대가 얼마 안 남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게 되었다. 날로 발전하는 의학의 혜택을 받으면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한편으로 적절한 운동까지 곁들이면서, 즐기던 담배나 술까지 절제하면서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음을 볼 때, 그 말도 전혀 허황되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세 시대가 오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백세 시대가 사실로 다가오고 있듯이, 백이십세 시대도 이미 저 너머 어디쯤에 오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하지만 건강하면서 오래 사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이 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 하지만, 실제로 백세를 사는 분들은 아직은 그렇게 많지는 않고, 또 누구나 두려워하는 치매에 걸려 자신은 물론 함께 사는 가족들까지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지경에 빠져 있기도 하다. 몸에 병도 병이지만 특히 괴로운 것은 치매라고 할 수 있다.
병은 어느 병이나 다 무섭기는 하지만 특히 치매는 정말 생각보다 무서운 병이다. 치매는 나이나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젊은 층에서는 치매 환자를 찾아보기 쉽지 않고 대개 나이가 육십을 넘은 사람에게 많은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그 나이쯤 되면 신체 여기저기에 노화가 찾아오고 반갑잖은 병도 따라오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의 사망률 1위가 각종 암이라고 할 정도로 암은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암 못지않게 무서운 게 치매다. 가족 가운데 치매 환자를 겪어 본 사람들이면 다 알고 있듯이,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도 환자 못지않게 크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갈수록 치매에 걸리지 않게 예방에 힘써야 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무슨 일에나 지나친 몰입에 따른 신경 과민을 피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슨 일이든 대범하게 넘기는 한편 대인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생각 없이 너무 멍하게 시간을 보내서도 안 되며, 끊임없이 두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나이 드신 분을 모시고 있는 가족들도 그분의 치매 예방을 위해서 함께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일단 집안에 치매 환자가 발생하면 그때부터 비상이 걸린다. 아직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치매 환자를 돌볼 책임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으로 돌아오는 실정이다. 치매에 걸린 환자는 자신의 의지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족들이 곁에서 돌보아야 하는데, 그 고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아무리 선의로 성심성의껏 보살핀다 해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가족을 괴롭히는 데에는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상대가 치매 환자라서 이해를 하려 해도 사람인 이상 도저히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 돌보는 가족 입장에서는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을 희생하면서 내 가족이니까 참을성 있게 돌보지만, 엉뚱한 트집을 잡고 집요하게 늘어지는 환자를 견뎌 내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뭐가 있었는데 없어졌다든지, 하지도 않은 욕을 했다든지, 심지어 아들 내외가 자고 있는 방에 열쇠를 채워 놓으면 한밤중에 베란다를 통하여 들어와서는 자고 있는 며느리에게 얼굴을 갖다 대고 물끄러미 보고 있는 모습을 잠이 깨어 보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났을 때의 놀람과 가슴 떨림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이럴 때 내 부모님이니까, 혹은 내 시부모니까 하며 이해하고 넘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열 번씩 요양원으로 보내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꾹꾹 누르며 참아내고 있는 가족들도 있는 것이다. 그 가족 입장에서는 직장을 그만둬서 수입이 없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만이 아니다. 본인의 사생활 자체가 송두리째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병원에 가야 할 때도, 자신의 그 어떤 볼일도 보지 못하는 생활, 말하자면 자신의 인생 자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급기야는 심한 우울증으로 번지게까지 되는 것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현주소인 것.
이쯤 되고 보면 환자가 아무리 귀하고 귀한 나의 부모님이거나 나의 가족일지라도 한 번쯤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혹자는 요양원으로 모시는 것이 현대판 고려장이라면서 그 가족을 안 좋게 보는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구제 불능의 치매 환자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남의 일이라고 사정을 모른 채 그 가족을 함부로 비난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비록 치매 환자는 아니라 해도 부모님이나 가족을 요양원에 모시는 경우도 있는데, 거기에는 필시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어서 그에 대해서 누구도 함부로 비난만 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본다면, 옛날의 고려장 풍습에 대해서도 무조건 좋지 않은 폐습이었다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버릴 수는 없지 않을까? 그때라 해도 누구라서 제 부모님이나 가족을 그렇게 함부로 고려장을 실행하고 싶겠는가? 오죽하면 그럴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어서 그런 짓까지 하게 되지 않았겠는가?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려 상상하기조차 힘든 기상천외한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있는 지인이 있는데, 그럼에도 꿋꿋이 요양원으로 모시지 않고 성심으로 돌보면서 며느리 된 본분을 지켜 가고 있는 지인의 모습을 보면서, 고려장에 대한 여러 가지 상념에 빠져 여기 몇 자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