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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한국문인협회 로고 정윤수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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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멀지 않았는데 혹독한 엄동설한이 물러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우수 경칩에 이르면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반달곰이 굴에서 뛰쳐나와 제 세상 만난 듯이 껑충껑충 뛰어놀게 될 것이다. 겨우내 땅속에 묻혀 있던 각종 씨앗들은 서둘러 싹이 트고 뿌리가 내린다. 그 연약한 몸체로 흙과 돌 틈을 헤집고 땅 위로 솟아오르게 될 것이다. 지난가을에 단풍 되어 떨어져 헐벗은 나목들은 푸른색의 새 옷으로 몸을 감싸고 더위와 탁한 공기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오라고 손짓할 것이다.
겨울 동안 거실에 덩그러니 놓아 두었던 단지 두 포기의 동양 난초를 베란다에 내다 놓고 햇볕을 받게 해야겠다. 이 난초 화분이 우리 집에 있었기에 명색이 문인화가인 내가 습작을 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 되어 주었으니 고맙다. 하지만 겨우내 물도 제때에 안 주고 잎에 먼지가 뽀얗게 앉았건만 닦아 주지도 않았으니 그들 나름대로 나를 무척이나 원망했을 성싶다. 연구 보고에 의하면 식물도 청각과 지각을 갖고 있다는 결과가 발표된 바 있기에 더욱 미안하게 생각된다.
우리나라 기상청이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여름철은 25일이 길어지고, 겨울은 22일이 짧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민족과 친근한 소나무들은 더위에 못 견뎌 그들이 살기 적합한 지형 높은 산이나 북쪽으로 그들의 후손이 살아갈 씨앗을 널리 퍼뜨리는 지혜를 갖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수도권 지방에서 사계절의 대표적 상징성은 봄철엔 꽃이요, 여름엔 녹음, 가을엔 단풍 그리고 겨울철에 눈 덮인 나목을 들 수 있겠다. 봄철에 가장 먼저 꽃이 피어 봄소식을 알리는 것은 추위와 눈보라에 아랑곳하지 않고 피는 동매(冬梅)가 있다. 이어서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왕벚나무, 백목련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에 매화꽃과 백목련꽃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매화꽃은 공통적으로 다른 꽃들이 피기 전, 찬바람과 눈보라 속에 고고한 모습을 나타낸다. 언제부터인가 매화나무를 호문목(好文木)이라 일러 왔는데, 아마도 매화꽃이 수많은 묵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던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 남송(南宋) 시대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대익(戴益)이 지은 매화꽃에 대한 시를 옮겨 본다.

 

杖藜踏破幾重雲 구름 깊은 곳에 청려 지팡이 짚고 가서
終日尋春不見春 종일토록 봄을 찾았건만 봄은 보지 못하고
歸來試把梅梢看 돌아와 매화나무 가지 끝 살펴보니
春在枝頭已十分 봄은 벌써 이곳에 와 있더라!

 

이 시 속엔 청려(靑藜) 지팡이를 짚고 깊은 산속으로 봄을 찾아 들어간 은사(隱士)의 모습을 담고 있다. 매실 열매를 미숙기에 채취해서 머위와 함께 즙을 내서 생계란과 섞어 섭취하면 뇌졸중 예방이 된다는 것이다.
창문을 열면 큼지막한 백목련나무가 시선을 이끈다. 꽃봉오리 적엔 낮에 보면 선비가 애지중지하는 흰 붓을 나뭇가지마다 꽂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나무 이름을 목필(木筆)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꽃향기가 난초 못지않다고 해서 목란(木蘭)이란 이름을 얻었다. 어스름 달밤에 꽃봉오리를 보면 수많은 백조들이 목련나무 가지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깊은 잠을 자는 듯하다. 이처럼 변화무쌍하고 예술적인 꽃봉오리가 피지 말고 오래도록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백목련나무를 선대 묘역이나 사당 주변에 심으면 후손들이 바람을 피운다는 속설 때문인지 묘역이나 사당 주변에서 백목련나무를 볼 수가 없다.
봄철이 되면 새로운 생명체들을 잉태시키기 위해 꽃을 피우고 잎을 움트게 해서 세상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변화시킨다. 내가 맞이해 온 수많은 봄날에는 어떤 꽃을 피게 하고 잎을 움트게 하는 사회적 역할을 하였던가!
필자가 젊은 시절엔 나름대로 앞만 보고 달려왔건만 뒤돌아보니 보람된 흔적을 찾을 길이 없어 부끄럽고 안타깝다. 병오년의 봄이 오는 길목에서 크게 타락한 사회적 윤리와 도덕성의 회복을 위해 고민하면서 실천에 옮길 것을 다짐하는 계기를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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