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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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중인 지리산 심원계곡에서 노고단까지 식물 분포를 조사하기 위하여, 탐구 대원들은 관광버스 일곱 대에 탔다. 아침 7시에 버스는 교육청 마당에서 힘찬 출발을 했다.
조사단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수, 교육청 장학관 등이다. 그곳 식물을 조사하고 채집하여 표본을 제작하고 식물의 분포와 생태를 조사하고 변동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나는 내년에 퇴직하지만, 식물 수종, 이름을 알고 구별하기 위하여 스스로 참가했다. 잔뜩 찌푸린 날씨는 염려했던 대로 도중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심원계곡에 도착하니, 채전(菜田)엔 비를 맞고 춤추는 곰치산나물이 오늘 식사에 입맛을 당길 것 같다.
여관에 들러 여장을 풀고, 카메라와 중요 장비는 배낭에 두고, 헌옷으로 갈아입은 후 우의를 걸쳤다. 채집할 전지가위와 비닐포대만 챙겨 밖으로 나갔다. 심원계곡은 5년째 휴식 상태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여 매우 깨끗했다. 소나기가 쏟아져 멈추기를 기다렸지만, 비는 그치지 않아 출발했다.
A팀은 산행에 익숙한 10여 명이, 계곡 따라 노고단으로 오르면서 채집하러 먼저 출발했다. 장맛비라 나는 계곡을 피하고 노고단 능선을 따라 안전하게 채집하는 B팀을 따라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빗속에서 채집을 하니, 시원하여 오히려 맑은 날씨보다 기분도 상쾌하고 재미가 쏠쏠하다.
갑자기 앞이 캄캄하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번갯불만 바로 옆에 떨어지며 벼락 치는 듯 우르르 쾅쾅쾅 소리가 지축을 흔들면서 장대비가 쏟아진다. 갑자기 물천지가 되며 앞이 보이지 않는데, 회오리바람이 사람을 날릴 듯 몰아친다. 불안하여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려서 숨죽인 채 기다렸다.
빗줄기가 약하고 조용하면 조금씩 움직이며 채집을 하면서 비와 사투를 벌였다. 희귀종 식물이 나타나면 끝까지 쫓아가서 채집했다. 수많은 수종들의 이름과 생태를 알고 싶기 때문이다. 비바람과 사투를 벌인 지 두 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노고단에 당도했다. 앞서 출발한 A팀이 먼저 와서 우리 버스를 타고 있었다. 채집한 비닐포대를 버스에 실어 놓고 밖으로 나가니 안개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앞사람 형체만 겨우 보이는데 일열로 줄을 선다. 평평한 완경사 길을 따라 조심조심 한 시간을 올라가니, 노고단 정상에 도착했다.
갑자기 산안개가 활짝 걷히면서 보슬비가 오더니, 여우비로 바뀐다. 솜같이 하얀 구름 사이로 파란 호수처럼 맑은 하늘이 열리면서, 해맑은 태양이 생글 미소 지으며 인사 올린다. 내려다보니 골마다 쌓인 운무가 바다 같고, 그 바다 한 지점에서 하얀 구름을 조각조각 끊어서 토한다. 떨어진 조각들이 수십 행렬로 저만치 옆산을 오르면서 점점 부풀어 꽃으로 피어난다. 다시 가로 세로로 부풀어 머리와 다리 날개가 되더니, 수만 마리 학으로 화(化)하여 물기가 뚝뚝 흐르는 청산 위를 수놓으면서 반야봉 향해 날아오른다. 그 위론 이 봉과 저 봉을 잇는 거대한 무지개가 활짝 솟아오르면서 반야봉과 노고단에 다리를 놓는다.
갑자기 나타난 저 장관에 모두 함성을 지르면서 손뼉을 자르르 친다. 순간에 일어난 환상적인 비경(秘境), “아! 여기가 바로 선계(仙界)로구나!” 모두 감탄사를 마구 토한다. 나는 저처럼 웅장하고 거대한 무지개와 학의 행렬을 본 적이 없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 괴테는 “무지개를 보고 가슴 설레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한 말, 실감난다. 저 비경을 나는 신의 예술이라고 부르리라. 저것이 바로 지리산의 십경(十景) 중 으뜸인 ‘노고단의 운해’란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지리산을 평생 오른 등산가들도 저 신비경을 본 사람은 흔치 않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단 한 번 만에 볼 수 있었던 것은 정말 행운이요, 이번 행사의 값진 보람이다. 새 신부는 아름다운 한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하여 생사를 넘나드는 진통을 참고 견뎌야 한다. 오늘 우리가 노고단의 신비경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뇌우 속에 비바람과 사투를 벌였기 때문이리라.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한 가지 성공은 또 다른 성공을 낳는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다.
밤에는 교수님들의 연구 발표와 표본 제작 강의를 듣고, 실물 환등기로 채집한 식물을 보며 이름을 조사했다. 또 다른 환등기로는 산새의 생김새를 보고, 녹음한 울음소리로 새의 종류를 구별했다. 나는 오늘 채집한 300여 종 식물을 표본으로 제작하여 후세들 교육을 위한 교재로 학교에 남겼다. 오늘의 우중 채집의 체험과 환상적인 신비경이 나와 우리 일행 가슴 깊이 오래도록 남아 인생 역경을 타개하고 인생을 밝게 여는 길잡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