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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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바아산호텔. 이만수는 한 남자와 함께 호텔 방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만수와 함께 있는 사람은 이마가 넓고 귀가 크고 코가 약간 둥그런 중장년으로 고급스러운 정장에 쓰고 있던 금테 안경을 가끔씩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밀어 올린다.
“김 회장님, 이거 혹시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요?”
이만수는 초조한 기색을 보이면서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이라고 불린 남자는 그저 창밖을 바라보며 말이 없다. 김 회장은 분명히 그가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조선족 세 명의 도굴꾼이 처형당했으니 도망자 신세가 된 김창신은 자신의 안위가 불안할 것이다. 도망을 다니려면 돈이 필요하다. 김 회장은 연변 조선신문을 펼쳐서 읽어 보았다. 신문에서는 고구려 고분의 도굴에 대해서 장황하게 떠들고 있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기 위해 신청을 해 놓은 상태에서 고분벽화가 훼손되었으니 세계적인 문제에다 국제적 망신이라는 기사였다. 잘못하면 철창신세를 질 수 있는 목숨도 위험하다. 하지만 김 회장 자신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단은 벽화를 입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똑, 똑, 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이만수가 후다닥 방문으로 다가가서는 물었다.
“김창신입네다.”
걸쭉한 연변 사투리가 초조한 빛을 띠며 들려왔다. 이만수는 김 회장을 돌아보았다. 김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만수가 문을 열어주었다. 초췌한 몰골의 사내가 땀에 절어서 황급히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림은?”
만수가 다그치듯 묻자 그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아주 깊숙한 곳에 잘 숨켜 놨습네다.”
그 말에 김 회장의 미간이 꿈틀댔다. 시간이 없는데 이런 식으로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김 회장은 이미 국내 소장가에게 벽화를 넘기기로 매매가 된 상태에서 선불로 20억을 받았다.
“자네, 한국으로 갈 텐가? 어차피 이곳에서는 살 수가 없지 않은가? 한국에 가면 내가 뒤를 봐줌세.”
김 회장이 직접 그에게 말했다.
“회장님, 제발 도와주십시오.”
창신은 그 말에 와락 무릎을 꿇었다. 김 회장이 그런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이만수는 김 회장이 무슨 의도로 그렇게 말하는지 궁금했다.
“우선 단동으로 가게. 단동에서 배를 타고 몰래 한국으로 들어오는 거야. 내가 단동에 아는 사람 주소와 편지를 주겠네. 그러니 자네는 벽화를 갖고 단동으로 가서 배를 타게.”
김 회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미리 준비해 온 다른 사람 필체로 적어 온 주소와 쪽지를 그에게 넘겨준다.
“혹여 차비가 모자라면 쓰시게.”
돈도 5만 위안을 그에게 주었다.
그는 김 회장의 배려가 너무 고마워서 수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시간이 없기에 그는 그대로 도망치듯이 호텔을 빠져나갔다.
“회장님, 만약에 탈이라도 난다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가 곧장 나가자 이만수는 바로 김 회장에게 말했다.
“이 총무,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같소? 나에게 맡기시오.”
김 회장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회장님….”
이만수는 엄청난 비호세력을 가지고 있는 김 회장의 파워를 알고 있었으나 행여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올까 봐 불안한 모양이었다.
“염려 놓으래도. 단동의 홍 선장에게 이미 다 부탁해 놓았소.”
그제야 만수는 마음을 놓았다. 하긴 1995년부터 지금까지 대한고미술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김 회장 손이 안 닿는 곳이 없을 만큼 발이 넓다. 회장에게 유리하게 만들어 놓은 치밀한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중대한 사건에도 침착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역시 김 회장이야. 지금껏 다져온 그 많은 인맥으로 이번 사건도 잘 해결할 것을 만수는 믿고 있었다.
1997년 가을. 중국 지린(吉林)성 통화에 사는 김근홍은 한국에서 왔다는 이민석이라는 남자를 만났다. 작은 몸집에 까무잡잡한 김근홍에 비해 이민석은 키가 컸고 피부색도 하얀 데다가 멋진 정장을 입고 있기에 확실한 빈부의 격차를 느끼고 있었다. 근홍은 자기를 만날 것 같지도 않은 신사가 저를 찾았기에 의아해했다. 이민석은 그저 격식 없이 근홍을 대했고, 그를 이끌고 통화에서 가장 비싼 술집을 찾았다. 근홍은 생전 처음 들어와 보는 최고급 술집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민석은 그 술집에서도 가장 좋은 술과 요리를 시켰다. 근홍은 처음에는 얼떨떨했지만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았다. 기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자신의 가난한 처지가 비교가 되어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권주를 하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민석이 슬쩍 사진 몇 장을 근홍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근홍은 민석이 내미는 사진을 살펴보았지만 전혀 모르는 사진들이었다. 다만 근홍이 생각하기로는 아주 옛날 그림들을 찍어 놓은 사진이라고밖에는 아는 것이 없었다. 사진은 옛날 사람들이 나들이 가는 것 같은 것과 기묘한 동물들의 모습을 찍은 것들이었다. 근홍이 민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런 것들을 구할 수 있으면 큰돈을 만질 수 있는데….”
민석은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근홍은 큰돈이라는 말에 바삐 물었다.
“이런 것을 사는 사람도 있어요? 비싸게 산다고요?”
민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아주 비싸지요. 적어도 100만 위안은 받을 수 있을 겁니다.”
근홍은 그 말을 듣고는 까무러칠 뻔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비싸단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비싸다고 해도 근홍이 그것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하나 하는 의문이 근홍의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혹시?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이게 근처에 있는 고구려 고분 삼실총이란 곳의 벽화입니다.”
근홍은 민석의 말을 듣고 사진들이 삼실총이라는 고분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그것을 얻을 수도 있었다.
“제가 만일 선생님께 이 벽화를 구해 온다면 100만 위안을 지불하시겠습니까?”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는 판단이 빠른 사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선 사람에게 이런 약속을 받아도 그것이 이행될지 모른다는 의심을 할 수도 있었다. 민석은 두툼한 봉투를 근홍에게 건넸다. 근홍은 그것을 받아서 안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우선 착수금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사람도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근홍이 인사를 꾸벅했다.
“물론입니다, 선생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근홍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이 기뻐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네 개의 손전등만이 마치 죽음의 도시를 방문하는 도깨비불처럼 반짝였다. 삼실총. 삼실총은 중국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 우산촌에 위치해 있었다. 흙무지돌방무덤으로 세 개의 방이 ‘ㄷ’자형으로 이어진 특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고, 다른 고구려 고분의 방이 하나 또는 두 개인 데 비해 이 무덤은 방이 세 개이기에 ‘삼실총’이란 이름을 붙였다.
금세라도 옛 고구려 장군의 혼령과 고구려인들의 혼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네 사람은 긴장과 흥분으로 두려움을 이기며 고분 안으로 들어갔다. 근홍이 친구들을 재촉했다.
“서둘러야 해! 문화재 관리국장에게 뇌물을 먹였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은 없다고.”
근홍의 말에 다른 세 사람의 걸음이 빨라졌다. 고분 안에는 온통 그림 천지였다. 사방과 천장이 벽화였다. 벽화에서는 금세라도 전설상의 괴물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무룡이 소리쳤다.
“여기야!”
제1실. 마치 여행을 가는 듯한 행렬의 그림. 바로 출행도(出行圖)였다. 그 그림을 보고 있는데 병국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도 있어!”
세 사람이 병국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니 벽 사방에 동물처럼 생긴 괴물들이 그려져 있었다. 동쪽에 청룡도(靑龍圖), 서쪽에 백호도(白虎圖), 남쪽에 주작도(朱雀圖), 북쪽 방향으로는 현무도(玄武圖)가 마치 불청객들에게 공격이라도 할 듯이 네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근홍이 소리쳤다.
“빨리 서둘러야 해! 무룡이는 첫 번째 그림을 맡고, 내가 이 청룡을, 기하가 백호를, 그리고 병국이가 현무를 맡아서 떼어내자고.”
네 사람은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벽화는 프레스코 형식이어서 떼어내기가 쉽지가 않았다. 프레스코 형식이란 벽면에 회를 입히고 그것이 굳기 전에 그림을 그리는 형식을 말한다. 하지만 네 사람은 그런 사전 지식이 없으니 그것을 강제로 떼어내야 했다. 그러니 옆에 있는 그림에 손상이 컸다.
“잠깐!”
근홍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시간이 흘러갔고, 공안이 올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서둘러!”
마침내 벽화가 떨어졌다. 근홍은 벽화를 가져온 큰 상자에 넣었다. 다른 친구들도 거의 일을 끝마치고 있었다.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았다.
“불을 꺼!”
불이 꺼지자 세상은 온통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근홍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 됐어?”
세 사람이 동시에 다 끝났다고 대답했다. 이제 무사히 빠져나가기만 하면 일은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넷은 갑자기 밝아지는 입구에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공안들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지?”
기하가 초조한 듯이 물었다. 근홍이 그런 기하에게 조용히 말했다.
“기다려 봐!”
잠시 후에 왁자한 소리가 들렸고, 한 사람이 약간은 큰소리로 말했다.
“자네들, 수고가 많네. 내가 술을 좀 가져왔으니 좀 쉬시게.”
공안들이 어디론가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재빨리 목소리가 안으로 들렸다.
“근홍이, 서둘러!”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근홍이 다른 친구들을 재촉했다. 입구로 나오자 중년 사내가 초조한 눈빛으로 말했다.
“빨리 서둘러 남쪽으로 가게. 잔금은 내일 받겠네.”
그 말을 뒤로 들으면서 네 사람은 암흑 속으로 빨려들 듯이 사라졌다.
이민석은 근홍이 내미는 네 개의 즐비하게 쌓인 상자를 보고서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근홍이 내용물을 꺼내자 정신없이 그것을 쳐다보았다. 행렬도와 청룡도, 백호도, 그리고 현무도였다. 민석이 그것을 잡으려고 하자 근홍이 그를 막고 손부터 내밀었다. 민석은 주저 없이 가방을 건넸다.
“100만 위안에 덤으로 5만을 더 얹었네.”
그 말에 근홍이 허리를 와락 굽히며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민석은 돈 가방을 갖고 떠나는 근홍의 뒷모습을 음흉하게 쳐다보았다. 이것이 미끼였다. 이것이 시작이라는 판단에 그는 5만 위안을 더 지불한 것이다.
처음에 삼실총이 도굴되었다는 소문이 날까 봐 중국 당국은 쉬쉬했다. 자신들의 실책과 공안의 무능이 드러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7년 7월 3일 무금무악도(撫琴舞樂圖), 비봉도(飛鳳圖), 공양인도(供養人圖), 백희도(百戱圖) 등이 도굴되었고, 이민석은 이것을 김근홍에게 31만 위안을 주고 구입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속담처럼, 김근홍은 다시 한병국과 김창신, 그리고 한병국의 동생 한정국을 꼬여서 삼실총을 도굴했다. 이때에는 완벽한 벽화를 떼어내기 위해 이민석이 제공한 절삭용구까지 휴대하고 무사도 등 몇 점의 벽화를 완벽하게 떼어내다가 그만 공안에 체포되었다. 김창신은 도주했지만 김근홍, 한병국, 한정국은 체포되었고, 그들의 도굴을 도운 문화재 관리국장인 최인도 함께 잡혔다. 체포되자마자 재판에 넘겨진 김근홍, 한병국, 한정국에게는 즉결 처형이라는 판결이 내렸고, 관리국장 최인에게는 사형이지만 2년의 연장 기간을 두었다. 중국 당국은 김창신과 이민석이라는 자를 수배했지만 종적을 알 수 없었고 도굴된 벽화의 행방도 찾을 수 없었다.
아침이 밝아왔다. 아침의 커다란 태양은 김동수에게 날개라도 달아 줄 듯이 밝게 떠올랐다. 김동수는 협회에 들어서자마자 임원에 속하는 감정위원을 소집했다. 한 명의 부회장과 한 명의 감사를 포함해서 겨우 여덟 명 남짓의 감정위원들이 모였다. 임원들이 모이자 김동수는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협회가 1995년 이전보다 아주 비약적인 발전을 했소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고미술품이 전부 대한고미술협회에서 발행하는 감정서의 평가 때문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감정서는 우리 협회에서 발행하는 것이 아니면 인정을 해 주지 않는 실정이오. 제가 협회를 위해 수십 년 동안 발전시킨 보람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발전이 계속되지 못할 우려가 있소이다. 우리가 이전의 협회로 돌아간다는 것은 절대 안 될 것이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정관 개정을 요청하려고 하오.”
임원진들이 웅성댔다. 갑자기 정관 개정이라니? 그들이 의아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판국인데 구태여 정관 개정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부회장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내 생각으로는 지금 이 상태가 좋은 것 같습니다. 구태여 정관을 개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김동수는 언성을 높였다.
“아니, 부회장은 신중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그런 무책임한 발언을 한단 말이오?”
그 한마디가 부회장을 움찔하게 했다. 말하자면 회장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라고 하는 독재와도 같은 선언이었다. 임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지만, 딱히 김동수에게 대놓고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이미 3년 동안 김동수를 알아왔기에 그의 잔인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 반대 의견을 제시해 주기 바라오.”
아무도 반대할 사람이 없었다. 김동수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면서 마치 모든 것이 결정된 듯이 말했다.
“우선 부회장은 지금의 1인 체제에서 4인 체제로 바꾸고, 감사는 2인 체제로 하도록 하겠소. 이사를 원하는 사람이면 자격을 따져서 전부 이사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낫겠소.”
아무도 반대 의견을 말하지 않았기에 김동수가 말한 것은 모두 정관 개정의 의안으로 넘어갔다. 임원들 누구도 김동수가 정관 개정에 실패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대한고미술협회는 이제 김동수의 일인 독재 체제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김 회장 뒤에는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온갖 법을 빠져나가는 방법과 수단을 알려 주고 있으니 거칠 것이 없었다.
김동수가 의도한 대로 정관 개정은 만장일치로 통과가 되었다. 회장의 임기는 3년이고, 회장은 회장단의 추천으로 이사회의 출석자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되게 되었다. 말하자면 3년 임기로 회장을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1,000명의 이사가 있더라도 10명의 이사만 이사회에 출석하여 6명의 찬성만 있다면 회장으로 당선될 수 있다는 아주 조악한 정관이었다. 이로써 대한고미술협회는 김동수의 1인 장기 집권 체제가 시작되었다.
단둥항은 황해의 가장 북쪽에 있는 항구로, 러시아, 몽고, 북한, 한국, 일본을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 각 나라를 편리하게 연결하는 항구다. 단둥 항구에서 수로로 한국 인천항구까지는 232(430km)해리이다. 북적대는 항구에서 김창신은 홍 선장을 찾아 나섰다. 그는 트럭에서 내린 많은 상자를 부두에 내려놓고 홍 선장을 찾았다. 홍 선장은 이미 김 회장에게 연락을 받아 놓고 대기하던 중이라 속전속결로 상자와 같이 그를 배에 태웠다. 김창신의 얼굴은 잔뜩 겁먹은 듯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홍 선장은 일단 그를 선실 안쪽 작은 공간에 숨겼다. 밤이 오면 바로 출항할 예정이다.
밤이 다가오자 곳곳에 정박해 있는 화물선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홍 선장은 선원에게 시동을 걸라고 지시했다. 밤바다에 울려 퍼지는 배 엔진이 뿌우∼ 비명을 지르듯이 작동을 시작했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화물선에서 나는 연기 냄새가 합해져서 묘한 냄새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홍 선장은 김창신에게 절대로 자신의 지시 없이는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밤바다는 생사를 가르는 허한 고독과 외로움을 머금고 달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바다. 그것은 마치 죽음에의 초대와 같아 보인다. 황해를 따라 화물선은 남쪽으로 항해했다. 일단 중국과 한국의 영해 사이로 운항해야만 두 나라의 해경에게 검문을 당하지 않는다. 홍 선장은 항로를 따라서 검은 바다로 배를 몰았다.
김창신은 속이 울렁거려서 미칠 것만 같았다. 가뜩이나 도망자 신세라 몸도 성치 않은 데다가 생전 처음 타는 뱃멀미로 인해 그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참으려고 해도 배에서 나오는 기름 타는 냄새까지 겹쳐 그의 위장을 마구 뒤흔들었다. 이제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홍 선장님! 홍 선장니임!”
김창신이 갇힌 문을 두드리며 부르자 홍 선장은 선실 안으로 들어가 좁은 밀실 안쪽 김창신이 들어가 있는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김창신은 밖으로 뛰쳐나와 배 밖으로 구토를 했다.
“억!”
그 순간 섬뜩한 기운이 그의 옆구리에 닿았다.
김창신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배 계단 모서리에 심하게 부딪혔다. 정신을 차리려고 해도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고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홍 선장이 선원에게 소리쳤다.
“빨리해! 옷을 다 벗기고 신분증은 모두 소각한다!”
선원 한 명이 축 늘어진 김창신의 옷을 모두 벗기고는 재빨리 재킷 주머니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꺼냈다. 이미 정신을 잃은 김창신의 옆구리에서 피가 솟았다.
“이 정도면 상어들이 쉽게 냄새를 맡을 거야.”
선원은 축 늘어진 김창신을 들어서 검은 바다에 던졌다. 검은 바다의 물결이 그를 완전히 집어삼켜 버렸다. 이제 김창신이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홍 선장은 선원들에게 바닥에 어지럽게 얼룩진 핏자국을 빨리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리고는 선장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종 핸들을 두 손으로 꼭 잡은 홍 선장은 김 회장을 떠올렸다. 무서운 사람. 그러나 홍 선장에게는 좋은 돈벌이였다. 김 회장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어낸다. 그의 앞에 장애가 있는 것은 모두 없앴다. 사기나 폭행 또는 납치 등은 그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다. 그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잔인했다. 그의 속내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그는 주도면밀했다. 한국의 정관계 인사들도 그의 도움을 안 받은 사람이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수십 년 동안 부정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절반 이상은 뇌물로 사람을 포섭해 왔다. 시골에서 태어나 겨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김 회장. 뇌물로 대학을 나와서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이 그에게 굽실대는 것을 보면 그는 카타르시스 같은 묘한 쾌감을 느꼈다.
홍 선장이 그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 단순한 일거리라고 생각했지 그리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물건을 옮겨 주고 돈만 받는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것은 미끼였다. 김 회장은 몇 번의 밀수를 통해서 거래한 뒤, 그는 바로 그것을 협박으로 재이용했다. 홍 선장에게 더 심한 일까지도 서슴지 않고 요구해 왔다. 홍 선장은 완강히 거절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미 온갖 범죄에 깊숙이 엮여 있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홍 선장도 김 회장에게서 나오는 돈에 마약처럼 중독되어 있었다. 어느덧 김 회장의 지시라면 뭐든지 따랐다.
새벽 1시. 인천항. 홍 선장의 배가 서서히 속력을 줄이면서 항구로 진입한다. 갑자기 조명등이 환하게 켜지면서 주의가 산만해졌다.
“단둥 1호, 한국해양경찰대에서 말씀드립니다. 배를 멈추시기 바랍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불시 검문이었다. 인천항은 워낙 붐비는 항구였고, 또한 중국과 가깝기에 밀수나 밀입국을 하려는 자들이 항시 존재하는 곳이었다. 그러니 해양경찰대의 불심 검문은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다. 홍 선장은 재빨리 선원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선원들이 움직이는 사이에 전화를 걸었다. 해양경비정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홍 선장이 전화를 걸자 김 회장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아마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홍 선장은 불심 검문을 당하고 있고, 물건은 배 안에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김 회장이 약간 놀란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홍 선장, 너무 걱정하지 마.”
한마디 하고 서둘러 바로 전화가 끊겼다.
해양경찰 경비정에서 홍 선장의 화물선 안으로 넘어온 해양경찰은 총 3명이었다. 홍 선장은 김창신이 가져온 물건만 무사하면 되었기에 그것만 조사하지 말라고 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해양경찰들의 눈은 예리했다.
“이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경사가 물었다.
“아! 그거요? 이것은 선물 주려고 사온 기념물들입니다. 서울에 있는 친척들에게 선물이나 하려고요.”
경사는 순경에게 눈짓하며 상자를 풀게 했다. 풀어보니 경사나 순경들도 전혀 모르는 물건이 나왔다. 한 면은 회벽인데, 다른 면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경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살폈다. 홍 선장은 옆에서 불안한 표정이었다. 경사는 선장의 불안정한 표정에서 뭔가 의심쩍은 것을 감지했다. 이것이 중요한 물건임을 짐작했다.
“다른 이상한 점은 없나?”
경사가 묻자 순경들이 고개를 저었다. 홍 선장은 일단 안심이 되었다.
“일단 이 물건을 서로 가져가야겠습니다.”
경사가 말했다.
“아니, 이건 선물로 가지고 온 기념물입니다.”
홍 선장이 반론했지만, 경사의 생각은 달랐다.
“일단은 서에 가서 조사해봅시다.”
이렇게 나오자 홍 선장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 물건을 잃으면 김 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불안해졌다. 워낙 물건에 집착하는 사람이기에, 이것을 잃는다는 것은 무서운 보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홍 선장은 일단 서에 가야 했다. 새벽 3시, 인천 해양경찰대 조사실. 홍 선장을 이끈 경사와 순경 둘이 조사실 안으로 들어갔다. 고위 간부인 듯한 사람이 새벽 3시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는 기색이 역력한 경사와 순경들이 큰소리로 경례를 붙였다.
“이 사람이 단둥 1호 선장인가?”
“예, 대장님!”
대장이라는 사람이 홍 선장의 얼굴을 대충 훑어보더니 말을 이었다.
“가지고 온 물건은 어디에 있지?”
“여기 있습니다.”
경사와 순경이 이구동성으로 바닥에 있는 물건을 가리켰다. 대장은 힐끗 쳐다볼 뿐, 물건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선장은 이 물건을 무슨 이유로 가져왔습니까? 혹시 김동수 회장님에게 선물로 가져오신 겁니까?”
홍 선장에게 물었다. 홍 선장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역시 김 회장이 벌써 손을 쓴 것이다.
“그렇습니다, 대장님. 별 물건은 아니지만, 김 회장님께서 부피가 크고 무게가 무거워 제가 직접 가져왔습니다.”
홍 선장이 순순히 대답했다.
“음, 그렇군요. 그렇다면 김 회장님께서 4시까지는 여기에 오신다고 하셨으니 직접 전해주시죠.”
이렇게 되자 경사와 순경들은 뜻밖이라는 듯 말없이 그 상황을 지켜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돌아가는 눈치가 벌써 윗선과 맞춘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김 회장님에게 줄 선물이라는데, 무슨 조사를 더 하겠는가. 더구나 밀수로 엮어 넣을 수도 없다. 경사와 순경들이 사무실 밖으로 나가고, 대장은 조금 전과 다르게 홍 선장에게 친절하게 커피를 대접했다.
홍 선장은 정말로 김동수 회장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대장이라는 사람이 집에서 자다가 새벽 3시에 달려 나올 수 있는가? 웬만한 사람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홍 선장의 경험으로 김 회장은 해양경찰청장이나 경찰청장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소문을 들어 왔지만, 믿기지 않는 상황을 지켜보는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김 회장의 파워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이 순간이 두렵기까지 했다.
4시가 조금 못 되어 김 회장이 자신 있는 표정으로 약간 거들먹거리며 들어왔다. 대장은 그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이 그를 맞았다.
“김 회장님, 오셨습니까? 청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여기까지 오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대장의 말투에서부터 그가 김 회장을 어떻게 대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김 회장이 물건을 힐끗 일별하며 말했다.
“홍 선장, 수고가 많았소.”
부드러운 말투로 한마디 하였다.
“네, 반갑습니다.”
홍 선장도 바짝 긴장의 끈을 쥐고 밤바다를 달려왔다. 막상 육지에 닿으니 긴장한 어깨가 아프고 뻐근했다.
청장이 직접 해경 대장에게 전화한 모양이었다. 대장이 새벽 일찍 나와 김 회장의 일을 처리하러 나온 것이었다. 운전기사에게 상자를 SUV 밴차에 옮겨 실으라는 지시를 했다. 김 회장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하얀 봉투를 꺼내 자연스럽게 대장의 손에 건네준다.
“직원들하고 식사나 하고, 언제 사무실로 한번 나와요.”
“아니, 회장님? 이건?”
대장은 봉투를 얼른 받아 양복 안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제가 너무 고생을 시켜드려서 미안하고, 감사해서 그럽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넣어둬요.”
보자기에 싼 별도로 받은 나무 상자를 풀어보았다.
“청자상감 벼루입니다. 귀한 겁니다. 거기 감정서도 함께 있습니다.”
대장이 물건과 감정서를 보더니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한고미술협회가 발행한 감정서에는 진품 도장과 함께 1억 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돈 봉투와 흔하지 않은 귀한 선물까지 받은 대장은 연신 허리를 굽실거린다.
“무슨 일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그저 김 회장에게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김 회장은 홍 선장과 함께 해양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홍 선장, 고생 많았소. 그 일도 잘 처리되었겠지요?”
“물론입니다, 회장님. 아주 깨끗하게 처리했습니다.”
“5천이오. 내가 다음에 일이 있으면 또 부탁하리다.”
김 회장은 안주머니에서 제법 두툼한 누런 봉투를 하나 꺼내 홍 선장에게 건넸다. 홍 선장은 봉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연락만 주십시오.”
김 회장은 홍 선장과 헤어지고 곧장 서울로 직행했다. 차 안 뒷좌석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는 일처리가 잘 되어 얼굴에는 만족한 미소를 띠면서도 순간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보통 저 정도의 작품이면 100억을 들여야 했다. 조선족 도굴꾼들과 중국 공안 덕분에 비교적 싸게 고분 벽화를 손에 넣은 김 회장은 흡족한 표정이었다. 여러 사람의 목숨을 희생하고 얻은 대가였지만,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냉혈인간이다. 김 회장은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략이 무서울 만큼 대담하고 잔인했다.
이미 몇 군데 언질은 받았기에 작품을 처분만 하면 몇 백억의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대한고미술협회를 완전히 김 회장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고 확신했다. 협회가 없었더라면 그는 별 볼 일 없는 중년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회장이 되어 세력을 확장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협회를 통해 돈이 되는 거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한 단체의 우두머리에 있다 보니 권력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대한고미술협회를 이용하여 허위 감정서를 발급한 위조 감정서 대부분은 뇌물로 사용되었다. 일반인들은 고미술에 대해 문외한이기에 전문기관에서 인정하는 감정서 낙관이 찍히면 그 효력이 대단했다. 일반인들은 협회 감정서만 있으면 가격이 상승하여 누군가에게는 대박을 치는 사람도 많았다.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 신뢰 뒤에는 가격이 부풀어 있었다. 고미술품은 높은 가격이 책정되어 높은 양반들 손에 들어갔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은 김 회장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올가미 덫에 걸려, 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서 군림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는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라, 말단 공무원부터 시작해서 변호사, 검사, 경찰서, 세관, 국회의원, 정치인들까지 금품과 고미술품으로 미끼를 던졌다. 세월이 흘러 말단에서 진급한 그 많은 사람이 그의 하수인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갔다. 늘어난 인맥만큼 그의 권력은 날이 갈수록 막강해져, 아무도 그를 함부로 못했다. 거미줄처럼 촘촘한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전화 한 통이면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대한민국 그 어디에도 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대한고미술협회 회장으로 장기 집권하면서, 분야별로 김 회장이 자기 사람들을 진급시키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는 이 사회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 일반인들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김 회장을 위해 형식을 갖춘 대한고미술협회에 불과했다.
1990년대 선거를 통해 회장이 되었다. 그전까지 대한고미술협회는 고서화를 전문으로 하는 집단에 불과했다. 김동수 회장이 된 이후, 전국에서 거래되는 대부분의 고미술품은 대한고미술협회의 감정서 없이는 거래가 힘들게 만들었다. 고미술 상인들에게선 날이 갈수록 불만이 쏟아졌다. 그는 금성이라는 고미술 전시관을 개관했을 때, 도저히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벌어졌다. 도장 하나만 진짜로 찍으면 몇 억, 몇 십억 원이 굴러들어왔다. 고미술품 가게를 할 때는 그저 고미술을 판매하고 수익금을 얻었던 김 회장은, 대한고미술협회를 장악한 다음에는 그곳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모든 것은 대한고미술협회의 결정에 따라 감정되고 평가되고 판매되는 것이다. 감정비 또한 감정가에 비례해 책정되었다.
고미술협회 회장 임기는 3년이었다. 지금은 7회째 연임하고 있지만, 다시 선거에 출마하려고 정관을 수시로 고쳤다. 김동수는 정관 개정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만일 이 정관 개정에 장애가 되는 자가 있다면, 누구든지 없애야만 했다. 없애지 못하면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의 감정위원들을 말 잘 듣는 전문 상인들로 만들어 협회가 운영되도록 간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