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27
0
1. 화이트의,
나는 고딕체의 ‘Beach Bar’ 간판 밑에 있었다. 스시바에서 점심으로 간단한 도시락을 먹고 막 건너간 시간이라 볕은 정오를 지나 약간 기운 듯했고 은빛으로 길을 낸 바다는 거대한 태평양 한가운데를 반으로 나누고 있었다.
하얀 건물 모아나 호텔이 버텨 서 있고 마당엔 족히 100년이 넘은 듯한 호텔의 상징 반얀트리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 아래 Beach Bar 간판이 있고 은은하다.
나는 어제랑 똑같이 모히토를 시켰다. 쿠바 하바나에서 헤밍웨이가 마셨다는 모히토. 그는 멕시코만에서 다랑어를 낚아 올리기 전과 후 모두 이 모히토를 마셨을 것이다.
나는 지금 태평양 한가운데 하와이, 그것도 오아후섬 호놀룰루 와이키키 비치에서 다랑어가 아닌 고래 잡을 궁리로 있다. 화이트 럼의 알코올 기운이 어제보다 약간 쎄하다. 민트와 라임이 어우러진 청량감이 쿠바의 헤밍웨이를 그립게 했다. 민트잎을 찧은 그 향이 좋고 투명한 얼음조각에 얼비친 라임이 또 상큼하게 입 안을 적셔 오고 있었다.
그즈음 고래 한 마리 그 안에서 숨바꼭질하자는데 어디 숨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랑어를 끌고 오던 헤밍웨이가 상어에 다 뜯기고 앙상한 뼈만 들고 온 펜촉. 그 끝의 잉크는 지금 말라 있다.
구름 한 조각 없는 짙푸른 하늘 한가운데로 볕이 쏟아지고 있고 해변은 비키니들로 즐비하다. 멀리서 서퍼들이 파도와 출렁이고 있고 와이키키는 그 자체가 바다에 빠져 있는 듯했다.
나는 빨대를 길게 드리웠고 모히토 안을 휘저었다. 수초 민트잎 밑에 숨은 걸까? 라임 조각 뒤에 숨었을까? 어디에도 없다.
몇 모금 길게 빨아들이고 반쯤 남은 그 안에서 빨대의 허리가 길게 보였다. 럼 때문인지 옆구리 뒤쪽에서부터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약간 더 취하게 된다면 아마 나는 고래가 잔 밖으로 탈출해도 모를 것이다.
나는 멀리 있는 웨이터를 불렀고 작살을 가져오게 했다. 그는 작살 대신 빌(bill)을 가져왔다. 아니 그거 말고 작살, 꼬챙이를 가져오란 말이야. 고래가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 한다고!
그는 포크를 들고 뛰어왔다.
포크로 모히토를 마신다고요?
웨이터가 놀란 표정이었다.
넌 이미 나한테 죽었어.
나는 포크를 받아들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 작살로 나는 고래를 잡을 것이고 피 맛을 알고 달려들 상어에게 뺏기지 않을 거라고. 고래를 잡는 순간 재빠르게 모히토를 마셔버린다면 아마도 상어는 달려들지 못할 거야.
나는 약간의 취기 속에서 잔 속 얼음 사이를 샅샅이 뒤졌고 민트잎을 쳐들고 구석구석 찾아 해맸다.
저쪽 밑바닥 구석 볕이 닿지 않는 바위 아래 숨어 있는 고래의 등지느러미를 나는 발견했다. 작살로 쑤셔댔다. 그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통은 깊숙이 숨겨져 있었고 보이지 않았다. 살짝 등지느러미만 보이는 그쪽을 집중공격했다. 들썩들썩 쑤셔댔다. 고래는 귀찮은 듯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고 몸을 비스듬히 틀었다. 들썩들썩 나는 자꾸 쑤셔댔다. 고래가 귀찮았는지 빠져나왔다. 나는 고래를 쫓아갔다.
고래는 아까 숨어 있던 그 자리에서 반대 방향으로 가더니 멈춰 섰다. 날 것이다. 몸통 그 자체가 드러났다. 나는 쇠스랑처럼 네 개의 발이 솟은 포크. 작살로 사정없이 꽂았다. 빗나갔다. 다시 위에서부터 잔뜩 힘을 준 채로 내리꽂았다. 이번에도 빗나갔다. 고래가 다시 헤엄쳐 잔의 옆구리 쪽으로 도망갔다.
나는 작살을 세워 든 채 다시 쫓아갔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높이 치켜들고 내리찍었다. 이번엔 고래의 등 쪽을 긁고 미끄러졌다. 다시 작살을 세웠고 치켜세웠다. 몰입, 집중했다. 이번엔 실수하면 안 돼. 만약 실수했다가는 잔 밖으로 튀어나올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덩치 큰 고래는 사정없이 내게로 달려들 거야.
그때였다. 양손으로 작살을 힘껏 잡았고 순간을 찍었다. 잔 속에 피가 흥건했다. 멀리멀리 퍼졌다. 피 냄새가 퍼지지 않게 해야 하는데 나는 서둘렀다. 상어가 나타나기 전에 고래를 걷어 올려야 한다.
크레인을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크레인 기사는 어디에도 없다. 여기는 휴양지야. 곧 상어 떼가 몰려올지도 몰라. 나는 허둥대기 시작했다.
헤밍웨이, 도와줘!
여긴 하와이야.
거기까지 가려면 하루가 더 걸릴 텐데 그렇게 되면 이미 상어 떼는 주변으로 몰려들었을 테고 나처럼 고래는 뼈만 남게 될지도 몰라?
헤밍웨이, 펜촉에 잉크 푹 찍어 굵게 한 줄만 쓰면 되잖아.
건져 올리라고!
나는 다급했다.
아, 안 될 것 같아. 피 냄새는 진동했고 잔은 벌건 피로 가득했다. 작살은 고래 등 가운데에 깊숙이 푹 찍혔고 고래는 버둥거렸다.
안 돼, 잔이 자빠질지도 몰라. 움직이지 말라고!
나는 고래에게 냅다 소리 질렀다. 고래가 움직일 때마다 작살 사이로 피가 솟구쳤고 점점 잔 안은 피로 가득했다. 언제 어디에서 상어 떼가 출몰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헤밍웨이, help me!
잉크가 없어. 잉크 떨어진 지가 100년이 다 돼 가는데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나는 다급한 나머지 작살이 꽂힌 채로 고래를 들어 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이러다가 고래의 무게에 작살이 빠질지도 모른다.
걸치고 있던 얇은 민소매가 땀으로 젖었고 그건 살에 들러붙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방울로 눈이 쓰라렸다. 중천에 떠 있던 해가 기울기 시작했고 버둥거리는 고래도 지친 듯하다. 약간의 취기로 옆구리 뒤쪽으로 찌릿했던 것도 가셨다. 맹송맹송하다. 그러나 잔뜩 지쳐 있는 나는 힘이 빠졌다. Beach Bar 마당에 서 있는 반얀트리가 대수롭잖게 들어왔다. 낮엔 그늘을 만들고 밤엔 감히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조명 빛으로 이국적인 모습으로 둔갑해 서 있는 반얀트리. 나는 그 밑에서 고래랑 실랑이 중이다.
앞 테이블의 신혼부부는 블랙 럼을 빠트린 마이타이칵테일로 있고 또 다른 테이블은 모아나선셋으로 밤을 드리우고 있었다.
얕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기울고 있는 태양 사이로 나무 잎사귀는 바람과 함께 탱고를 추는 듯 보였다. 나는 여전히 작살을 잡고 있었고 고래도 힘을 보충하고 있는지 고요하다.
헤밍웨이, 자네 자살할 총을 빌려줄 수 있겠나?
그것도 빌려줄 수 없네. 총알이 달랑 하나 남았거든.
아, 자네는 85일 만에 다랑어를 잡았지만 나는 고래 한 마리 잡기를 68년이나 걸렸다네. 이걸 놓치면 안 되는 이유라오.
나는 작살을 잡고 있던 손이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서인지 쥐가 나기 시작했다. 몸은 뒤틀리고 고단했다. 잠깐 자리를 움직여 틀어 앉으려는 그 잠시 방심한 사이 고래가 크게 버둥거렸다. 둘 사이 다시 긴장이 지속되었다. 나는 작살을 더 꽉 잡았고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고래가 또다시 움직였다. 이번엔 잔을 탈출할 모양인지 잔까지 들썩였을 만큼 크게 버둥거린 게 한 바퀴를 돌아왔다.
움직이지 마. 나는 나이트클럽 조명 아래서 베드로한테 입술이 물린 채 석고처럼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나는 고래의 IQ를 생각했다.
‘90.’
너는 삼각함수를 풀지 못하지만 나는 풀 수 있는 인간이야. 왜 이래?
중얼거렸다.
노을이 지고 아까보다 더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초저녁 때보다 Beach Bar의 조명이 좀 더 선명해졌다. 무대에서는 아까와 다른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백인 여자가수가 나왔다.
나는 저녁 손님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데 고래와 둘 사이 아직 팽팽하다.
작살을 가져다준 웨이터가 왔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당신이 헤밍웨이입니까?
순간 나는 작살을 놓칠 뻔했다. 다시 꽉 잡았다. 그리고 잠시 뒤 찰나적인 순간에 두 손을 컵 안으로 넣고 고래 몸통을 잡고 들어 올려버렸다. 거대한 고래가 바닥에 팽개쳐지면서 파닥거렸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어때요? 뼈만 들고 온 다랑어랑 다르죠?
신기했던지 뚱뚱한 풍체의 흑인 중년 남자가 고래의 지느러미를 만졌다.
고래?
요놈, 난 처음부터 너를 잡을 거라고 했지?
넌 나의 희망이었어, 베드로!
지친 나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어둑어둑한 Bar를 빠져나왔고 헤밍웨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금 전까지도 통화했던 전화가 빈 깡통의 메아리로 돌아왔다. 헤밍웨이가 방금 방아쇠를 당겼다는 거였다.
그렇거나 말거나 나는 헤밍웨이를 불러들였고 그와 모히토를 얘기하고 있었다.
2025.12.13. pm. 3시 모아나 호텔에서 모히토 속 고래를 잡고 2025.12.14. am. 10시 33분 새벽미사 후 쪽잠 뒤 환시로 나타난 건 등에 창살이 꽂힌 채 달려든 투우장의 검은 황소였다. 그건 소설 속 작살 꽂힌 고래 베드로였다.
나는 카페 구석에 앉아 최대한 볼륨을 낮춘 채 혼자 노랫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어느새 수면 매끄러웠던 은빛 바다는 간 곳 없고 카페의 조명이 출렁이고 있는 파도에 흡수되고 있었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란 한 줄 노랫말이 하와이를 적셨고 저물고 있었다.
2. 골드의,
‘이 밤 한마디 말없이 슬픔을 잊고자 멀어진 그대의 눈빛을 그저 잊고자 작은 그리움이 다가와 두 눈을 감을 때 가슴을 스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오.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 그리워 떠오르면 가슴만 아픈 사람. 우리 헤어짐은 멀어도 마음에 남아서 창문 흔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는 마음. 그저 바라볼 수만 있어도 좋은 사람. 그리워 떠오르면 가슴만 아픈 사람. 우리 헤어짐은 멀어도 마음에 남아서 창문 흔들리는 소리에 돌아보는 마음.’(가수 유익종의 노래)
오래도록 반복해서 흘렀고 그것만 듣고 있는 아영이었다. 아까 잡아 올린 고래가 물기 없는 바닥에서 늘어져 있었다. 초저녁 왁자지껄했던 카페 안도 텅 비어 갔고 연인인 듯한 젊은 남녀 한 쌍이 보였다. 그들은 취기에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 몇 개가 후끈하게 달궜던 무대였음을 알릴 정도로 한적한 새벽으로 가는 시간이었다.
다윗은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탐했고 솔로몬을 낳았다. 하느님은 그런 부족한 다윗을 쓰셨다. 여기로 오고 있는 베드로도 다윗과 같다. 성경 속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제자가 되었다.
똑같은 이름을 들고 오는 베드로가 지금 투우장의 검은 황소로 창살이 등에 꽂힌 채 달려오고 있다. 혹은 등에 작살이 꽂힌 채 오고 있는 베드로였다.
예수의 제자 베드로는 괴팍한 다혈질의 어부다. 그랬던 그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예수님처럼 똑같이 죽을 수는 없다며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 이런 날 것의 사람이 지금 같은 이름을 들고 오고 있다.
오면 하와이를 그는 어떻게 맞이할까? 비키니 수영복이 먼저 그를 아는체할 것이다. 그런 그가 비릿한 노숙자들에게 다가갈 수는 있을까? 아영의 코끝엔 이미 노숙자들의 비릿한 비린내가 배어 있다.
비 오는 날의 하와이는 비릿하다. 볕이 없는 날의 하와이는 비린내를 부려 놓는다. 노숙자들의 냄새다. 볕이 그립다. 이미 내 코끝에 자리를 틀고 앉아 있는 그건 내려앉을 기미가 전혀 없다. 아영은 애써 비린내를 인정했다. 살아 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형체도 없는 비린내를 어떻게 밀어내겠어. 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 아영은 어제 온 예수님처럼 비린내를 섬기기로 했다.
비 오는 날의 섬은 전혀 섹시하지 않다. 밝은 동네 하와이를 에덴의 동산으로 착각하고 인간은 또 죄를 지을까 싶어서였는지 하느님은 미리 비린내부터 부려 놓으신 것 같다. 내 코끝엔 그런 비린내가 같이 살고 있다.
볕이 그립다.
그저 바라보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처럼 볕이 그립다. 볕이 없는 하와이는 하와이가 아니다. 빛의 반사로 연초록 바다를 연출하는 바다도 시커멓게 변하기 때문이다.
마약으로 정신이 혼미한 노숙자가 있고 영화에서나 봄직했던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숙자가 함께 공존하는 하와이는 그것 자체가 이국적이다.
처음 하와이에 도착하던 날 숙소에 짐을 풀고 와이키키 해변을 걷기 위해 호텔을 나서던 그때 첫 대면의 노숙자를 아영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늙수레한 할머니였고 그녀는 팬티를 입지 않은 채 시멘트의 찬 바닥에 그냥 앉아 있었다. 낡고 찢어진 치마로 가린다고 오므렸지만 그 밑으로 보였던 게 얼마나 오랫동안 팬티를 입지 않고 산 건지 성기 밑엔 남자 성기만 한 뭔가가 매달려 있었고 그건 바닥에 쓸려 까맣게 변질돼 있었다. 안타까움을 넘어서 정말 깜짝 놀랐다. 기절할 노릇이었다. 늙었어도 여자는 여잔데 싶었다. 노숙자도 여자다. 다음 날 나는 팬티 몇 장을 샀고 들고 다니며 몇 날 며칠을 찾아 헤맸다.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크게 이쪽저쪽으로 두어 바퀴만 돌면 오다가다 한두 번씩은 다 만날 수 있는 노숙자들인데 그 할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며칠 뒤 기도하면서 알게 된 일이었다. 그는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이 노숙자로 오신 거였다.
얼마나 진실하게 섬기는지? 노숙자 대하는 마음은 진심인지 마지막 테스트였던 것이다. 아니면, 더 먼저 오셔서 막 도착한 나를 맞아주러 나오신 건지 둘 중 하나였다.
아영은 생각했다. 차라리 예수님이라면 다행이었다. 이후로도 오래도록 아영은 그 할머니를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투우장의 검은 황소로 등에 창살 꽂고 달려오고 있는 베드로가 이런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는 할 수 있을까? 문득 생각 하나가 지나갔다.
어느새 아영은 베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같이 걸어요.
베드로가 들고 있는 쇼핑백 안에는 그들에게 나눠 줄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고 여자 노숙자들에게 나눠 줄 몇 장의 팬티가 들어 있었으며 맨발의 노숙자들에게 줄 샌들이 같이 있었다.
군무에서 튀는 백조는 필요 없어. 우리도 함께 노숙자가 되어야 해.
닭장 속의 독수리 알아? 가끔 독수리를 닭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허우대 독수리인 건 하느님만 알게 하시고 우린 닭으로 살자.
닭이 편할 때가 있거든. 할 수 있겠어?
아영이 베드로에게 말했다.
응, 좋아!
비 오는 오후의 비린내가 이렇게 배어 있는데도 괜찮아?
어때. 그래도 이름이 하와이잖아. 하와이니까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 베드로가 말했다.
내일은 샌드위치 대신 K-김밥 어때?
좋지.
아영이 대꾸했다.
늦은 저녁 둘은 마트에서 김밥 재료를 샀고 다음 날 새벽 일찍부터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훤하게 동이 터 오자 베드로가 먼저 김밥 든 쇼핑백을 승용차에 실었다.
아영이 휠체어 탄 늙은 노숙자를 먼저 챙겼다. 베드로는 이미 젊은 청년의 노숙자들에게 다가갔고 마약으로 정신 혼미한 상태의 위험한 그들 곁에 가 있었다.
베드로가 들고 나선 봉지 안에는 K-김밥과 사과 1개씩을 넣었고 음료수가 있고 간단한 스넥류가 사탕이랑 함께 했다.
매일 오전, 그 일이 끝나면 빨간색 스포츠카를 몰고 해변도로를 베드로는 달린다. 아영은 부족한 잠에 빠져 그 옆에서 코를 곤다. 잠결에 들리는 귀에 익숙한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고 베드로가 흥얼거린다.
코발트 빛 바다를 끼고 돌면 구불구불한 국도가 이어지고 드라이브하기엔 그만인 풍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근사한 카페에서 늦은 점심으로 해산물 파스타와 와인 한 잔을 놓고 둘은 또다시 내일 만날 노숙자들의 식사 준비를 구상하고 있었다.
여보! 걱정했는데….
아영이 말했다.
괜찮아. 난 당신이 아플까 봐 걱정이야. 이미 환자인 게 걸려.
나야 하느님 계시니까 괜찮지.
아영이 대꾸했다.
당신이 괜찮음 됐어.
근데 말이야. 매일 새벽이면 맥도날드 앞에 나와 있는 그 휠체어 탄 젊은 여자 말이야. 어떻게 도울 방법 없을까?
센타에 도움 청해서 도울 수 있는 방법 같은 거.
글쎄, 나도 그런 생각 했었어. 생각해 보자.
왜 휠체어를 타고 있는 건지. 아픈 다리는 어떤 상태인 건지. 원인을 알면 고칠 수 있을 테고 치유되면 노숙자로 말고 본인이 잡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 뭐 그런 거.
난 그 여자를 돕고 싶어.
아영이 말했다.
베드로가 맞장구를 쳤다.
알아보자. 방법 있겠지. 성격도 좋아 보이던데.
베드로가 파스타 면발을 포크로 돌돌 말아 먹으려는 순간 아영이 장난을 친다. 냅다 접시를 뺏어 들어 올리니 매달린 면발 몇 가닥이 입으로 들어가려다가 웃음보가 터지는 바람에 뱉어진다.
둘은 웃음보가 터졌고 깔깔댄다.
와인잔을 맞댄 후 한 모금 마시는,
좋다.
베드로가 말했다.
나도.
꿈만 같아.
보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 당신,
아영이 말했다.
나도 보고 싶었지.
내일은 서핑 어때?
이번엔 베드로가 말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오아후섬의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 둘은 보드 위에 있었고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쏟아지기를 파도와 보드가 하나 되고 뒤엉킨 환호와 웃음은 몰려드는 파도로 같이 쏟아졌다. 영리한 아영이 베드로보다 먼저 이치를 깨닫더니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걸 멀리서 지켜보던 베드로가 금방 따라 하더니 파도를 몰고 왔다. 거푸거푸 물을 먹고 넘어지며 파도를 쫓던 아영이 지쳤는지 모래사장으로 먼저 나갔다. 오래도록 보드와 씨름하던 베드로는 제법이었다.
볕을 베고 발랑 누운 아영이 고단했던지 금방 잠이 들었다. 깜빡 잠든 아영 곁에 베드로가 같이 누웠다. 벌렁 널브러져 있는 모습의 둘은 다섯 살 아이 같았다. 베드로는 잠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눈이 부셨다. 눈을 감았다. 추억 하나가 지나갔다. 단발머리 소녀 아영이었다.
유난히 움푹 들어간 눈이 빛났던 아영이다. 아영인 금방 서울서 전학 온 그런 애 같았다. 논두렁길을 자박자박 걷던 등굣길도 생각이 났다. 그랬던 아영이랑 지금 하와이. 그것도 와이키키 해변에 같이 누워 있다는 게 꿈만 같은 베드로였다.
베드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영이만이 할 수 있는 도전이었다. 하와이,
베드로가 잠들어 있는 아영의 손을 살짝 잡았다. 아영이 베드로의 손길에 잠이 깼다. 눈부신지 찡그려 뜬 눈이 올챙이 모양 같았다.
제발 그만 아파라. 아프지 마. 제발,
아파하는 아영이 베드로는 안타까웠다.
언제부터냐?
베드로가 물었다.
근데 용감하다. 겁도 없이 어떻게 그 몸으로 여길,
네가 하는 일이라면 세상 끝까지 따라갈게. 너무 늦었지? 미안하다.
여름 땡볕 보리밭 속 장미 한 송이! 그 이질감 알아?
그게 나였어.
‘나, 장미야!’라고 말할 수도 없었고 장미로 살 수는 더더욱 없었던 시간을 혼자 버텨낸 거야. 그러느라 병이 온 거지.
그 건조하고 척박함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 와중에 두려웠던 건 보리 베는 날 나까지 베 버리면 어쩌나 싶었던 거야.
근데 낫을 든 남자는 한 송이 장미를 베지 않았어. 그렇게 보리가 수확되고 나서 망망대해 같던 보리밭은 허무했어. 그나마 같이 있다가 혼자 서 있었으니 그랬겠지.
낮은 매미 소리로, 밤은 짙푸른 밤하늘에 별을 세면서 기울어 갔지.
여전히 고독했고 무뢰할 만큼 따갑게 내리쬐는 볕은 정말 고단하게 하더라. 지표면이 이글거리는 거 알아? 그게 세속이란 구덩이였어. 그 볕에 타죽지 않으려고 몸을 오므리고 안간힘을 썼지. 저것들의 요란한 혓바닥으로 꽃잎 긁힐까 조바심 냈던 불안은 고삐에 묶인 망아지 같았어.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영과 베드로는 노숙자들 속에 있었고 길 위에 있었다. 아영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애장품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해변을 달리는 일이었다.
아영의 손에는 늘 묵주가 있었고 성경 안에 있었다. 그런 아영의 곁에는 항상 베드로가 같이 있어 줬다.
다윗은 밧세바를 빼앗았고 아영은 베드로를 뺏었다. 그리고 성령 하느님은 다윗은 왕으로 복음 전하는 전도자로는 아영을 쓰셨다. 아영에게 그만큼만의 죄라도 짓게 해야 교만을 털어낼 수 없었기에 성령 하느님은 빼앗김을 당한 베드로를 만들었던 것이다.
‘씻어도 씻어도 씻겨지지 않던 아픔’ 하나랑 ‘우리 와이프예요’ 혹은 ‘두 번째 여자가 문제야’ 그 말이 귀가 아픈 아영이었다. 그런 앓이 속에서 ‘사마리아 여인’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그게 뭔지 몰랐던 아영에게 첫 번째 주신 단어는 ‘전도자’였다.
그로 인하여 아영은 오랫동안 고립과 외로움. 그리고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몸이 아파야 했던 이유다.
아침에 핀 꽃이 되자. 아영은 거듭 피어나려 애썼다.
어느 날이었다.
어디니?
현관 앞이에요.
들어오너라.
성령 하느님 음성이 들렸다.
순종하기까지 기다림의 터널은 길었다.
저, 여기 있어요.
지루할 때마다 아영은 예수님께 수도 없이 인기척 했다.
하느님은 들으셨고 응답하셨다. 그렇게 오기를 너무 지쳤고 고단했던 아영은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아영은 베드로에게 ‘Help me’를 외쳤던 거였다.
이제야 인기척으로 온 베드로다.
다시 일어날 기력조차 몽땅 다 소진돼 버린 아영이었다. 간이 굳어가는 병이라 모히토 속 약간의 럼도 취기가 돌 정도인 아영이다.
3. 핑크의,
베드로는 아영이 먹을 약을 챙겼다.
우리 고래 잡으러 갈까?
오늘은 안돼. 칵테일,
‘술고래’ 생각하고 있지?
여보! 이거 생각나?
중학교 2학년 가을 소풍 때. 체육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었고 종례 시간에 뜬금없이 베드로 너 나와서 노래하라고 했던 거. 가을 소풍 하루 앞두고 왜 갑자기 노랠 시켰을까? 아마 담임 선생님도 꽤나 심심하셨던 모양이었어. 그치?
넌 서슴없이 성큼성큼 걸어 나갔고 나훈나 노래를 불렀지. ‘물레방아 도는데’ 이 노래가 울려 퍼지자 교실 안은 금방 숨 죽은 듯 고요했었던 거 기억하지? 그 뒤로 너는 바로 ‘Star’ 별이 되었고 여학생들의 가슴을 울렸던, 그때 그 노래 지금 듣고 싶다. 중학교 2학년 2반 오후 종례 시간.
60 중반의 노신사 베드로는 그때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같이 흥얼거리는 아영이다. 둘은 흔들의자에 앉아 있고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영은 며칠째 유난히 더 아파했고 가슴 통증으로 고단해 있었다.
‘그리운 얼굴’ 그거 어때?
아영이 추억 하나를 건드렸다.
‘너를 사랑한다고 그땐 왜 말 못했나.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리움이 가슴을 적시는데 어느새 계절은 가고 또다시 단풍이 물들었네. 그러나 세월 가면 잊혀진다는 그 말이 오히려 나를 울리네. 너를 사랑한다고 그땐 왜 말 못했나. 잊을 수 없는 그대 볼 수 없는 그대 진한 커피 한 잔에 지울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그리운 얼굴, 아직도 나에게는 찾아올 줄을 모르고 이제는 잊어야 할 그리운 그대 모습 어이해 내 곁을 떠나지 않나.
너를 사랑한다고 그땐 왜 말 못했나 잊을 수 없는 그대. 볼 수 없는 그대. 진한 커피 한 잔에 지울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그리운 얼굴 아직도 나에게는 찾아올 줄을 모르고 이제는 잊어야 할 그리운 그대 모습 어이해 내 곁을 떠나지 않나.’(유익종의 노래)
잠시 둘이 썸 탈 때 베드로가 아영에게 준 노래였다.
당신은 내게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사람이었고, 보고 있어도 그리운 사람이었지. 그리운 얼굴.
당신은 내게 김건모의 <빗속의 여인>을 말했었지.
잊지 못하네. 빗속의 여인. 노란 레인코트의 검은 눈동자….
아영은 베드로 등 뒤에 있었고 그의 목덜미부터 훑어 내려갔다. 밀착된 피부는 베드로의 허리춤을 잡아당겼고 남자의 성감대를 자극했다.
아영에게 베드로는 세 잔의 사과 같은 존재였다. 보는 시각에 따라 그린 사과 모양의 각도가 다른 것 같이 아영은 베드로가 그랬다. 처음 사과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결핍의 사과였고 두 번째 사과는 조폭인 의붓형의 폭행이 있는 벌레 먹은 능금 같았다. 아영에게 간혹 영화 <로마의 휴일> 속 그레고리 펙 같은 잘 익은 가을 사과 같기도 한 베드로였다.
그런 입체적인 여러 개의 사과 중에서 벌레 먹은 능금이 사춘기 소녀 아영의 모성애적 사랑을 자극했고 그게 첫사랑이 된 것이다. 조폭 형으로부터 절구통에 대가리 쳐박히고 찌인 그걸 우연히 보게 된 아영은 이후로 베드로만 생각했고 베드로를 잊지 못했다. 그랬던 아영이 안나 카타리나가 돼 버린 거였다.
착해서 좋다. 믿음이 신뢰다. 외꺼풀의 사슴 같은 까만 눈동자가 사랑이 되었다.
3월의 어느 날이었어. 이른 봄.
나는 기도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갔었지. 앞자리 기둥 바로 옆에 앉았고 묵주기도를 시작했어. 그날은 작정하고 기도하러 간 날이었지.
동행자, 그게 두 번째 날의 기도 목표였고 첫째 날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데 그걸 믿게 해달라고 응답 주시길 기도했었지. 그때 세 개의 검은 기둥을 보여주셨고 그건 십자가였어. 가운데가 예수님이셨고 양쪽으로 강도들이었지. 그 사형선고 현장을 검은 기둥 세 개로 보여주셨고 죽으심이었던 거야. 둘째 날 동행자 기도 때는 하얀 기둥 두 개를 보여주셨는데 그게 너랑 나였던 거지. 그런 기도 응답을 듣고 지금껏 너 한 사람만을 위한 기도로 왔어.
저 못해요. 제가 어떻게 해요. 처음엔 용기가 없어 떼썼어. 근데 점차 용기를 주셨고 세상에서 제일 최고의 직업이 전도자라는 걸 알게 하셨어. 이보다 좋은 직업이 없다는 걸 깨닫게 하셨던 거야. 더구나 내겐 이게 ‘딱’이란 걸 알게 됐지.
나는 그동안 몇 차례 하와이를 다녀왔지만 단 한 번도 해변 가까이 가지 않았어. 노숙자, 그들을 관찰했고 그들 속에 있었어. 그들을 알고 싶었거든. 복음 어떻게 전할까를 궁리한 거지.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생기가 났어. 그들한테서 생기를 찾은 거야.
베드로, 당신이 오면 당신도 저들에게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여기 노숙자들은 뉴욕의 엄동설한 폭설 속 노숙자들이랑은 사뭇 다르지? 뉴욕에 비하면 노숙자들에게 하와이는 천국이야 천국.
휠체어 탄 젊은 여자 노숙자가 만약 휠체어에서 내려올 수만 있다면 나는 그녀와 같이 노숙자들에게 나눠 줄 샌드위치를 만들고 싶어.
여보!
앞으로 내 핸드백 속엔 늘 여러 장의 팬티가 들어 있을 거야. 언제 어디서든 여자 노숙자들에게 나눠 줄 수 있는 팬티 몇 장. 함께 하자, 죽을 때까지.
LA에서 패션업계에 있었다던 디자이너 노숙자가 있었는데 그분 역시 요즘 통 보이질 않아. 중년 여성이었고 얇은 노트에 모델을 그리고 그 위에 옷을 입히던 디자이너였는데.
인터네셔널 마켓 안쪽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퍼 나르게 해서 노숙자들에게 하와이를 황금 땅 되게 해 보자.
베드로가 아영의 얼굴을 보고 한 줄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세상일에 실패했어도 너는 절망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질병으로 고통당해도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다시 일어서게 하리라. 나를 버린 자들도 내가 사랑하거늘 하물며 너희를 그냥 둘까 보냐? 나는 너와 함께 하는 너의 하느님 됨이니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리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크게 사용하리라.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 하도록 내가 너를 도우리라.’
아영이 응답했다. 감사해요.
주님, 구한 것은 이미 이뤄진 줄로 믿습니다. 아멘, 아멘입니다.
아영은 여전히 잦은 기침으로 있었다.
고래사냥 어때? 지금.
베드로가 물었다.
좋지.
아영이 대답했다.
고래사냥, 아영은 베드로 품속에 있었고 말했다.
나, 너 아니면 아녔어.
竹花發(죽화발), 나도 대나무처럼 평생에 단 한 번 꽃 피우고 싶었다.
하느님, 봄날 들불로 해충 태우듯 제 몸속 병원균들을 몽땅, 싹 다 태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영이 베드로 팔베개 안에서 속삭였다.
4. 그린의,
새벽 5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미 100단의 묵주기도 중이었고 환희의 신비 5단 거기서 아영은 뜬금없이 이삭을 생각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내가 미쳤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있는 거야?
주님 죄송합니다. 오만방자함을 용서하소서. 기도가 이어졌다. 또다시 생각이 왔다.
사라도 늦은 나이에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뤄질 수만 있다면 순종하나이다. 주께 온전히 맡기나이다. I trust you completely. 빛의 신비 2단이 지나갔다. 요한과 삼손도 늙은 부모였습니다.
아영은 배를 만졌다. 깨끗함이 왔다.
주님,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이까? 무뢰함을 용서하소서. 다시 회개했다. 아니다. 부인함은 불순종이다. 다시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고래사냥 중인 아영이 생각을 번복하고 있었다. 아영은 베드로 배 위에 있고 그는 핥았다. 거친 호흡이 지나갔다. 고래가 파닥거렸다.
지금 이게 주님이 주신 말씀이신 건지 제 생각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제 생각이라면 멈추게 하옵시고 주님 뜻이라면 순종하나이다. 다시 기도하는 아영이다. 고통의 신비 4단이 왔다.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새벽 5시 27분이다. 고통의 신비 5단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하와이 온 지 보름이 지났다.
3차, 40일 4000단 묵주기도 중인 지금 아영은 무슨 생각으로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주님, 제가 지금 무슨 생각으로 있나이까?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영광의 신비 3단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다시 영광의 신비 4단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로 불러 올리심을 묵상합시다. 기도가 이어졌다.
아영은 계속 번복하고 있었다.
영광의 신비 5단 5시 41분이 지나가고 있다. 결심한 듯 성령 하느님, 제게 아기를 주옵소서. 아브라함의 이삭,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천상 모후의 관을 씌우심을 묵상합시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아영은 깊이 빠져 있었다. 고래사냥, 사냥 중임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새벽 5시 46분이다.
아영은 아기를 낳았고 ‘너는 주의 종이오니 만군의 스승이로다’ 아기에게 말했다.
태를 열어 주신 성령 하느님, 감사합니다. 아영은 다시 배를 감쌌다. 순결하고 깨끗함이 다시 만져졌다. 환희의 신비 3단 5시 54분이다.
주의 종으로 바치겠나이다. 환희의 신비 4단 5시 56분이다. 영광의 신비 3단 6시 15분이다.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합시다.
이삭을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이슬 닫힌 지 거반 20년이 다 된 때였다.
주께 온전히 맡기나이다. 주심에,
INFJ의 아영은 매우 복잡하고 추상적이다. 어떤 날은 수다스러웠다가 또 어떤 날은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가 시시때때로 요란하다. 오늘 이삭이 온 건 끊임없이 생각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12월 19일 제1 독서였다. 초르아 출신 마노아, 그의 아내는 임신할 수 없는 몸이고 아이가 없었다. 주님의 천사가 여자에게 말했다. 이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주께서 아이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말라던 그 아이는 삼손이었다. 그날 복음 말씀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세례자 요한도 함께 말했다.
너는 아직도 두려워 하느냐? 하느님의 노하심이다.
아영이 이삭을 낳음은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순종합니다. 그렇게 기도는 지나갔고 다음 날 새벽이었다.
태를 여시어 아이를 주신다면 기꺼이 순종하나이다. 오면 주의 종으로 바치겠나이다. 다시 깨끗한 몸이 만져졌고 의식되었다. 5개의 고통의 신비가 지나갔다.
아영이 갑자기 기도하다 말고 얼마 전에 무속인을 찾아가 점을 봤던 일이 생각났다. 그래 맞아. 그때 박수무당이 말했지. 혼자일 거라고. 깨뿔은 무슨 동행자야. 간단하게 무시해 버렸다.
새벽 3시 10분 영광의 신비였다. 몽땅 꽝∼이로구나! 그러면 그렇지. 이 늙은 몸으로 무슨 아이를 낳아. 주책이지. 아영이 생각을 지우고 싶었던지 채 머리를 흔들었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몹쓸 생각에 빠져 있었습니다. 회개합니다. 그런 나는 INFJ다.
다시 기도에 몰입 중인 아영이었다. 새벽 3시 49분. 잃어버린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환희의 신비 5단이었다. 순간의 생각이 다시 왔다.
베드로. 동행자.
또 하나의 혼돈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기도 중인 아영이 깜빡 졸았고 비몽사몽간이었다. 구급차 뒷문이 열렸고 들것에 하얀 천이 덮인 시체가 실려 나왔다. 환시였다. 깜짝 놀라 아영이 깼다. 다시 묵주기도에 몰입해 들어갔다. 빛의 신비 1단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영은 몽롱했고 잠이 쏟아졌으며 무의식 상태에서 졸고 있었다. 다시 하얀 천을 덮은 시체의 들것이 보였다. 똑같은 게 연속적으로 보여졌다. 깜짝 놀란 아영이 깼고 정신을 차렸다.
뜬금없이 이건 또 뭐람?
이 새벽 시체를 보고도 두려움은커녕 순간 찾아온 생각이 편안함이었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의 암시가 왔다.
아직도 두려워하느냐?
아닙니다. 순종하나이다.
2025년 12월 21일 복음 말씀이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 마라. 아내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요셉은 잠에서 깼고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성령 하느님께서 아영에게 두 번째로 예언 은사를 주신 거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이번엔 예수 탄생을 복음으로 말씀 주신 거였음을 아영은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예언 은사.
아영은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셨다.
I trust you completely.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아영이 이삭을 낳음은 봉사와 나눔에서 만난 아이들을 주님이 주신 아이로 거두라는 의미였다. 아영이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의탁하나이다. 창의적인 INFJ가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였어. 외출했다 들어왔더니 컴퓨터가 그대로 열려 있었고 마시다 만 홍차에 귀찮게 굴던 날파리 한 마리가 익사해 있는 거야. 진한 커피였더라면 아마도 익사한 줄도 몰랐을 거였는데 그 작은 게 얼마나 귀찮게 하던지 살충제를 궁리한 적도 있었거든. 근데 그게 홍차 안에 빠져 있는 걸 보고 나는 바로 그걸 건져 올렸고 장례를 치러 줬지. 며칠 더 귀찮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없어지니 맹송맹송 심심했던 나였어. 슬펐어. 익사했을 때 그 순간 저 작은 것이 얼마나 버둥거렸을까를 생각하니 맘이 짠하더라고, 그렇게 존재 하나가 없어지고 나서 나는 시원섭섭하면서도 슬펐던 상상력이 한참 갔어. 그런 생각의 INFJ가 있고 올챙이 개구리 되더니 날개 달고 난다던가? 돼지가 나는 거 말이야. 그런 생각으로 몰고 갈 때는 아무리 워워 해도 절대로 멈춰지지 않는 거야.
듣고 있던 베드로가 웃었다.
지극히 당신다워. 그래서 날파리 제사는 지내줄 건가? 홍동백서. 어때?
5. 다시 화이트 안의,
아영이 모히토 속 고래를 잡기 위해 작살을 높이 치켜들었다. 고래의 지느러미를 피해야 했던 순간 아영의 눈이 고래의 눈과 마주쳤다. 외꺼풀의 검은 눈동자는 흑진주 같았다. 그건 여러 가지 색이 반사되면서 반짝였다. 아영이 치켜든 작살을 내려놓았다. 외꺼풀의 눈동자 안에 베드로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으깬 민트 향이 어우러진 럼의 취기로 아영은 잔뜩 웅크려 있는 고래를 쳐다보고 있었다.
버썩 마른 펜촉 끝에 다시 잉크를 푹∼ 찍은 아영이 굵은 고딕체로
고래사냥,
너, 독수리 발톱 숨기고 사느라 욕봤다.
아영은 오후 두 시 반. 벌건 대낮일 뿐인데 이미 취해 있었다. 갈지(之)자로 걷고 자꾸 옆으로 쓰러질 듯 걸었으며 스텝이 꼬였다. 나는 고래랑 어깨동무하고 같이 걸었다. 알딸딸하고 기분이 좋은 걸로 봐서는 적당히 취한 게 맞았다. 100년 전통의 모아나 호텔 內 Beach Bar에서의 마이타이 칵테일 한 잔의 마력이다.
비틀거리는 걸음 속에 어린 시절 하나가 또 지나갔다. 도회지로 아빠 직장 따라 나갔던 엄마의 부재가 키웠던 불안이 고이고 결핍이 두꺼워지면서 지금의 괴팍한 INFJ로 만들어진 아영의 턱에서 수염이 댓 발 자라고 있었다. 침잠,
처음으로 집착의 베드로를 놓았다. 너 아니면 안 돼. 이건 믿음이 아니라 집착이었다. 집착이면 놔야지. 집착은 분별력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도하심이 아닌 내 욕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아영이었다.
베드로가 없는 세상!
모히토 안의 고래를 풀어줬다. 텅 빈 잔 안이 허무로 가득했다. 허무를 거푸거푸 마셔 대는 아영이었다. 길게 자란 턱수염을 쓸어내리며 아영은 혼자 중얼거렸다. 취기가 돌고 몽롱하다.
내일은 「노인과 바다」 소설 속 노인을 만나 봐야겠어. 상어에게 다 뜯긴 다랑어 뼈만 매달고 올 때의 허무는 어땠는지.
라헬을 사랑한 야곱이 그로부터 7년을 기다리고도 라반의 속임수에 속아 언니 레아와 먼저 결혼 후 라헬을 얻기 위해 또 다른 7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던 야곱처럼 아영은 다시 잔 속에 그런 밀도 있는 낚시줄을 드리우고 긴 시간을 더 건너가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