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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이갑숙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육년 봄호 2026년 3월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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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를 한 시간째 달리고 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길가 방음벽에는 담쟁이 넝쿨이 기어올라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한다. 코앞에 터널을 지나 또 한참 달렸다. 이 길로 쭉 가면 서울 동훈이네 집이다. 우회전해서 옆길로 빠진다.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혹시 중간에 어디 들렀다가 갈려나, 아니면 지금 점심때가 훌쩍 지났으니 숲속 어느 맛집에 들러 점심 먹고 갈려나 생각했다. 길이 움푹 패인 곳에서 차가 기우뚱거렸다. 동시에 유리창에는 나뭇가지들이 휙휙 지나간다. 차 안인데도 나뭇가지에 맞지 않으려고 순간적으로 손이 얼굴을 가렸다. 그러다 갑자기 한쪽으로 몸이 쏠렸다. 모퉁이를 휙 돌았기 때문이다. 꼬부랑길에 엉덩방아 찧기를 수십 번 한 후 차가 멈췄다.
요양원이다. 여기를 왜 왔을까.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동훈이가 차문을 열었다. 시원한 공기에 코가 뻥 뚫렸다. 요양원 현관문까지 길게 늘어선 화단에는 꽃들이 만발했다. 여기저기서 벌들이 날아다닌다. 어디서 강아지 한 마리 쫄래쫄래 오더니 종해가 타고 있는 휠체어에 냄새를 킁킁 맡는다. 하얗고 털이 복실복실하다. 태어난 지 두 달 정도 된 것 같다. 코를 벌렁벌렁거리던 강아지는 펄쩍펄쩍 뛰어 종해가 내민 손에 두 발을 짚는다. 종해는 강아지 등을 쓰다듬었다. 그때 요양원 현관 쪽에서 누가 온다.
“여기 원장입니다. 잘 찾아오셨네요.”
“주소가 있어 잘 찾아왔습니다.”
동훈이 목소리가 촉촉하다. 핑크빛 잇몸을 드러내며 웃던 원장이 종해 휠체어를 현관문 쪽으로 밀고 간다.
요양원 현관문이 열리자 남자 한 사람이 방긋 웃으며 원장이 밀던 종해 휠체어를 받아 잡는다.
“저기 끝 방으로 갈게요.”
휠체어를 밀고 간다. 휠체어 바퀴가 두 번 굴렀을 때다.
“보호자 분 이쪽으로 오세요.”
“예.”
동훈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끝방 앞에 갔을 때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방에는 침대가 두 개 있는데 창가 쪽 침대로 가서 멈춘다. 침대 머리맡에는 ‘전종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휠체어 밀던 남자는 종해를 번쩍 안아 침대에 옮겨 놓고 이불을 덮어 준다.
“여기 담당 간호사입니다. 궁금한 것 있으면 여기 벨을 눌러 주세요.”
담당 간호사가 말하고는 나가 버린다.
종해는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어리둥절했다. 아침 일찍 동훈이가 와 같이 가자고 해서 차에 탔고 내려보니 요양원이다. 아무 설명도 없이 여기까지 온 것이 꿈만 같다. 창문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큰 나무 아래 의자에 환자 두 사람이 앉아 있다. 그 앞을 지나가는 환자들과 손을 흔들고 있다. 손짓을 해 가며 웃기도 한다. 저 사람은 어떻게 왔을까. 스스로 왔을까 아니면 누군가와 같이 왔을까. 생각하고 있을 때 문이 열렸다. 동훈이었다. 눈이 불그레해져 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집으로 모셔야 하는데 사정이 있어 여기로 모셨어요. 힘들어도 조금 참고 계시면 다시 모시러 올게요.”
“그래 알았다.”
동훈이는 갔다. 자동문이 닫혔다. 자동문에 동훈이 뒷모습이 잠시 있다가 사라졌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다. 승숙이다. 받았다.
“엄마 어디야? 엄마 집에 왔는데 문이 잠겼네.”
순간 종해는 요양원이란 말을 할 뻔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먼저 아들 동훈이의 설명을 듣고 딸에게 말을 해야 될 것 같았다.
“나 여행 왔어. 며칠 걸릴 거야.”
“응, 알았어 엄마.”
여기 온 지 일주일 지났다. 종해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무뇌인 것 같다. 아니다. 단 한 가지 생각뿐이다. 왜 여기 왔는지 궁금할 뿐이다. 그 생각 외에는 없다. 삼시 세끼 밥 주면 먹고, 옆 침대 사람이 웃기면 웃어 주고, 원장이 와서 무어라 물으면 그냥 ‘예’라고 대답한다. 간호사가 창문 열어 주면 고개 돌려 쳐다보고,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청소하느라 침대를 밀었을 때 몸이 흔들려 누워지면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있다가 잠들 때도 있다. 모든 생각이 빠져버린 무의식 상태로 지냈다. 한 달이 지났을 때쯤 승숙의 전화가 왔다.
“엄마, 아직도 여행 중이야? 엄마 집에 다른 사람이 살고 있네, 집은 언제 팔았어?”
승숙은 숨을 몰아쉬며 말을 쏟아낸다. 종해는 깜짝 놀랐다. 내 집에 다른 사람이 산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집을 팔지 않았는데 누가 들어와 산다는 거야, 내 물건들은 어떻게 하고, 누가 집을 팔았어, 누구야 소리치며 흥분했다. 순간 뒷목이 뻐근했다. 가슴이 답답했다. 호흡이 빨라졌다. 왼쪽 가슴 쪽이 바늘로 찌르듯이 아프다. 가슴을 움켜쥐었다. 숨 쉬기가 힘들다. 옆으로 누웠다.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쉬었다. 온몸에서 땀이 났다. 들숨과 날숨을 번갈아 쉬었다. 호흡이 편해졌다. 가슴 통증이 사라졌다.
“엄마! 엄마! 전화가 끊어졌나, 이상하네.”
전화가 뚝 끊어진다. 승숙이가 집을 언제 팔았냐고 묻는 것을 보니 집을 판 사람이 승숙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동훈이인가. 동훈이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신호음이 열 번 넘어 스무 번 울려도 받지 않는다. 승숙에게 전화해서 여행 중이 아니라 요양원에 있다고 말해야 되나, 아니면 여행 마치고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해야 되나 망설였다. 먼저 동훈에게 무슨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다시 동훈에게 전화했다. 또 받지 않는다.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다. 승숙에게 전화했다.
“여기 요양원인데 올 수 있나?”
“웬 요양원? 여행 간 곳이 요양원으로 갔어?”
“여행이 아니라 입원했어. 동훈이가 데려다 놓고 갔어. 동훈이 연락이 안 되네.”
“알았어. 갈게.”
승숙이가 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승숙은 급하게 오느라 츄리닝 차림이다. 머리는 빗질을 안 해 헝클어졌고 세수도 안 했는지 눈에는 눈곱이 붙었다. 두 팔을 벌려 종해 품에 안겼다.
“엄마, 무슨 일이야. 왜 요양원에 입원했어?”
승숙은 눈물범벅이다. 종해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동훈이 전화를 안 받으니 집에 가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승숙은 동훈이 집에 갔다. 문을 두드렸다. 기척이 없다. 집 앞에 쪼그려앉아 있었다. 옆집에서 사람이 나온다.
“그 집 손님인가요? 그 집 사람 병원 갔는데….”
승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훈이가 병원 갔다고 옆집 사람이 말하는데 아마 엄마에게 갔는 모양이다. 조금 기다리면 도착할 거니까 기다리라 한다. 종해는 안심했다. 동훈에게 아무 일 없는 것이 다행이라 싶었다. 그날 동훈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종해는 전화해 보려다 그만둔다. 혹시 오다가 다른 볼일이 생겨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기다렸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갔다. 소식이 궁금해 전화기를 수없이 들었다 놓았다.
어느 날 아침 동훈의 전화가 왔다. 요양원에 온다는 전화다. 한참 후 동훈이가 왔다. 얼굴이 홀쭉하다. 눈이 움푹 들어갔다.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나와 보인다. 볼살 피부가 거칠어 보인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더니 아팠나 싶었다. 혹시 아팠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한다. 야간 근무 때문에 잠을 못 자서 피곤하다고 한다. 그랬구나 싶었다. 동훈이는 웃으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차를 타고 출발했다. 요양원 올 때 수십 번 엉덩방아 찧던 길을 지나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얼마 후 다시 고속도로를 나간다. 집으로 갈려면 아직 고속도로로 더 가야 되는데 고속도로를 나가니까 불안했다. 높은 건물들이 우뚝우뚝 섰다. 4차선 도로엔 차들이 즐비하다. 이번엔 번화가 요양원으로 입원시키나 싶었다. 불안한 마음에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동훈이는 못 들었는지 대답이 없다. 더 불안했다. 저만치 요양원이 보인다. 요양원 건물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졌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건물로 보인다. 낙후된 건물에서 좋은 의료진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요양원 쪽으로 차가 달린다. 점점 가까이 간다. 저기 입원시키면 어쩌지 싫다고 할까, 그러면 좀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려나, 어느덧 요양원이 코앞이다. 세우지 않는다. 요양원을 지나간다. 이 요양원이 아닌가 보다. 그렇다면 어느 요양원으로 가나 좀 더 좋은 요양원으로 가는가 보다. 안심했다.
문득 내 집이 생각났다. 내 집이 팔렸다는 소리는 승숙에게 들었는데 동훈이는 집에 간다면서 여기로 가고 있다. 동훈이 집도 아니고 여긴 왜 왔을까? 지금이라도 내 집 팔았냐고 물어볼까. 그 집 팔아서 뭐 하고 날 여기 밀어 넣느냐고 따져 볼까, 아니다 그냥 기다려 보자. 아직 요양원에 입원한 것도 아니잖아. 내 아들이 하는 대로 믿고 따라가 보자. 설령 저승길이라도 가 보자. 내 아들이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가 보자.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고 큰소리로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동훈이는 뒤돌아보더니 웃으며 다 왔다고 한다.
어느 주택 앞에 멈췄다. 앞에는 4차선 도로이고 건너편에는 큰 마트가 보인다. 뒤로는 낮은 산자락이 있다. 동훈은 운전석에서 뒤돌아보며 말한다.
“엄마 아파트 팔고 여기 주택 샀어요. 아파트는 휠체어 사용하기 불편해 보여 주택 사서 휠체어 사용에 불편하지 않게 개조했어요. 문턱은 없애고, 씽크대 높이도 낮추고, 식탁도 높이 조절 가능하게 맞췄어요. 화장실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하고 방에는 병원 침대로 들여놨어요. 리모컨으로 조절 가능합니다. 마음대로 다니지 못해 답답해할 것 같아 마당 있는 주택을 선택했어요. 마당에 나오면 산기슭이라 산이 보이고 공기도 좋아요. 엄마와 상의해서 하려다 혼자 결정했어요. 번거롭다고 뿌리칠 것 같아서, 괜찮죠?”
“아주 좋다.”
그동안 복잡하던 머릿속이 레몬 먹은 입 속처럼 됐다. 집에 들어갔다. 방 두 개와 화장실, 주방, 마루가 있다. 마루 앞쪽에는 통유리로 앞이 훤히 보이고 주방 뒤쪽에는 큰 창문으로 산이 보인다. 큰방에는 아파트에서 쓰던 물건들이 정리돼 있다. 부엌에도 살림살이들이 고스란히 옮겨 와 있다. 집이 바뀌었는데도 정든 물건들 때문에 낯설지 않고 마음이 포근하다.
동훈이는 갔다. 식사 준비를 위해 방에서 나왔다. 문턱이 없어 방에서 마루로 나올 때 편하다. 주방에 갈 때도 편하다. 씽크대는 휠체어 높이로 되어 설거지하기 편하다. 조리대는 양쪽 기둥을 세워 덮개로 되었다. 기둥과 기둥 사이 휠체어가 들어가서 덮개를 당겨 사용하고, 끝나면 덮개를 밀어 넣으면 선반이 된다. 진작 이런 구조였으면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새삼 동훈이가 고마웠다. 잠시나마 동훈이를 의심해서 미안했다. 내 집 팔아 뭐 했느냐고 따져 물었으면 동훈이가 얼마나 섭섭했을까 생각하니 참고 기다리길 잘했다 싶었다.
주말에 승숙을 오라고 했다. 아파트 집 문제에 대해 오해도 풀 겸 새 집 구경 시켜 주고 싶었다. 동훈이네도 오라 했다. 오랜만에 밥 한 끼 먹고 싶었다. 반찬은 간단하게 묵은지 김치찌개와 시원한 동치미, 오징어튀김으로 했다. 승숙네는 도착했다. 손녀가 온 집 안을 뛰며 돌아다닌다. 아파트일 때 뛰지 말라고 주의 주고 했는데 이제는 맘껏 뛰어놀게 뒀다. 점심 준비는 다 되었는데 동훈이네가 오지 않는다. 통유리 밖을 보고 있었다. 마침 차가 왔다. 며느리와 손자만 왔다. 동훈이는 볼일이 생겨 못 왔다고 한다.
승숙네와 동훈네가 가고 나니 시끌벅적하던 집이 조용해졌다. 부엌 창문을 열었다. 산바람이 시원하다. 등산객들이 한두 명씩 올라간다. 3년 전만 해도 저렇게 운동하러 다녔는데 그날 사고 때문에 이렇게 됐다. 친구들과 등산 갔다. 암벽 타는 오르막길에 줄을 타고 올라가야 되는데 무서움 때문에 일행 중 마지막에 줄을 잡았다. 반쯤 갔을 때 아래를 내려다봤다.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을 보고 순간 어지럽고 손에 힘이 빠져 밧줄을 놓쳤다. 아래로 떨어졌다. 수술을 했지만 쭉 뻗은 상태로 무릎을 구부리지 못한다. 구부리는 연습을 많이 하면 좋아질 수도 있다지만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휠체어 신세가 됐다.
이사 온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동훈이를 보지 못해 영상통화 버튼을 눌렀다. 받지 않는다. 통화 한번 하자고 문자 메시지를 넣었다. 이틀 후 동훈이 전화가 왔다.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아프냐고 물었다. 피곤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훈이는 종해에게 새 집에 적응이 잘 되느냐고 묻는다. 아파트처럼 층간 소음이 없어 좋다고 했다. 카세트 녹음기 틀어 놓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밤늦게 텔레비전 영화 체널을 영화관처럼 소리 높여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휠체어 생활 때문에 운동 못 한다는 생각이 없어졌다고 했다. 팔운동 하기 위해 스타킹에 공을 넣어 스타킹 끝을 잡고 벽치기 놀이하고, 찜통을 엎어 놓고 젓가락을 두들겨 난타전을 벌여도 누가 찾아와 항의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참 했는데 동훈이가 아무 반응이 없다.
“동훈아! 듣고 있냐?”
“할머니! 아빠 화장실 갔어요.”
손자 목소리가 들린다. 너무 오래 내 말만 했구나 싶어 손자에게 할머니도 ‘화장실 가야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옆집 사람이 놀러 왔다. 깍두기김치가 잘 익었다며 가져왔다. 종해는 밀가루 반죽으로 칼국수를 만들었다. 잘 익은 깍두기와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다. 칼국수는 동훈이가 좋아하는데 주말에 오면 해 주고 싶어 동훈에게 메시지 보냈다. 다음 주말에 온다고 한다. 기다렸다. 하루 지나고 또 하루를 기다려 내일이면 동훈이가 온다. 칼국수 반죽을 해서 냉장고에 넣어 뒀다. 육수도 끓여 놓았다. 날이 밝았다. 점심 준비는 다 되었다. 마루 벽시계는 11시다. 동훈이는 언제 올려나, 통유리로 집 앞 4차선 도로를 보고 있다. 수많은 차들이 지나간다. 마치 개미 떼가 줄지어 가듯, 엿가락이 늘어지듯 도로를 꽉 채웠다. 저 많은 차들 중에 동훈이 차가 있는지 눈을 부릅뜨고 봤다. 동훈이 차는 보이지 않는다. 마당으로 눈이 갔다. 마당 나무들은 옷을 벗고 앙상한 가지들만 있다. 새가 한 마리 앉는다. 새는 가지 사이를 돌아다니며 쪼고 있다. 나뭇가지에 상처 날까 봐 유리문을 쿵쿵 두드렸다. 새가 포르르 날아갔다가 다시 온다. 또 가지 사이를 다니며 쪼고 있다. 한참 가지 사이를 헤매다 입에 무엇을 물고 날아간다. 새를 따라 올려다봤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밖에 나갔다. 새가 뭘 물고 갔는지 궁금해 나뭇가지들을 봤다. 가지에 하얀 점들이 붙어 있다. 손톱으로 밀어 봤다. 안에서 액체가 삐져나오며 툭 떨어진다. 벌레집이다. 조금 전 새가 물고 간 것은 벌레집이었다. 새끼 먹이를 구해 간 어미새인 모양이다. 벽시계는 정오를 가리킨다. 그때 전화가 왔다. 동훈의 전화다. 조금 늦게 도착한다 한다.
동훈이가 왔다. 몸이 홀쭉하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다. 매생이칼국수를 먹는데 손자는 먹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러다 동훈이 등에 풀쩍 업힌다. 순간 동훈이 얼굴이 칼국수 그릇에 박힌다. 고개를 드는 동훈이 얼굴에 매생이가 잔뜩 묻었다. 매생이팩을 한 것 같다. 동훈이는 수건! 수건! 외치며 손을 허우적거린다. 그러다 윗입술에 붙은 매생이를 쪽 빨아먹는다. 볼에 붙은 매생이가 딸려 들어간다. 며느리가 웃는다. 웃으면 안 되는데 종해도 웃었다. 등에 붙어 있던 손자는 야단맞을까 울먹울먹하다가 따라 웃는다. 종해가 수건을 건넸다. 동훈이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화장실로 향한다.
동훈이는 온 김에 앞마당 나무들에 거름을 주고 간다며 차에서 거름 포대를 내린다. 키 큰 감나무와 매실나무 뿌리 쪽에 구덩이를 파고 거름을 뿌린 후 흙으로 덮는다. 가지치기도 한다. 마당 잔디밭에 죽은 풀들을 뽑아내고 나뭇잎들을 쓸어낸다. 깔끔해졌다.
동훈이네가 가고 몇 달이 지났다. 앞마당 매실나무에 꽃 몽우리가 맺혔다. 나뭇가지 다닥다닥 붙은 몽우리들이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벌어졌다. 오므린 몽우리에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면 방긋 웃듯 벌어질 것 같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벌어지겠지, 몽우리들이 활짝 피면 밤에도 낮처럼 환해지겠지. 별들이 내려 나뭇가지에 달려 있듯 예쁘겠지. 벌들도 날아오겠지, 이쪽저쪽 날아다니며 수정해서 열매가 조롱조롱 달리겠지, 열매가 익으면 매실장아찌도 담그고 매실청도 담글 생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종해는 매실장아찌를 담았다. 3등분으로 나눴다. 동훈이네 주고 싶어 전화했다. 받지 않는다. 승숙에게 매실장아찌 가져가라 했다. 저녁때쯤 왔다. 가는 길에 동훈이네도 갔다 주라 했다.
승숙은 동훈이네 집에 갔다. 동훈이는 누워 있다. 눈이 움푹 들어갔다. 흰자위가 노랗다. 한눈에 봐도 심하게 아파 보인다. 반쯤 일어나려는 것을 못 일어나게 했다.
“많이 아픈 것 같다. 무슨 일이냐? 언제부터 이랬냐?”
다그치듯 물었다. 동훈은 일어나려던 몸을 누이며 대답한다.
“암이래. 말기암이라 수술도 못 한대. 희박하지만 먼저 치료해서 좋아지면 수술할 수도 있다고 했어. 회사도 퇴직했어.”
승숙은 동훈이 손을 잡았다. 동훈이 손등 살가죽이 쭉 밀린다. 피부도 거칠다. 머리를 보니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있다. 다리도 뼈와 살가죽만 있다. 마치 고대 미라를 보는 듯했다. 눈물이 났다. 이렇게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미안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고 물었다.
“항암치료 시작했는데 먹으면 토하고 먹지 못하니 힘도 없고 살도 빠졌어.”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숨을 참았다. 숨 쉬지 않으면 죽을 거라 생각하고, 10초, 20초, 30초를 넘겼다. 얼굴이 빨개졌다. 온몸에 땀도 났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주먹을 쥐었다. 발가락을 오므려 가며 참다 눈을 감았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그 순간 아들 얼굴이 떠올랐다. 분명 눈을 감았는데 아들이 아빠라 불렀다. 눈을 번쩍 떴다. 죽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싶었다. 차라리 치료받아 나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죽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렸다. 병원에서 오라는 날짜에 가서 주사 맞고 먹은 음식 토하더라도 또 먹었다. 요즘 거울을 보면 몰골이 흉하지만 완쾌했을 때를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누나! 엄마에게 알리지 말고, 혹시 엄마가 물으면 회사 일이 바빠서 좀 뜸하면 간다고 해줘.”
“그래. 꼭 이겨내서 건강해져.”
동훈은 엄마에게 매실장아찌 잘 먹겠다고 메시지 보냈다. 지금은 바쁜 일이 있어 못 가고 한가해지면 들르겠다고 했다. 들르겠다고 메시지는 보냈지만 엄마 집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낫는다는 희망으로 견디는 중이지만 좋아진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몇 달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먹으면 토하고 먹지 못한다. 머리는 한 가닥도 남지 않고 대머리가 됐다. 병원에서는 주사약 때문에 머리도 빠지고 못 먹지만 치료 끝나면 머리도 나고 밥맛도 좋아진다며 참으라고 했다. 하지만 변해 가는 몰골이 낯설다. 이제 거울을 보지 않는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무섭다. 무심코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치는 모습 보고 놀라 실신할 뻔했다. 그래서 화장실 거울을 가려 놓았다. 마루에 걸어 둔 가족사진 액자도 가려 놓았다. 액자도 보면 모습이 비친다. 집 안에 비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가려 놓았다.
진료일이 다가왔다. 상태가 어떤지 검사하고 주사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새벽같이 병원에 갔다. 검사했다. 조금이라도 나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진료실 밖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드디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더니 말이 없다. 순간 기뻤다. 느끼진 못해도 좋아졌다는 모양이다. 수술할 만큼 좋아져 이제는 수술하자는 뜻인 줄 알았다. 그리고 의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다음 말을 듣고 놀랐다. 너무 놀라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뭐라고요? 더 악화됐다고 하셨습니까?”
동훈은 담당의사 쪽으로 의자를 확 밀어붙이며 의사 얼굴을 빤히 봤다. 의사는 몇 초간 침묵했다.
“간암이 심해져 치료할 수 없고 수술도 못 합니다. 칼을 댈 수 없어요.”
동훈은 휘청거리며 진료실을 나왔다. 집까지 오는데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내가 운전하는 뒷좌석에 앉았다가 내렸다. 검사 결과를 같이 들은 아내도 아무 말이 없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리고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동훈은 방에 들어가 누웠다. 천장이 빙글빙글 돈다. 눈을 감았다. 내가 없으면 어린 아들 어쩌지, 앞으로 커가는 모습 보며 재미나게 살고 싶었는데, 손 잡고 놀러 가고 싶고, 목욕탕에 같이 들어가 때도 밀어 주고 싶고, 좋아하는 음식 만들어 마주 보며 먹고 싶고, 공부할 때 모르는 문제도 가르쳐 주고 싶다. 예쁜 옷도 사 주고, 같이 운동도 하고 싶었는데 그것을 못하게 됐다. 조금 있으면 학교도 보내야 되는데 학부모란에 아버지 사망이란 글씨를 쓰게 되는 아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학교 가려면 돈도 있어야 되는데 내가 없으면 아내가 떠맡아야 된다. 저 연약한 아내가 돈 벌어 교육시키느라 힘들 텐데 어쩌지.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 주다 힘들어 원망하는 아내 얼굴이 선하다. 아빠 찾는 아들을 보며 힘들어할 아내 얼굴이 선하다. 생각할수록 눈물이 흘렀다. 아내에게 힘든 일을 고스란히 떠넘겨 준다고 생각하니 미안하다. 반신불수라도 살아만 있으면 아내와 아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할 텐데, 시간이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 조금이라도 추억을 쌓고 싶다. 오늘부터라도 아들과 많이 놀아 주고 아내 일을 도와주어야겠다.
벌떡 일어났다. 냉장고를 열었다. 위에서 아래까지 훑어봤다. 가래떡이 보인다. 소고기도 보인다. 두 가지를 꺼냈다. 이것으로 무얼 만들까 생각하다 소고기가래떡말이를 만들기로 했다. 먼저 가래떡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참기름을 발랐다. 그래야 서로 달라붙지 않기 때문이다. 소고기는 소금, 후추, 마늘로 간을 했다. 가래떡을 소고기로 돌돌 말아 끝은 풀리지 않게 밀가루를 발랐다. 그리고 냄비에 파, 마늘, 고춧가루, 매실청을 넣고 물을 자박하게 부었다. 양념이 끓을 때 소고기가래떡말이를 넣고 졸였다. 고기가 익을 정도만 졸이면 된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둘러 완성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도 접시에 담았다. 아내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눈이 벌겋다. 울었던 모양이다. 동훈은 아무 말 없이 아내 손을 잡고 식탁으로 갔다. 의자를 꺼내 주며 앉으라 했다. 방에 놀고 있던 아들도 데려와 의자에 앉혔다. 동훈은 아내 눈을 보니 자신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려 했다. 꾹 참았다. 콧물이 흘렀다. 휴지로 코를 팽 풀었다.
“처음 해 봤는데 먹어 봐.”
목소리가 반울음 섞인 소리가 나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어 고개를 숙였다. 아내가 소고기가래떡말이 하나를 먹는다.
“맛있네.”
목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아들은 맛있게 먹는다. 다른 반찬 안 먹고 소고기가래떡말이만 먹는다. 이렇게 잘 먹는 아들에게 앞으로 계속 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접시를 아들 쪽으로 밀어 주었다.
“많이 먹어.”
아내도 아들을 본다. 윗입술이 파르르 떨고 있다. 동훈은 아내를 보고 고개를 숙였다. 밥을 한 술 먹었다. 입 안이 까칠하다. 모래를 씹는 것 같다. 아무리 씹어도 넘어가지 않는다. 꿀떡 넘기려 해도 목젖이 꽉 막고 있다. 결국 숟가락을 놓았다.
혼자 사는 엄마도 걱정된다. 가끔 엄마 집에 들러 얼굴도 보여 주고, 손자 재롱도 보여 주고 싶고, 집에 고장 난 것도 수리해 주어 불편 없이 살 수 있게 해야 되는데 내가 없으면 누가 해 주나 걱정된다. 지난번 큰방에 고장 난 전구 교체해 준다고 해 놓고 아직 못 갔다. 뻑뻑한 휠체어 바퀴에 기름 쳐 준다 했는데 아직 못 갔다. 다리도 주물러 드리고 싶다. 해가 바뀌었으니 마당 정원에 거름도 주어야 되고, 나무 전지도 해야 되니 한번 갔다 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주말에 간다고 전화했다. 이런 모습으로 가면 걱정할 테니 조금 꾸미고 가야겠다 싶어 병원 갔다. 볼에 보톡스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아내의 화장품으로 화장을 해 봤다. 얼굴이 좋아 보였다. 주말에 갈 때는 화장을 하고 가기로 결정했다.
엄마 집에 도착했다. 먼저 큰방 전구부터 교체했다. 휠체어 바퀴에 기름도 쳤다. 마당 과실나무 전지도 했다. 엄마가 자꾸 쳐다본다. 왜 자꾸 쳐다보는지 이상하다 싶어도 무시했다. 나무마다 거름도 줬다. 땀이 흘렀다. 옆에서 지켜보던 엄마가 수건을 준다. 동훈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일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소변을 보고 손을 씻으려다 코앞에 있는 거울을 봤다. 조금 전 땀을 닦았던 얼굴에 화장이 지워져 있다. 바지 주머니에 있던 화장품을 꺼내 발랐다. 집에 오기 위해 차에 올랐다.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손을 흔든다.
종해는 동훈이 가고 나서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동훈이 얼굴이 전보다 통통해졌다. 피부도 부티 나 보인다. 요즘 잘 먹어 살이 찐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애기 때부터 빰에 수수알만 한 점이 있었는데 올 때는 없었다. 낮에 일하다 땀을 닦았을 때 나타났다. 갈 때 보니 또 없어졌다. 이제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해져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모양이다. 종해는 동훈이 땀 닦은 수건을 빨려고 집었다. 수건에서 화장품 냄새가 났다. 동훈이가 화장할 리는 없고 아마 어제 화장품 옆에 수건을 쌓아 놓아서 화장품 향이 배어들었는 모양이다. 수건을 빨아 건조대에 널어 놓고 방으로 들어가 화장품 옆에 쌓여 있는 수건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았다.
동훈은 엄마 집에 갔다 온 후 마음이 편했다. 미루어 놓았던 숙제를 마무리한 기분이다. 항암주사를 중단했는데도 밥을 먹으면 토한다. 오늘 아침은 두 술 정도 국에 말아 첫술을 입에 넣었다. 한 알 한 알 꼭꼭 씹었다. 쉰 번 정도 씹었는데도 넘어가지 않는다. 밥알이 맷돌로 갈았듯 으깨졌는데도 목젖이 비켜 주지 않는다. 결국 뱉었다.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잠이 들었는지 아닌지 가물가물할 때쯤 아들이 들어왔다.
“아빠, 호수에 오리 보러 가요!”
손을 잡아당긴다. 힘이 없어 일어나지도 못하겠는데 어떻게 산책을 가나, 못 간다고 할까 하다 문득 앞으로 이런 아들의 요구를 몇 번이나 들어줄 수 있을까. 지금보다 더 심해져 아들 요구 못 들어준다면 후회될 것 같아 있는 힘을 모아 일어났다. 아들과 손잡고 호수로 향했다. 조금 갔을 뿐인데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무에 기대어 쉬었다. 쪼그려앉았다. 힘들어 더 이상 못 갈 것 같아 돌아가자며 아들을 봤다.
“할 수 없지 뭐. 내일 다시 와요!”
아들은 입을 삐죽거리며 돌아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누웠다. 돛단배를 탄 듯 천장이 빙글빙글 돈다. 속이 울렁거린다. 목에서 시큼한 것이 올라온다. 눈을 꼭 감고 도로 삼켰다. 배가 부글부글거린다. 손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가라앉지 않는다. 이마에서 땀이 났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잠이 온다. 동훈은 눈을 떠보니 병원에 누워 있다. 팔에는 링거가 꽂혀 있다.
종해는 꿈을 꿨다. 동훈이 하얀 국화꽃을 들고 있다. 종해가 다가가니 점점 멀어진다. 종해는 기다려 같이 가자 하며 달려가다 넘어졌다. 잠을 깼다. 꿈이었다. 잠을 깨서도 현실인 양 생생한 장면 때문에 다시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런 꿈은 처음이었다. 하얀 꽃이 마음에 걸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동훈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는다. 승숙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는다. 10분 간격으로 열 번 정도 해도 받지 않는다. 종해는 택시 타고 동훈이네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렸다. 아무 반응이 없다. 집 앞에서 기다렸다. 외출하고 돌아오던 옆집 사람이 종해를 보고 묻는다.
“누구세요?”
“이 집이 내 아들 집입니다.”
“그 집 아저씨 어제 구급차 타고 갔어요.”
종해는 집으로 돌아왔다. 동훈이가 얼마나 아픈지, 얼마나 위급해서 구급차를 탔는지 더 궁금했다. 큰일은 아니어야 되는데 두 손 모아 기도했다. 제발 별일이 아니길 기도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했다. 얼굴이 불에 대인 듯 열기가 느껴졌다. 승숙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는다. 승숙에게 문자 본 즉시 전화해 달라고 했다. 20분이 지나도 연락 없다. 마루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숨을 크게 몇 번 들이쉬고 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승숙에게서 전화 왔다. 밖에서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방금 들어왔다고 한다. 종해는 동훈이가 전화 받지 않는데 근래 연락한 적 있는지 물었다. 승숙은 어제 동훈과 통화했는데 별일 없다고 하더라 한다.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종해는 승숙 거짓말에 더 불안했다. 승숙은 왜 거짓말하는지 모르겠다. 동훈이 정말 심하게 아픈 모양이다. 사실대로 말하면 걱정하고 놀랄까 봐 거짓말하는 모양이다. 동훈이 상태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 승숙에게 사실은 동훈이네 집에 가서 못 만나고, 옆집 사람 말로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해 볼까. 아니면 모른 척하고 있을까.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상태가 좋아지면 동훈이나 승숙이 스스로 말해 줄 때까지 기다려 볼까. 종해 머리는 철수세미같이 엉켰다. 참자, ‘참을 인’ 자를 허공에 손가락으로 쓰며, 말을 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모르길 바란다면 모르는 척해서 그 애들 마음 편하게 해 주자. 그리고 털실로 목도리를 짜기 시작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두 달이 지났다. 승숙이 전화 왔다. 동훈이 병원에 있는데 같이 가자고 한다. 종해는 승숙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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