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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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내가 키보드를 샀다. 결혼하고 단칸방에 살 때다.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칠 수 있는 가벼운 것이라 혼자 손으로 들고 왔다. “이게 뭐예요?” 하자, 노래 수업 때 필요해서 재미있게 진행하려고 구입했단다.
포장된 박스를 벗겨내자 나란히 배열된 희고 검은 건반이 눈에 확 띄었다. 동그란 건전지 몇 개를 끼우고 전원 버튼을 누르니 파란불이 켜졌다. 아내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짚으며 소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피아노의 절대음을 구분하지 못하는 나는 곁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키보드를 쳐 본 적이 있다며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는 상기된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묻어났다.
“들어봐요. 이렇게 하면 오르간, 탬버린 소리도 나요.”
피아노 소리뿐만 아니라 오르간, 드럼 소리까지 나도록 조절이 가능했다. 빠르거나 느린 템포로도 맞출 수가 있다. 건반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피아노 치고 싶은 마음을 내색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나는 성가대원으로 활동했고 학교 채플 시간엔 중창단에서 베이스를 맡았다. 악보를 보며 혼자 노래 연습을 하다가 음 높낮이에 자신이 없을 때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짚으며 소리를 확인했다. 곡을 연주하기는 어려워도 손가락으로 음을 찾아 누를 수 있어서다.
합창이나 중창단에서 자기 파트의 노래를 능숙하게 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이때 피아노 반주와 함께 연습하는데 반주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4중창 노래는 반복해서 부르고 또 불러서 음을 확실하게 익혀야 실수하지 않는다. 아는 노래가 피아노 소리로 흘러나오면 나는 따라서 부르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노래를 실컷 부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건반을 다루는 아내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학창 시절에 체르니 30번까지 마스터한 뒤로 더 이상 연습하지 않았고 피아노 칠 일도 없었다고 한다. 오래도록 쉬어서 손가락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아쉬워하지만 그런대로 듣기가 좋았다. 가곡 책을 펴서 악보를 보며 연주를 하기에 나는 따라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책을 덮어 두고는 기억을 더듬어서 아는 곡을 천천히 연주하기 시작했다. <소녀의 기도>, <엘리제를 위하여> 등 음을 간혹 헛짚기는 해도 아름다운 곡이었다. 피아노 소리가 작은 집 안에 잔잔히 흘렀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듣자니 동그란 음표가 허공에서 춤을 추며 날아다니는 것만 같다. 작은 거실을 가득 채운 소리가 창문 너머로 퍼져 나갔다.
그동안 아내가 피아노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으니 같이 살아도 서로의 속을 아는 건 아닌 모양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직접적이지 않으면 잘 느끼지 못한다. 곁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하지 않으면 바라는 바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다.
아내는 초등학생 때부터 집에 피아노가 있었다고 한다. 딸이 원하면 잘 들어주는 편이던 아버지 덕이었다. 학원을 다니며 연습에 더욱 재미를 붙이자 가정용 그랜드피아노까지 하나를 더 사 주셨다. 그 피아노 소리가 좋아서 건반을 마음껏 두드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어떤 연유로 집에 있던 피아노 두 대를 한 단체에 기증한 이후로는 피아노를 가져보지 못했다. 기증할 때의 마음은 피아노가 없어도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세월이 흘러 아쉬운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키보드를 구입해 재미 삼아 치던 중에 마침 동생네가 이사하면서 피아노를 주었고 그 후로 나는 키보드보다 깊은 맛의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되었다.
피아노 소리는 연주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다. 경연장의 지정곡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법이다. 아내가 피아노를 치면 건반 누르는 특징이 있어서 소리가 귀에 잘 들어온다. 퇴근해 대문을 들어설 때 피아노 소리가 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밖에서 무거웠던 마음도 그 소리에 풀어진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바뀌는 모양이다. 살다 보면 생각도 바뀌고 감성까지 무뎌진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도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부담이다. 흥이 나서 건반을 누르는 사람에게 소리를 작게 하라거나 나중에 하면 안 되냐고 말하면 마음이 상해서 금세 그만두어 버린다. 밤을 새워서 친다고 해도 즐겁게 들어줄 것 같던 내 마음이 변한 것이다.
세상살이도 새로운 경험에 따라 굳건하던 신념이 바뀌는 수가 있다. 어이없는 충격을 당하고 나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꿈을 수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변화를 주며 바꿀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문학이나 예술, 신앙을 뒤늦게 시작하는 것도 새로운 결심 때문이다.
피아노 소리를 좋아하는 아내 마음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데 요즘은 집에서 건반 소리를 영 듣지 못한다. 살아가기에 바빠서 피아노 앞에 앉을 여유가 없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집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릴 즈음에 대화도 많았다. 그러니 화목의 소리와도 같다고나 해야 할까.
며칠 전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아내가 피아노 조율을 해 볼까 하기에 내가 반겼다. 말을 거들며 비용은 대겠다고 하는데도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것 가지고 인심 쓰는 척하지 말라는 뜻 같기도 하였다.
집 안에 피아노 소리가 흐르게 하는 데는 내 능력 밖이라 아내의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기분 상할 일은 벌이지를 말고 듣기 좋은 말로 신용 점수를 높여야겠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오니 예쁘게 포장한 케이크라도 사서 들고 와 건반 소리를 들을 수 있겠냐고 넌지시 말해 봐야겠다. 통할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