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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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온 산과 들에 하얀 눈이 솜이불처럼 덮여 있다. 깊은 잠자리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뭇가지들. 싸늘하게 몸을 스치는 바람이 싫어 몸을 움츠리지만 앙상한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까치 소리가 정답게 봄을 알리고 있다. 힘없이 녹아내리는 깊은 산골짜기 얼음 조각들이 토해내는 물소리가 가느다란 실고랑 소리를 내며 겨울을 녹인다.
차가운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던 시간이 서서히 흘러간다. 앙상했던 가지 끝에 맺힌 작은 봉오리들은 따스한 햇살 아래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굳게 닫혔던 대지의 문틈 사이로는 푸릇한 새싹들이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다. 아직은 찬 기운이 감돌지만, 공기 속에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미묘한 설렘이 섞여 있다. 봄이 오는 길목, 그 변화의 숨결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여기저기 서 있는 나뭇잎들의 푸른색이 짙어지고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활기를 띤다. 짝을 지어 둥지를 트느라 분주한 모습들을 보면 봄은 저 멀리서 기지개를 펴고 다가오는가 싶다.
우리의 마음 또한 이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굳었던 몸과 마음이 햇살 아래 녹아내리듯 움츠렸던 생각들은 새로운 희망과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설렘과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되는 것은 아마도 봄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선물일 것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돌려본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피어나는 작은 꽃망울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느낀다. 긴 겨울을 견뎌낸 나뭇가지들이 새잎을 틔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끈기와 희망을 배운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삶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깨닫는다.
봄은 단순히 계절의 변화를 넘어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상징한다. 묵은 것을 떨쳐내고 새로운 꿈을 펼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아직은 봄의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질지라도 그 길목에서 우리는 설렘과 기대를 안고 다가올 따뜻한 봄날을 기다린다.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하는 반가운 손님처럼 봄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푸른 산을 가꾸고 살아가는 산림 종사자들은 얼음이 녹아내리는 깊은 계곡의 아름다운 선율도, 곱게 분장하고 봄을 재촉하는 개울가 버들강아지도, 농부들의 일손을 재촉하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 동아줄을 매어놓고 흘러가는 세월을 묶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 덮인 저 산에 녹아내리는 솜송이가 그리워진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같이 걷지 못하고 두 손 벌려 가로막고 싶은 심정은 아마도 산불이 두려워 무서움이 앞선 산림 종사자들의 심정일 것이다.
새봄이 오면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산불이 두려워 몸서리치도록 다가오는 화신(火神)을 막아 보려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월, 봄의 언덕에서 산을 가꾸는 산림 종사자들은 산불 예방의 깃발도 세우고 이 산 저 산 돌아다니며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하여 긴장을 한다.
저 들판 양지바른 묘판에서 산허리에 시집갈 어여쁜 나무들을 손질하고 삽과 괭이를 어깨에 메고 묘목 망태기를 등에 지고 저 언덕을 넘어가는 산을 가꾸는 사람들. 봄이 오면 새봄의 단꿈도 이루지 못하고 산들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니 만물이 도약하고 희망이 솟는 청춘의 계절만은 아닌 것이다.
상수리, 자작나무 잠에서 깨어나 두 눈을 비비고 푸른 잎을 피워내며 신록이 우거지고 솔솔 불어오는 산바람과 함께 아가시아 꽃향기 온몸에 스며드는 그 날을 애타게 기다리며 산을 가꾸는 산림 종사자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산으로 갈 것이다.
지금 우리는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차가운 겨울의 흔적과 따스한 봄의 기운이 공존하는 이 특별한 시간 속에서 우리 마음속에도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심어보는 것은 어떨까. 머지않아 온 세상을 싱그러움으로 가득 채울 봄날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