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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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이 환하게 피는 잎새달. 이적지 찬 기운이 남아 있어 이불을 꺼댕기는 새벽녘, 매화산1) 숲속에서 담사리새2)의 목 쉰 소리가 들린다. 애타게 소쩍 소쩍, 얄부리하이 저며 우는 소리를 들던 울 할매, 명치끝이 알싸해져 담뱃대를 찾으신다. 담사리새는 제 울음을 초가집 조선종이를 바른 문틈으로 슬몃슬몃 밀어 넣고는 앞산 솔수펑이에서 또 운다.
울 할매, 나를 깨배신다.
“일나바라. 요시 저넘의 새가 밤새두룩 앤시럽게 울어싼 께 여엉 잠을 몬잔다 아이가. 니 저 울움을 기담아 함 드러보라모. ‘솟쩍다, 솟쩍다’ 하고 울제? 암만 캐도 올개는 풍년이 들랑갑다.”
1950∼60년대 봄 즈음의 산골 마을. 하늘 한가운데 그윽하게 떠 있던 해가 저 혼자 산 너머로 패내끼 가삐리고 당근색 저녁놀이 온 마을을 적셨다.
묵은 된장에 여무지게 묻어 두었던 깻잎과 참지름 애끼느라 삘개이 눈물마큼 떨우가 무친 광대나물, 맵싸한 씬내이로 늦은 저녁밥을 먹을 때쯤이거나. 남동생들과 청 끝에 날날하이 앉아 일찌거니 나온 밤하늘의 별 하나 나 하나… 세알리몬 뒷산에서 담사리새가 울었지. 노랑나부, 호랑나부 호 호 날고 보리 이삭이 팰랑 말랑. 골 깊은 밤에 띠금띠금 징검돌을 놓는 듯 담사리새 우는 소리를 귀여겨듣더니만 어른들은 한 해 농사를 가늠해 보더라. 솟쩍 솟쩍, 두어 마디 울음에 흉년이 들고 솟쩍다 솟쩍다, 세 마디 울음이면 풍년이 온다고 믿었다. ‘솟쩍, 솟쩍’은 솥이 크니 적은 솥을 찾아 놓으라는 뜻이고 ‘솟쩍다, 솟쩍다’는 솥이 작으니 큰 솥을 갖추라는 뜻이란다.
“니, 와 담사리새가 저리키 슬푸게 우는 줄 아나? 옛날 고릿쩍 머언 마실에 시망시러분 씨어마시가 사랏디라. 그 씨어마시가 갓 시집온 메느리를 양슥 모지랜다꼬 밥도 안 주고 굼겨서이 고마 메느리가 죽어삣제. 그란께 죽은 메느리가 한을 푸머가 태난 거이 쩌 새니라.”
초등학교 삼 학년이었던가. 울 할매의 이바구를 다 새겨듣지 못하고 눈만 매롱매롱. 어느 누가 그 울음소리를 빤뜻허게 또박또박 받아 적을 수 있었을꼬. 서늘해서 반쯤 열려 있던 방문을 사부재기 닫는다.
어슬녘에 산먼당을 넘어와서는 어부리를 게내듯이, 생키듯이 몇 자락씩 울컥울컥 쏟아낸 울음 무늬를 잎새달, 푸른달의 예순 날에 다 쟁여놓데.
그러구러 달빛이 푸지면 아카시아꽃, 탱자꽃이 널찌고 덩달아 밤이 슬이 촉촉하이 잦아지더니 오동꽃도 떨지고. 겨울방학이면 산으로 나무를 하러 댄기고 여름방학이면 고구매밭이거나 감자밭의 지섬을 매었다. 동네 처니들 틈에 비집고 앉아 전짓다리 앞에 놓고 삼을 삼았으며, 철버덕철버덕 무논을 뒤적거려 논고동을 잡았더니만 손마디마디 꾸둥살이 박있제.
고등학교 일 학년. 서럽고 애달픈 담사리새의 울음소리를 매화산 골짜이에 지푸게 남가 놓고 우리 식구는 이사를 나왔다.
지금이사 북두갈고리 같은 손으로 책을 읽기도 하고 주저리주저리 수필도 쓰고, 이쁜 찻집에 앉아 나이든 사람들이 후루룩거리며 묵는다는 카페라떼거나 카푸치노를 뜨겁게 마신다. 뭉떵한 손을 가만가만 디다본다. 탱탱하고 뽀얗던 젊음은 오데로 달나삣시꼬?
나는 이래저래 글귀에 깃들어 사니라고 세상 밖의 일들은 시시콜콜 모를레라. 다님길도 하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의 발재죽을 지운다고 하는데 구부, 구부야 열두 굽이 산길을 가마아득히 생각하다 울 할매를 잠 못 들게 했던 담사리새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인자는 한 집 건너 빈집이라 고향 마을이 시남없이 없어질랑가.
1)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운천리 포실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높이 : 140미터).
2)소쩍새의 경남 사투리(1982년 11월 16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