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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석에서 삶의 무대로

한국문인협회 로고 서주린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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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전을 좋아한다. 관전은 내가 흘리지 않은 땀의 결실을 대신 맛보게 해준다. TV 화면 속에서 누군가의 노력이 환호로 바뀌는 순간, 내 삶의 결핍을 잠시 접어 두고 그들의 성취에 기대어 숨을 고른다. 어쩌면 관전은 욕망의 가장 안전한 형태인지도 모른다. 실패하지 않아도 되고, 상처 입지 않아도 되며, 박수만 치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예체능에 재능이 없다. 단체 행사 오락 시간에 마이크가 돌아오면, 늘 손뼉이 내 차례였다. 노래 한 소절 부르지 못하고 박수로 리듬을 맞추는 사람. 스스로 음치 박치임을 잘 알기에, 도전은 늘 나보다 한 발 앞서 달아났다. 그래서 나는 무대보다 객석이 익숙했고, 참여보다 관전이 편안했다.
지난 목요일 밤 열 시, TV조선에서 방영한 <미스트롯4> 예심 프로그램을 보며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지난해 7월부터 2만여 명이 참가해 예심을 통과한 53팀이 본선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무대에 서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홉 살 어린아이부터 칠십을 넘긴 참가자까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 저마다의 사연과 목소리를 꺼내 놓았다.
오랜 시간 현역으로 활동해 온 이름 있는 가수의 무대도 인상 깊었지만, 내 마음을 오래 붙잡은 것은 딸의 성공을 돕고 싶다며 무대에 선 한 어머니의 노래였다. 음 하나하나에 쌓여 있던 세월이 흘러나왔고, 모녀의 눈빛은 노래보다 먼저 관객을 울렸다. 올 하트를 받고 본선 무대에 오르는 순간, 나는 화면 너머에서 가장 크게 박수를 쳤다. 관전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나도 그 무대의 일부가 된 듯했다.
미스코리아 출신 참가자의 미모와 재능 앞에서 태생의 불공평함을 잠시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팀별 배틀에서 유소년부 다섯 명이 ‘흥아리랑’을 불러 성인 팀을 제치고 본선에 진출하는 장면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재능은 때로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빛을 낸다. 하지만 그 빛이 무대까지 닿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연습의 어둠을 지나야 하는지, 화면 속 훈련 장면은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 뒤에서 출연자들은 팀별로 피나는 연습을 거듭했다. 반복되는 실패와 눈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견뎌내며 무대에 서는 그들의 모습은, 타고난 재능을 핑계 삼아 주저앉아 있던 나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얼마나 시도해 보았는가.”
시간은 우리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동안 나이를 이유로, 몸을 이유로, 익숙함을 이유로 많은 것을 관전석에 남겨 두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마모된 육신의 전환기에 맞게 삶의 방향을 다시 조정해야 할 노년의 목표는, 결과보다 과정에 더 많은 의미를 둔다. 과정은 일상을 젊게 하고, 자신을 돌보는 마음을 자산으로 남긴다.
새해 들어 첫 파크골프 라운딩이 있었다. 잠실 유수지 구장에서 클럽 회원 열두 명이 모여 아홉 홀을 세 번 도는 경기를 했다. 두 번째 9번 홀에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공은 망설임 없이 날아가 홀 속으로 사라졌다. 홀인원. 추운 날씨에 바람까지 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몸보다 마음이 먼저 따뜻해졌다.
경기를 마치고 보니 다섯 명이나 홀인원의 행운을 안았다. 새해 첫 대회의 기운이 좋아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적토마의 기상을 품은 해라며, 클럽에 서광이 비친다고 야단법석이었다. 단톡방에 올라온 소식을 본 어느 회원은 기네스북에 올려야 하지 않겠냐며 농을 건넸다. 홀인원 한 다섯 명이 부담해 추어탕에 막걸리를 나누는 저녁 만찬은, 결과보다 과정이 남긴 연대의 맛이었다.
나는 2015년부터 송파구 파크골프연합회 창립 회원으로 등록해 10년의 구력을 가졌지만, 실력은 아직 명암을 논할 수준이 아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공백도 있었고, 문인 활동 등과 겹치는 날에는 불참이 잦았다. 관전은 익숙했지만, 참여는 간헐적이었다.
요즘 파크골프 인구가 눈에 띄게 늘었다. 나이 제한은 없지만, 육십 대 이상과 여성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골프를 치던 이들이 비용 부담이 적은 파크골프로 옮겨 오며, 기본기를 바탕으로 빠르게 적응한다. 좁은 지역 구장의 한계를 넘어 지방 구장까지 원정하는 회원들을 보며, 나는 다시 관전자의 자리로 물러나 있던 나 자신을 본다.
무한불성(無汗不成). 땀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는 말이다. 운동선수나 가수뿐 아니라, 삶의 모든 분야가 그렇다. 흘리지 않은 땀은 박수로만 남고, 흘린 땀만이 몸에 기억된다. 시도하지 않는 것은 실패조차 아니라는 말도 있다. 실패는 도전한 자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를 위한 새 마음가짐을 한다. 한두 가지 취미를 삶의 중심에 놓아 보리라. 노래와 파크골프를 새로 배운다는 마음으로,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해 보리라. 박수 치는 손을 잠시 내려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추억 어린 노래를 불러 볼 것. 관전석을 떠나 삶의 무대에 설 것.
이 마음은 노년의 시간에게 내가 건네는 가장 정직한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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