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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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짜기를 떠나온 물은 호수에서 맞이하는 물과 함께 몸을 섞으며 흘러간다. 운 좋은 날엔 내 고향 호수에서 여느 날과 다르게 심연에서 물꽃을 끌어올리는 온천수처럼, 때론 오빠의 철없이 만들어 내던 담배 연기의 모양처럼 진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호수가 물꽃을 피워 올리는 시간이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저수지를 가까이에 두고 자랐다. 잔잔한 호수에 일렁이는 윤슬, 살포시 앉은 햇살과 입맞춤에 금가루를 뿌린 듯 반짝인다.
저수지가 언제나 평화로운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새참인 막걸리를 들고 가는 길, 저수지 위로 난 작은 산길에서 사람은 없고 바위 위 하얀 고무신만 가지런하게 놓여 있는, 머리가 쭈뼛 서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얼마 후 저수지의 고요를 깨는 징 소리도 들렸다. 무당은 울긋불긋한 치장을 하고 방울을 흔들었다. 죽은 이의 넋을 건져 올린다는 징 소리는 저수지를 맴돌았다. 그 모습은 너무 섬뜩하였다. 어떤 이가 생을 버리고 떠나서 영혼을 달래 주는 굿임을 그날 저녁에 부모님께 들었다. 한동안 그 모습이 떠올라 무서웠지만, 그래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금가루를 뿌린 듯 호수는 찬란하였다. 아름다운 풍경에 오래 머물면서 오히려 무섬증을 몰아내었다.
호수는 어느 한 계절만 품지 않는다. 흘러오는 물을 받아 주고 떠나는 물을 흘려보내고 끊임없이 순환한다. 나는 두 개의 호수를 품고 살았다. 하나는 내 고향 호수요, 또 하나는 나의 곁지기 호수다. 곁지기 호수에서 유유히 뱃놀이하며 전설 속의 나무꾼과 선녀처럼 살았다. 그런데 요즘 곁지기의 푸르고 물 가득했던 호수가 둠벙만큼 작아지고 있다. 몹쓸 불청객이 찾아왔다.
병원의 모습은 명절 전날의 버스 터미널처럼 북적인다. 병실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옆 사람의 대화를 듣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짓눌린다. “항암 스물여덟 번 받았네요.” 또 다른 이는 “오십 번을 받고 나니 가족들이 먼저 떨어져 나가고, 병원 예약된 날이면 선약이 있다면서 잘 다녀오라고 고개만 까딱하네요.” 그러려니 하면서도 몸이 서운한 반응을 한다며 모자 끝자락 몇 가닥의 머리 오리를 쓸어 올린다.
곁지기의 호숫물에 불순물이 잦아들고 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본인조차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건강했다. 아들 또래의 의사는 곁지기의 명줄이 많이 앞당겨졌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가감 없이, 밉살스러울 만큼 냉정하게, 그리고 칼날처럼 날을 세우고 희망이란 단어를 무참하게 끊어 버린다. 예전에 우리 부부에게 큰 피해를 보고 복수의 칼을 갈며 기회를 벼르던 사람마냥.
그밤 상대의 언어 꼬랑지를 잡아당겼다. 뒤집어 보고 바로 보고 해석을 해 보았다. 그 언어는 분명 내가 알던 익숙한 언어지만, 불순물 섞인 호숫물에 온 가족이 함께 얼어 버렸다. 그 후론 기시감에 얹힌 낯섦이 생활에 끼어들었다.
호수의 충만을 느낄 때는 만수(滿水)일까? 아니면 수문을 열고 내달릴 때일까. 저수지의 물빛이 변할 때가 있었다. 그때는 모내기와 끝내기와 벼포기가 분얼(分蘖)을 끝내고 나면 우담바라 꽃 같은 벼꽃이 핀다. 그 무렵이면 호수의 표정은 여느 때와 다르게 아주 무덤덤하고 느긋하다. 어쩌면 그 시간이 호수의 휴식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만큼은 사람들이 호수를 만만하게 대했다. 호수의 속살 같은 조개를 건져 올리고 물고기를 잡고 투망질을 해도 모로쇠로 일관한다. 배로 건널 장소를 바지 둥둥 걷어 올리고 물을 질러 건넌다. 물가 곁에는 보라색의 잎주름꽃과 하얀 별꽃이 피어난다. 물 대신 키 작은 꽃이 아름다움을 대신 채우곤 했다. 호수의 충만을 상상하며 잠시 바람 쐬러 병원에서 나왔다.
창경궁의 춘곤지를 찾았다. 곁지기가 병원에서 오랜 시간 머무는 동안, 벗을 수 없던 마스크를 벗고 맑은 공기와 풍경 속에서 잠시라도 숨을 내쉬고 위안을 받는다. 아름다운 가을이 지나자 춘곤지에 가득하던 물이 모두 빠졌다. 가을의 고운 단풍을 품었던 아름다운 모습은 간 곳 없고 물이 빠져나간 호수의 모습은 마치 항암 후에 한 올 두 올 빠지다 완전 탈모가 된 머리 올처럼 처연하다. 물속을 유영하던 잉어 떼와 오리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물무늬와 물에 반사된 아름답고 곱던 단풍이 사라졌다. 연잎 피워 내고 꽃대를 올리던 연잎마저 사라진 그 자리에는 텅 빈 가슴으로 남겨진 둥그런 도구들이 군데군데 찬바람에 서로 의지하고 있다. 물이 없어 갈 길 잃은 작은 물고기가 연신 당황하여 작은 물길에 흙탕물이 인다. 춘곤지는 재정비를 마치면 예전처럼 수량도 가득할 것이고 계절이 흐르듯 다시 흘러가겠지. 물 위로 작은 구름마저 없는 밤이면, 밤하늘의 별들과 달님이 호수 위에 평화롭게 떠 있기를 소망하겠지. 나의 호수는 언제나 고요보다는 일렁임이 잦았던 호수였다. 물총새의 먹잇감을 내주기도 하지만 숨겨 주는 역할도 하였으리라. 느닷없이 넘치는 흙탕물에 가슴도 졸이곤 했다. 풍부하지 못한 수량 때문에 농민들 마음을 흡족하게 채우지 못한 날은 하늘을 보며 기원도 했으리라. 호수를 가르며 나룻배의 삐걱대는 소리와 산새들의 노래, 갈대가 하얀 손을 들어 웃어 주는 가을의 아름다운 산을 품으며, 잔잔한 호수에 끝없는 파문을 일으켜도 늘 맏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수량이 넉넉한 척하던 사람이었다. 잔잔함을 유지하려 애쓰고 사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밉살스럽기도 했던 곁지기의 긴 시간을 되돌아본다.
예약 시간이 무색하게 늘어지던 어느 날이다. 몇 시간의 항암 주사를 맞고 나온 사람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온다. “시골 가서 투망 한 번 치고 올까?” 잠시 섬망 증상이 온 것이 아닌가 하여 그의 안색을 살폈다. “그래요. 가서 투망 던져서 물고기 잡고, 풋마늘을 손으로 뚝뚝 끊어 넣고 매운탕에 라면 사리도 넣어 푸지게 끓여 먹고 오자고요” 하며 장단을 맞췄다.
제발 투망을 던질 만큼 체력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어느 날은 호중구 수치가 나오지 않아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오는 날도 있어 나의 애간장을 태우는 곁지기다. 어서 쾌유해 팔뚝 근육이 장어처럼 꿈틀대며 투망을 던지고 걸어 나오는 씩씩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나의 곁지기의 푸르고 가득한 만수가 되는 날이 어서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