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8월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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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도, 누워서 편안함을 원하는 성격도, 누군가 대신 뭘 해주길 바라는 성격도 아니다. 눈을 뜨면 두 발로 돌아다니고, 돌아다니지 않으면 두 손으로 무엇인가를 한다. 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하고, 내 귀로 들어야 믿고, 내 손으로 직접 해서 내 스스로 만족해야 비로소 일 좀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일’자체가 삶이다. 누구나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만 때론 먹고 사는 걸 잊을 만큼‘일’자체가 더 기쁘고 행복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일에서 느끼는 성취감, 만족도가 높아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모를 때가 있다.
나는‘일’중독에 걸린 것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정해 놓은 일과 기준이 아닌 내가 만들어 가는 내 자신의 길에서 스스로 만족하고 성취감을 갖는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나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갖고 있는 것이라곤 손재주뿐이라 이른 나이에 석공예기술을 배웠다. 충남 무형문화재 보령석장이신 고석산 선생님, 서울대 이순석 교수님, 최봉자 수녀님과 함께 작업을 해왔고 일본석재단지 연수한 이력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삶에 흔들림이 있을때 다시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찾은 것은‘과거’였다. 깊은 땅속에서 빛의 세계로 나온 화석, 벼룻돌이 내 삶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로 인하여 과거가 갖고 있는 가치에서 현재의 행복을 건졌고, 곧 다시 미래를 열어가는 길을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서 금을 캐고 역사에서 다이아몬드보다 귀한 가치를 얻은 일이 무엇인가.
헤아릴 길 없는 아주 먼 과거가 남겨 놓은 유산들을 살피면서 그 과거가 낳은 나를 찾을 수 있었고, 내가 할 일을 찾는 그 고독의 길에서 작가가 되었다.
이렇게 탄생된 나의 창작실은 화석이 있는 작은 박물관이다. 엄밀히 말하면 문헌을 뒤져 벼룻돌 석란석을 발굴하여 벼루를 만들며 모아둔 약 2억 년 전 화석들과 작은 도서관이 범벅된 예술원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보령시 미산면 봉성리는 근대문화로 폐광과 청석광이 있고 고려시대부터 도자기를 구워 국가에 납품하는 마을로 지정되었었다. 나는 벼루를 만들며 찾아낸 2억 5천만 년 전의 화석들과 보령댐이 있는 미산면의 고려시대 도자기 가마터에서 발굴된 보령 도자기들을 한자리에 모아 두었다. 그곳에서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쉬다보면 마음 안쪽에 박혔던 글들이 꿈틀거린다.
돌이 조용한 것은 말을 못하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말하지 않는 언어로 말하고 있다. 화석이 있는 박물관, 그‘과거에서 나오는 숨소리’가 걸어나오면 나는 그것을 언어로 담아 돌에 글향을 담고 다시 그것들을 미래로 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