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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병동

한국문인협회 로고 양진영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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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강 노인은 이따금 벙긋거렸다. 병에서 벗어나는 기쁨 같기도 했고 새 세상을 기대하는 설렘 같기도 했다. 지화는 링거에 주입할 심장마비제 용량을 확인했다. 20cc. 적으면 예정된 시간보다 안락사가 지체되고 많으면 사망 시 통증이 따른다. 병상 맞은편에서 백인 수간호사가 사납게 눈짓했다. 빨리 주사제를 넣으라고 독촉하듯이. 그녀는 왜소한 데다가 남자치고는 지나치게 피부색이 희멀건 지화를 십대 소년 다루듯 했다. 걸핏하면 어깨를 쓰다듬거나 볼을 꼬집었다. 아무리 동안이라고 하지만 나이가 서른둘이나 되는 유부남을. 기실 임시 취업비자로 일하는 간호조무사로 영어도 서툰 지화는 대들 처지도 아니었지만.
안락사에는 진통, 근육 이완, 심장마비 약물이 차례로 주어진다. 한 시간 전부터 앞의 두 주사제를 맞은 강 노인은 멍한 눈길로 천장만 쳐다보던 평소와 달리 편안한 얼굴이었다. 폐암 말기 환자들이 그렇듯 살가죽은 까맣게 말라붙고 뼈만 앙상했지만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감돌았다. 지화는 249호 라벨이 붙은 주사기를 개봉했다. 미국에서 안락사를 유일하게 허용하는 오리건주의 그 병원에서 강 노인은 249번째 자원자인 셈이었다.
지화가 심장마비제를 링거 주입구에 투여하자 환자는 기다렸다는 듯 눈을 감았다. 조리개에서 느릿느릿 떨어지는 약물 소리가 식어 가는 심장 박동 같았다. 지화는 자기도 모르게 침상 밖으로 드러난 강 노인의 손을 슬그머니 잡았다. 마지막 말이 있으면 남기라는 듯이. 노인의 눈가에서 언뜻 눈물이 반짝였다. 지화가 안락사 병동에서 두어 달쯤 일하는 동안 그 노인은 매양 한탄했었다. 자신은 그저 다음 세대를 위한 바통 주자에 불과했다고, 단 몇 달이라도 내 뜻대로 살아 보고 싶다고. 그 눈물은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지 못한데 대한 회한일까. 지화는 시공이 멈추어 버린 주검 곁에 오래 앉아 있었다.

 

*
밤새워 아아응, 울어대던 고양이는 새벽 무렵에야 수그러들었다. 원룸형인 B병동 거주자는 애완동물이 허용됐다. 심지어 반려견까지 데리고 안락사하는 환자도 있었다. 복도 끝에 사는 흑인 할머니는 고양이를 서너 마리나 키웠다. 그것의 울음은 때로는 길거리에 버려진 갓난애를 연상시켰다. 그곳에 온 지 두 달 내내 그 소리가 지화를 괴롭혔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병동의 아침이 밝아 오고 있었다.
지화가 일하는 병원은 영결식장, 화장장, 예배당까지 갖춘, 50만 평이 넘는 널따란 메모리얼 파크에 속해 있었다. 미국에서 그런 종류의 이름은 유원지가 아니라 공원묘지를 뜻한다. 방에서 마주 보이는 언덕에는 비석이 빽빽이 들어찼고 군데군데 정원까지 꾸며져 있어 설핏 보면 진짜로 노는 공원 같았다. 가끔 꼬리를 물고 올라가는 실뱀장어 같은 연기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는데 알고 보니 화장터에서 시신을 태우는 중이었다. 좀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런 지역에 아무렇지 않게 머무는 환자들이 신기했다. 몇 달 살아 보니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묘한 공간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케 세라 세라∼ 미래는 알 수 없고, 모든 일은 될 대로 된다네∼.” 
옆방의 클라라 최 할머니는 오늘도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 케 세라 세라는 스페인어로 '될 대로 된다’는 뜻이라고 했던가. 258번째 안락사 예정자인 그녀는 그 노랫가락을 달고 살았다. 유일한 한국인 환자가 먼저 떠나서 서운한 것일까. 오늘은 유난히 음색이 날카로웠다. 중증이었던 강 노인은 여러 명이 병실을 함께 쓰는 A병동에 머무른 반면 사지가 멀쩡한 할머니는 독방이 주어지는 B병동에서 생활했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중간중간 조무사들이 끼여 사는데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지화의 옆이 최 할머니 거처였다. 그녀는 심심하면 목청을 뽑아 대 프리마돈나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잠시 조용하다 싶더니 누군가 똑똑 방문을 두드렸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데 할머니가 문을 빼꼼히 열고 물었다.
“강씨는 잘 떠났어?”
비록 두어 달이지만 알고 지낸 노인이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지 방긋 웃었다. 그 미소가 강 노인이 임종 직전에 보여 준 것과 같아 보였다. 지화는 애써 시무룩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무 말씀도 없이….”
“유언장에 다 썼는데 할 말이 뭐 남았겠어. 두 아들이 닥터이겠다, 유산도 꽤 남겼겠다, 더 바랄 것도 없지.”
“내 뜻대로 살았더라면 하고 자주 후회하셨는데.”
“복에 겨운 말이지. 교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중학교 교사로 일했고 아들들도 잘됐는데 무슨 소원이 더 남았을까?”
“본디 화가가 꿈이었다고 들었어요. 그걸 이루지 못해서….”
“호호호. 그대같이?”
할머니는 잔밉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쩌다 눈길이 마주친 순간 지화는 그 눈동자가 남달리 느껴졌다. 친할머니가 손자를 바라보는, 웅숭깊은 시선처럼.

 

지화가, 자신이 태어나자마자 입양됐다고 전해 들은 것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 유복자를 두고 사고로 죽었다는 아버지의 사진이 한 장도 없는 것이 이상해 알음알음으로 물어보았더니 먼 고모부가 넌지시 일러주었다. 엄마는 십 년 넘게 사귀던 남자가 다른 여자를 따라 미국에 건너가 국제변호사로 정착하자 결혼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대신에 양자로 들인 지화를 죽도록 사랑했던 애인이 남기고 간 친자식인 양 대했다. 어쩌면 정말로 그처럼 믿고 싶었거나 아니면 주변에 보이고 싶었을지도 몰랐다. 한 방울의 피도 안 섞인 아들을 그악스럽게 아꼈다. 피아노, 첼로, 그림을 가르치고 학교 소풍이건 놀이공원이건 가리지 않고 따라다녔다. 사립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엄마의 하루 일과가 아들에 맞추어졌다. 새벽 여섯 시에 아침을 챙겼고, 매일 다른 간식을 만들어 주었고, 밤 아홉 시에 학원 앞에서 기다렸고, 잠들 때까지 곁에서 책을 읽었고. 그 탓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붙여 준 지화의 별명이 세헤라자데였다. 날마다 왕비를 죽이던 인도의 왕이 평생을 애지중지하면서 데리고 살았다는 아내. 요리나 뜨개질을 곧잘 하는 남자애를 비꼬는 말이기도 했지만.
그러다 보니 남몰래 일류 셰프의 꿈을 키웠던 지화는 꼼짝없이 법대에 진학해야 했다. 오로지 법률가로 키우려는 엄마의 뜻에 따라서. 그렇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25년을 살았다, 과거의 애인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고 싶어 하는 엄마를 위해. 한데 인형 놀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엄마의 권유로 결혼한 여자까지 가세했다. 법대 교수의 딸인 그녀 역시 남편이 저명인사가 되기를 원했다. 지화가 사법고시에 연이어 떨어지자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로스앤젤레스에 소재한 로스쿨로 유학을 보냈다. 국제 변호사가 되기 전에는 귀국하지 마라는 장모의 엄포까지 곁들여서. 증권사 애널리스트인 아내는 그 분야에서 촉망받는 인재여서 함께 유학 올 처지도 아니었다.
그것은 3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여자의 곁을 떠나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법대에서 1년을 빈둥대던 지화는 아무도 몰래 2년제 대학의 보건학과로 전학했다. 그리고 졸업하자마자 냉큼 CAN(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딴 다음에 어린 시절의 꿈 중 하나였던 간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나이팅게일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반짝이는 그의 눈빛을 엄마는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도 두 여자는 국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기가 쉬워서 오리건주의 법대로 옮겼다는, 지화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고.

 

*
B병동에 거주하는 환자는 모두 안락사하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미국 오리건주는 네덜란드, 벨기에와 더불어 적극적으로 개인의 죽을 권리를 허용하는 곳이다. 소생이 불가능하거나 생존 기간이 6개월 미만인 환자로 제한한 다른 나라와 달리 성인은 누구나 주법원에서 존엄사 처방을 허가 받을 수 있다. 외국인의 안락사도 가능한 스위스의 경우 '디그니타스’ 병원에만 50개 국가에서 신청한 4천여 명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 B병동에 모인 환자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스스로 죽을 날을 정해 둔 셈이었다.
지화는 그 병동에서 두어 달 지내는 동안 그들에게서 어떤 공통분모를 발견했다. 환자들은 하루하루의 일상에 끔찍이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는 온종일 산책하러 다녔고 누구는 끊임없이 편지를 썼다. 누구는 밥을 먹으면서도 뭔가를 암기했고 누구는 하루의 대부분을 기도와 찬송가로 보냈다. 그처럼 최 할머니도 시도 때도 없이 같은 노랫가락을 흥얼거렸다.
“케 세라 세라, 케 세라 세라∼.”
환자들이 하는 말도 각양각색이었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더라면,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했더라면, 죽도록 일만 하지 않았더라면,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더라면, 신의 존재와 가르침을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는 진리를 일찍 깨달았더라면 등등. 심지어 불 같은 사랑을 해보았더라면, 보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더라면, 죽기 전에 고향 사람들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더라면, 조금만 더 친절을 베풀었더라면 등 사소한 일이 소원인 노인도 있었다. 그들같이 최 할머니도 늘 같은 말을 하고 다녔다.
“미래는 알 수 없고, 모든 일은 될 대로 된다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뜻대로 살아라는 잠언 같았다.

 

그 할머니가 새벽부터 대여섯 차례나 노크를 해댔다. 주말에는 으레 둘이서 건너편의 공원묘지를 산책했는데 오늘도 그것을 재촉했다. 지화는 한참 궁싯거리다가 밤새 입고 잤던 운동복을 그대로 걸치고 문밖으로 나섰다. 이른 아침부터 모여든 노인들이 회랑을 따라 점점이 늘어선 탁자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이었다. 어디에서는 색소폰, 하모니카, 아코디언이 어울려 합주하고 있었고 어디에서는 체스나 장기를 두고 있었다. 어디에서는 카드놀이가 벌어졌고 어디에서는 공놀이가 한창이었다. 누구는 휠체어를 탔고, 누구는 카트에 몸을 의지했고, 누구는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본토박이 미국인에 인도인, 중국인, 남미인 등 온갖 인종이 뒤섞여 안락사하기 전까지 남은 며칠 혹은 몇 달을 만끽하는 모습이었다.
이민 온 지 오래됐어도 언어가 서툰 그들은 부사, 형용사, 접속사가 생략된 단순한 문장으로만 대화했다. 피차간에 상대가 자신의 말을 죄다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대화하면서 서로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최소한의 어휘의 구사와 손짓, 눈짓만으로도 어지간한 의사소통은 충분했다. 그들은 자주 중간 부분을 생략했지만 대다수가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보였다. 어느 이민자가 어법에 안 맞는 구문을 떠듬대도 아무도 뭐라고요? 하고 묻지 않았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가 영웅담을 들려줄 때도 모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은 기실 대부분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폭격기, 폭탄, 화염이라는 몇 개의 낱말만 듣고도 어느 마을에 공습이 있었고, 불길이 치솟았고, 많은 주민이 죽었고 등등 나머지 부분을 상투적인 상상으로 메웠다. 마지막에는 화자를 따라 웃거나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살아갈 날이 별로 없는 그들에게 이야기의 진실성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를 받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가뿐한 마음으로 임종을 맞으려는 듯싶었다.
외교관이었다는 백인 할머니는 오늘도 구시렁구시렁 혼잣말하며 앞뜰을 배회했다. 젊은 시절에는 국무부의 고위 관리로 백 개도 넘는 나라를 휩쓸고 다녔다고 들었다. 좀 무더운 날씨인데도 카키색 재킷과 가죽 핸드백으로 한껏 멋을 부렸다. 늘그막에 남편이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워서 홀몸이 됐다나. 그 할머니는 늘 말하고 다녔다. 남은 인생은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하면서 살겠다고. 자랄 때는 근엄한 부모의 감시,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 집안에서는 가족의 비위를 맞추며 80년을 살았으니 화병에 걸릴 만했다. 그래서인지 정신이상자같이 입만 떼면, 내 인생은 무엇이었을까요? 하고 묻고 다녔다.
묘지로 가는 길은 동떨어진 세계로 들어서는 입구 같았다. 잣나무, 가문비나무, 졸참나무들이 가지를 활짝 펴 하늘을 가렸고 흑갈색 갑옷을 두른 전나무들은 오솔길을 따라 도열했다. 울창한 삼림을 가로지르자 으늑한 숲 속에 숨은 봉분이 드러났다. 공원묘지는 군데군데 휴식을 위한 공간까지 있어서 고즈넉한 정원 같았다. 어느 나무에서 청딱따구리가 딱딱 껍질을 쪼아 댔고 묘 사이로 고라니나 토끼가 쏜살같이 뛰어다녔다. 숱하게 늘어선 십자가 모양의 비석을 보고 있으면 성스러운 감정이 차올랐다. 영혼이 사는 공간에 머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솜이불처럼 촘촘한 적막감 속으로 사라져 버릴 듯한 두려움도 일었다.
최 할머니는 지나치는 봉분마다 고개를 꾸벅거렸다. 설마 그 많은 주검과 인연이 있을 리 없고 습관인 듯싶었다. 그럴 때면 지화도 어디선가 혼령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런대는 느낌이었다. 일전에 할머니가 말했었다, 묘가 비슷해 보여도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고, 그들의 삶이 다르듯 죽음 또한 그러하다고. 저만치 앞에 희게 페인트칠한 나무 십자가가 줄줄이 나타났다. 그 가운데에 검은 대리석이 서 있는 묘지가 지화도 예닐곱 차례 들렀던, 할머니가 찾는 곳이었다. 그녀가 평생 사랑했던 단 한 사람의 남자가 잠들어 있는.
오늘도 할머니는 비석을 쓰다듬으며 잘 지냈어? 산 사람을 대하듯 인사했다. 유리처럼 투명한 대리석 표면에 자기 얼굴이 어룽거렸다. 그녀는 돌에 비친 눈이 남편의 것이라도 되는 양 빤히 마주보았다. 그렇게 한참 쳐다보다가 살갑게 말했다.
“곧 자기 곁으로 갈 거야. 한 달만 참아.”
최 할머니는 이따금 결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어머니는 시쳇말로 지독스러운 타이거 맘이라고 했다. 남편이 서너 살 때부터 시간 단위로 할 일을 정해 놓고 매사를 시시콜콜 간섭할 만큼. 취미와 특별 활동은 물론이고 심지어 친구마저 엄마가 골랐다. 외로울 때면 피아노를 쳤던 남편은 어느새 피아니스트를 꿈꾸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본받아 의사가 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주어지지 않았다. 최 할머니도 시어머니가 고른 며느리였지만 남편이 안쓰러운 나머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아무도 모르는 미국의 소도시로 유학 온 두 사람은 이후 평생을 빈곤히 살았다. 시립 합창단의 단원이었던 남편의 수입으로는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식당에서 매일 열 시간씩 일해야 했다는 할머니는 후회 없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자신의 삶에 기뻐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행복했었다고. 지화는 문득 궁금해졌다.
“수십억 원의 유산을 받아 편히 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럴 수 있겠지. 그 대신 반평생을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대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어?”
“글쎄요….”
“내가 살아 보니까 청춘,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던데. 젊음이 사라진 인생은 있으나 마나야. 그대는 그 짧은 청년기에 무엇을 얻고 싶어? 돈, 명성, 지위?”
“아직 모르겠어요.”
“난 다음 세상도 남편과 함께 할 거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택했거든.”
할머니는 대리석에 내려앉은 먼지를 손으로 쓸며 말했다.
“어느 시인이 말했지, 즐거운 묘지라고. 나도 여기에 머물면 마음이 편안해. 무덤 속에서 그이가 내게 소곤대는 것 같아.”
평소 그녀의 눈은 생사를 잊은 백치같이 투명한데 그 말을 할 때는 눈동자에서 이상스러운 인광이 번쩍였다. 또 그 노래가 울려 퍼졌다.
“케 세라 세라∼ 미래는 알 수 없고, 모든 일은 될 대로 된다네∼.”
그 노랫소리에 답하듯 빽빽한 숲에서 산새들이 환장하도록 우짖었다. 이름 모를 꽃이 아릿한 향기를 뿜었고 산새와 나비가 갈마들며 붕붕거렸다. 지화는 언젠가부터 그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언가 울대를 타고 오르는 것이 있었다. 어느 순간 사위가 멈춘 듯 잠잠했다. 할머니의 콧노래도, 새들이 우짖는 소리도, 풀벌레의 울음도 없었다. 새근대는 자신의 숨소리만 고요히 퍼졌다.

 

*
지화는 이불 밖으로 손만 빼꼼히 내밀어 탁상시계를 찾았다. 일요일에는 정오를 훌쩍 넘어 일어나곤 했는데 오늘은 휴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를 대신해 회진해야 했다. 환자의 맥박을 체크하고 특이한 증상이 있으면 센터에 알리는 역할이었다. 지화는 물컵을 찾으러 이불을 좀 들추었다. 쪽창 너머에서 밝은 햇살이 폭포수처럼 부서져 내렸다. 입술이 바싹 말라 입언저리가 찢어지듯 아팠다. 간밤에 익숙한 악몽에 시달린 탓이리라. 양어머니와 아내를 속이고 안락사 병동에서 일하기 시작한 뒤로 그들이 등장하는 꿈을 곧잘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검은 복면을 쓴 사람들이 목을 조르는 바람에 가위눌린 듯 버둥거렸다. 그들은 끝장을 보려는 듯 달려들어 짓밟고 물어뜯었다. 그들이 복면을 벗었을 때 지화는, 어머니, 자기야! 나를 왜? 하고 놀라 소리치곤 했다.
또 다른 꿈에서는 최 할머니를 따라서 때때로 산책하던, 그 공원묘지에서 서 있었다. 방향을 알려 주던 표지판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멀리 보였던 화장장의 높다란 굴뚝마저 간데없었다. 사위는 자욱한 안개에 잠겨 있었고 물, 바람, 동물의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지화는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을 찬찬히 읽었다.
“여기를 통과하면 다른 세계입니다. 이곳을 넘어가면 지금까지 당신의 기억과 모습은 깡그리 지워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죽은 자, 산 자가 될 수도 있고 인간, 동물 중에서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자, 이제 첫발을 떼세요.”
지화는 묘지 저쪽으로 한쪽 발을 내밀었다. 불쑥 들어서려는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혹시 토끼가 된다면 늑대에게 쉬이 잡아먹히지 않을까. 내가 본디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와 인간이 된 곰이 아닐까. 비몽사몽간에 어디선가 아코디언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곧 누가 달려와 깨울 것 같은데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지화는 오도 가도 못한 채 진땀만 흘렸다. 그때 최 할머니가 쿵쿵 문을 두드렸다.
“박 간호사, 내 방으로 와. 요리가 준비됐어.”

 

사흘 뒤 안락사가 예정된 할머니는 벌써 방을 정리한 듯싶었다. 가구라고는 일인용 침대, 작은 탁자, 흔들의자만 달랑 남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네댓 가지 물품이면 충분해 보였다. 테이블에 덩그렇게 놓인 달력에는 두 군데의 날짜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다음 주 수요일과 일요일. 앞은 안락사하는 날이고 뒤에는 '우리 딸 생일’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의 사진에서 젊은 여자가 밝게 미소 지었다. 무대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할머니가 수시로 자랑했던 외동딸인 모양이었다. 다섯 살부터 음악 신동으로 불려서 지금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회를 여는 중이라고 했다. 지화는 빛바랜 사진을 우두커니 쳐다보았다. 80년 인생에서 남은 것이 고작 몇 장의 사진뿐이라니…. 할머니는 젊은이의 감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케이크에 초를 꽂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그날… 따님은 안 오시나요?”
“바쁜 애를 부르면 뭘 해. 전화도 안 했어.”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부모님인데….”
“내가 병원에 부탁해 두었어, 화장할 때나 연락하라고.”
할머니는 준비한 음식을 탁자에 차례로 올려놓았다. 스테이크, 갈릭 샐러드, 파스타, 보리빵, 레모네이드 등등 거개가 모형이었다. 인공으로 만들지 못한 미역국과 볶음밥은 인터넷에서 출력한 사진을 오렸고.
안락사하기 전까지 몇 달 동안 환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때운다. 종일 가족과 지인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수백 번씩 되풀이해 듣기도 한다. 가능한 많은 기억을 가져가려고 어느 노인은 동식물 이름을 죄다 노트에 기록하고 어느 노인은 틈만 나면 정원에서 꽃과 식물을 보고 다닌다.
최 할머니는 모형 음식을 만들며 그날을 기다렸다. 실제로 딸과 동거하기라도 하듯 눈을 뜨면 아침상을 차렸고 저녁에는 거나하게 파티 음식을 늘어놓았다. 가끔은 지화를 불러 딸이 좋아하는 연어 스테이크의 모형을 만들어 소꿉놀이하듯 가짜 음식으로 식사하기도 했다. 지화는 모조 요리를 보면서 그것을 만들던 날을 회상했다.
…모델링이 끝난 생선살을 밀랍 몰드로 본뜬다. 벌집에서 추출된 밀랍은 파라핀 같은 화학 재료와 달리 친환경적이고 상온에서 가공이 용이하다. 물컹대는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낸 뒤 착색을 시작한다. 생선 요리는 무엇보다도 색감이 중요하다. 날것 그대로의 싱싱함이 살아 있으면서 불에 그슬린 느낌이 돋아나야 한다. 컬러 스프레이로 기초 작업을 한 다음에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사용한다. 그처럼 정성스레 착색을 마치면 모조품에서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 같다. 드라이어로 뜨거운 바람을 쏘이면 인조 생선이 노릇노릇이 먹음직스럽다. 접착제를 바르고 미리 만들어 놓은 화이트소스 모형을 얹어 연어 스테이크를 완성한다….

 

최 할머니는 초에 불을 붙이라는 뜻으로 성냥을 건넸다. 지화는 서른여덟 살에 맞추어 촛불을 놓으며 물었다.
“따님도 할머니가 매일 차리는 모형 음식을 알고 있나요?”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야. 이 물고기처럼.”
강에서 태어난 연어는 바다로 나가서 사오 년을 살다가 민물로 되돌아온다. 여러 달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본래 산란장인 강 상류에 이른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애오라지 강으로, 강으로만 향하기 때문에 중간에 부지기수로 죽는다. 산란장에 이르러 암컷은 구멍에 알을 낳고 수컷은 그 위에 정자를 뿌려 수정시킨 뒤 지쳐서 죽는다. 알은 서너 달 만에 부화돼 부모가 했던 일을 반복한다. 할머니는 딸을 대신해 나이프로 생선을 써는 시늉하며 말했다.
“이 애들은 날 때부터 죽을 날을 알고 있어. 모든 일은 될 대로 된다는, 케 세라 세라를 터득한 것이야. 그래서 아무런 후회도 없을걸.”
“할머니도 그러신가 봐요, 항상 노래하시니까.”
“웬걸. 꿈속에서도 후회하는데.”
그러고 나서 자신이 아이가 돼 나타나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혼자서만 놀던 여자애는 어느 날 거울을 선물 받는다. 그곳에 비친, 자기를 꼭 닮은, 똑같이 행동하는 아이에게 호감을 느낀다. 둘이 웃고 춤추는 동안 여자애는 거울 속 아이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거울의 아이가 웃음을 잃고 시무룩해지더니 춤도 추지 않는다. 화가 난 여자애는 거울을 밀어 버렸고 깨진 유리에서 온몸에 금이 간 아이가 어른거린다. 무서워진 여자애는 거울을 뒤집어엎고 다시 혼자가 된다….
지화는 케이크의 초가 거지반 타 없어진 줄도 모르고 그 꿈을 음미했다. 무지갯빛으로 점멸하는 모형 음식을 넋 나간 사람같이 응시하면서.

 

*
안락사가 예정된 날 최 할머니는 시종 담담한 얼굴이었다. 시술이 간단한 데도 병원 측에서 두서너 달 뒤로 미루는 이유는 생각할 여유를 주려는 배려였다. 기실 상당수가 중도에 안락사를 포기하고 되돌아갔다. 최후까지 남은 환자들은 각오가 선 상태였다. 할머니가 특별히 부탁해 그날 주사제 투입은 지화가 맡기로 했다. 환자가 편히 영면하려면 진통, 근육 이완, 심장마비의 세 가지 약품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라도 빠지면 마지막 죽음마저 고통으로 끝난다. 진통제 없이 심장마비 약물만 주사하면 극심한 통증이나 경련이 수반된다. 용량도 중요하다. 진통과 근육 이완 약물은 각각 20cc쯤 있어야 깊이 잠든 상태에서 임종을 맞는다.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본인의 의사를 묻는 주법원의 관리 앞에서 안락사 주사를 맞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서운해하지도 않는 듯한, 담박한 음성이었다. 얼굴은 어느 때보다 평온해 보였고 말투에서는 누구도 가로막지 못할 열망이 엿보였다. 유언장, 유산, 딸에게 전할 품목을 재확인할 때도 망설이거나 슬픈 기색은 없었다.
지화는 최 할머니 이름이 쓰여진 주사제를 개봉했다. 이삼일이 멀다 하고 안락사 시술을 하는 수간호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링거 주입구를 열었다. 그곳으로 약물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죽음이 시작된다. 할머니는 통증이 누그러지도록 사흘 전부터 진통과 근육 이완 약물을 조금씩 맞았다. 표정이 가무스름히 굳은 지화를 되레 위로하듯 눈이 마주칠 때면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담당 의사의 신호에 따라 두 가지 주사제를 20cc씩 투여하자 기다렸다는 듯 눈을 감았다. 지화는 마지막으로 몇 마디 말을 나누고 싶었지만 환자는 진즉 딴 세상에 들어선 양 미동도 안 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물었지만 할머니는 답이 없었다. 왜 사지가 멀쩡한데 굳이 궂기려 할까? 지화는 간호사가 연신 눈짓하는 것도 모르고 그 상념에 잠겼다.
20분쯤 지나서 심장마비제를 넣어야 했을 때는 눈에 띄게 머뭇거렸다. 한마디라도, 할머니의 말을 듣고 싶었다. 흑인 의사는 동양인 간호조무사가 좀 서툴다고 느꼈는지 날카로운 눈길을 보냈다, 어서 주사제를 투입하라고 재촉하듯이. 그때 문득, 환자의 입술이 달싹대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안 보였을 수 있지만 지화는 분명 본 듯했다. 이어서 할머니가 항용 읊조리던 바로 그 노랫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케 세라 세라, 케 세라 세라∼.”
그 순간 지화는 후다닥 약물을 투여했다. 너무 급작스러워 옆 동료가 흠칫할 만큼 재빨리. 그러고 나서 자신이 안락사 주사라도 맞은 것처럼 움쩍도 하지 않았다. 다른 조무사가, 임종하셨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같이 얼어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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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할머니의 화장은 외동딸의 도착이 늦어져 일주일쯤 늦추어졌다. 부고 전화를 받은, 딸의 비서라는 남자는 능숙한 영어로 영국에서 연주회를 열고 있어서 당장은 출발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 탓에 지화가 뜬금없이 상주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할머니가 병원에 남긴 서류에 사망 후 연락처를 차례로 적었는데 첫 번째가 자신이었다. 미국에 일가친척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뒤처리를 도맡았다. 기실 할 일도 별로 없었다. 연락을 희망한 지인은 딸을 포함해 대여섯뿐이었으니까.
딸은 제법 이름난 음악가인지 매니저 운운하면서 따라온 수행원이 서너 명이나 됐다. 겉으로는 근엄한 표정들이었지만 줄곧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다음 공연 이야기로 바빴다. 그들이 내민 안내장에는 딸이 세 살에 피아노를,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배웠고, 최연소로 차이콥스키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신동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토록 유명한 딸은 결혼했다는데 혼자서 달랑 왔다.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영결식 전날 밤에야 가족사를 털어놓았다. 지화가 밤새 뒤척거릴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저는 스물다섯 살 이후로 어머니와 한 번도 대화하지 않았어요. 지난 13년 동안.”
“왜요? 좋은 분이셨는데.”
“어머니는 지독한 타이거 맘이었어요. 제가 종일 바이올린만 연습하도록 했고 연주가 틀리면 얼굴을 때리곤 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수만의 관중 앞에 섰지만 혼자서는 등교하는 법도 몰랐어요.”
“부친을 못 잊어 거의 매일 묘를 찾던데.”
“그 무덤은 가짜예요.”
“예? 설마….”
“아버님은 내가 네 살 무렵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다른 여자를 따라서. 그 때문에 간통죄로 복역했지만 그 후 그녀와 행복하게 산다고 들었어요. 누군들 어머니 곁에 남았겠어요.”
“다음 세상도 함께한다고 할 만큼 부친을 사랑하셨는데….”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남은 것은 가짜 무덤뿐이니.”
딸은 서류 봉투에서 누런 종이를 꺼냈다. 오리건 주법원 판결문이라는 제목이 무척이나 위압적이었다.
“여기, 판사의 안락사 허용 사유가 어머니의 모습이에요.”
지화는 붉은 사인펜으로 동그랗게 표시된 부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런 사유로 안락사를 신청하고 허가하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신청자 클라라 최는 이혼과 가족의 연락 두절로 인해 자살 기도 2회, 정신과 치료 4회의 병력을 보유함. 노화로 인한 우울증, 기억상실 증상을 보이고 있어 본인의 희망에 따라 안락사 처방을 허용함.’

지화는 화장장으로 향하는 운구 행렬을 뒤로하고 영결식장을 빠져나왔다. 자기도 모르게 걷다 보니 어느새 공원묘지로 향하고 있었다. 하늘로 못 올라간 연기인지 산안개인지 희끄무레한 것들이 숲에 촘촘히 들어차 있었다. 지화는 안주머니에서 작은 엽서를 꺼냈다. 수신 칸에 ‘박 간호조무사’라고 쓰여 있었는데 내용은 단 한마디였다.
‘청춘.’
최 할머니는 왜 작별 인사 대신에 '젊음’을 부탁했을까. 황혼이 깃들면 비로소 느껴지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리는 젊음의 정체를 말하려 했는지 모른다. 한 번만 주어지는 것, 되돌릴 수 없는 것, 노인에게는 영원히 멈춰 선 것, 청춘기. 그것이 곧 인생. 할머니는 그처럼 말하고 싶었을까. 어느 숲속에서 익숙한 노랫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케 세라 세라∼ 미래는 알 수 없고, 모든 일은 될 대로 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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