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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폭폭 이야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용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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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낮 11시경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경림의 오빠 경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민 갔거나 죽은 줄 알았는데, 한국에 계시우?”
경림이 빈정거리듯 말문을 젖혔다.
“그러잖아도 너 보기 싫어서 이민을 생각했었지. 그나저나 농담할 때가 아니고….”
“왜? 무슨 일?”
“방금 너네 아파트단지에 있는 삼화상가 있지?”
“그래서?”
“너 혹시 칙칙폭폭 팻말이라는 말 들어봤니?”
“뭔 소리야 오빠. 기찻길 옆 오막살이?”
경식오빠의 말을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약 1시간 전부터 삼화상가 앞에서 어떤 젊은이가 목에 팻말을 걸고 서 있는데 내용인 즉 77세의 노파와 88세의 노인이 연애를 한다면서 아파트 주민들 다 함께 축하해 주자는 내용이라 했다.
“그 말은 곧 늙은이들이 주책없이 연애놀음하고 있는 것을 알려 창피함을 느끼도록 조장하는 거 아냐?”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뭘. 요새는 하도 희한한 사람들이 많으니까.” 
잠시 시간차를 두고 나서 경림의 오빠가 말했다.
“느이 시아버님 성함이 심, 영자 일자 맞지?”
“가만, 심영일, 그래 맞아. 우리 시아버님은 다른 호칭은 다 싫다 하시고 심 교장이라고 하면 가장 좋아하셔서 늘 교장선생님 교장선생님, 해오다 보니까 성함마저 잊어버릴 뻔했네. 그건 그렇고, 우리 시아버님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이야?”
“그자가 목에 걸고 있는 팻말에 심영일이라는 이름이 씌어 있다는 거야. 그 아파트 공인중개사로 있는 내 동창 녀석 알지? 그 녀석한테서 전화 왔었어.”
“설마!”
“아무튼 그랬어. 네 소식도 궁금하고, 겸사겸사 전화한 거야.”
경임은 어이가 없어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삼화상가 앞으로 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기 전 중국에 주재원으로 가 있는 남편 태준에게 전화부터 할까 하다가 아직 확실치도 않은 일로 괜스레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곧 깨우쳤다.
청바지에 며칠 전에 구입한 체크무늬 모직남방을 걸치고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나오자 11월 중순의 냉기가 뺨을 꼬집고 지나갔다.
삼화상가 건물이 눈에 들어오기 전에 대뜸 검은 운동모자에 검은 바지, 카키색 점퍼를 입은, 훤칠한 키에 삐쩍 마른 젊은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었다. 오빠로부터 들었던 말 그대로 그의 가슴에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근시인 경림은 안경을 쓰고 나오지 않아 멀리서는 글자 내용이 읽히지 않았다.
가까이 가자 60대쯤의 안노인 두 명이 서서 사내의 목에 걸린 팻말을 보고 있었다. 보라색 점퍼를 입은 노파가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쯧쯧. 그냥 아는 사이로 친구처럼 보내면 되지 저게 무슨 꼴이람.”
적갈색 개량한복을 입은 노파가 거들었다.
“여든여덟에 일흔일곱, 그게 될까?”
다가가는 경림을 돌아보며 열없게 씨익 웃어 보였다. 다가가자 경림의 눈에 글씨들이 들어왔다.
‘88세와 77세 노인이 연애중이랍니다. 부끄럽다고요? 천만에요!’
사내는 5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밤색 등산모 밑으로 긴 머리카락이 구불구불 불거져 나온 것으로 봐 고수머리에 장발로 평소 머리 관리를 게을리하고 있는 게 확실했다. 꼬볼꼬볼한 염소 수염에 피부는 순대 껍질 색깔에 가깝게 거무틱틱했으며 청바지에 감청색 캐주얼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세탁하고는 먼 듯 욕탕물에 집어넣으면 금세 땟구정물이 잉크처럼 쫘악 번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경림은 대뜸 빌런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양아치와는 거리가 있지만 진상과 괴짜를 합한 그런 쓸모없는 인간쯤으로 여겨졌다.
경림이 글을 읽고 사내의 행색을 살피는 사이 20대 젊은이 두 명과 70대 노파가 경림과 나란히 서서 내용을 읽었다.
내용글을 읽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팻말 왼쪽 귀퉁이에 조그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눈조리개를 좁히자마자 경림은 페도라모자와 클로슈모자만으로 시아버지와 꽃마님이라는 것을 대뜸 알 수 있었다. 굵은 물감 브러시로 턱턱턱 터치한 듯싶지만, 이미지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전문가의 솜씨였다. 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후 역사 선생답게 예절교육에 관심이 많아 이따금 그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봉사도 하고 학생들에게 강의도 하던 시아버지가 사진과 함께 거론된다는 게 경림으로서는 부끄럽기 전에 안타까웠다. 말 그대로 잉꼬부부처럼 잘 살아왔던 시아버지는 10여 년 전에 시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경림과 같은 아파트단지에서 잘 견디며 살아내고 있었다. 연금도 쏠쏠하고 워낙 부지런한 성품이라서 23평 작은 아파트는 말 그대로 거실이며 방은 물론이고 양쪽 베란다까지도 흘린 밥을 주워먹어도 될 정도로 늘 청결했다.
물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경림이 반찬 따위를 가져가 챙겨주고 장롱 속 옷 정돈이며 청소 따위를 거드는 기여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했다. 하지만 큰틀에서 보면 시아버지 심 교장이 생활상 대부분을 스스로 해결한다고 말해야 옳았다. 구석구석 청소와 정돈은 물론 음식도 스스로 해결하고 있었다. 특히 김치 담그는 일과 미역국, 된장국 끓이는 요리 솜씨는 자신이 늘 날라리주부라 자인하고 있는 경림으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따라서 되레 그런 음식을 나누어 가져오는 경우가 잦았다.
무엇보다 팔십 중간을 넘어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건강하다는 게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우려할 만한 성인병 같은 건 없었다. 혈압이 약간 높아 혈압약을 규칙적으로 먹고 키 170에 체중 75킬로라는 과체중으로 걸음걸이에 약간의 문제가 있지만 생활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어 지켜보고만 있는 중이었다. 물론 언젠가는 모시기로 하고 방이 네 칸인 35평 아파트를 구입하여 대비하고는 있다. 하지만 시아버지의 말인즉슨 아흔다섯까지는 끄떡없이 혼자서 살아갈 수 있댔다. 그 이후로는 도우미의 도움을 받을 것이며 몸이 안 따라주고 많이 아프면 간병인 신세를 지더라도 결코 경림 내외의 집으로 합치지는 않는다는 게 평소 지론이었다. 그런 주장 끝에 꼭 덧붙이는 한 문장이 있었다.
“유언 1호 발령, 죽을 때는 내 집 내 침대에서 꼴까닥 죽는다.”
그러더니 올봄부터 검자주색 클로슈모자를 쓰고 화려한 개량한복을 입고 다니는 안노인과 걷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심 교장에게도 변화가 있었는데 대머리과에 속해서인지 늘 외출할 때는 헌팅캡을 썼었는데, 안노인을 만나고부터는 남성 페도라모자를 쓰고 다녔다.
심 교장과 데이트하는 할머니, 아니 꽃마님을 만난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경림이 현관에 들어서자 베란다에서 반려식물에 물을 주고 있던 안노인이 잰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까지 다가와 말을 꺼냈다.
“말로만 듣던 그 며느님이세요?”
소파에 앉아 있던 시아버지 심 교장은 일어나 경림을 보고는 쑥스러운지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끄고 얼굴을 텔레비전 옆에 놓은 장식장 쪽으로 돌렸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나는요, 여고 때 여기 심 선생님 제자였고요, 지금은 같이 늙어 가면서 스승 겸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된 마당에 경림으로서도 운치고 자시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네, 저도 아버님이랑 같이 걷는 모습 몇 번 뵈었어요.”
안노인은 자신을 꽃마님이라 불러달라 했다. 꽃 자가 들어가는 것은, 평생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꽃이라서 그러하단다. 나머지 덧붙인 마님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설명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예회 때 연극을 한 적이 있었다우. 아버지가 간경변으로 돌아가시기 전이었는데, 내 역할이 마님이었어요. 그 시절이 일생을 두고 가장 행복했으므로 내 스스로에게 마님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늘 마님 같은 정서로 살았지요. 꽃마님, 이쁘지요?”
그제야 식탁에도 꽃병이 있고, 텔레비전 옆에도 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베란다에도 꽃화분이 세 개나 놓여 있었다. 경림은 냉장실과 냉동실을 정리한 후 가져온 반찬통들을 넣고 빈 반찬통들을 챙겼다. 꽃마님은 경림의 뒤에 서서 계속 말을 이었다.
“할머니가 딸네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주방일을 도와주는데, 그런데 어느 날 점심을 먹고 화장실에서 양치질하려고 틀니를 빼내 세면대 위에 놓았다네요.”
좀은 어색하고 귀찮다 싶었지만 그래도 어른인데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네에, 네에, 말추임새로 대응했다. 모든 일을 끝내고 돌아서서 꽃마님과 마주했다.
“그래서요?”
“그런데 글쎄, 옆에서 꼬마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이러더래요. 할머니, 눈알도 빼봐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림은 “캬!” 소리치며 자지러지게 웃고 말았다. 그날 경림이 내린 꽃마님에 대한 총체적 인상은 경쾌한 어린이 수준에 머문 할머니라는 인상이었다. 더불어 시아버지 심 교장도 꽃마님의 수준으로 평행이동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쯤에서 두 노인은 온전한 동거는 아니지만 서로의 집을 오가면서 가끔은 자고 가기도 하는 그런 단계로 발전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경림은 경림대로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대했다. 가끔은 짜장이나 순대를 주문하여 같이 먹기도 하였고 라면을 끓여 나누어 먹기도 했다.
한 달쯤 지나 경림이 시아버지의 집에 들렀을 때는 기타 소리가 들렸다. 전날 클래식기타를 샀다며 그러잖아도 경림에게 부탁할 게 있다고 했었다. 기타연주법을 가르쳐 달라는 말이었다.
87세의 노인, 아무리 음악적인 소질이 있다손 치더라고 그 나이에 기타를 배운다는 것은 무리였다. 우선 관절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음감도 떨어질 게 뻔했다. 그런 우려와는 달리 다행히 대학생 때 같이 자취했던 동기생이 기타를 치는 바람에 조금은 배운 전력이 있는데다 그 연세치고는 매우 건강한 편이어서 그닥 기타줄을 튕기고 지판에 붙이는 동작에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시력 때문에도 그렇고 해오지 않아 과정이 생략된 상태라서 악보를 보고 원칙대로 배울 수는 없지 싶었다. 경림이 난감해하는 내색을 보이자 심 교장이 조심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꽃마님 노래를 들어만 줄 순 없잖아? 그래서 내가 반주를 하려고….” 
잠깐 시간차를 두면서 며느리 경림의 눈치를 더 살피고는 덧붙였다.
“말 나누던 중에 이혼했던 전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 그 전남편은 자기가 노래를 부르면 기타로 반주를 해주곤 했다는 게야. 그러니, 그런데, 그것이 참, 그 말을 듣자마자 이 나이에 질투심과 경쟁심이 치솟더라고.”
경림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 말만으로 동기부여는 충분했다. 심 교장은 경림의 마음을 좀더 확실하게 굳히려는 듯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전남편보다 날 더 좋아할 거 아니냐?”
말해 놓고 쑥스러운지 밥 먹다 방귀를 뀌고 난 아이처럼 헤벌쭉 웃어 보였다. 가지런한 틀니가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빛을 받아 반짝했다.
그날 경림은 기타 조율을 해주고 클래식기타 지판 올바르게 잡는 방법과 오른손 사용법을 가르쳤다. 젊었을 때 짧은 동안이라도 기타를 잡아본 기억을 갖고 있는 세포들이 일깨워져 첫날 음계 연주는 물론 도미솔 씨메이저 코드까지 받아들였다.
불과 2주일 만에 심 교장은 동요 <섬집아기> 스트로크 반주를 넣을 정도의 수준까지 올랐다. 작년 겨울 12월 23일에는 심 교장으로부터 특별 초대를 받았다. 그 사이 꽤 발전하여 <고요한 밤>이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 같은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연출해 보여주었다. 물론 코드가 맞지 않은 수가 많고 리듬 진행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그 어색한 부분이 애교로 받아들여져 더 풍성하게 부풀렸다. 그날 초청받은 사람은 경림 내외 외에 다른 부부가 있었다. 꽃마님한테는 엄마라고 부르는, 경림보다 한 살 위인 유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와 그의 남편이었다. 엄마라고 부르긴 하지만 창조주가 여자에게만 은밀히 건네준 촉이라는 더듬이로 느낄 때 꽃마님이 자기 몸으로 난 피가 섞인 딸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 교장 커플의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두 부부는 가까운 데에 있는 카페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서야 경림은 꽃마님에 대한 가족사를 좀더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었고,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이혼하였고, 그 아들은 본남편과 같이 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덧붙인 말은 이랬다.
“나를 낳아준 친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아빠는 엄마가 루게릭병에 시달리는 중에 다른 여자가 생겨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재혼을 하셨고요. 그 바람에 이혼하고 혼자 사시는 이모님 댁에서 딸 역할을 하며 결혼할 때까지 같이 살았어요. 이모라고 부르지 않고 엄마라고 불러드린 것은 결혼하고 첫아이를 낳고 나서였고요. 생각할수록 죄송하지요. 그 전에 엄마라고 불러드렸어야 했는데….”
꽃마님이 이혼할 때 본남편이 데려간 그 아들이 바로 지금 삼화상가 앞에서 보고 있는 그 빌런이라는 것을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경림은 빌런을 뒤로하고 삼화상가로 향했다.
잠시 후 경림은 빨간 장미꽃 두 송이를 들고 상가 출입문을 나오다 옆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저 남자와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혹시 폭력이라도 쓰면 바로 파출소로 전화해 주세요.”
몇 번 야쿠르트를 사기도 했고, 오갈 때 눈이 마주치면 눈인사 정도 나눌 사이인 야쿠르트 아줌마는 알았다는 시늉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굴을 가까이하며 물었다.
“혹시, 저 사람이 시비 거는 사람, 시아버님 아니세요?”
경림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당당하게 빌런을 향해 걸어간 경림은 다짜고짜 빌런이 메고 있는 팻말 아래쪽 그림에 스카치테아프로 장미꽃 한 송이를 붙였다. 그러고는 재빨리 허리를 펴 빌런의 표정을 살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흰자위가 다 드러나도록 빌런의 눈이 커졌다. 바로 주먹을 날리거나 고함을 친다든지, 그런 폭력행위를 가할 전조는 없었다. 이왕 시비 거는 김에 이번에는 한 송이 남은 장미꽃 하나를 빌런의 목과 팻말 사이에 꽂았다. 그리고 눈을 들어 올려다보자 당황한 듯하던 표정에 짐짓 웃음기가 감도는 것을 감지했다.
“나 여기 심 영자 일자 되는 분 며느리예요.”
잠깐 시간차를 두고 빌런이 대꾸했다.
“알아요.”
“댁의 소식 들어서 잘 알고 있어요. 이렇게 한다고 눈이나 깜짝할 줄 알았어요?”
“오해하시고 계시네요?”
“창피당하라고 이러는 거 아녜요?”
그 말에는 대꾸 대신 빌런은 씨익 웃기만 했다. 뭔가 자신의 예측이나 감정과 맞물리는 부분이 없이 모든 게 뒤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결론에 이르자 경림 자신도 피시시 웃음이 나왔다.
“식사는 하셨어요?”
경림이 물었다.
“이제 먹어야죠.”
“칼국수 좋아하세요?”
빌런은 대답 대신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여 보였다.
“이층 칼국숫집으로 오세요. 저도 점심을 안 먹었거든요.”
칼국숫집에 앉아 있자 5분도 안 돼 빌런이 들어왔다. 경림은 말 대신 고갯짓으로 식탁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빌런은 말없이 그곳에 앉았다. 칼국수가 나오자 빌런은 고개를 처박고 금세 스테인레스 그릇을 비웠다. 경림은 3분지 2쯤 먹고 젓가락을 놓았다. 사실 10시경에 아점을 먹어 소화가 다 되지 않은 상태였다. 경림이 말을 꺼냈다.
“팻말은 어디다 두셨어요?”
“구겨서 버렸는데… 왜요?”
“기념으로 갖고 싶어서요. 근데 어떻게 그림을 그렇게 잘 그리세요?”
잠시 망설이는 듯싶더니 빌런은 본래의 목소리보다 음정이 2도 정도 낮은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그림을 그렸거든요.”
“어쩐지, 화가시군요.”
빌런은 더이상 대꾸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 보니 바깥 출입구 쪽에 너댓 명이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림이 식대를 지불하고 음식점을 나서는데 전화가 왔다. 오빠였다.
“왜, 오빠?”
“집이냐?”
“아니. 근데 왜?”
“응,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그곳 공인중개사 친구한테 또 전화가 왔는데, 느이 아파트단지 홈페이지 있잖냐?”
오빠의 말인즉 아파트단지 홈페이지 소식란에 빌런의 사진이 올라왔단다. 오빠의 말은 계속되었다.
“77세와 88세, 연애하기 딱 좋은 칙칙폭폭 콤비라고 사진에 제목을 붙였더래. 웃기잖냐?”
경림은 갑자기 화가 났다.
“그게 웃겨 오빠? 아름답잖아…? 말 그대로 연애하기 딱 좋은 나이 아냐?”
대답도 듣기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삼화상가 길 건너 벤치에 빌런이 앉아 있었다. 경림이 다가가 앉자 그제는 빌런이 먼저 입을 떼었다.
“며칠 전에 알았어요, 엄마가 어떤 할아버지와 사귀고 있다는 걸요.”
그 말을 시작으로 자신의 처지를 털어놓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꽃마님은 빌런이 초등학교 때 이혼을 했다는 등 경림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전제했다. 그 뒤 세월이 가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미움으로 켜를 쌓아 갔단다. 아버지는 재혼을 했는데, 새어머니는 생각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고 주어진 의무인 양 자신을 길러 대학까지 보내주었단다. 이복동생은 둘이 있는데, 그 동생들도 그런대로 빌런과 큰 충돌 없이 그럭저럭 무해무덕 살아냈단다. 그림이 좋아 그림에 집착하며 살다 보니 어느 사이 50줄, 그제야 자신의 입에서 입구린내가 나도록 말을 잃고 그림을 핑계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아니라 그리움이 키를 세우고 있는 데에 대한 해소 차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의 정점을 의식한 것은 그의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할 때였다는 말이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축복해 줬으면 좋겠어요.”
“고마워요!”
경림이 두 손으로 빌런의 손을 꼭 쥐어주었다. 그러고는 잠시 망설이다 그 말을 꺼냈다. 아파트단지 홈페이지에 빌런의 사진이 올라왔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7788연세를 뒤집어 칙픽폭폭 콤비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는 것까지 말하자 빌런이 갑자기 하하하하, 웃고는 받았다.
“와, 멋져! 칙칙폭폭 콤비! 와, 멋져! 우리 엄마 사랑해!”
심 교장은 심 교장대로 경림으로부터 자신들의 별명을 전해 듣자마자 파안대소를 하며 반응했다.
“칙칙폭폭 콤비! 와, 좋네 좋아!”
그 뒤로 그들 칙칙폭폭 콤비가 아파트단지를 지나갈라치면 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눈여겨보았다.
‘나도 저런 연애 해봤으면 좋겠어’ 하는 건 늙은이들 편이었다. 
‘우리도 저 나이에 저런 연애 할 수 있을까’ 하는 건 중년층이었다.
그런 일로부터 한 해가 지나 7788 사이즈가 7889 사이즈로 변하면서 칙칙폭폭 콤비에게 위기가 닥쳤다. 어버이날 새벽이었다. 경림이 서둘러 칙칙폭폭 콤비를 찾아 뵙고 식사 대접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날 새벽에 심 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새벽참에 미안하다.”
인사말 끝에 꽃마님의 병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는 소식이었다. 소식을 듣고 꽃마님의 조카 유정 내외가 내달아왔다. 마치 그때를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부부가 아침 운동을 하고 들어오다 전화 받자마자 그대로 주차장에 있는 차를 몰고 내달렸다고 했다. 마침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가까워 그들 부부가 먼저 와 119에 실려오는 꽃마님을 맞이했다.
경림 내외가 왔을 때는 입원 수속을 마친 뒤였다.
“많이 편찮으셨어요?”
경림의 물음에 심 교장이 눈을 감았다 뜨며 나직하게 대꾸했다.
“아는 병이 도졌을 뿐이야.”
“아는 병이라뇨?”
심 교장은 잠깐 시간차를 두고 대답을 주었다.
“간암이었어.”
경림은 물론 유정이와 그녀의 남편까지 마치 미리 연습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똑같은 음조와 목소리를 냈다.
“네에? 설마….”
“발견됐을 때는 이미 3기가 지난 뒤였어. 이제 혼수상태에 빠졌으니까 깨어나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되겠지.”
“치료를 계속 받았어야죠!”
경림이 핀잔조로 말했다.
“왜 이제야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유정이 다그쳤다. 잠시 시간차를 두고 나서 심 교장이 말했다.
“나도 근래 알았어. 그동안 멍청하게 참았던 거지.”
심 교장이 말끝을 흐리며 울먹이는 바람에 모두 말문을 닫았다.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른 심 교장이 꽃마님의 병세를 알게 된 경위와 간암에 대한 상식을 털어놓았다. 한마디로 간암은 통증이 전혀 없거나 매우 적은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단다. 이번 경우처럼 비교적 말기가 되어 간이 커져 주변 장기를 압박할 때 비로소 통증이 엄습한다는 말이었다. 간암이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간에는 통증을 느끼게 하는 신경이 적다고 했다. 더구나 꽃마님처럼 통증은 물론 식욕이 없거나 피로까지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저러한 설명 끝에 심 교장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한 문장을 토해냈다.
“저 사람은 말년에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준 은인이야!”
한 달쯤 후 꽃마님이 퇴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경림이 차를 몰고 병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마침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비어 수월하게 주차하면서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예감을 받았다.
마침내 조카 유정이와 심 교장의 부축을 받고 꽃마님이 출입구를 나왔다. 차문을 열어 놓고 기다리는 경림을 보자마자 꽃마님은 손을 번쩍 들어 보이고는 부축하는 유정이와 심 교장의 팔을 뿌리치고 가벼운 걸음걸이로 경림에게 다가와 와락 끌어안았다.
“나 땜에 고생 많았지? 고마워!”
“무슨 말씀을요.”
차 뒷좌석에 타고 집으로 오면서 꽃마님은 입원하고 있는 동안 몇 번이나 이 노래를 불렀다며 들려주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치익폭 칙칙폭폭 칙칙폭 폭 칙칙폭폭∼ 기적 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옛날처럼 두 팔로 춤사위까지 구사하며 노래를 불렀다.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춰주는 유정이도, 베이스톤으로 한 옥타브 낮춰 같이 불러주는 심 교장, 그리고 운전하고 있는 경림까지 같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노래가 끝나자 경림이 외쳤다.
“칙칙폭폭 콤비 파이팅!”
그러자 일제히 외쳤다.
“파이팅!”
심 교장네 아파트에 들어서자 빌런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번만은 빌런이라는 별명이 무색했다. 본래의 이름인 문재범으로 예우를 해줘야 할 모습이었다. 정장 차림에 짧게 이발했고, 면도까지 했다.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린 꽃마님이 주차장 가에 서 있는 재범을 멀찍이서 지켜보았다. 재범이 땅에 놓았던 액자를 들고 다가왔다. 꽃마님이 양손을 벌려 환영했다.
“재범아!”
“엄마!”
아파트 거실에 들어서자 유정이가 재범이 들고 온 액자를 싼 황금색 보자기를 풀었다. 모두의 시선이 액자로 쏠렸다. 정장 차림의 두 늙은 남자 앞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그림이었다. 두 노인은 손을 잡고 있었다. 오른쪽, 머리숱이 적어 대머리에 가까운 노신사는 심 교장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흰머리가 풍성한, 심 교장보다 키가 좀 크고 삐쩍 마른 노신사는 경림으로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꽃마님의 전남편, 문재범의 생부임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심 교장과 나란히 서 있었다.
꽃마님은 그 그림에 당황한 듯 비틀비틀 소파에 가 앉더니 다시 액자로 눈길을 향했다. 유정이 꽃마님과 정면이 되도록 액자를 들어 보였다. 초연한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고 있던 꽃마님이 한마디 건넸다.
“가셨구나….”
그 말에 재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고 정확히 한 달 후였다. 심 교장의 댁에 반찬거리를 들고 가서 평소처럼 냉장고와 부엌살림들을 챙기고 있는데, 심 교장이 다가와 은밀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미리 말할 걸 그랬구나.”
“왜요? 병원에 다시 입원하시나요?”
“그게 아니고….”
말꼬리를 자빠뜨린 후 경림을 외딴방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일주일 후면 네덜란드로 떠나.”
“예에? 어머님하고요?”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는 시늉을 하고는 말했다.
“이미 여행사 통해 다 물색해놨어. 어렸을 때 가보고 싶었던 풍차와 튤립의 나라.”
“편찮으신데….”
“그곳에도 병원이 있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날 이후 일주일 후에 떠날 시아버지 내외를 위해 여행준비 계획을 세웠다. 사흘 후 우선 속옷이며 잠옷, 평상복은 물론 간식까지도 염두에 두고 필요한 것이 무엇무엇이 있나 챙겨보려고 심 교장댁으로 갔다. 현관문 버튼을 누르고 들어가던 경림은 흠칫 놀라며 걸음을 세웠다. 거실 바닥에 편지가 있었다. 매직펜으로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미안하다. 네게 걱정 끼칠까 봐 거짓말을 했어. 가서 전화할게.’ 
경림이 다녀간 이튿날 새벽 칙칙폭폭 콤비는 떠났다.
거실 식탁 의자에 앉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을 가까스로 수습하고 나서 중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곳 사정을 얘기하자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응, 미안해. 사실 아버님 뜻에 따른 거야.”
“그래도 그렇지!”
남편은 마치 미리 문장으로 써놓고 그것을 읽고 있는 것처럼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펼쳤다. 원래는 네덜란드로 정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네덜란드는 외국인에게도 조력자살에 대한 규제는 없지만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아직은 외국인의 성공사례를 찾아볼 수 없었단다. 하지만 스위스는 능동적 안락사는 불법이지만 환자 스스로 약을 복용하거나 투약 스위치를 작동할 수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 중에 좋게 말해서 존엄사, 확실하게 말해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를 좀 더 알아봤단다. 네덜란드를 비롯하여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외에도 독일, 캐나다, 뉴질랜드 등 많은 나라들이 허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 교장과 상의 끝에 당사자가 어렸을 적 동경했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풍차와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에 일단 입국하여 좀 더 알아보고 도저히 불가능하면 스위스로 옮길 계획을 세웠단다. 물론 스위스는 스위스대로 관련 브로커를 통해 절차를 밟고 있다는 설명 끝에 덧붙였다.
“우리 행복한 마음으로 보내드리자.”
경림은 더이상 말없이 전화를 끊었다.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고 있는데 카톡이 왔다. 카카오톡을 열었다. 시아버지 심 교장이었다.
‘아가 놀랐지? 미안하다. 우리 꽃마님, 그이가 원하는 대로 칙칙폭폭 저승열차 태워 잘 보내드리고 갈게.’
동영상이 곁들여 있었다. 열자마자 심 교장의 어설픈 기타반주에 맞춘 꽃마님의 노랫소리가 펼쳐졌다.
“치익 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칙칙폭폭 기차 소리 요란해도 아기 아기 잘도 자안다∼.”
그러고 보니 경림이 지금 앉아 있는 소파 바로 그 자리에서 꽃마님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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