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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무언가를 보았을까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경은(과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3월 6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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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걸어온 길을 본다. 손이 늘 먼저 걸어왔다. 손이 먼저 움직여 글을 쓴다. 손끝이 마음 뒤끝과 닿아, 잇다. 아니 글손〔客〕이 내 마음을 돌아다니다 온 길을 둘러본다.”

 

이렇게 쓰여 있다. 무얼 쓰려고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는다. 이 글귀를 남겼을 때는 무언가 쓸 게 있었을 텐데, 도무지 한 가닥도 찾아낼 수 없다. 더욱이 제목까지 써 두었다면 분명 주제도 명징했을 것인데….

 

생각해 본다. 한 문장씩 되돌아 삼키고, 천천히 씹어 본다.

 

손이 걸어온 길을 본다. 뒤돌아보았을까. 아니 앞으로 걸어온 길일 수도 있겠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내가 서 있고, 결국 어디에 서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향방은 달라질 것이다. 절대적인 것이 자꾸 줄어드는 시간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손이 글을 따라 갔을까, 글이 손을 따라갔을까.

 

손이 늘 먼저 걸어왔다.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구체적인 ‘손〔手〕’이다. 아, 저땐 저렇게 생각했구나. 하긴 한 이삼일 노트북을 안 켜면 손가락이 근실거리긴 하다. 토닥토닥 자판을 두드리고 싶어진다.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하기까지 하다. 마음보다 손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었을까.

 

손이 먼저 움직여 글을 쓴다. 그렇긴 하다. 아무리 머리나 가슴속에 이야기가 돌아다녀도 손을 움직여야 글을 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무리 고고한 정신이라도 손을 빌려야만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있고, 손은 자기 자신을 통해 사람들의 아름다운 정신을 그릴 수 있으니 좋은 관계이다. 手와 隨가 만나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삶, 흐뭇하다.

 

손끝이 마음 뒤끝과 닿아, 잇다. ‘있다’가 아니라 ‘잇다’로군. 혹시 잘못 쓴 걸까? 그런데 뒷말이 더 낫긴 하다. 한 계단 더 올라 있는 느낌이 드는 언어란 글의 분위기를 늘 가른다. 손끝에 마음이 달려와서 잇대기를 바랐구나. 이건 마음의 뒤끝까지 살펴 그 속 깊은 안색까지 알아채야 하는 경지인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격이 있으려면 마음을 샅샅이 헤쳐 봐야 하고, 일일이 위무의 손길로 어루만져야 하며, 숨어 있는 생각의 골짜기들을 깊이 걸어 다녀야 한다. 그렇게 가슴 안의 이야기를 펼쳐 보고 개켜 놓고 다듬질이라도 해야 겨우 닿거나 이어질 것이기에…. 어려운 언어의 선택이다. ‘잇다’라는 한 마디가 갑자기 정신을 확 깨운다.

 

아니 글손〔客〕이 내 마음을 돌아다니다 온 길을 둘러본다.
글 손님이 곁에 오신 것만도 반가운데, 내 마음을 돌아다니다 온 길을 둘러보기까지 하다니. 못 믿어서인지 궁금해서 그런가. ‘둘러본다’라는 말은 통이 큰 말이다. 두루두루 살펴보고, 모자라거나 넘치거나 하면 채워주고 비워주는 역할을 기꺼이 한다. 든든하다. 무언가를 대할 때 크게 조감하거나 부감하는 언어의 촉감을 갖고 있는 말이라서…. 둘러보는 마음에는 하나라도 실수로 놓치지 않으려는 성실과 배려를 남몰래 담고 있다. 약간의 집착은 덤이다.

 

손이, 무언가를, 보았을까.
보았을까 못 보았을까. 부정과 긍정 사이에서 저울질의 바늘이 왔다 갔다 한다. 실은 보고 싶은 게 줄어들고 있어, 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한다.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을 보며 생각한다. ‘너희들, 그토록 아름다워도 될까.’ 나는 그 존재들을 손으로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아직은.

 

오늘 나는 마치 후일담처럼 생각나는 걸 추측하고 유추해서 써 보았다. 저 글귀를 썼을 때의 생각을 찾아내지 못해 부질없는 짓을 벌였다고나 할까. 한 줄 쓰기가 어려운 처지라 차마 버릴 수가 없어 이 한낮에 별일을 다 하고 있지만, 자기 자신 말고는 물어볼 데도 없어 ‘손’에게 묻는 모자란 이 작가를 용서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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