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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울게 했던 기억

한국문인협회 로고 한남숙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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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아스라한 기억의 슬픈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육이오, 동란은 끝났단다. 미군이 임시로 머물고 있던 흙먼지 날리는 차도 옆의 미군 막사 그 부대가 떠나간 후 집 앞의 공터는 안전한 놀이터였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무슨 놀이를 하는지까지 집에서 다 알 수 있었다. 동무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빨리 나가려고 숙제는 일찍 해놓고 밥도 빨리 먹고 밖의 소리에 전전긍긍하며 부모님이 잘 들으실 수 있게 책을 큰소리로 읽어대었다. 그러면 쉽게 나가서 놀 수 있었다. 상급생 언니들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어려웠지만 긴 가사였고 왠지 모르게 더 좋아 보였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하기 전에 우리 가족은 집을 지어 새 집으로 이사하여 들어왔다. 새집에 손님이 예쁜 팔각형 모양의 통에 담긴 성냥 두통을 들고 오셨다. 아버지는 무척 반가워하셨고 어머니는 조촐한 술상을 차리셨다.

“얘야, 여기 와서 학교에서 배운 노래 하나 불러 봐라.”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양손을 모으고 고개를 까딱이며 불렀다.

“고향땅이여기서∼.”

“어, 그만. 다른 노래 불러 봐.”

“나의살던고향은∼.”

“야 이놈아, 그런 거 말고 깡충깡충 뛰는 거 불러 봐라. 아저씨가 과자 사주마.”

나는 이유도 모르고 의기양양하던 마음이 눈물로 바뀔 것 같았다. 입학도 하지 않은 동생이 내게 배운 노래를 불러었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칭찬 듣고 돈도 10환 받았다. 그러나 동생은 돈에 관심을 두지 않고 종이를 놓듯이 소꿉통의 한쪽에 넣었다. 이유를 몰라 울고 싶었지만 태연한 척 있으며, 동생의 돈으로 비행기 모양의 과자를 사 먹을 생각을 하였다. 두 손님과 아버지는‘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하며, 얘기인지 노래인지를 하시다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가 어찌 지내시는지? 살아는 계시는지? 걱정되어 밤마다 꿈을 꾸고 고향을 돌아다니다 잠을 깬다는 등 알아듣지 못하는 얘기만 하시며 한 분은 슬피 우셨다. 어색하여 슬그머니 부엌 방으로 가니 어머니 얼굴도 무척 슬퍼 보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6월만 되면 상기하자 6·25라는 총칼을 든 붉은 포스터를 미술 시간에 그리고 겨울엔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검붉은 색의 그림을 그리며 육 학년이 되었다. 동네에서 우리 집은 선생님 댁, 피난민 알부자라고 했다. 뜻은 잘 몰라도 어렴풋이 이방인 느낌을 느꼈다.

삼팔선의 의미도 정확히 몰랐지만 내가 갈 수 없는 고향 노래만 부르니 아저씨들이 슬퍼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였고 고향이라는 것은 내게도 슬픈 단어로 떠오르게 되었다. 나는 고향 가면 함흥 미인이라는 할머니와 선생님이라는 이모들 특히 나와 닮았다는 둘째 이모를 만나볼 거라는 상상을 많이 해보며 혼자의 희망을 꿈꿀 때도 있었다. 그러나 꿈은 아직도 깨지 않았는데 어른들은 세월 속으로 바람처럼 모습을 감추셨다. 나는 그때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을 살고 있다. 기억도 하지 못하는 고향을 왜 그리 생각하는지 수구초심의 생리 같은 것인지 철없이 잔꾀만 부리던 아이는 이제 저승꽃을 피우며 늙어간다.

전쟁 후 구호물자를 받던, 참 불쌍한 신세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간다. 풍족함이 아무리 넘쳐도 채울 수 없는 것, 전설 같은 고향 얘기, 내가 고고의 소리를 내며 세상에 태어난 곳을 한 번도 갈 수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싶지가 않다. 사상과 이념의 장벽이 이토록 처절한 것인지 고향을 얘기하시던 마음을, 그 많은 꿈이 사랑에 묻혀 뒹굴며 정다운 얼굴과 웃음이 넘치던, 따스하고 행복하였던 곳을 누군들 잊을 수 있을까! 그런 어른을 눈물 나게 하였던 아이는 흐르는 세월에 이제 북망산을 바라보고 있다. 서글프게도 고향 한번 가서 볼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이야말로 불쌍한 신세가 아닌가 생각하며 고향이라는 노래가 들릴 때면 꽃피고 새가 우짖는 시냇가를 그려 보기도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나의 자리가 보이지 않아 먹먹하다.

동독의 교회처럼 통일의 기도를 염원하여 동서의 장막을 무너뜨리듯 우리도 남북의 삼팔선을 지울 수 있을까? 오래도록 들어온 남북통일이란 단어는 평화상을 위한 단어로만 있는 것인지 이제는 통일이란 단어를 들어 본지도 오래다. 기대는 이제 끈을 놓아야 할지 모르나 버려지지 않는 미련에 씁쓸한 나의 모습이 처량하고 불쌍한 신세인 것 같아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한 서린 삼팔선이 없어지리라 믿고 싶다가도 너무 늦은 시간은 내게 의미가 있을지 푸념 같은 생각도 든다. 해마다 돌아오는 유월. 피로 물들었다는 상처로 남은 기억을 언제쯤 잊을 수 있는 날이 올지 유월의 하늘은 무심한 듯 마냥 푸르고 높기만 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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