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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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새로운 직장을 미리 알아보기로 했다. 직장동료에게 커피숍 창업을 물었더니 주변에 보이는 게 커피숍이라며 말렸다. 대학 동기에게 커피숍은 못 하겠다고 하니 커피 원가가 얼마나 되겠냐면서 커피숍을 권했다.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침, 경이 삼척으로 낚시하러 가자고 연락이 왔다. 경은 고등학교 친구이다. 제대 후 자동차 회사에 취직하면서 광명으로 이사 갔다. 그가 취업이라는 새로운 바다로 향할 때 축하보다는 헤어진다는 아쉬움이 앞섰다.
여름 낮, 경은 태양 빛이 직각으로 내리치는 해변에서 낚싯줄을 던졌다. 낚싯바늘이 바닥에 가라앉아 망가질 것 같았지만, 손끝은 쳇바퀴 도는 다람쥐 발처럼 쉼 없이 엇놀려서 낚싯바늘은 쓰러지지 않았다. 나에게 낚싯대를 하나 주었지만, 물고기 입에 바늘 걸고 당기는 것이 싫어서 응하지 않았다. 취미는 취향이 맞아야 한다. 경은 낚시를 하고 나는 뜰채를 잡았다. 경은 삼치 한 마리 잡아서 저녁상에 올리겠다고 자신했지만 올라오는 건 흐트러진 미끼뿐이었다. 파도가 쳐야 물고기가 흥분하고 흥분한 물고기가 움직여야 낚을 수 있는데, 더운 날씨에 물고기도 나른해져 움직이지 않았다. 물고기도 한 생명인데 그리 쉽게 숨을 놓겠는가. 사는 동안 선선한 막새바람이 불어 큰 고기를 낚는 기쁨을 몇 번이나 경험했을까. 방파제에서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묵직했던 옛일을 떠올린다.
7년 전 바람이 시원했던 날. 경이 집 근처 강에서 밤낚시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냈다. 그 사진을 보자마자 양념치킨을 사서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날 어둠 새벽을 가르며 낚시터에 도착했다.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하늘거리는 새벽안개 사이로 고고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시원한 치킨으로 제후의 식사를 했다. 경은 밤새 가물치를 네댓 마리 잡았는데 고기 넣는 망이 가득 찼다. 개천에 사는 물고기가 바다에 사는 고등어보다 커서 놀랐다. 경은 바닷고기라고 해서 크기만 하고 민물고기라고 해서 작기만 한 것은 아니라면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흩어지고 모이면서 물과 고기가 살아 움직인다고 했다. 20대 후반부터 정밀가공을 하면서 세상의 한편을 지켜온 경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칭찬했더니 무표정하게 한마디 던졌다.
“두 시간에 한 마리씩 잡은 거다.”
달 없는 밤. 세 걸음 앞의 수풀과 바위를 구분할 수 없던 밤. 밤새 고기를 낚은 것이 아니고 고난을 낚았던 것이다. 자신이 던져놓은 찌에서 흐르는 낮은 빛을 나침판 삼아 하룻밤을 넘었다. 자신이 선택한 직장을 나침판 삼아 삶의 굴곡을 넘는 모습 같기도 했다. 한국 무용을 전공하는 딸의 무용복이 삼백만 원이 넘는다면서 입가의 주름이 굳어졌다. 근처에서 고기를 잡지 못한 낚시꾼이 한 마리 나눠 달라고 하자 잡은 고기를 몽땅 털어 주었다.
5년 전부터 경은 동해로 바다낚시를 자주 다녔다. 자녀들이 성장하고 회사가 흥하면서 여유가 생긴 것 같았다. 경은 33년간 집과 생산 현장을 오가는 쳇바퀴 같은 생활을 하면서 가족을 지켰다. IMF 외환 위기 시절. 나는 덤덤했지만 경은 심각했다. 그가 다니는 회사가 직격탄을 맞아 뉴스의 앞머리를 여러 날 장식했다. 당시 경과 전화 통화에서 비장했던 생존 현장을 보았다.
“철아, 회사에서 명퇴금 줄 테니 퇴직하라고 권하더라. 동료 직원이 여러 명 퇴사했는데 끝까지 버텼다. 나 잘한 거지.”
어느덧, 경은 퇴직 날짜를 세고 있었다. 내년 12월이 정년이다. 그의 퇴임은 나의 퇴임이기도 하다. 나 또한 30년간 봉직한 직장을 내년 상반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4개월 차이다. 에어컨에서 통기타 소리가 울려 퍼지는 민박집에 누워 일자리 이야기를 이어간다. 커피숍, 편의점, 공공근로…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로의 사진이 되어주고 있었다. 퇴직 후 살아갈 일을 얘기하다 보니 취업을 준비하던 청년 시절이 떠올라 젊어지는 기분이었다. 또다시 새로운 바다가 펼쳐지고 있었다.
동이 트면서 장호항에 머물던 배가 검푸른 바다를 하얗게 갈랐다. 밤새 검은 바다를 지키며 그믐달처럼 쪼그라든 붉은빛이 바다 방울에 반사되어 무지개만큼 커졌다. 아침 해가 단박에 다가왔다. 다가오는 섬 그림자를 낚싯배가 통통 밟고 지나가니 한 뼘의 파도가 지구를 흔들었다. 물고기가 흥분하여 얼굴을 불쑥 내밀 것만 같았다. 경이 어제처럼 낚싯대를 주었지만, 외판에 걸쳐 놓고 뜰채를 잡았다. 경은 낚싯바늘을 날려 푸른 바다를 휘저었다. 주변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으면서 목소리 가 커졌다. 고깃배가 흔들리고 낚싯줄이 휘청거리니 내 마음도 움직였다. 낚시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들고 있던 뜰채를 슬며시 내려놓고 걸쳐 놓은 낚싯대를 살며시 움켜쥐었다. 손이 떨렸다.
지나는 계절은 나는 듯이 변화한다. 모래를 달구던 한여름 공기는 날선 바람이 되어 낙엽을 툭, 떨어뜨렸다. 느낌표처럼 무겁던 겨울마저 흐트러지더니, 꽃술처럼 보드라운 날 틈으로 꽃샘추위가 톡! 튀어 오른다. 경과 오랜만에 커피를 마신다. 11월에 딸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퇴직 한 달 전이다. 한 생의 한 조각 퍼즐이 맞춰지는 듯하다. 경은 3월이 지났으니 이제 3개월 남은 거냐고 묻는다. 1학기가 8월까지여서 5개월 남았다고 답한다. 겨울에 경매학원을 다녔는데 낯설지만 점차 취향이 생겨 지금은 흥미롭다는 얘기도 한다. 경은 퇴직을 앞두고 휴가를 주는데 나의 퇴직에 맞추어 신청하겠다고 한다. 낚시를 하면서 동해안을 한 바퀴 돌자고 한다. 퇴직 후 매력적인 일정이 생겼다. ‘빈 낚시에 고기가 물릴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낚싯대를 점검하고 미끼를 준비하고 몸을 강건하게 만들면서 9월의 바다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