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작별의 신호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성희(일산)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조회수1

좋아요0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낙화」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한 번씩 멈춘다. 과연 떠나야 할 때를 스스로 깨닫고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언제나 남아 있는 일에 마음을 두고, 붙잡고 싶은 것들을 끝내 놓지 못한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모와 외삼촌은 마지막 순간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모는 감기 증세로 한 달을 앓다가 “힘이 하나도 없어, 일어날 수가 없다”라고 말한 뒤 응급실로 갔다. 나흘 동안 혼수상태에 있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외삼촌은 암으로 입원해 계시면서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셨다.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곧 작별임을 아신 듯했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남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생의 끝에서 신체적 고통을 크게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도 마지막 인연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떠남이 덜 외롭지 않을까.
톨스토이의「이반 일리치의 죽음」속 이반은 죽음이 다가올수록 사흘 밤낮 비명을 멈추지 못한다. 육체의 고통만이 아니라, 생이 끝났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두려움이 그를 힘들게 했을 것이다. 마흔다섯, 여전히 살아야 한다고 믿던 나이. 가족과의 관계, 일에 대한 미련, 놓지 못한 욕망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한 시간 전, 그는 문득 깨닫는다.
‘그래, 내가 모두를 괴롭히고 있구나. 모두 참으로 안됐어. 내가 죽으면 훨씬 나을 거야.’
그 순간 이반은 고통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본다. 떠날 때를 받아들인 것이다.
나는 지금 치매에 걸린 엄마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엄마는 당신의 몸 상태를 말해 줄 수도 없다. 작년 폐렴으로 입원했을 때, 의사는 폐에 커다란 흰 덩어리가 보인다며 폐암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두 번의 결핵으로 이미 망가진 폐를 알고 있었기에 조직 검사를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퇴원 후에는 가래를 빼기 위해 석션을 자주 했다. 엄마는 그때마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서 배와 생강을 달여 드리고, 게걸무씨와 맥문동차도 수시로 드렸다. 그 덕분인지 일 년 가까이 석션 없이도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올여름을 지나면서 그 방법도 힘을 잃었다. 다시 석션을 하고, 한약까지 더하고 있다. 엄마의 시간이 조금씩 다하고 있음을 나는 느낀다.
엄마는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지 못할 것이다.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시간이 오래되었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체온을 재고, 산소 포화도와 혈압을 확인하며 엄마의 작은 신호들을 읽는다. 기침 소리, 가래의 묵직함, 소변의 색, 얼굴과 신체의 변화 등 엄마의 말 대신 나는 몸이 보내는 언어를 듣는다.
그리고 매일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사랑합니다, 엄마. 감사합니다.”
이 말은 신기하게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한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흐려질 때마다, 이 말을 통해 내가 버텨야 할 이유를 다시 찾는다.
떠날 때를 알고 가는 사람이 아름답다는 시구가 오늘따라 마음 깊은 곳에서 오래 울린다. 엄마는 그 순간을 말로 알려 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같이 엄마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그 뒷모습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를, 덜 외롭기를 조용히 바라고 있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