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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과 노인

한국문인협회 로고 한말숙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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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에서 ‘사랑해’ 하는 소리가 났다. 카톡이 들어온 신호다. 그동안은 ‘까꿍’ 이었는데 후배의 손녀가 와서 소리를 그렇게 바꾸어 주었다. 후배하고 얘기를 하는 동안 ‘까꿍’ 소리가 몇 번 나니까 초등 4학년이라는 그 예쁜 손녀가 “아이고, 누구 건지 모르겠네요” 하더니 “선생님, 제가 소리 바꿔 드릴까요” 하며 내 핸드폰을 작은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사랑해’ 소리가 나니까 “선생님, 이거 어떠세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리가 그렇게도 되는 줄 몰랐기 때문에 속으로 놀라며 너는 재주도 좋다, 고맙다고 했다. 나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못 당한다고 속으로 감탄했다.
카톡을 언제부터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나, 꽤 오래된 것 같고, 2∼3년 전부터는 단체 톡방에 들어가게 되어서 하루에 거의 800여 명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셈이다. 그러니까 800여 명의 얼굴도 모르는 친구가 생긴 것이다. 생각하면 고맙고 황홀한 일이다. 물론 그 단톡방의 멤버들이 다 톡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하더라도 올라온 남의 톡을 읽는 편이고, 내 말을 올리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다. 주로 이모티콘을 쓴다. 이를테면 감탄할 만한 시나 톡이 올라오면 박수 치는 이모티콘을 올리던가, 엄지척을 올려서 의사 표시를 하니까 참 편리하다. 싫은 톡은 즉시 지워 버린다.
젊은 때는 친구들하고 약속해서 점심도 같이하고 영화도 보고 자가 운전해서 한강변을 신나게 달려 보기도 했다. 이제는 혼자 나다닐 이유도 없고, 함께 다닐 친구도 없다. 시력이 나빠져서 확대경 몇 개를 이것저것 바꿔 가며 독서를 하니까 눈이 아파서 안 읽게 되고, 가까운 후배 문인들에게는 원고를 이메일에 보내 달라고 해서 컴퓨터에서 글자를 확대해서 읽는다. 신문은 대문자만 보게 되는데, 심심한 생활 속에 개인 간의 톡이나 단톡방은 내게는 좋은 친구고 무급 심부름꾼이다.
나와 가까이 지내던 선후배가 셋이 있었는데 모두 요양병원에 가 버려서 전화도 못 하고 또 그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도 카톡을 할 줄 몰라서 몇 년 전부터 전화만 했었다, 피차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까, 그냥 ‘잘 있니?’ ‘응, 잘 있어’ 정도로나 음성만 듣고 만다. 모두 90이 넘었다. 그러고 보니까 그들이 지금 살아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상태다.
카톡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문자를 보낼 수 있고 공짜로 전화도 할 수 있으니까 이런 기능을 구비한 핸드폰은 정말 고마운 기계다. 그뿐인가. 충전해서 어디에나 가지고 다닐 수도 있다. 병원 예약도 잊고 있는데 병원에서 2∼3일 전에 카톡으로 알려 주기도 한다. 단톡방에 몇백 명이 모이게 하는 톡 몇 마디에 그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서 여행도 가고 회의도 한다. 때문에 거짓말도 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는 톡도 있고 은근히 돈 벌려는 광고성 톡도 있다.
단톡방에서 국사며 다른 나라의 역사며 국내외의 위인들의 내가 모르던 일화도 알게 되고, 좋은 시도 읽게 되고, 타인의 힘든 사정도 알게 되어서 종합 교과서라 할 수도 있겠다. 건강에 도움 되는 톡은 얼른 자식들과 친지들에게 퍼 나른다. 하지만 거의 같은 논조의 글이 계속되면 한꺼번에 그 톡방을 다 지워 버릴 때도 있다. 유튜브며 사진도 그림도 무수히 올라온다. 화면이 작고 청력도 나빠서 안 들리니까 꼭 보고 싶은 것은 컴퓨터의 카톡방에서 본다.
밤의 바다가 출렁이는 절벽 위에 조그만 카페 한 채가 있는 그림이 있고, 조금은 감미롭고 넉넉한 여유도 있고 조금은 센티멘털한 블루스가 흘러나오는 것은 컴퓨터의 바탕 화면에 저장했다. 가끔 자기 전에 열어서 보고 듣는다. 여유로운 멜로디가 신경을 가라앉혀 주어서 좋다. 그 옛날 남편하고 연애 시절 함께 추던 블루스 스텝이 저절로 나오려 해서 잠시 감상에 젖어 들기도 한다.
문자를 쓸 줄 아는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의 다 카톡을 올리고 있고 또 그것을 읽는 것 같다. 이제는 자판을 눌러서 문자를 쓰지 않아도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면 한국어 영어 일본어가 문자로 나온다. 해외여행 중 의사가 통하지 않으면 바로 번역도 해서 통역 역할도 한다. 핸드폰 기능이 점점 발달한 덕이다. 오래 살다 보니까 이토록 편리한 세상도 보게 되어서 좋다는 생각도 든다.
내 초등학교 친구는 보내는 카톡은 볼 줄 아는데 쓰지는 못해서 톡을 보내면 바로 전화를 주었었다. 어느 때부턴지 한동안 전화가 없어서 내가 몇 번 톡도 전화도 해 봤으나 받지 않았다. 수십 년 살던 독일에 다시 갔나 보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다. 넘어져서 요양병원에 있다고 했다. 옆 병상의 보호자의 전화를 잠깐 빌려서 살아 있다는 소식만 전한다 하며 바로 끊었다. 그러더니 이틀 후에 먼젓번 그 전화번호가 뜨면서 “그 친구분이 세상을 떴습니다” 하고 얼른 끊어 버렸다. 나는 그 번호에 대고 다급해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고 소리를 쳤는데 귀찮은 듯이 “아 그 친구분 돌아가셨다니까요. 바쁘니까 전화하지 마세요” 하며 끊어 버렸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군지, 나는 정말 궁금하고 당황스러워서 친구가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알고 싶었으나 알 방법이 없었다. 죽기 이틀 전까지 또렷하게 말을 했었는데…. 답답하다가 세월이 지나니까 나도 그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성호만 긋는다. 통화도 카톡도 못 하는 것이 죽었다는 증거가 된 것 같다. 하기는 세상 떠난 사람하고는 전화도 카톡도 못 한다.
며칠 전 잠결에 ‘사랑해’ 소리가 났으나 나는 그냥 잤다. 일곱 시쯤 잠이 깨어서 도대체 누가 한밤중에 톡을 보냈는지 불쾌해하며 열어보니까, 평소 점잖은 L 회장이 아름다운 풍경 그림 20개를 올리고 안녕하세요 한 선생님, 우리 회의 다음 모임은 ○○○○. 그리고는 알파벳을 a부터 w까지를 쓰고, 마지막 인사는 제대로 쓰여 있었다. 장난칠 사이도 아닌데 불쾌한 것을 참으며, 9시쯤 답장을 썼다. 나는 새벽 3시 10분이면 한밤중이니, 톡 주시려면 오전이면 9시쯤 부탁한다고. 다음날 오전 9시에 톡이 들어왔는데 역시 풍경 사진이며 여러 가지의 아름다운 꽃 사진을 20개 올리고 마지막 인사는 제대로 정중하게 써 있었다. 나는 아예 상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어저께 그 모임의 회원 중의 한 분이 톡을 보내 왔다.
‘L 회장님은 오래전부터 치매였는데 요즈음 아주 심각한 상태라 합니다.’
자기도 몇 번 이해할 수 없는 톡을 받아서 여기저기 알아보니까 그렇더라고. 톡을 보면 그 사람의 정신 상태도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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