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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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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햇살 좋은 봄날, 벚꽃잎이 눈처럼 흩날리는 것을 보면서 아득한 청년 시절, 어둡고 두려웠던 과거를 회상한다.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주위가 산만스러웠다. 열대의 정글 지대는 야자수잎들이 축 늘어져 더위에 지친 모습들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통행하지 않은 좁은 숲길은 열대림이라서 습기가 많다. 그 길을 걸으면서 고향 생각에 잠시 빠져들기도 한다.

오늘의 삶이 내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고향의 뒷산을 연상케하는 숲길을 걸으며 부모님과 형제들을 소환해 그리움과 슬픔이 뒤범벅이 되며 여기 정글에서 죽을 수는 없다. 기필코 살아 돌아가리라. 내딛는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우리를 죽이려 하는 적들과 싸우면서 죽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정글을 누비던 용감한 대한민국의 파병 전우들이다. 열대 지방이라 우기가 되면 억수 같은 소나기가 쏟아져 온몸에 비누질을 하고 야외에서 그대로 샤워를 즐기기도 하는 전쟁터 베트남, 한국의 젊은이들이 수없이 죽고 한 줌의 재가되어 영혼만 고국으로 돌아간 슬픈 역사의 순간들이었다.

전사자는 수천 명이었고, 부상자도 엄청 많았다고 정부에서 발표했지만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용병으로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현실이다. 지나간 과거는 잊어야 하는데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눈물 어린 아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터에서의 수색 작전은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살기 위해서 적을 죽여야만 하는 것, 최초의 살인을 경험하는 것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평생동안 가슴에 묻어두고 언급하지 못한 트라우마다.

야간 수색 작전이 있던 날, 일개 분대 병력이 어두운 정글을 숨죽이고 전진하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섬광이 번뜩이고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앞서가던 전우가 부비트랩을 밟은 것이다.

전쟁터에서 적군을 살상하기 위해서 폭발 장치를 땅에 묻거나 나무 사이를 전선줄로 연결해서 트랩을 설치하고 건드리면 폭발하도록 설치해 놓은 장치가 숲속 곳곳에 숨어 있었다. 눈을 뜬 곳은 사단 사령부 의무 중대였다. 살려 달라는 아비규환의 절규가 들려오고 주위에는 부상자들로 가득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몰골을 알아볼 수 없는 부상병이 발악을 하고 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는 죽음의 문 앞에서 절규하고 있었다. 병실 안에는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이 참혹한 운명 앞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야 한다는 눈빛만이 간절했다.

옷을 벗기고 상처를 확인하는 군의관이 소리친다. 살려줄 테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던 동료들이 고요 속에서 군의관을 응시하고 있다. 숨소리도 죽인채 제발 처참하게 죽어 가는 전우를 살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면서 가슴을 졸인다.

고성능 폭탄으로 몸은 누더기처럼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그래도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전우의 울부짖음이 폐부를 찌른다. 생존본능이다, 비명을 지르다가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살려주세요∼.”

군의관은 죽어가는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넝마처럼 너덜거린 부상병에게 최선을 다해 보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자 울음인지 비명인지 고함을 친다. 살려줄 테니 조용히 하라고! 10분이 지난 후 숨소리는 멎었다. 피와 땀으로 젖어버린 군의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함께 전쟁터를 누비던 전우가 눈앞에서 숨을 거두고 있는데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자신들의. 안타까움조차 표현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을 위한 전쟁도 아닌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어 간 그는 고귀한 생명의 보상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님과 형제들의 슬픔을 누가 어떤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수색 작전에 동행했던 전우, 누구는 죽어서 구천으로 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 두 갈래 길에서 헤어진 그들은 어디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참으로 가슴 아픈 사별을 하면서 각자 자신들의 운명으로밖에 치부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과거의 생각을 떠올리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전쟁의 상흔들을 까마득히 잊고 산 세월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지나온 몇십 년의 세월과 시간들이 쓸쓸하기도 하고 왠지 아리기도 한 그 눈빛들….

잘 우려낸 홍차처럼 또렷하고 선명하게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들이 갖지 못한 뜨거운 가슴과 피 끓는 젊음을 전쟁이라는 경험을 통해 얻었으니 이 또한 행복한 추억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날 죽어간 전우 ‘살려주세요’ 이 절규가 마음속 깊은 곳에 도사리고 문득문득 떠오르지만 과거는 잊혀진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전쟁의 비극적인 몽상은 잊지 못할 것이고 참전했던 전우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숨 쉬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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