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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 아버지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윤재송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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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아버지 노릇」이라는 글이 생각난다.

글 속의 아버지는 IMF 위기에서 오는 대량 해고와 조기퇴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며 발버둥치는 삶을 살아왔다. 월급날이면 얄팍한 봉투였지만 가족들의 군것질거리라도 사들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금융전산화’로 월급이 봉투째 통장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런 즐거움도 없어졌다. 크고 작은 가정일에 가장으로서 해오던 멘토 역할도 스마트폰에 빼앗겨서 아버지로서의 권위마저 사라져버린 것이 아버지 시대라는 것이다.

작가의 아버지는 자식들이 잘못을 해도 혼을 내지 않고 스스로 잘못을 알 때까지 기다렸다. 여느 부모처럼 공부만을 강요하지도 않았으며 화투는 물론 고누에서 바둑까지 가르쳐 주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퇴근길, 벽에 걸린 아버지 사진을 향해 “저와 바둑 한 수 두실까요? ”하면 껄껄껄 웃으시며 좋아하실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과 넉넉한 인품이 드러나는 감동적 글로 나는 그런 아버지가 부러웠다. 아버지 노릇도 시대적, 사회적 가치변화에 따라 다르던가.

농사를 지으시던 아버지를 떠올려 본다. 팔십 평생 허리가 휘도록 들일을 하신 아버지다. 아무리 바빠도 우리 형제에게 들일을 시키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공부할 때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새벽이면 우리에게 한문을 가르쳤고, 일을 할 수 없는 비 오는 날이나 밤이면 당신 자신도 늦도록 한서를 읽으셨다. 그과정에서 좋은 구절이 드러나면 우리 형제가 그 가르침을 내면화할 수 있도록 입버릇처럼 늘 되풀이해 주었다. ‘낚시나 바둑 같은 취미생활은 나이가 들어 해도 늦지 않다’며 그런 것들로 한눈을 팔지 않도록 단속하였다.

황금빛으로 치렁치렁 고개 숙인 벼 이삭을 볼 때, 자식들 글 읽는 소리가 사랑채 밖으로 들릴 때 아버지는 삶의 보람을 느끼는 듯, 말씀을 곧잘 하셨다.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생 때부터 한자투성이인 신문을 읽을 수 있었으며, 명심보감이나 소학에 나오는 글귀를 줄줄 외울 수가 있어, 늘 내 어깨를 으쓱하게 했다. 그런 분위기와 환경이 내게 최적이고 최선이라 여기며 자랐다.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친구들이 단체로 우리 집 모내기 봉사를 하던 날, 아버지는 친구들에게 모심는 요령을 일러주었다.

“이렇게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모 뿌리 곁에 가볍게 대고 지그시 눌러 심으면 된다. 너희 손가락 한 마디 깊이면 적당할 것이다. 못줄의 붉은 표시에 꼭 맞춰 심어야 한다.”

아버지의 당부가 끝나자, 조마조마해 하던 내 염려가 현실이 되어버렸다.

“재송이와 어떻게 되세요? ”

누군가가 물었다.

“나는 이 집 머슴이다.”

주저 없는 아버지 대답에 여기저기서 합창하듯 “에이, 아닌데.” 하는 소곤거림도 들렸다. 순간 내 얼굴은 숯 화로의 불처럼 달아올랐다.

“아니야, 머슴이 아니야. 우리 아버지야.”

내 외침은 목구멍에 걸려 버렸고 머슴이라는 한마디만 귓속에서 윙윙거렸다. 환갑을 훨씬 넘긴 반백의 머리와 얼굴의 주름이 할아버지로 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흙탕물에 젖은 무명 바지저고리 차림의 아버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조바심에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내기 봉사가 우리 집으로 결정된 그날부터 나는 주경야독 하시는 아버지를 친구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기대를 했는데, 머슴이라고 하시다니…

아버지는 그런 분이었다. 일곱 자식을 가르치느라, 명절날 세배꾼을 맞을 때나 특별한 손님이 올 때 외에는 한복이나 버선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좋은 음식, 즐기던 취미생활까지도 잊고 사는 분이었다. 어쩌면 머슴이라는 한마디는 오랜 아버지의 다짐, 각오를 그렇게 고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순간, 머슴이라는 선언에도 아버지를 쳐다보는 친구들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진지한 표정에 마음이 놓였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대답에 당황하였으나 그런 당당함이 오히려 내게 자신감을 주었다.

주인을 ‘머슴’이라고 하신 아버지의 반의적 표현이 얼마나 순발력 있는 재치인가. 전통 가치에만 충실한 아버지라 여겨왔는데, 현대적 감각 또한 못지않음을 그때야 나는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흰 머리칼과 얼굴의 주름은 하늘이 내린 값진 흔적인데 왜 나는 그렇게 속을 태웠을까.

“그저, 내 땅에서 짓는 농사가 제일이다” 하시며 ‘농자천하지대본’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버지, 당신은 담배를 말아 피우면서도 일꾼에게는 궐련을 주고, 여름철 식구들은 까만 보리밥을 먹는데도 일꾼에게는 하얀 쌀밥을 먹도록 하였다. 한 해 머슴살이를 마치는 일꾼들의 동지섣달 한복에는, 반드시 집에서 거둔 새 솜을 넣어 지어주라 당부하던 아버지였다. 매일 아침 잠깐 읽는 신문과, 힘들 때 한 잔의 농주만을 벗 삼던 아버지는 생활 속에서 철학을 실천하던 철인이셨는가.

여전히 지게를 지고 두 일꾼의 앞장을 서서, 들로 향하시는 아버지는 분명 머슴 중 머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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