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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체 조가통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희주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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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회의소 앞 먹적골 골목, 노란 안전띠가 드리워진 대지 칠십여 평의 빌라 공사 현장에 여러 사람이 모여 고사를 지내는 게 보였다. 약간의 오르막길 좌편에 이빨 빠진 것처럼 휑한 현장 주위는 도로 옆으로 난 통로만 빼놓고는 이삼 층 주택이 디귿자 형태로 즐비했다. 입구에 세워진 공사 안내판에 적힌 빌라 이름은 메트로빌. 며칠 전, 낡은 집 두 채를 철거하고 쓰레기를 치운 뒤 바닥에 자갈을 깔아 굴착기로 고른 상태여서 현장은 정갈해 보였다. 이제 사방에 비계를 세우고 안전망을 친 다음 바닥에 철근을 엮어 거기에 콘크리트를 부어 굳으면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될 태세였다.
고사상은 자재를 실어온 플라스틱 깔판 세 개를 겹쳐 그 위에 하얀 종이를 깔아 차려졌고, 눈을 감은 돼지머리가 오만원권 지폐 몇 장을 입에 물고 있었다. 상 맨 안쪽에는 시루떡 위에 실타래를 감은 마른 북어가 자릴 잡았으며, 주변에는 꼭지를 도려낸 사과와 배와 수박이, 그리고 참외, 밤, 대추 등 과일이 빼곡히 일회용 접시에 푸짐하게 담겼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건축업자인 조가통과 철근콘크리트, 내장과 외장의 목공, 미장, 벽돌, 설비, 전기, 창호, 돌, 도배 등 각 분야를 담당하는 사장들로서 며칠 전 계약하면서 오늘 오후 고사를 지낸다는 걸 알고 왔던 것. 하나같이 주요 공정들이다. 오늘 처음 만난 그들은 조가통의 소개로 서로 인사를 나눈 상태. 엘리베이터와 페인트, 타일은 빠졌다.
그들은 차례대로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사방에 뿌리고는 절을 한 뒤 지갑에서 지폐 오만원권을 두세 장씩 꺼내 주둥이에 물리거나 돌돌 말아 콧구멍과 귓구멍에 꽂았다. 십만원권 자기앞수표를 꽂는 이도 있었으나 만원짜리를 꺼내든 이는 없었다.
현장의 주인공 격인 복수건설 조가통 사장은 그들의 행동거지를 작은 눈으로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매끈하게 면도를 한 돼지머리는 귀를 쫑긋 세웠으며, 주둥이는 제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는 듯 적당히 벌어져 있었다.
“우린 다 했지요? 이제 마지막으로 주인공인 조 사장님이 하세요.”
막걸리병을 들고 있던 창호 담당 김 사장의 재촉에 조 사장이 잔을 채웠다. 그는 연거푸 석 잔을 여기저기 뿌리고는 상 앞에 서서 축원을 올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터줏대감님께 비나이다. 오늘부터 공사가 시작되오니 부디 아무런 사고 없이 끝나는 날까지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또한, 여기에 참여한 각 분야 사장님들과 인부들이 이 공사로 인하여 돈 많이 벌어 가게 하시옵고, 공사장 이웃들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시오며, 저에게도 분양이 신속하게 이루어져 다음엔 더 큰 사업을 벌일 수 있는 밑거름이 되게 하옵소서.”
조가통은 말을 끝내고 절을 세 번 올렸다. 제법 진지했다. 절을 마친 그는 물을 뿌려 빗자루를 들고 도로를 청소하던 이를 불렀다.
“한 소장님, 이 떡 이웃들에게 돌려요. 제일 말 많은 뒷집 노인네에겐 두 접시 주고요.”
그러고는 주변을 돌아보며 미운 놈에겐 아예 떡을 더 준다며? 하고 웃었다. 한 소장이라 부르는 이는 말이 현장 책임자이지 잔일뿐만 아니라 조가통의 사소한 심부름까지도 도맡아하는 사람이다. 짧게 자른 머리에 모자를 쓴 그는 현장 귀퉁이에 있는 컨테이너로 달려갔다. 그는 마흔한 살인 조가통이 처음 건축업자로 들어설 때부터 함께한 이로 외가 쪽 서너 살 많은 형뻘이 된다고. 두 사람을 겪어본 사람들은 둘이 떨어지지 않고 한결같이 붙어 있는 게 신통방통하다고 수군거렸다. 한 소장이 비위도 좋다며. 사실은 비난이나 다름없었다. 이용만 당하는 농판이라고.
“하는 거 봐선 그 집만 빼서 돌리고 싶지만 아쉬운 사람이 우물 판다잖아요.”
조가통은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사장들을 보며 빈정거렸다. 그가 언급한 사람은 철거할 때 시끄러워 못 살겠다, 먼지가 이게 다 뭐냐, 앞으로 빨래 널기는 다 틀렸다며 내내 투덜거린 뒷집 노인이었다. 헐어버린 집 두 채는 수십 년이 넘은 벽돌 기와집. 벽돌벽에 지붕은 흙을 개어 기와를 얹었으니 굴착기가 찍어 내릴 때마다 바싹 마른 흙먼지가 장난이 아닐 정도였다. 한 소장이 아무리 물을 뿌려도 먼지를 안 날리게 할 재간은 없었다. 그때 조가통은 노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현장 사무실로 쓰는 컨테이너에 들어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현장 이웃들에게 불편한 일이 생겨도 조금만 참아 달라며 돈을 넣은 봉투를 돌렸어도 소용없었다. 이십만 원씩. 현장에 딱 붙은 여섯 집주인만 줄 수도 없었다. 세 들어 산다고 민원을 제기할 줄 모르겠는가. 입을 닫게 하는 데는 미리 주는 게 최고였다. 그것도 현찰로.
한 소장이 컨테이너에서 알루미늄 접시와 칼을 들고 와 떡을 썰 때 조가통은 흡족한 표정으로 돼지머리에서 돈을 챙기고는 향미정이라는 식당으로 가기 위해 쟁반째 들었다. 푹 삶아야 먹을 수 있으리. 공사 끝날까지 오전 참과 점심, 오후 참을 책임질 식당은 도로를 따라 오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무도 가지 말고 쪼꼼만 기다리셔요, 내가 후다닥 삶아올 테니까.”
조가통이 어정쩡한 자세로 현장을 떠났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더군다나 배불뚝이니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는 모든 게 두툼하다는 느낌이었다. 얼굴도 두껍고 입술도 두껍고 몸통도 두껍고 다리는 두꺼운 데다 짧았다. 눈만 작았다.
“짜리몽땅의 진수를 보여주는구먼. 삼겹살이나 굽지 저걸 언제 삶는다고 저런디야.”
현장 조건이 그런대로 괜찮네, 공사 시기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이건 어쩌고 저건 저쩌고 하며 왁자지껄하게 술잔을 주고받던 사장들 가운데 오전에 정화조를 묻느라 이미 안면을 튼 설비 사장이 막걸리병을 들자 한 소장이 손을 저었다.
“지는 소주밖에 안 먹어유.”
“그려요? 하긴 쐬주를 먹어야 술 마신 것 같지요잉.”
설비 사장은 입을 쩝쩝거리며 한쪽에 있던 소주병을 들어 종이컵 가득 따랐다. 한 소장은 그걸 누가 볼세라 단번에 쭉 들이켜고는 생밤을 씹으며 떡 접시를 양손에 들고 이웃을 향해 떠났다. 설비가 그걸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상허네요잉.”
“뭐가요?”
창호가 물었다.
“아니 사장님도 조 사장이랑 거래가 처음이라면서요잉?”
“그렇지요. 여기 사장님들 다 처음 거래한다는데요?”
“그거이 요상하단 말이여라우. 내가 알기로 조 사장이 업자로 들어선 지가 십 년이 다 돼 가고 여기만도 상당히 큰 도시인디 어째서 단골 업자가 없느냔 말이여라우.”
“요상할 거 뭐 있소. 돈만 잘 주면 되지.”
얼굴에 흉터가 있는 목공이 끼어들었다. 그는 건설 경기가 좋지 않아 석 달째 놀고 있는 상태였다. 일당이 높은 내장 목수는 그래도 내국인이 좀 있지만, 거푸집을 엮는 외장 목수는 대부분이 동포를 비롯해 중국에서 건너와 팀을 꾸려 일하는지라 일거리가 없으면 떠나는 게 십상이었다.
“처음이라면서 돈 잘 주는 건 어떻게 아신감요?”
“아직은 알 턱이 없지만서도 첫 거래니까 웬만하면 잘 줄 거 아뇨?”
“자재 주는 데서 좀 아는 모양이던데 좀 끈질겨 그렇지 실수는 안 한다고 합디다. 난 그곳 소개로 조 사장 알았소.”
설비와 목공 사이에 끼어든 창호는 자잿값 비중이 어느 분야보다 크다.
“좆빠지게 일해 놓고 돈 못 받으면 말짱 황이여. 요즘 일도 확 줄어들었는데.”
목공은 창호와 다르게 인건비 비중이 크고. 그때 떡을 다 돌린 한 소장이 다가왔다. 소주병을 들고 잔을 내밀며 목공이 물었다.
“소장님, 조 사장 결제는 잘 해줘요?”
“저는 시키는 일만 하는 거라 그런 건 잘 몰라유.”
“오랫동안 함께했다면서요.”
“그래도 몰라유.”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겠지. 입장 곤란하니까. 그나저나 소장님이 일단 도리나 확실히 해줘요. 데마치 안 나게.”
전기 사장이 툭 튀어나왔다. 데마치는 공치는 날을 말한다. 자재 준비가 안 됐거나 여러 분야가 한꺼번에 몰려 일이 겹칠 때 일이 능률이 안 오르기 때문에 나왔다가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한 소장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아까처럼 단숨에 소주를 마시고는 생밤 몇 개를 주머니에 넣고 출구 쪽으로 가 도로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털털거리며 지게차가 나타나고 뒤따라 철근을 잔뜩 실은 대형 화물차가 후진하여 안으로 들어섰다.
화물차와 지게차가 한바탕 움직이고 빠지자 조가통이 커다란 쟁반을 머리에 인 향미정 주인 해남댁과 함께 나타났다. 제일 젊은 전기가 쟁반을 받았다.
“아주 푹 삶아 왔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마셔 볼까요? 오늘은 무조건 질퍽거려야 공사가 순조롭다면서요?”
조가통이 모두를 쳐다보며 쟁반을 덮은 신문지를 걷어내자 김이 무럭무럭 나는, 잘게 해체한 고기가 새우젓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먹음직스러운 겉절이 김치에 상추와 알배추, 고추와 마늘에 쌈장도 보였다.
“안주 보니까 이제 쐬주로 해야겠네잉.”
설비가 그리 말하자 이구동성으로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를 찾았다.
해 그림자가 도로를 제외하고 현장 가득 드리워졌다. 조가통은 배가 고팠는지 앞다투어 따라주는 술과 안주를 허겁지겁 집어 먹다가 고개를 들어 말했다.
“사장님들, 석 달이면 끝나겠지요?”
“오 층에 열두 세대라, 모든 게 순조롭다면 끝나겄지만 공사라는 것이 하도 변수가 많아서요. 아무래도 연말까진 잡아야 할 거요.”
“이 쪼그만 현장이 넉 달이나 걸린단 말요? 누구 망하는 꼴 보고 싶어요?”
일 층은 주차장이고 한 개 층에 세 세대씩 들어서니 총 열두 세대다. 조가통은 속으로 넉 달 안에 끝나기만 한다면 오죽 좋으랴, 하면서도 넉살을 떨었다. 그가 지금까지 한 공사 중에 계획한 공기대로 끝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조가통이 건축업에 종사하게 된 건 불알친구로부터 무시를 당한 후부터였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아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하고 설비 가게 일을 돕던 친구는 제대 후에도 그 일을 계속하더니 기술을 완전히 익혀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붙은 상가 한 귀퉁이에 가게를 차려 독립했다. 구멍 가게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볼품없는 가게에 비해 솜씨가 워낙 좋으니 소문이 저절로 나고 거래처가 많아지며 신용도 쌓아 갔다. 차츰 가게가 자리를 잡게 되자 유심히 봐 뒀던 땅을 사 집을 지어 팔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집만 지으면 팔리는 건 문제없었다. 설비는 그가 직접 맡았다. 남의 일도 잘해 줬지만 자기가 직접 짓는 현장이니 얼마나 꼼꼼하게 시공하겠는가. 하자가 있을 리 없고, 순익은 사장입네 하며 뒷짐 지고 지시만 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몇 년 안 가 그는 반듯한 사무실에 대도건설이란 간판을 달았다. 그렇다고 그가 사업이 커졌다 해서 일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현장을 직접 뛰어다니며 챙겼다. 그를 승승장구하게 만든 설비 가게도 일꾼을 둬 계속 운영했다.
공부를 워낙 싫어했던 조가통은 간신히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오륙 년 동안 하릴없이 빈둥거리다 친구의 소문을 들어 찾아갔다. 초중고를 같이 다니며 은근히 깔보던 친구였다. 그가 설비가게 사장도 아니고 일개 일꾼으로 일하는 모습을 지나다니다가 우연히 몇 번 봤었다. 언젠가는 도롯가에서 땅을 파고 있었다. 옷은 온통 흙투성이. 자신은 펑펑 놀고 있으면서도 그런 일을 하는 친구가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그래서 무시하고 왕래도 없이 쳐다보지도 않다가 몇 년 안 돼 그 친구가 돈 많이 번다더라는 소문이 났다. 설마 하며 건성으로 흘리다 몇 번 더 듣게 되자 부쩍 호기심이 일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놈이 성공했다? 한번 만나볼까? 그 성공에 편승하려는 생각이었다. 미끼는 충분했다.
“야, 동업하면 안 되겠냐? 노는 것도 지겹다.”
오랜만에 만났던지라 되게 반가운 척을 하며 아부에 가까운 말로 친구를 띄워주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사업을?”
“그래, 나 돈도 있고 건물 지을 땅도 있어. 그런데 딱 한 가지, 내가 경험이 없잖아. 너에게 배우고 싶어.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같이 좀 벌어 먹고 살자.”
“너 그 돈과 땅 너희 꼰대한테 물려받은 거지?”
조가통의 집은 부유했다. 아버지가 검찰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퇴직 후엔 법원 앞에서 법무사로 활동한다. 아버지가 부동산을 많이 갖게 된 연유는 경매에 있었다. 좋은 물건인지 나쁜 물건인지 사도 좋은지, 그 계통에 빠삭했던 것.
친구가 호감이 간다는 듯 묻자 조가통은 솔직히 털어놨다.
“현금 몇 억 정도는 동원할 수 있고, 도롯가에 있는 대지 백이십 평짜리 주차장이야. 거기에 상가나 빌딩을 지으려고 해도 내가 뭘 알아야지. 오 년이면 뭘 좀 알게 될까? 네가 그 돈과 땅 실컷 활용하고 나 독립할 때 고스란히 돌려주면 돼. 그때 시세가 아니라 현 시세대로. 그동안 이사 명함이나 하나 파주고.”
“푸하하하. 이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야, 아서라. 너 직장 경험도 없다며? 제대하고 계속 놀았잖아. 동업한다 치자. 네가 여기 와서 뭘 할 건데?”
“그러니까 이렇게 왔잖아. 네 사업이 자꾸 커간다고 들었는데 사람이 필요할 거 아냐.”
“이사 명함 해달라며?”
“남들 보기에 그럴싸하게 보이기만 하면 돼. 명분은 있어야잖아. 그래야 우리 아버지나 다른 사람한테도 할 말이 있고, 대신 네가 무슨 일을 시키든 다 할게.”
“정말이지?”
“그래. 제발 시켜만 줘라.”
“그럼 너 여기 말고 우리 설비가게에서 일꾼들하고 같이 일해. 나는 네 돈도 땅도 다 필요 없어. 나 이용하려고 하지 마. 너 스스로 깨닫고 터득해야 해. 노가다 판이 얼마나 험악한데 그래. 너도 나처럼 눈 딱 감고 삼 년만 해. 그럼 도와줄게. 그 삼 년이 너를 평생 양아치 소릴 안 듣게 해줄 거야. 일꾼들하고 같이 삽으로 땅도 파고. 너 잡부도 아무나 하는 것 아냐. 독하게 마음먹고 이제는 양아치 짓거리 그만해. 어떤 친구가 그러더라. 너 펑펑 놀면서 술 처먹고 계집질이나 하고 다닌다고. 아직 결혼도 안 했다며? 하긴 못한 거겠지. 누가 너 같은 놈한테 오겠어. 너희 아버지 돈 빼먹고 사는 게 양아치지 달리 양아치냐?”
친구의 말을 듣고 조가통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존심 굽혀 가며 큰맘 먹고 왔는데 일꾼들하고 같이 일하라니. 더군다나 뭐 양아치 짓거리? 개새끼, 조금 잘 나간다고 나를 무시해?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 인마! 이게 사람 대놓고 병신 만드네. 땅을 파? 일꾼들하고 같이? 보자 보자 하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구나. 친구라고 찾아왔더니 좆 같은 소리나 하고 자빠졌으니. 야, 내가 찾아갈 데가 없어서 여기 온 것 같으냐? 그래, 너나 잘 먹고 잘살아라. 오늘 수모는 길이길이 잊지 않으마.”
그대로 뛰쳐나왔다. 친구의 힐난이 따라왔다.
“꼴에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구나. 정신 차려라.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
열불이 났다. 조가통 자신은 놀아도 되는 한량이라 생각했는데 양아치란다. 하는 일이 별로 없고 폼도 나지 않아 그렇지, 엄밀히 따지면 자신도 주차장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친구의 거침없는 말은 그야말로 모멸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게 더 아프게 다가왔다. 참담하기까지 했다. 어디 두고 보자. 아무리 내가 늦게 시작한다 해도 너는 기필코 꺾고야 말겠다.
친구에 대한 복수심이 그를 건축업자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는 별 필요가 없는, 그러나 친구보다 더 큰 사무실을 얻어 번쩍번쩍하게 꾸며 놓고 여상을 졸업하여 건설회사 경험이 있는 예쁘장한 아가씨를 경리랍시고 채용한 뒤, 주차장 부지에 지하 이 층, 지상 칠 층 빌딩 건축 공사에 돌입했다. 어찌어찌해서 만만치 않은 월급을 주고 공사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소장도 구했다. 그때 한 소장이 잡부로 들어와 그 소장을 보좌했다. 부족한 자금은 대출로 충당했다. 그러나 조가통은 공사 초기에만 현장에 붙어 소장이 하는 일을 눈여겨보았지 개가 똥을 참을 수는 없었나 보다. 차츰 하는 일이라곤 현장 주변을 얼쩡거리며 주변의 다방에서 레지와 노닥거리거나 사무실에 들어가 이 친구 저 친구를 불러내 술타령을 하며 은근히 자신이 벌인 사업을 자랑했다. 그가 세무서에 낸 사업자등록증의 상호는 복수 건설. 사람들은 으레 복수(福壽)이겠거니 하지만 그가 노린 건 복수(復讐)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도 소장을 잘 만나, 일 년여 진행된 첫 건축은 그런대로 성공이었다. 빌딩은 빌딩대로 조가통의 소유가 되었고 임대보증금을 포함하여 다시 건축할 자금도 확보됐다. 다달이 일 층 상가와 나머지 사무실에서 나오는 월세는 주차장을 할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는 입이 찢어졌다. 돈보다도 친구에게 복수한 셈으로 여기니 더 째졌다. 돈이 돈을 낳는다는 자본의 기본 생리는 변하지 않았다.
“뭐라고? 삼 년만 일꾼들하고 같이 일하라고? 개새끼, 너와 나는 애초부터 종자가 다르다는 걸 네까짓 게 어떻게 알겠냐. 그러니 몸으로 때우지. 네 몸뚱어리가 불쌍하지도 않냐? 머릴 굴려야지 왜 몸을 혹사해. 역시 사람은 끝까지 봐야 해. 대기만성이란 말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란 말이야.”
결혼도 했다. 색시는 데리고 있던 경리, 미스 양이었다.
결혼 전, 미스 양은 조가통이 생긴 게 볼품도 없고 껄렁껄렁하여 관심도 없었으나 그의 집안 사정과 자금 흐름을 속속들이 알고 나자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인물이 좋다고 밥과 행복이 저절로 따라와 줄 리가 없다는 걸 그녀는 잘 알았다. 조가통의 온갖 감언이설에 혹해 큰 건설사의 자금줄을 쥐고 흔드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십대에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 식당에 다니는 엄마, 대학에 다니던 남동생은 휴학하여 군에 가 있고.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건 여상을 갔을 때부터 알아봤다. 이제껏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소릴 들었던 아버지 이름으로 집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것은 무능의 다른 이름이었다. 사장이 서른두 살이라고 했던가, 다섯 살 차이네?
공사가 끝나자마자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조가통은 일부러 친구에게 금박으로 입힌 청첩장을 보냈었다. 내 소식도 들었겠지? 무슨 표정일지 궁금했다. 신혼여행을 해외로 다녀온 후 방명록을 정리하는데 친구 이름이 보였다. 식장에선 못 봤는데? 축의금도 있었다. 묘안이 떠올랐다. 문자를 보냈다. 내 돈 안 받는다며? 나도 네 돈은 안 받으련다. 회사로 전화해 경리에게 계좌를 물어 바로 보내버렸다.
조가통은 두 번째 공사부터 하는 일도 별로 없어 보이면서도 월급만 많고 가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소장을 미련 없이 잘랐다. 가만히 지켜보니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험이 부족할 뿐, 묻는 게 수치가 아님을 깨달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도 생겼다. 한 소장이었다.
“형님, 이 바닥에서는 경험 많은 것이 돈입니다. 나도 챙기겠지만 저 소장이 하는 모든 지시 유심히 살펴보세요. 다음부터는 하나부터 열까지 형님이 해야 하니까 다 익혀두라고요. 조금만 신경 쓰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거래처나 자재상 전화번호 잘 챙기고. 형님도 언제까지 궂은일이나 심부름만 할 거요?”
그렇게 말했던 때가 빌딩 시공의 초창기, 소장의 첫 봉급이 나간 후였다.
두 번째 공사는 빌라. 첫 공사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았다. 쓸데없는 곳에 돈 쓴다고 아내가 된 미스 양의 등쌀에 사무실은 없앴다. 대신 아내는 실장으로서 빌딩 관리실로 출근하여 현장 업무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현장 사무실은 컨테이너로 대체했다. 각 분야의 거래처도 모두 바꿔버렸다. 빌딩 공사할 때 거래하던 이들은 소장의 인맥이었으니. 일할 업체와 사람은 많았다. 자재상에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가면 친절하게 가르쳐 줬다.
그러나 소장이 할 때는 별것 아니게 보였던 일들이 자꾸 꼬였다. 일정대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분명히 옛날 소장처럼 한다고 해도 착착 돌아가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조가통이 고스톱에 재미를 붙인 것. 목공의 거푸집 패널 조달이 안 돼 일꾼 모두가 공치게 된 날 현장 사무실에서 시간 보내기로 치기 시작한 점당 천 원짜리 고스톱이 계기가 되어 걸핏하면 조가통은 사장들과 어울렸다. 짝이 안 맞을 때는 일하는 사람까지 불러들였다. 한두 번이야 이해되지만 허구한 날 판을 벌이니 돈 잃어서 손해, 일 못해서 손해, 화투판이 끝나면 어김없이 술판까지 벌어져 과음하게 되니 다음날 일에 지장이 있어 손해. 그래도 그들은 조가통이 부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갑을관계의 전형이었다.
“일은 일꾼들이 하는 거지 사장이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요. 미장 오야지 말 못 들어봤어요? 조금 더 벌어보겠다고 연장을 잡았는데 자신이 일하는 현장마다 까지더라고. 그러니 뻗대지 말고 빨리 와요.”
가지 않으면 행여나 차기 공사나 결제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속으로 불만이 가득해도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 아니, 올 수밖에 없었다. 결제를 제때 주기로 철썩같이 약속해 놓고도 그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건설업계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니. 조가통을 소개한 자재상의 말에 안심이 되기는 하지만.
“그 사람 빵빵해요. 빌딩주잖아. 결제 걱정은 아예 하덜덜 말아요.”
그렇게 믿었다. 그 말에 다른 데보다 조금 싸게 견적을 넣고서 어떻게든 관계를 오랫동안 맺어보자는 속셈이었다. 공사금액을 좀 깎아줘도 결제만 바로바로 이루어진다면 그게 최고이잖은가. 그런데 실망이었다. 화투판의 매너를 보면 그 사람의 본색을 알 수 있다고 조가통은 완전히 양아치 기질을 드러내는 똥매너의 소유자였던 것. 억지를 부리고 우기기가 다반사였다. 자신의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조금 양보하고 때로는 상대방 비위를 맞춰줄 법도 하건만 그에게서 그런 일을 기대한다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기나 다름없었다.
“저거 완전히 양아치구만. 나 이번만 거래하고 손 털 겨. 억만금을 줘도 저런 새끼하고 다신 일 안 할 거야.”
“확실히 있는 놈이 더하네.”
“나는 저런 꼴 보니까 이 현장에 나오기가 아예 싫어부러. 다음에는 일꾼들만 보낼 거여.”
“조가통이 이름 그대로 좆 같은 놈이었구만.”
조가통이 없을 때 사장들은 그를 이구동성으로 씹어댔다.
공기는 처음 계획과 달리 두 배로 늦어졌다. 분양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어도 남는 게 없었다. 그러나 조가통은 좋은 경험이라 여겼다. 날마다 대접받으며 놀고먹고, 화투는 치더라도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주워들은 말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입력됐다. 처음엔 알아듣지도 못했던 아시바(비계, 발판), 데모도(잡부), 데즈라(출력), 삿포도(받침대) 등 일본말투성이의 용어들이 무슨 말인 줄도 알게 됐다. 나가고 들어오고를 훤하게 아는 아내가 빈정거렸다.
“헛일 했네요?”
“헛일이라니? 내가 처음 맡은 거잖아. 손해 보지 않은 것만도 어디야. 첫술에 배부른 것 봤어? 우리나라 경제에 일조했다고 생각해. 이제 일머리를 빠삭하게 파악했으니 돈 버는 건 시간문제여.”
분야마다 중간에 이루어지는 결제는 제때 줬다. 그러나 마지막이 문제였다. 일은 다 끝났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핑계 없는 핑계를 대면서 속을 썩였다. 은행에 돈이 있으면서도 그랬다. 그것은 조가통의 잔머리에서 나온 결과. 심보 불량한 업자들의 행태만은 고스란히 닮아 갔으니. 그들도 조가통을 진저리치며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 다짐하지만, 조가통도 마찬가지였다. 첫 거래라서 견적 싸게 들어오고, 다음 공사를 생각해 일처리를 꼼꼼히 하고, 일이 모두 끝나 다시 볼 일이 없으니 돈은 천천히 줘도 그들이 어쩌겠는가, 그들에게 끌려다니면 안 된다는 게 그가 터득한 그 바닥의 지론. 그래도 다음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결제가 됐으니 받는 측에서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음 공사를 시작할 때는 그들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새로운 사람들과 접촉했다. 그들이 조가통의 야비한 행태를 알 리 없었다. 그래서 쉽게 덤벼들었다. 상대는 웬 떡이냐 덤볐다가 실망하고, 조가통은 계속해서 잔머리를 굴리고. 그런 식으로 조가통은 인구 백만의 도시에서 십여 년을 버텼다. 한 소장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시키는 일만 할 뿐, 처음이나 나중이나 한결같았다. 구박해도 쇠귀에 경 읽기. 조가통은 한 소장의 발전은 진작 포기했다. 품삯은 쥐꼬리만큼 올려 주고. 그래도 군말이 없으니 계속 함께했다.
조가통은 그동안 돈을 벌기도 하고 손해 보기도 했다. 어떤 현장에서는 안전사고가 나는 바람에 소송에 휘말려 거액이 나간 일도 있었다. 그러나 돈이 돈을 벌게 되는 자본의 논리에 대한 믿음은 더욱 깊어 갔다. 속고 속이며 서로 이용하여 건물을 짓고 팔고, 시간은 흘러 그는 어느덧 능구렁이가 되었다.
조가통은 이번 빌라 공사를 시작하면서 사실 각 분야 거래업체를 결정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도시 전체 자재상에 자신에 대한 소문이 쫙 퍼졌던 것. 자재상이나 업체마다 복수건설 조가통이라면 고개를 흔들 정도였으니. 할 수 없이 인근 도시에서 업체를 구해야 했다.
강추위에 눈발이 날리는 1월 하순. 메트로빌 공사는 밖에서 보면 거의 다 끝난 상태였고 내부도 사소한 것들만 남았다. 지층은 아스팔트 위에 차 열두 대가 주차할 수 있도록 하얀 선이 그어졌으며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출입구가 보였다. 이 층부터 마지막 층까지 외벽은 검은 벽돌 같은 타일로 마감했고 중간중간에 화강암을 이용해 모양을 한껏 냈다. 뒤편에는 화단이 조성돼 있고 푸른 전나무가 두 그루, 한 그루씩 심은 잎 떨어진 대추나무와 감나무 밑에는 철쭉과 맥문동이 빽빽했다. 화단 앞에 두꺼운 점퍼를 걸친 세 사람이 얼쩡거리고 있었다. 말투로 보아 중국인이나 동포가 분명했다.
건물 내부에서는 세대마다 싱크대를 놓느라 한창이었다. 거실이나 방바닥에는 장판을 대신해 미색 무늬목이 깔리고 도배도 깔끔하게 끝난 상태였다. 방이 세 개에 거실과 화장실 두 개, 앞뒤로 베란다가 있어서 너 식구 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이제 누구라도 당장 들어와 살아도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아 지기미 시팔, 연락이 안 돼 쫓아왔잖아요. 이게 시방 몇 번째여. 화장실 기구 몽땅 외상으로 들여서 놓아줬더니 이 지랄이네. 정말로 미치겠구만요잉. 여기 때문에 내 신용 다 떨어지게 생겼당게. 소장님, 지금 조 사장 어디 처박혀서 코빼기도 안 보이는 거요잉?”
주차장에 옮겨 놓은 컨테이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설비 사장이었다. 한 소장은 털모자를 쓴 채 자기가 죄인인 양 책상 앞에 한껏 움츠려 있었다.
“나는 몰러유.”
“오늘 틀림없이 입금해준다고 해놓고는 아직 안 들어와서 와봤다니 없네 시펄. 전화도 안 받고. 어디 가도 인건비만은 제일 먼저 해결해 주는 법인데 이게 뭔지 모르겠네. 남은 게 한두 푼이라야 어떻게 해보지. 따라온 중국 애들 내일 춘절 쇠러 간다며 비행기 표 끊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돈을 해줘야 갈 것 아니오. 우리야 순전히 몸뚱이로 벌어먹고사니 돈을 쟁여 놓은 것도 아니고.”
목공 사장도 난로를 쬐며 다급한 사정을 얘기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구만이라우?”
“쟤들도 속이 타지요. 오죽하면 따라왔겠소. 중국에서 온 애들 같지 않게 일을 참 잘하는 애들인데…. 다른 분야도 결제가 다 안 됐다고 하대요?”
“우리만 안 줬겄소? 다 물렸겠지요잉. 분양이 안 됐다며 어렵다는 핑계만 대는데, 그런 거야 조 사장 사정이잖아요. 안 그려요잉? 어쩐지 느낌이 요상하더랑께. 그런디 중간에 돈이 착착 들어와서 괜히 걱정했는가 싶더니만 아니라 달라? 막판에 기어이 속을 썩이는구만잉.”
“조 사장이 빌딩주라는데 어디에 있는 빌딩인 줄 알아요?”
“나도 모르지라우. 한 소장한테 물어보면 알겄지만 안 줄라고 맘먹었으면 쳐들어가도 소용없을 거요.”
“이거 미쳐버리겠네! 쟤들만 주어버리면 일단 한시름 놓겠고만. 완전히 얌체 같은 새끼를 만나 사람 잡네, 잡아.”
“안 가실라우? 여기 있어 봤자. 나타나지도 않을 거고.”
“가야지요. 오늘도 실수하면 이 자식 내가 진짜 그냥 안 놔둘 거요. 똥개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노가다 진짜 본때를 아직 못 봐서 사람을 쉽게 보나 본데 내가 이대로는 죽어도 못 참지.”
두 사람은 몰고 온 트럭을 타고 헤어졌다.
그날 밤, 메트리올에 두꺼운 점퍼를 걸친 세 사람이 도로 가장자리를 이용하여 주차장으로 들어서더니 유리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엘리베이터로 오 층까지 올라갔다. 입주 전에는 일하는 사람이 수시로 드나들기 때문에 번호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낮에 목공 사장을 따라왔던 이들이었다. 세대마다 방화문에는 아직 구멍만 뚫리고 잠금장치가 달리지 않은 채였다. 그들은 각 세대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꼭대기부터 계단을 내려오면서 점퍼 안에 감춰 들고 온 페트병을 바닥에 기울였다. 일 층에선 계단 밑이며 엘리베이터 앞까지도 흥건히 뿌리고 페트병을 던져버리고는 출입문을 열어둔 채 라이터를 켠 다음 쏜살같이 사라졌다. 내부가 불길에 휩싸이며 출입문은 자동으로 닫혔다. 주차장에 CCTV가 설치되어 있긴 하지만 아직 작동되지는 않았다.
조가통은 찜질방에서 친구 몇과 어울려 오후 내내 술을 옆에 끼고 고스톱을 치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간단히 샤워하고는 옷장을 열어 일부러 받지 않으려 넣어둔 전화기부터 보았다. 부재중 전화가 무수히 찍혀 있었다. 역시나 일을 맡았던 사장들.
“이렇게 보챈다고 돈을 줄 것 같아?”
분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들 잔금을 해결할 마음이 있었다면 은행에서 건물을 담보로 융자를 받으면 끝날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눈곱만큼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쉽게 주면 사람까지 쉽게 보지. 그런데 가만, 마누라한테서 전화가 온 게 지금 몇 통이야? 그는 서둘러 전화했다.
“뭐라고! 불났다고?”
다급한 목소리였다. 현장이란다. 허겁지겁 달려갔다. 이미 상황은 끝나 소방차가 윙윙거리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주차장 바닥은 물바다였다. 아내는 서류에 뭔가를 적으며 소방관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걸 무시하고 전화기 플래시를 켠 채 열린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니 기름 냄새가 확 풍기며 계단 벽이 온통 그을음투성이였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계단에는 불에 탈 아무것도 없었으니 기름을 끼얹었다면, 이건 방화다!
물이 흘러내리는 계단을 잽싸게 올라갔다. 이층 모두 현관문이나, 도배하여 깔끔했던 벽이나 천장도 그을리고, 싱크대도 마찬가지, 방바닥은 시커먼 그을음 잔재로 가득했다. 한층 한층 올라가 보니 다 똑같았다. 나무로 된 바닥이며 비싸게 들여 놓은 싱크대와 도배는 다시 해야 할 것 같았다. 직접 불에 그을린 계단 벽 전체 페인트칠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이거 다시 하려면 도대체 돈이 얼마야? 누가 그랬을까? 나를 엿 먹이려는 수작이 분명한데… 분명히 부재중 전화를 한 놈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니 범인을 잡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나저나 분양은 언제 될 것이며 불 난 집에 누가 들어오려고나 할까? 정말로 큰일이었다.
다음 날 도로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한 경찰이 조가통에게 말했다.
“누군지는 확인하긴 했는데 아침 비행기를 타고 벌써 중국으로 날랐어요. 그들 사장 얘기 들어보니까 인건비 결제가 다 안 됐다면서요? 멀리서 와 고생했더구만, 여유 있는 분이 좀 해주지 그랬어요. 그 목공 사장이 어렵사리 사채 얻어 급한 불 껐다고 합디다. 의뢰는 해보겠으나 잡아 오긴 힘들 거요.”
그 말을 듣자 조가통은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어리버리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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