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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찾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나정애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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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더웠던 이번 여름휴가는 아들이 효도한다는 차원에서 서해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자동차로 땡볕을 피해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음이 느긋해지자 문득 아들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생각을 넌지시 물어보았다.
“넌 첫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지나간 과거일 뿐 별 의미는 안 둬.”
“넌 보고 싶거나 궁금하지 않니?”
“그 얘기는 왜 해? 다 잊었는데.”
“그렇게 잊히나? 남자들이 첫사랑에 연연한다는데.”
“지금 만나서 뭐 하게.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데.”
“참 매정하다. 난 너희들 때문에 울었는데.”
“난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아. 살기도 바쁜데 한가한 시간이 어디 있어?”
“젊은 애들 사고는 우리와 다르구나.”
“근데 왜 갑자기 첫사랑 얘기를 해?”
“요즘 어느 정도 정보가 있으면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왜 누구를 찾으려고?”
“그래, 내 첫사랑 찾아보려고.”
“갑자기 그런 생각을 왜 했는데?”
“내가 이제 얼마나 살겠니. 가능하다면 죽기 전에 할 말이 있어서.”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다면 그 첫사랑은 돌아가신 거 아닐까?”
“그렇다면 별 수 없지만 좀 찾아봐 줄래? 누구보다 네가 찾아주면 좋겠어. 넌 능력이 되잖아.”
“엄마가 원한다면 알았어. 그 분 프로필 문자로 보내 봐. 회사에 나가서 방법 찾아볼게.”
“부탁한다. 나의 버킷리스트야.”
“막상 찾아서 실망하고 후회하면 어쩌려고?”
“이 나이에 무슨 실망을 할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야.”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 말이 그 분에게도 중요할까?”
“상관없어. 착각일지 몰라도 하고 싶은 게 있어.”
“그건 엄마의 생각이야. 그 분이 지금까지 엄마를 찾지 않았다면 어떤 문제를 잊었거나 과거에 집착하지 않았을 거야.”
“그건 어쨌든 네가 찾아주면 좋겠다.”
“찾는 건 어떻게 해보겠는데 엄마가 받을 상처가 걱정되네.”
아들에게 첫사랑 연락처를 부탁한 건 순간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다 보니 마음을 감추고 살았던 일들이 후회되었다. 지금 같으면 어떻게든 의견을 말하겠지만 그때는 표현이 서툰 시대였다. 아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들은 개인정보를 알 수 있는 직업군에 있어서 부탁을 했었다.
“엄마, 개인정보는 법이 강화되어 좀 위험해.”
“네가 불가능하다면 어쩔 수 없지. 내 뜻을 이해해 준 것만도 고맙다.”
“같은 이름이 너무 많고 엄마가 준 정보로는 생년월일을 모르니까.”
“엄마보다 한 살쯤 위인데 묻지 않아서 몰라.”
“다른 방법으로 찾아야겠어.”
“어려우면 관둬라. 난 쉽게 찾는 줄 알았어. 그 정도만 알면.”
“더 알아볼 게. 문제가 없으려면 몇 단계를 거쳐야 해.”
“너무 복잡한 건 싫다. 없었던 일로 하자.”
그렇게 아들하고 대화는 끝났다. 기대를 했다가 무산되니 섭섭하기도 했다. 아들의 도움을 받아 연락이 된다면 그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싶었는데 기회마저 사라져 아쉬웠다. 그 친구를 찾는다면 얽히고설킨 당시의 실타래를 풀고 싶었다.

 

내가 첫사랑을 찾으려 한 것은 어느 영화를 보고 나서였다. 주인공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면서 첫사랑을 찾는데 감동적이었다. 만일 나라면 누구를 찾아볼까 하다가 그 친구가 떠올랐다. 언제나 첫사랑이라고 하면 늘 그 친구를 생각했고 어린 시절과 청춘의 한때를 보냈던 그 친구가 당연히 떠올랐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짝꿍이었다. 그는 반장이었고 나는 부반장이라서 학급 일을 한다거나 선생님 심부름을 할 때 같이 다녔지만 말을 나눈 적은 없었다. 우리는 말이 없는 편이라서 딱히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없었다. 서로 성적이 좋았고 품행도 단정해서 좋은 이미지는 가지고 있었지만 졸업을 하고 각자 중학교에 간 뒤 길에서 마주친 적도 없었다. 이름이 까마득해질 즈음 고등학교 때 추석 다음 날 시외버스 안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는 K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마주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통학버스에서 작은 사고가 났다. 만원버스에 학생들이 가득 탔는데 운전수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학생들이 앞쪽으로 넘어졌다. 여기저기 아우성이 들리고 서로 일으켜주는 순간이었다. 나도 일어나려고 하는데 어떤 남학생이 손을 내밀었다. 창피했지만 그 남학생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눈앞에 그 친구의 명찰이 보였다. 처음에는 몰랐다가 이름이 익숙해서 보니 반장이었던 그 친구였다. 그 친구도 나를 보고 놀라는 것 같았다. 서로 외면을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웃었다. 굳이 외면할 사이도 아니고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의연한 척했지만 K시에 도착할 때까지 차창만 바라보는데 어색하고 그 친구가 신경이 쓰여 지루한 시간이었다.
K시에 도착하자 학생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 오랜만이야.”
“그래, 몇 년 만이야?”
“오 년이 넘었네? 그동안 잘 지냈니?”
“그럭저럭 넌?”
“난 E동에서 하숙하고 있어.”
“나는 당분간 통학해. 사정이 있어서.”
“날마다 이 버스? 저녁엔 몇 시 버스?”
“그래 저녁엔 6시 버스.”
우리는 길을 걸었다. 학교가 같은 길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걷다가 갈림길이 있을 때 헤어졌다. 어떤 약속도 없었고 학교에 가기 바빠서 그뿐이었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그 친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다. 6학년 때 새침하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신기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친구가 다음 날부터 나와 같은 통학버스를 탔다.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친구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
“나도 오늘부터 통학하려고.”
“하숙집은 어쩌고?”
“거긴 친척집이라 어차피 내 방이 있어.”
“그렇다고 갑자기 무슨 통학이야.”
“나도 통학이 한번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해보려고.”
그 친구는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워낙 밝아서 걱정은 좀 덜했다. 
그렇게 그 친구의 통학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종점에서 버스를 타기 때문에 같이 앉아 가는 날이 많았다. 만나는 시간이 많았지만 서로의 신상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K시 터미널에서는 먼저 온 사람이 기다렸다. 굳이 약속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통학을 했다. 내가 왜 통학을 하느냐고 그 문제에 관여할 필요는 없었다. 통학은 그 친구의 몫이었다. 좀 일찍 오는 날이면 제과점에 가서 빵도 먹고 걷기도 했다. 사춘기라 마음의 동요도 있었지만 예의를 벗어나는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통학을 하면서 동질감의 설렘도 아주 순수한 것이었다. 통학은 묘한 즐거움이 되었고 소년 소녀의 풋풋한 우정의 다리였다. 그렇게 두 달 통학을 하다가 그 친구는 부모에게 야단을 맞고 하숙으로 복귀했다. 황당한 통학사건은 잔잔한 추억이 되었고 그 친구는 대학 진학을 위해 연락이 끊겼다.

 

그 친구를 다시 만난 것은 몇 년 후였다. 그 친구가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회사에 전화를 했다. 나는 깜짝 놀라 근처 다방에 약속을 하고 갔더니 그 친구가 빙그레 웃으며 나를 반겼다.
“내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방법이 있지.”
그 친구의 그런 표현은 낯설었지만 듣기에 좋았다. 
“실은 궁금했어. 잘 사는지.”
“그래서 이렇게 내가 나타난 거야. 하하.”
“어떻게 여기에 올 생각을 했니.”
다시 만난 우리는 예전처럼 친해져 많은 시간을 같이했다. 특히 그 친구는 자상해서 나에 대한 배려를 많이 했다. 그는 학생이었고 나는 직장에 다녔지만 그 친구가 만남을 리드했다. 그 친구의 집은 부유했고 우리 집은 형편없이 망한 상태였지만 그런 것을 떠나 그 친구는 스케일이 크고 남자다운 면모가 있어 같은 나이지만 그 친구를 의지하는 편이었다. 식당에 가더라도 나를 배려했고 영화를 보면 해설까지 해주며 모든 스케줄을 완벽하게 진행했다. 맥주를 마시다가 시간이 늦어지면 택시는 위험하다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지켜보던 의연한 친구, 남자다운 행동에 마음을 놓았고 그 친구가 학생이지만 막연히 훗날 배우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좋았던 우리 사이에 금이 간 것은 견해 차이였다. 그 친구는 나와 더 가까워지는 것을 원했다. 젊은 남녀의 당연한 순서였는지 모르지만 내 경우엔 문제가 많았다. 우리 집은 가세가 기울어 절망적인 상황이었으나 자존심 때문에 그 친구에게 자세히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당장 곤혹스런 형편인데 철없는 그 친구는 감당도 못하면서 여행을 가자고 졸랐다. 당시 여행을 갈 만한 형편도 안 되는데 그 친구는 우리의 새로운 시작을 원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대립되었고 결국 자기를 신뢰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화가 나서 가버렸다. 그땐 그 친구가 떠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 했다. 그 친구가 떠난 뒤, 그의 친구가 찾아와 화해를 말했지만 그 굴레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사랑보다 중요한 건 현실이었다. 내 형편을 멀리하고 섣부른 장난에 동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초라한 내 환경을 들키기 싫어서 그 친구가 떠나는 것이 훨씬 편했다. 그 뒤 그렇게 다정하던 그 친구의 연락은 정말 매정하게 끊겼고 마지막이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다. 아마도 잘 살고 있겠지. 집안도 좋고 본인도 똑똑하니 어디서든 잘살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가 결혼해서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마다 그 친구가 생각났고 만일 함께였다면 행복했을까?라는 상상도 했다. 어느 땐 꿈에 나타나 공허한 삶의 빈 공간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점점 잊고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라는 말에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지만 불가피했던 그때의 사정과 형편이 최악이었다는 것도, 살아갈 시간이 없는데 티끌만한 증오가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변명처럼 풀고 싶었다.

 

“그 분 이름과 비슷한 조건의 사람을 찾았는데 세 명이네. 절대 극비야. 만일 추궁을 당하면 내가 처벌을 받아야 해. 엄마가 알아서 해. 소원이라니.”
“조심할게, 고생했어. 공연한 내 호기심에 널 동참시켰구나.”
“어떤 경우에라도 실망을 각오해야 해. 세상은 그렇게 낭만적이 아니야.”
“알고 있어. 그리고 기대도 안 해. 오만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은 해야 우리 엄마지.”
아들은 내 자료에 근접한 세 명의 전화번호를 주었다. 남의 정보를 몰래 알아본다는 것이 불법인지는 알고 있지만 아들을 통했던 것은 첫사랑 찾기가 음지가 아닌 양지에서 건전하게 보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떳떳한 인생을 정리하고 특히 아들을 통한다면 정당성을 공감받을 것 같았다. 아들이 보내준 세 명의 전화번호를 보았다. 과연 거기에 그 친구가 있을까. 가슴이 떨렸다. 만일 그 친구와 연락이 된다면 첫마디는 뭐라고 할 것인가. 존댓말을 해야 하나 반말을 해야 하나 가늠이 안 되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전화번호도 알았으니 필요한 건 내 용기였다. 아들에게도 첫사랑 찾기의 당위성과 의지를 밝혔으니 물러설 곳도 없었다. 바라는 건 내가 보내는 첫 번째 문자가 그 친구이기를 바랐다. 아무리 마음을 다져도 용기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첫마디는 간결한 단어로 보낼 것인데 멋진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불확실한 전화번호지만 만감이 교차했다. 50년 만의 일인데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아 엄숙한 기분으로 첫 번째 문자를 보냈다.

 

‘혹시 전에 P시에 살던 이성준 씨 전화 맞나요?’
용기를 내어 문자를 보냈다. 망설이다 보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 것,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정말 잘하는 일인지 솔직히 두려웠다. 문자를 보냈는데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갑자기 무서웠다. 그 친구가 살아 있다는 보장도 없고 문자를 직접 볼 수 없는 상황도 있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었다. 에너지가 소모되는 바람에 현기증이 났다. 한참 있다가 다시 확인을 해 보니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눌러보았다.
‘P시가 고향인 이성준 맞는데요. 누구십니까?’
‘그곳에 살던 서정아인데 혹시 기억나세요?’
‘서정아? 기억하죠. 본인이세요?’
‘서정아입니다. 우연히 연락처를 알게 되어 문자 드렸어요. 결례가 된다면 미안합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참 오랜만입니다.’
‘많이 놀라셨다면 또 미안해요.’
‘미안하긴요, 놀라긴 좀 했습니다.’
‘저도 어렵게 용기를 낸 겁니다.’
‘세상에, 그동안 잘 지냈어요?’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 있답니다.’
‘참 꿈만 같네. 도대체 얼마만인가요?’
문자 저편에 정말로 오래전 그 친구가 있었다. 나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농담처럼 문자를 보냈다.
‘남들은 다 첫사랑을 찾아본다는데 내가 아무리 미워도 그렇게 냉정해요?’
‘싫다고 떠난 사람을 왜 찾습니까? 하하하.’
그 친구도 농담으로 대답하는 순간 50년이라는 시간이 문자를 통해 와르르 무너졌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세월의 벽이 반세기를 넘었는데.
‘내가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는 세상이니까 살아서 연락되니 반갑네요.’
‘내가 먼저 용기를 냈어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 나이에 하고 싶은 말이 남아 있을까?’
‘그러게요. 인생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몇십 년이라는 세월이 한낱 허무한 단어에 불과하네.’
‘그때 못했던 말 하고 싶어서 연락했어요. 나 웃기지요?’
‘아니, 나도 할 말은 있지요. 우린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니까 그렇다면 마지막 얼굴 한번 보면서 얘기합시다.’
‘내 모습 보면 진짜 실망할 텐데.’
‘나도 마찬가지로 세월에 찌든 노인입니다. 서로 인정하고 봐야지.’
그 친구의 갑작스런 제안에 약간 당황했다. 첫사랑 찾기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용기를 냈지만 황혼의 나이에 내 젊은 날을 기억하는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선뜻 대답을 못하고 엉뚱하게 옛날에 느낀 그 친구에 대한 칭찬을 처음으로 했다.
‘그때는 말 못했는데 친구는 참 멋진 사람이었어요.’
‘그건 다 지난 일이고 진짜 내일 한번 봅시다. 어떤 모습이든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말고 딱 두 시간만 만나서 옛날 이야기만 나눕시다.’
그 친구의 추진력은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 언제나 확실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은 옛날 마지막 다방에서 재촉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럼 그럽시다. 언제 어디서?’
‘전에 우리가 자주 갔던 종로4가 그 S다방은 없어졌더군. 가봤었지. 이왕이면 우리의 추억이 있는 곳, 파고다공원 정문 앞에서 내일 3시 정각에 만나 근처 가까운 찻집에 갑시다. 괜찮을까? 지금 사는 곳에서 거리나 시간이? 아무것도 모르니 형편을 말해줘요.’
‘난 다 돼요. 그럽시다.’
‘그럼 낼 만납시다.’
그렇게 문자가 끝났다. 머리가 둔기로 한대 얻어맞은 듯 먹먹했다. 정말 첫사랑 그 친구와 연락이 닿은 것인가 실감 나지 않았다. 이렇게 쉬운 일인데 그동안 마음에 품고만 살았을까. 아쉬움을 숨길 수 없었던 첫사랑을 이제 만나는 현실이 되었다. 만나러 가야 하는데 들뜨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얼마나 변했을까. 내 변한 모습에 실망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어떤 이미지를 주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 내려 파고다공원 쪽으로 걸어갔다. 9월이지만 더위는 여전했다. 나이 든 그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며 사람들을 살펴봤다. 정확하게 3시였다. 그때 저쪽에서 반백의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먼빛으로도 그 친구임을 알 수 있었다. 그 친구도 금방 나를 알아보고 웃으며 다가왔다. 5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굳이 누구냐고 확인할 필요도 없이 싱겁게 악수를 했다. 피차 세월의 경험이 많아서인지 손을 잡는 악수가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그가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가 다녔던 S다방은 저쪽이었지? 지금은 없어졌던데 저기 찻집으로 갈까?”
“그러지.”
나란히 추억의 종로를 걸어가면서 꿈인가 현실인가 분간이 안 되었다. 많은 세월을 자책과 아쉬움에 묻어 놓고 가끔씩 꺼내 상상을 하면서 첫사랑이었다고 기억하며 글도 많이 썼는데 실제로 이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건 순전히 나의 용기였다. 누구나 말하기를 첫사랑은 추억에 묻어 놓고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이라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 그래서 인생의 길이 바뀌었다면 담담히 돌아보고 못다 한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색한 순간이었다. 내가 초라한 느낌도 들고 공연히 만나자고 했나 싶기도 했다. 그 친구는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때 나이나 생일, 키나 몸무게를 묻지 않아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지금 보니 다부진 몸이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찻집에 들어가자 그 친구가 의자를 권한 뒤 전과 똑같이 내 의견을 묻고 완벽하게 차를 주문하는 매너가 여전했다. 옛날 생각이 났다. 커피를 마시며 내가 먼저 말했다.
“친구, 많이 놀랐지? 이렇게 만나 반가워. 말은 전처럼 놓을까? 어차피 50년 전 만남이니까. 그때로 돌아가서 못했던 이야기 나누고 싶어 연락을 했어.”
“반갑다. 이렇게 살아서 만나다니 고맙지.”
“남은 인생 진솔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제 시간이 없잖아.”
“그나저나 잘 살아오긴 한 거야?”
“그냥, 친구도 잘 살았으리라 언제나 생각했어.”
눈이 마주치자 서로에 대한 실망보다 감정을 초월한 성숙한 연륜이 보였다. 그때 매력처럼 보였던 이마의 주름이 더 진하게 드러났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차를 마시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이건 죽기 전에 꼭 묻고 싶었어. 우리 마지막 날, 내가 여행 가자는 걸 거절했던 것이 그렇게 불쾌했었나? 마지막이라고 경고할 만큼?”
“그렇게 궁금했었나? 물론 날 믿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섭섭했지.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통보했지만 곧바로 후회는 했지.”
“친구가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걸 봤지만 난 그냥 버스를 타고 갔어.”
“그랬구나. 그렇게 뛰쳐나온 걸 후회하고 되돌아갔는데 없더라고.”
“다 친구를 위해서 그랬어. 나의 구차한 형편을 말하기 싫어서.”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용서하기 힘들었어.”
“내 형편이 정말 어려웠거든.”
“그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지. 친구가 워낙 밝아서.”
“나를 떠나는 순간 친구는 미래의 행운을 얻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건 억측이고.”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속상했다면 잊어버려. 난 언제나 첫사랑이라면 친구를 떠올리며 글도 많이 썼어. 살아가면서 힘이 들면 옛날 이야기를 기억하며 우정이나 사랑, 동경이나 그리움을 생각했어. 최근 꿈을 꾸었는데 친구가 나타나 내가 반갑다고 불렀는데 모른 척하는 거야. 그때 알았어. 어쩌면 친구에게 나는 원망의 대상일 수 있겠다는 것을. 너무 슬펐어. 첫사랑의 막연한 꿈은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에 갑자기 친구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 적어도 누구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슬프거든.”
“그때 섭섭한 건 사실이었고 매정하게 마음을 정리했지만 원망까진 아니었어. 난들 어떻게 쉽게 잊었겠나.”
“순수했던 그때였지. 생각해보면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이 아니었을까….”
“난 결혼까지도 생각한 것 같아. 참 무모하지? 능력도 없었는데…, 하하.”
“그래서 더 멀어졌지. 친구로 생각했다면 좀 더 오래 갈 수도 있었는데 감당이 안 되니까.”
“이렇게 회상하니까 후련하고 족쇄가 풀리는 것 같다.”
“그땐 표현을 아끼면서 생각만 했지. 지금 같았으면 그때그때 상황을 표현했을 거야. 당시 정서가 마음을 드러내는 게 참 서툴렀어. 상대의 마음을 정확하게 알기나 했는지. 친구가 부족한 나에게 잘해줬을 때도 사실 두려웠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맹목적인 돌진에.”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윤동주 시집은 기억하나?”
“지금도 가지고 있어, 빛바래고 낡았지만.”
“추억은 많지. 군밤도, 내 깎인 머리도, 버스도.”
“친구는 그때도 당차고 멋졌지. 어렸지만 리더십도 있고.”
“늦게 칭찬해 주는 건가? 그렇다면 그때 날 잡아줬어야지 친구야.”
“그래서 후회했다고 했잖아. 오래 추억하고.”
“하하, 섭섭한 점도 있었는데 이제 다 풀렸네.”
“이제 완전히 화해한 거 맞지?”
“고백하자면 내게 친구는 모든 게 처음이었어. 하지만 옹졸한 자존심 때문에 찾아볼 생각을 못했어. 그런데 이렇게 용기를 내줘서 고마워. 못난 나보다 친구가 멋지다.”
“그때는 인연이 아니라고, 미래를 위해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어. 내 형편에 자신이 있었다면 사과하고 오해를 풀었겠지. 귀한 집에서 자란 친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열악한 내 환경이었어. 친구가 기억하고 있는 잘살던 내가 아니었어. 몰랐지? 숨기고 싶고 말하기 싫은 내 아킬레스.”
“형편이 기운 건 짐작했지만 그렇게 힘든 줄은 몰랐지. 나한테 말했다면 다른 방법도 찾았을 텐데 내가 의지할 만한 사람은 못 되었나 봐.”
“그건 우리 둘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근본적인 것이었어. 그랬던 나를 지금이라도 이해해주면 고맙겠네.”
“알았어. 이제야 친구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것 같네.”
“내가 첫사랑 찾기는 성공했구나. 사실 노추해서 망설였는데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 좌우명이야. 그래서 뭐든 도전하고 있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반반의 확률이잖아.”
“예나 지금이나 친구는 충분히 멋져. 자격이 넘치고 자랑스럽네.” 
“정말이지? 실망했더라도 좋게 기억해 줘. 근데 한 가지만 더 묻자. 언덕 위에 하얀 집 지어준다고 한 것은 기억나?”
“하하하, 내가 그랬었지? 빈말은 아니었는데 약속은 못 지켰네. 미안해. 첫사랑 왕관을 쓰고 멋지게 나타나지 못해서.”
“나는 사실 언젠가는 그 하얀 집을 꼭 지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거든. 친구에 대한 믿음이 있었나 봐. 근데 지금 옛날 모습 그대로를 보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정확하게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약속한 두 시간이 되었네. 약속은 지켜야지. 타임머신을 타야 하니까.”
“그래? 아쉽지만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네. 그렇다면 타야지. 남아 있는 시간의 현실로.”
“친구야, 내 기억을 풍성하게 해줘서 고마워. 죽음까지 가져갈게. 안녕.”
“그래. 친구도 지금처럼 도전하며 당당하게 잘 살아.”
우리는 짧게 다시 악수를 하고 찻집을 나와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지도 않고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아쉬움에 뒤를 돌아볼 수 있었지만 피차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문득 종로3가 로터리에서 성큼성큼 화가 나서 걸어가던 그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그때 잡지 않았듯 50년 만에 만난 그 친구의 뒷모습도 해후의 감동으로 남겨 놓았다. 눈가를 촉촉하게 적시는 것이 무엇이든 가슴이 아려서 닦지 않았다. 세월을 타고 왔다가 세월을 타고 가는 그 친구 여운이 안개처럼 자욱했다.
기억 속의 친구는 온전한 추억이었다. 잔잔한 말소리와 온화한 미소. 밤길을 방황하던 젊음, 술에 취해 걷던 길목, 늦은 밤 버스정류장의 아쉬운 작별, 손만 잡고 밤을 새우던 풋풋한 청춘, 찻집에서 음악을 신청해 놓고 기다리던 철두철미한 그의 노력, 그 친구는 작은 거인이었다.

 

첫사랑 찾기는 성공했지만 그 후유증은 오래 지속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에 빠져 있는데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래도 아들의 밝은 목소리가 조금 위로가 되었다.
“그 번호 중에 첫사랑은 있었어?”
“처음 누른 번호가 바로 그 친구였어.”
“첫사랑은 잘 계시던가? 혹시 만나기도 했어?”
“며칠 전 옛날에 자주 만났던 추억의 종로에서 만났어. 정말 살아 있더라.”
“진짜 대단하셔. 만남의 솔직한 심정은?”
“어떻게 너한테 복잡한 감회를 말하겠니. 이건 엄마의 프라이버시야.”
“더 이상 묻지 않을게. 실망을 했다거나, 실망을 주었다거나 고민하지 마.”
“내가 원한 건 그런 것보다 나만의 생각이 있었어.”
“엄마의 그런 용기가 좋아.”
“여러 가지 생각 많이 했다. 첫사랑 찾기는 무엇인지.”
“아무나 그런 용기를 내지 못해. 간절하게 찾고 싶은 무엇이 두려워서. 엄마가 찾고 싶던 첫사랑을 찾아 느낀 것은 엄마 몫이고 책임이야. 기쁨이든 슬픔이든.”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삶이 내 뜻과 다르게 진행되고 좌절에 부딪칠 때마다 막연히 떠오르는 첫사랑이었다. 첫사랑은 순수하며 미래에 대한 상처가 없어 좋은 기억만 남아 그 친구를 보고 싶었던 것도 내 이기심이었다.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기억하든 상관이 없는데 티끌만한 자존심은 나쁘게 기억되는 게 싫어 사과하고 싶었던 것도 내 욕심이었다. 그래도 내 버킷리스트에 동참해준 그 친구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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