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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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자를 만났다. 유명하지 않은 이곳 지역신문인데, 거의 혼자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그런다고 기자가 말했다. 그 기자 그야말로 제멋대로였다. 취재원을 앉혀 놓고도 장난하듯 대했다. 묻는 것도 두서없다. 카톡을 보며 문자 대화를 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 질문을 했는데, 홍 기자라는 여자는 엉뚱하다 싶은 것을 물었다.
“혹시 심심하지 않으세요?”
“의사가 심심해요?”
너무 의외라 되물었었다.
“지금 기자와 얘기를 하고 있는 중 아닌가요.”
“지금 말고요, 병원 끝난 그 이후 말예요. 그 다음 심심하지 않냐는 거예요.”
정말 뜬금없는 질문이다. 오후 6시 그 다음 시간들. 의사 박정규는 병원 진료가 끝난 그 이후를 생각해봤다. 그러자 병원 사무장이 떠올랐다.
지난번 군수 선거에서 떨어진 정치인이었는데, 선거 때 표를 얻기 위해 필요하다며 우리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병원 일이 끝나면 그는 병원을 청소하고 혹시 가실 곳이 어디냐고 물어 자연스럽게 그를 태우고 동행을 했다. 시골에 온 후 혼자 사는 박정규 의사는 퇴근 후 지역구석 소문난 음식점을 찾아가 술 한잔과 저녁을 먹는 게 정해진 일과였다. 어느 날부터 사무장을 불러 저녁을 같이 먹었다. 사무장은 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 화제를 잘 찾아내고 상대가 끼어들 수 있도록 적당한 대목에서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분위기를 끌어가는 재주가 있었다. 이날 사무장은 잘 구워진 삼겹살을 상추에 싸고 마늘을 얹어 쌈을 만들어 박정규 의사에게 건넸다. 쌈을 받자 질문했다.
“원장선생님,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이 없다지요?”
“예, 환자들의 병은 대부분 그 사람의 식습관과 관련이 있지요.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사무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마치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의사의 말에 반응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지요? 우리 사무장도 말 못 하는 병이 있나요?”
사무장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야 군수 병 든 것이지요. 군수 되기 전까지는 안 죽을 병이고, 군수 되면 낫는 병이고, 그런 병 앓고 있는 것 그런 병이니 약이 군수지요.”
“그럼 병을 앓고 있는 누군가 있군요? 그게 누구죠?”
그러자 그 저녁 자리에서 사무장이 의견을 냈다.
“원장선생님! 하루를 늘 이렇게 보내는 것은 원장님을 위해 별로인 것 같아서요. 시골에 와서 헌신하시는 건 대단한 정신인데, 우리 환자들에게 최고의 진료를 제공하는 의사가 되면 더 좋겠다 생각해 봤어요.”
뭔가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박정규는 정색을 하고 귀를 모았다.
“우리 병원 환자들 중 같은 병을 뚝 낫지 않아 질질 오래 앓고 있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환자들이 먹고사는 것과 병의 관계를 알아내 식이 요법, 환경 요법으로 근원 치료를 병행하는 병원을 만들면 참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요.”
그 얘기가 들려왔을 때 박정규 의사는 사무장을 새롭게 봤다. 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오지인 산골마을에는 거의 노인들만 산다. 자식들은 도시에서 잘 산다는데 두 노인들만 살거나 한쪽이 죽어 혼자 사는 독거 노인들이 많다. 이 노인들이 우리 병원 환자들이었다. 사람에게 먹는 것과 병은 동일한 운명이다.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치료하기 어렵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의대 1학년 때 배웠다. 그걸 사무장이 인용해 의사 박정규의 밤 시간을 만들게 한 것이다. 지역 주민 거의 모두를 진료하는 유일한 의사가 환자들이 무엇을 주로 먹고 어떻게 사는지를 알지도 못한 채 병을 다루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사무장은 주장했다. 이렇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구나, 사무장의 제안을 들으며 박정규는 관심을 가졌다.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요?”
“카드 보시고 원장님이 환자를 골라 주세요. 그러면 나머지는 제가 준비하는 걸로 하면 쉽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의견에 동의했다. 사무장이 차트 정리, 박정규 의사가 선택, 사무장이 준비, 그리고 병원 마치면 박정규 의사는 외래 진료 가듯 왕진 가방을 들고 병원을 나섰다. 그게 매일의 퇴근이었다. 환자들이 살고 있는 시골집 환경들은 매일 새로움이었다. 환자들의 얘기 속에 파묻혀서 늦게까지 시간을 보냈다. 피곤하고 매일 지쳤다. 마침내 인터뷰 질문 대답이 떠올랐다.
“병원 끝난 후 내 시간이 궁금하다 물으신 거죠? 6시 병원 퇴근하면 나는 환자 가정 방문을 합니다. 우리 병원에 처음 온 환자, 오랫동안 같은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찾아 환자 집에서 환자와 저녁 먹기를 하고 그 다음엔 마을 어른들 의료 상담도 하지요. 그것이 저의 저녁 프로그램입니다. 1주일 내내 밤 11시쯤 집에 돌아오죠. 시간에 쫓겨 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진료 말고는 다른 경험이 없네요.”
지금까지 거의 건성인 것 같던 기자가 정색하며 의사를 쳐다보았다.
“뭐요! 하루 종일 환자를 보셨는데 또 환자요? 이번엔 환자들 가정으로 찾아가 환자들을 살핀다 이거잖아요.”
“맞아요. 환자들 찾아가서 환자들과 밥 같이 먹어 주며 병 얘기하는 것 맞아요.”
“완전히 미쳤군, 멀쩡한 전문의가 이 오지에서 병원을 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닐 거라 생각은 했지만 진짜 미친놈이야.”
“뭐요! 미친놈!”
정색을 하며 박정규 의사가 말을 받았다.
“환자들 치료하는 데 정말 미친 열정을 가진 의사라는 뜻의 미친놈이니 너무 화내지 마세요. 그리고 그거 말예요, 가짜 아닌지 오늘 퇴근 후 제가 동행해도 되겠죠! 저 유튜버니까 가짜면 아주 망할 수 있으니 지금 자수하셔야 합니다.”
허어 이 여자 맹랑하네, 그런 눈으로 박정규는 기자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취재하기로 정한 상대를 기자는 사냥감을 문 진돗개처럼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카메라를 켠 기자는 하루 종일 병원의 자연 같았다. 구석에 서 있는 기둥 같은 느낌이었다. 말 없지만 카메라를 돌리고 있었고 환자들과 대화를 녹음했다.
우리 병원은 새벽부터 노인들이 문 앞 계단에 앉아서 개원 시간을 기다렸다. 병원 주변 마을의 할머니들이었는데, 그분들은 병원이 개원하면 우루루 들어와 몸살 진찰을 받고 침대 하나 차지하고 비타민 C 앰플을 탄 링거를 맞는 것이 일상인 할머니 부대였다. 이 부대 다음부터가 진짜 몸이 안 좋아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다. 혈압, 당뇨 환자들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은 팔다리, 허리가 아파 오는 근골 관계 환자, 감기, 몸살, 위장병, 소변이 불편에 오는 할아버지들, 그리고 끊어지지 않는 기침 때문에 가래가 그렁그렁해 가슴을 치며 오는 노인들이 있었다. 박정규 의사는 이비인후과 전문의였지만, 이 산골의 하나뿐인 병원이라는 특성상 전문 과목과 관계없이 만병을 다 진료하는 의사가 되어야 했다. 병원 이름도 우리의 병을 모두 다 치료한다는 우리연합의원이었다. 그리고 이 지역 사는 사람은 다 우리연합의원의 고객이었다. 그런 그를 지방 신문 기자가 인터뷰한다며 하루 내내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침에 노인 환자들이 줄을 서 있는 걸 봤어요. 이런 정도 병원의 하루 진료 환자가 몇 명쯤 될까요?”
병원 진료가 끝날 때 동영상을 찍던 기자가 물었다.
“한 번도 숫자를 세 본 일이 없네요. 아마 한 백 명 안 봤을까 생각하며 끝내요. 그날 몇 명이 됐든 무조건 나는 환자들을 진료하면 정말 즐겁거든요.”
“그러니까 환자 보는 기계, 그런 거네요. 오늘 진료하는 거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좀 지쳤는데, 원장선생께서는 또 밤에 환자 가정 방문까지 하는 거잖아요. 이게 가능한 얘기일까. 더 믿음이 안 가는 얘기예요.”
사무장이 기자를 돌아보며 머리를 끄덕이며 허탈하게 웃었다.
길을 떠나기 전 사무장은 마트에 들러 주문해 놓은 채소를 샀다. 일행은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할 때 구름마을 박정순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다. 곰삭은 나무 대문이 틀어진 채 비스듬히 열려 있었다. 오후에 책상 위에 올려온 기록표를 읽었다. 오늘 처음 병원에 온 85세 할머니였다. 키가 좀 컸는데 구부정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뭘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고 위가 그득하고 쓰리고 아프고 쓴물이 넘어오기도 하고 평소에 배가 차고 머리도 아프고 밥을 먹기 싫고 등 병증을 말하고 진찰을 받았었다. 초음파를 찍어 보니 만성 위염이었다.
“크게 걱정하지 마 할머니, 오래된 위병이야. 위장약 며칠 먹으면 나아.”
그가 말했다. 의사의 그 말이면 안도하고 일어나야 정상인데, 할머니는 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거 젊었을 때부터 고생한 병이여! 그런데 왜 병원에서는 위가 헌 것이니 약 먹으면 낫는다고 쉽게 말하는지 모르겠네. 난 힘들어 죽것당게.”
“할머니는 걱정이 많아서 그래. 그 걱정이 위에 쌓여서 고질적인 염증이 생긴 건데 오래된 위염이여. 이거 옛날 엄마들은 가슴애피라고 했어. 잘 안 낫고 고생 많이 하는 병이여.”
생뚱맞게 가슴애피라는 말이 왜 떠올랐을까? 박정규 의사는 할머니의 명치를 촉진하다, 엄마의 배를 떠올렸다. 무엇인가 뭉쳐 있는 딱딱한 덩어리가 명치에서 손가락과 맞서려는 듯 얇은 벽처럼 느껴졌다. 배가 찼다. 어떻게 여기에 이런 멍울 같은 것이 있을까? 그가 가만히 손을 얹은 채 엄마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봤었다.
“가슴속에 화가 쌓이고 쌓여서 생긴 거란다. 소화도 안 되고 속이 쓰리고 뒤틀리고 가슴이 너무 까갑허다. 숨 쉬기도 부담스럽게 가슴에 한 짐 뭐를 올려놓은 것 같혀.”
그게 고질병 가슴애피였다. 엄마는 생각을 안으로 품고 사는 사람이었다. 말이 많지 않은 엄마는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걸 가슴에 집어넣고 가슴으로 싸웠다. 대가집 장손 가정이었으나 형제들만 많았지 일제를 거치면서 재산은 논 30여 마지기가 전부였다. 뼈대 있는 명문가의 자식이라고 아버지는 정치를 한다고 선거마다 출마하며 돈을 탕진하고 돌아다녔다. 사교라며 술에 취해 있었고, 많은 여자들과 얽히고설키는 소문을 뿌렸다. 그 소문이 들려오면 엄마는 새파랗게 병을 앓았다. 아무 말도 없이 입을 꾹 닫고 버텼으나 밤에는 끙끙 신음 소리를 내며 앓았다. 그때부터 엄마의 가슴애피는 시작되었을 터였다.
나는 그것을 ‘가슴애피’라고 불렀다. 엄마는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자다가도 일어나 엄마는 아파하며 잠 못 이루셨다. 그때마다 엄마는 따뜻한 물을 데우고, 장독대 뒤에 심어서 기른 앵속 대궁을 물에 우려서 그 물을 마셨다. 일시적으로 아픈 통증을 다스렸지만 엄마는 그래도 명치가 아프고 또 아팠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엄마의 병은 어떻게 해서 고칠 수가 있었을까. 엄마의 병을 낫게 해 드리고 싶어 나는 초등학교 시절 의사가 된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이 할머니도 그 가슴앓이다. 원인은 가슴에 안고 풀지 못하고 매만지고 있는 분노, 원망 때문이다. 그걸 붙잡지 말고 풀어놔야 치료가 되지 않을까. 곱게 늙은 할머니, 속은 썩어 문드러지게 차곡차곡 화를 쌓아둔 모양이다.
“우리 할머니는 뭐가 이렇게 화가 나는 게 많아. 보기 싫은 웬수가 있으신가? 그 화를 풀어버려야 아픈 것을 고칠 텐데. 명치에 뭉친 이 덩어리 좀 봐. 할머니, 이게 할머니의 스트레스라는 거거든. 화 덩어리. 답답하고 아리게 하는 깊은 배 아픔.”
“죽을병이 든 거여?”
“나으려면 많이 애써야 하지만, 죽을병은 아니니 함께 고쳐봐야죠. 음, 할머니 밤에 잠은 어때, 잘 주무셔?”
“아니, 걱정하는 것이 많응께 거의 잠을 못 자지. 별로 잠도 안 오고 그려.”
박정규 의사는 머리를 끄덕였다. 가슴이 큰 짐에 눌려 있는 것 같고 배는 더부룩하고 신물도 자주 올라오고, 그때마다 속도 쓰릴 텐데 그 상황에서 잠을 제대로 잔다면 비정상일 터였다.
“잠부터 편히 자고 걱정을 없애야 병을 고칠 수 있어. 할머니 집에 상추 심었지. 상추 대궁 올라오게 키워서 작게 썰어 햇볕에 말려 둬요. 오늘부터 당장 상추 뜯어다 뜨거운 물 부어서 차를 만들어 마시세요. 그럼 잠을 좀 잘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내일 모레쯤 우리 병원에 한번 오셔야겠어. 그럼 내가 약을 준비해서 줄게. 할머니 병은 먹는 걸로 고쳐야 해. 병원 약은 아픈 것 잠깐잠깐 멈추게는 하지만 오래된 가슴애피를 치료하긴 어려워. 병원 말로 하면 이 병은 담적이여. 스트레스가 떡시루처럼 명치에 층층이 굳은살을 만들어 생긴 것이여. 수술로 긁어낼 병은 아니여. 병을 앓은 세월만큼 꾸준히 시간을 갖고 마음부터 치료하며 음식으로 고쳐야 해. 할머니는 오늘부터 알려준 대로 먹고 살아야 병을 고칠 수 있어. 할 수 있겠죠!”
“해 봐야지. 의사 양반이 이렇게 우리 집까지 찾아와 고쳐주겠다고 허는디.”
사무장이 저녁을 준비한다고 싱크대에서 이것저것을 찾았다. 퇴근하면서 마트에서 민들레와 쑥을 샀다. 할머니는 사무장 옆에 붙어서 자신이 도울 일을 물었다.
“혼자 먹는 시늉만 하고 살아. 저녁엔 라면 하나 볼볼 끓여서 먹다 남으면 버리면 돼.”
“이제 라면 먹으면 안 돼. 우리 선생님이 먹는 거로 할머니 병 고쳐야 한다고 했죠. 매끼 시간 정해 밥이나 죽을 꼭 먹어야 해요. 요즘 쑥 많으니 쑥된장국 끓여 먹고. 밭에서 노랑 민들레라도 캐서 겉절이 해 먹어요. 할머니가 기운이 있으면 산에서 삽취 캐서 그거 달여 먹으면 가장 좋은디 할머니는 산에 못 가시지? 아마 우리 선생님이 뭔가 해 주지 않을까 싶어.”
할머니가 된장을 찾아 내놨다. 사무장은 할머니와 같이 텃밭을 다녀왔고, 한참 커 버린 상추대와 연한 뽕나무순을 작은 바구니에 따 가지고 왔다. 그 식재료로 할머니와 같이 찌고 밥을 하며 쌀 위에 뚝뚝 민들레잎을 잘라서 얹어 밥을 지었다. 살짝 쪄낸 뽕잎을 거기에 섞은 밥은 된장으로 비벼 밥그릇에 나누어 담았다. 민들레잎에서 쓴물이 배어 쌉소롬한 맛과 쌀의 묵직한 구수함이 조화를 이루며 은근히 맛이 있었다. 뽕잎을 더하고 된장을 더해 비빈 비빔밥은 좀 미끄러웠고 누에 냄새가 났다.
저녁을 먹고 박정규 의사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상추 대궁을 잘라서 대접에 담고 전기주전자로 물을 끓여 내 뜨거운 물에 30여 분 우려냈다. 그 물을 상추차라 했고 물컵에 한 잔씩 따라 주었다. 상추 대궁에서 우러난 상추의 쌉소롬한 맛이 나쁘지 않게 입안을 적셨다.
“할머니는 매일 자기 전에 상추차를 이렇게 마시고 자요. 그럼 속이 편해지고 잠도 좀 잘 수 있을 거여. 잠이 편해지면 속도 점차 좋아져. 이렇게 서서히 치료하면 나을 수 있어. 자 할머니, 이렇게 한다고 나랑 약속해.”
박정규 의사는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 할머니는 머쓱한 웃음을 짓고 자신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걸어 의사의 청을 받았다.
어두웠다. 집을 나서며 홍 기자가 말했다.
“미쳤다. 이런 일에 하루를 바치는 것은 미친 사람 아니면 못해. 그거야, 내가 사는 시골에는 노인들의 병 고치기에 미친 두 의료진이 있다.”
홍 기자는 마이크에 자신의 멘트를 담아 넣었다. 홍 기자는 낮부터 유튜브 동영상 촬영에 진심을 다하고 있었다.
유튜브에 깡촌의 미친 의사가 떴다. 한낮, 환자를 한참 진료하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음이 몇 차례 계속됐다. 계속 반복해서 책상 위에서 동체를 흔들어 대는 게 신경 쓰여서 슬쩍 발신자를 봤다. 오랫만에 의대 동기 이필호다. 어쩌다 전화를 주고받는 몇 안 되는 도시 의사였다.
“바쁜 시간일 텐데 어떻게 전화를 하셨어? 무슨 일 있는 거야?”
“어라, 이 친구 모르고 있나 보네. 너 유튜브에 굉장하게 떴더라. 우리 간호사들이 유튜브에서 보고 내게 보내 줘서 봤다. 얼마나 열심히 환자를 봐서 미친 의사라는 칭호를 얻은 거야? 환자가 없어서 그런 거냐, 아니면 병원 홍보차 만든 거면 서울로 올라와라. 유능한 의사 선생께서 왜 깡촌에서 고생을 하시나.”
“난 환자가 많아 복 터진 의사인데 환자 얘기가 왜 나와?”
“늦은 밤까지 시골 마을서 환자와 시간 보내는 것 보고 감동했다만 내 친구여서 가슴 찢어지게 아팠다.”
“너 왜 그래! 좋은 의사 한번 되려고 노력한 건데 왜 그게 친구를 아프게 했을까. 여기 환자 정말 너무 많다. 하루에 100명 이상씩 환자를 볼 거다. 나 혼자는 감당이 힘들어 너무 정신없이 환자를 본다. 그래서 낮에 못 헤아려 준 마음의 병을 좀 봐 주려고 퇴근 후 환자 가정 방문을 하고 있는 건데 그게 안 돼 보이니?”
“어휴, 우리 친구 정말 존경스럽구나. 그렇게 진료하면 몸이 어떻게 버티니. 네가 그렇게 환자 중심으로 사는 것은 아마도 식구가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제발 시골서 그러고 버티지 말고 서울로 당장 와라. 너 대단한 놈이잖아. 너 정말 그렇게 시골에서 버티는 이유가 뭐냐?”
“친구가 오늘 뭘 보고 이러신지 궁금하니 그 동영상이란 거 내게도 보내 봐라. 한참 환자 보는 시간이라 들여다볼 시간은 없지만 보고 나서 얘기하자.”
그렇게 전화 끝내고 박 사무장을 불렀다.
“우리 얘기가 유튜브에 떴다네요. 어떻게 나왔는지 살펴보세요.”
휴대폰이 자주 울었다.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의대 동기들이었다.
“어떻게 된 놈이 이런 식으로 나타나냐. 우리가 찾았는데 너는 그런 곳에서 숨어 있었고,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었던 거야. 특별한 네가 오지 의사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네가 얼마나 대단한 놈인데, 우리들의 영웅!”
유튜브에서 <깡촌의 미친 의사>가 화제가 됐을 때 처음 의사들은 피식 웃었단다. 젊은 놈이 얼마나 실력이 없으면 시골에서 환자들과 같이 저녁 먹으면서 매달릴까. 한심한 의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간호사들이 매력 있는 의사라고 우리 선생님도 한번 보라고 추천을 해서 “뭘 가지고 그렇게 빠져든 거야” 하고 점심시간에 간호사들이 열어 준 동영상을 휴대폰으로 보게 됐단다.
“주인공이 유명한 너라서 정말 놀랐다. 기절하듯 의대 동기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한꺼번에 우리들의 영웅을 찾았다며 난리지 뭐냐. 서울로 네가 올래, 우리가 쳐들어갈까?”
훅 한 주먹을 날리듯 친구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에게는 대양의대에서 같이 공부했던 동기 의사들이 있었다. 이런저런 동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푸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졸업식 때 총장상을 받았다. “우리의 자존심”이라고 동기들은 그를 말했다. 총장은 “우리가 올해 배출한 최고의 인재 박정규”라고 시상하며 소개했다. 그의 학창 시절은 빛났다. 의대 시절, 대학원 시절, 그리고 일반의가 되어 수련의(인턴)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공의가 됐고, 3년 정도 한정상 교수 문하에서 이비인후과 임상 수련을 받았다. 전문의 자격시험을 보고 뛰어난 성적으로 전문의 자격증을 받았고 마침내 그는 전문의로 대양대학 이비인후과 진료 의사가 될 차례였다. 그런 시작점에 그는 자신의 인턴 때부터 전공의 때까지 야근한 모든 시간 외 급료를 계산해 달라고 병원에 급료 정산을 제기했다.
허어, 대양병원 재단이 픽 웃고 이비인후과 지도 교수에게 경고를 내려 보냈다. 교수가 그에게 말했다.
“야 박정규, 너 돌았니? 수련의들이 시간 외 근무가 어디 있어? 수련의 근무를 근무라고 쳐 주기나 하는 것이 병원이냔 말이다. 인턴을 사람 취급하는 줄 아니? 의사 되려고 병원에 목매고 따라다니며 배우는 병원 머슴이라 생각하는 거 몰라서 시간 외 수당 계산하라고 청구서 내민 거냔 말이다. 이제 너는 대양대학 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의사를 할 사람인데 병원하고 싸움을 거니. 그렇게 하면 너 의사 잘린다.”
한정상 교수는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돈이 필요해서 제가 병원 측에 시간 외 수당 청구서를 냈다고 보십니까? 앞으로 후배 의사들이 대접받지 못한 상황에서 혹사당하는 것 고쳐 놔야 한다고 생각해 먼저 대양병원에 저와 관련된 시간 외 수당 정산하라고 요구한 겁니다. 이게 해결되면 모든 대학병원에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들의 당직과 관련된 시간 외 수당 청구소(請求訴)를 법률 차원으로 제기해서 앞으로는 정상적인 대가를 받으며 수련의를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싶어 소송을 한 겁니다.”
“뭐야?”
한정상 교수가 제자를 건너다보았다.
“네가 특별하게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런 머리를 가졌기에 전문의 과정을 하면서 너는 귀와 치매의 관계를 연구해 치매 예방 치료제 연구라는 이론을 세운 것 아니냐? 그건 비상한 거다. 베스트 제약 신약 개발부가 관심을 갖고 나와 신약 개발 연구 협약을 맺으려 한 것 보통 일이겠냐? 그런 머리를 가진 너라서 나는 너를 아낀다. 앞길이 보장된 네가 학교와 싸우면 너 죽는다.”
그의 달팽이관 연구와 치매의 상관관계 이론으로 학교는 매년 몇 억씩 연구비 지원을 받는 산학 연구 협력 의대가 됐다. 그래서 박정규는 대양의대 교수가 될 것이라고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길을 가기 위해 의사가 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냥 자기 길을 가고 싶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는 인턴 시절, 그리고 전공의를 이수하고 전문의 과정을 밟으면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매일을 살았다. 인턴 때부터 그들은 병원의 밥이었다. 병원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밤에도 환자들은 있고, 대학병원은 밤에 응급실이 더 요란하고 바빴다. 그 밤을 전문의들과 인턴들로 운영을 했다. 인턴 때는 거의 매일 당직이었다.
“하루 두 시간만 자야 의사가 된다. 세 시간 자면 3년은 전문의고시에서 헤맬 거야.”
물론 농이었지만 허구헌날 해야 하는 당직 때문에 잠을 잘 시간이 없었다. 걸으면서도 눈을 감았고, 주사기를 들고서도 문득 졸았다. 그렇게 죽음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며 당직을 서지만 월급은 딱 정해진 것이 전부였다. 죽어라 일해도 왜 월급에는 반영이 안 되지, 쉿, 선배들은 입술에 손을 댔다. 교수들과 병원 측에서 그런 소리 들으면 병원에서 당장 잘린다고 주의를 줬다. 그렇게 눈치를 보며 의료 교습 시절을 마쳤다.
지도교수의 경고대로 병원은 태풍이 되어 반응했다. 시간 외 수당 정산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요구하자 병원에서 사퇴를 시켰다. 네 능력대로 해 보라고 대화도 거부했다. 박정규는 이때부터 혼자가 됐다. 시간 외 수당 문제는 그동안 모두가 불평했지만 병원과 싸움을 걸고 일이 커지자 동기들 모두 그리고 불평을 얘기했던 의사들 모두 어느 한 사람 말을 걸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가 병원 측으로부터 출입할 수 없게 처리되고 하얀 가운을 벗고 병원을 나섰을 때 유리창 너머로 그를 지켜보기만 했을 것이다. 박정규는 친구나, 선배, 교수나 아는 누구와도 더 이상 얘기할 편이 없었다. 그는 정식으로 법원에 시간 외 근무 수당 정산 요구에 관한 소를 제기했다. 그리고 의료계의 시간 외 근무 수당 정산에 관한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사가 필요했다. 병원 측이 내세운 변호사는 유능한 분이었다.
고약하게도 병원과 인턴, 레지던트, 전문의 과정자 누구와도 임금 계약 같은 것을 체결한 적이 없었다. 그냥 학생 같았고, 관례에 의거 병원에서 정한 액수를 주고받았다. 근로 계약서가 부재한 사이니 그냥 얼버무리기에 마땅했다. 사건이 터지자 없는 것을 맞춰야 하는 양측의 주장은 처음부터 맞섰다. 병원은 강자였다. 병원이 그렇게 임금을 정했다 해서 거기에 불평을 말한 일반의나 수련의는 그동안 한 사람도 없었다. 문제없던 임금 문제에 시비를 걸고 병원을 법정에 세운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모든 병원들은 한순간에 한 편이 되었다. 대학병원들은 동맹한 것처럼 그에게 벽을 치고 거부했다. 누가 그렇게 교육한 적은 없지만 대학병원들은 박정규를 의료계의 부랑아로 정리해 버렸다. 그와 가깝다면 그 사람까지 가려내겠다는 눈치였다. 모교 병원에서는 접근 금지가 쳐졌다. 다른 병원들도 접근 금지가 동시에 시행되었다. 동기들은 의사로 살아남기 위해 박정규에게 등을 돌린 것을 확실히 해야만 했다. 선배들도 박정규를 불편해하며 얼굴을 피해 갔다. 지도교수는 차갑게 외면했다. 인턴 과정을 밟고 있던 여자 친구는 연락을 끊고 그를 버렸다.
“나라도 의사로 살아야 할 것 아니에요!”
그의 휴대폰에 그녀가 넣어 놓은 마지막 메시지였다.
“옳아!”
그는 그렇게 답을 했다. 그때부터 그는 혼자 싸웠다. 돈 없는 그는 근로 관계법을 배워 가며 막강한 상대편 변호사들과 다퉜다. 병원 측은 수련의들은 의료 기술을 수련하는 학생이라고 주장했다. 인턴부터는 학생이 아니고 환자를 보는 직업 의사라고 그는 맞섰다. 인턴은 학생인가, 의사인가라고 변호사와 다퉜다. 인턴이란 의과대학 졸업 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취득한 사람으로 병원을 개업해 환자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병원에 취업한 의사 초년생들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학생이 아닌 의사 면허를 가진 의사라는 사실에 의료 근로자로 인정을 받았다. 대한민국 모든 고용 관계에는 근로 관계법 하에 운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 의료 근로자는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는 판결을 얻어 냈다.
박정규는 그때부터 의료인들 사이에서 승리의 이름이 됐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그의 앞길은 그냥 캄캄한 절벽이 막아서 있었다. 2천 몇 백만 원 연장 근로 수당을 근무 시간을 따져 정산한 것을 수령했다. 싸늘한 눈으로 그에게 돈을 건네며 병원장은 말했다.
“자신의 미래보다 돈을 택하다니, 좋은 인재였는데 스스로 쓰레기가 됐어 안타깝게도.”
가시 돋힌 말이 등짝을 때렸다.
“감사합니다. 저는 서울을 떠나겠습니다.”
박정규는 인사하고 물러나왔다.
어쩌다 그곳이냐? 하고 이필호 박사가 물었었다. 어쩌다 그런 오지냐고, 그때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서울을 떠나 어머니에게 갔었다. 어머니는 늙어 있었다. 그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좀 쉬려 했지만 자식의 눈치를 살피는 어머니를 근심시키기 싫었다. 그래서 정산 받은 연장 수당을 모두 어머니에게 내놓고 집을 떠났다. 생각 없이 일반버스를 타고 끝에서 끝까지 다니다가 눈에 들어오는 마음이 이는 풍경이 있으면 내려서 그 지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장천에서 산다고 촌놈 의사라며 자신을 소개했던 총동창회 때 만난 노선배를 떠올렸다. 얼마나 이상해서 그 선배는 “깡촌 지킴이 의사”라고 자신을 말했을까 그게 왜 궁금한지 떠올랐다. 그렇게 장천을 찾았다. 산첩첩 골짜기 깊은 수려한 시골이었다. 물이 구불구불 지역을 맴돌 듯 흐르고 있었다. 그 선배의 말대로 선배가 운영하는 의원 딱 하나, 그리고 약국이 하나 그렇게 한적한 지역이었다.
선배의 의원은 우리연합의원이었다. 단층 슬라브 건물에 사각반듯한 간판이 달려 있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대기실에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순서를 기다리며 무슨 말인가를 근심스럽게 나누기도 했다. 박정규는 벽면에 붙여 놔진 대기용 장의자에 앉아 들려오는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얹어 놓고 시간을 보냈다.
“그럼 앞으로 어째야 헌댜?”
그 말을 무슨 뜻으로 하는지 짐작도 못하며 들었다.
“어쩌면 없어질지도 몰라.”
노인 환자들이 많았다. 노인들은 병원에 들어올 때 접수도 하지 않고 진료실부터 들르려고 했는데, 간호사들이 그걸 문 앞에서 막고 접수대로 인도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갈 무렵에 간호사가 그에게 왔다.
“곧 점심시간인데 진료 보러 오셨으면 접수 도와드릴게요.”
“아, 저는 박정규 의사입니다. 이곳에 우연히 왔다가 선배님께 인사나 드리고 가려고요.”
“예, 미안합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간호사가 황급히 진료실로 들어갔고, 금방 의사 조진형 선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게, 모든 게, 이제 한계다. 그래서 박 의사를 이렇게 만난 거야. 됐어, 정말 딱이야!”
그는 헉헉 한숨을 쉬며 걸었다.
“사실은 동문회서 보내 온 회람을 보며 자네를 수배해 내가 부를까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염치가 없어 행동을 못 하고 있었네. 힘들지. 정말 굉장한 일을 했는데 대학병원이라는 거대 세력과 다퉈 이겼으니 자네의 미래는 무너졌을 거야. 대학에서는 누구도 자네에게 도움을 주지 말라고 협조를 요청했더군. 최고 인재지만 의료계 개망나니라고 낙인을 찍어 버렸어. 나야 그런 협조전과 무관한 사람이니 자네를 뜨겁게 환영하네.”
그리고 조진형 원장은 금방 오전 진료를 마무리하고 음식점으로 간호사들을 앞세워 그를 초대했다. 자리가 마련되자 조 원장은 자기는 집에 가서 다른 식사를 해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 간호사 한 사람이 원장을 따라갔다.
오후 진료를 시작할 시간에 병원에 돌아온 조진형 원장은 희미하게 꺼지는 정신을 붙잡고 버티는 사람처럼 땀을 자주 닦아내며 등을 의자에 비스듬히 붙이고 앉은 채 지긋이 말했다
“박정규 의사, 오후 환자는 자네가 봐야겠어. 난 옆에서 쉬다 좋아지면 그때 거들지. 진료의자에 앉아 봐요, 그러면 컴퓨터에 지금 들어오는 환자 카드가 열릴 거야. 그간의 진료 기록 참고하며 오늘 사항 물어보고 처방전 써주면 되는 일이야. 익숙한 일이잖아.”
힘이 빠진 목소리로 애원하는 청으로 진료를 떠맡기는 선배의 얘기가 끝났을 때, 벌써 환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남자였다. 진료실을 둘러보고 그는 조 원장에게 달려갔다.
“아프시다더니 많이 아프시네. 원장 선생님!”
그리고는 대번에 흑하고 눈물을 훔쳤다. 좀 충격 같은 장면에 그는 멍하게 둘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 나는 잠깐 쉬고 일어날 거여. 아픈데 어서 치료해.”
그에게 말하고 조 원장은 다시 눈을 감았다. 그 환자는 귀가 안 들리고 열이 난다며 병증을 말했다. 이비인후과 질환, 그의 전문 과목이었다. 지금 이 병원은 전문 과목 없이 만병을 진료하고 있지만 조 원장은 이비인후과 전문의였다. 이 때문에 깡촌 의원에 이비인후과 전문 치료기가 갖추어져 있었다. 컴퓨터와 연동된 내시경을 켜고 불편하다는 귀에 카메라를 넣었다. 외이도가 벌겋게 부어 있었고, 눌러붙은 누런색 귀지가 누룽지처럼 귀 동굴 벽에 찰싹 붙어 있다. 귀에 물이 들어간 것을 느낀 이 환자가 면봉을 넣어 물을 닦아내려 애를 쓴 모양이다. 일반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대형 실수가 귀를 학대하듯 후비는 일이었다. 박정규 의사는 커프드 픽으로 귀지를 하나씩 긁어 뗀 후 석션으로 귀지 조각을 빨아냈다. 양쪽 귀 모두를 청소하듯 귀지들을 흡입했다.
이틀 복용할 항생제와 세트락살 점이액을 처방해 주고 귀에 하루 3번, 한 번에 3방울씩 넣으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환자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조 원장이 눈을 살짝 뜨고 오른손 엄지를 세워 칭찬을 해주었다.
“우리 병원 원장은 후배가 딱이다. 이제 나 병원에 갔다 와도 되겠다. 나 올 때까지 후배가 병원 맡아 주시는 거야. 자 약속!”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렇게 말을 걸 때 나는 조 원장이 병원을 금방 다녀올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알았어요, 선배”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조 원장은 점심시간에 자신의 입원을 계획하고 대학병원 측에 앰뷸런스를 호출해 놓았던 모양이었다. 환자를 다섯 명쯤 봤을 때 앰뷸런스의 위웅 위웅 하는 높았다 낮았다 하는 소리가 병원 앞에 와 섰다. 그리고 위생복을 한 구급대원들이 환자 이송 운반카를 밀고 들어왔다. 조 원장은 온순한 양처럼 구급대원에게 몸을 맡겼고, 두 사람이 어깨와 다리를 들어 운반카에 옮겼다. 대기실 환자들이 “원장님, 우리 원장님 이걸 어떻게 해 우리 원장님!” 하고 환자 운반카를 막으며 목 놓아 울어 제쳤다. 조 원장은 그냥 눈을 감은 채 손을 저으며 인사를 했다.
“나 좀 쉬고 올 거여, 새 원장님 잘 모시고 기다려요.”
그러면서 그는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왜 우는 것일까? 박정규 의사는 그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앰뷸런스가 굉음을 내며 그래야 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간호사들은 한참 동안 서서 울었다. 그게 한 6년 전 그날의 일이었다.
그렇게 박정규는 좋다 나쁘다 말 한마디 못 하고 환자들을 맡은 우리 병원 원장이 됐다.
그런 박정규를 유튜브가 세상에 끌어낸 것이다. 그러자 유튜브에서 봤다며 그에게 인터뷰를 서울의 몇 신문에서 제의하더니 시골 병원까지 찾아왔다. 그들은 정말 시골에 의사가 있다며 장천 오지의 사정들을 조사하고 특별하게 기사를 썼다. 중앙의 몇 신문이 그를 인터뷰하자 박정규는 이 시대의 의인처럼 떴다. 다른 유튜브들이 연신 찾아와 동영상을 찍어 갔다. 마침내 중앙의 티비 방송에서도 소개했다. 박정규는 유명해지는 것이 즐겁지가 않았다. 자신의 뭔가를 서서히 무너뜨리며 들어오는 공작같이 불안감이 매일매일 가슴을 조여 왔다.
토요일 날이었다. 12시 진료를 마무리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었다. 이번에는 매스컴 기자가 아니라 시간 외 수당 사건 때 웬수가 돼 야단을 쳐 내쫓던 은사 한정상 교수였다.
“박정규,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니!”
“아 스승님,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뭐 어쩐 일, 너하고 나하고 그럴 사이는 아니잖아. 내가 가장 사랑하고 기대했던 놈이 넌데!”
“그런 제자를 세상이 버렸을 때 그렇게 내치셨습니까!”
“너, 그때 서운했구나, 그때는 너를 품으면 학교에서 내가 몰리게 됐었어. 나도 찍혀서 나를 구제해야 할 처지였는데 너를 어떻게 품니?”
“그래도 자식 같은 제자를 그렇게 내칠 수 있었을까요?”
“그때 내 처지가 너보다 더 안 좋았다. 그때 잘 넘겨서 이렇게 너를 불러들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 아니겠니. 그러면 된 것 아니냐!”
박정규가 말없이 듣고 있자, 한정상 교수가 그의 이름을 부르더니 얘기했다.
“나 정년퇴임한다. 내 후임은 너밖에 없다. 학교 측과 얘기 잘 돼서 너에 대한 옛날의 사건은 좋은 쪽으로 풀어 놨다. 네가 우리 학교에 필요하다. 내게 와라?”
“은사님, 저 깡촌 의사입니다. 세상이 다 버렸을 때 여기 사람들은 저를 품어주었습니다. 여기 사람들 제게는 가족입니다.”
“박정규, 너 의대 교수가 어떤 자린지 몰라!”
“가족은 책임을 져야지 버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서요. 여기 사람들은 제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과 사는 여기가 정말 좋습니다.”
“박정규 너 미쳤구나!”
한정상 교수가 버럭 고함쳤다.
밖에서 사무장이 진찰실로 들어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원장님, 후송 보낸 환자 있죠? 수술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사라져 수술 못 하고 있답니다.”
“그럼 지금 전화해요. 우리가 보호자 찾아 데리고 가겠다고 수술 들어가라고 해 주세요. 사무장 바로 전주로 갑시다!”
휴대폰 뚜껑을 닫고 박정규 의사는 사무장 차를 향해 달려갔다.
“야! 박정규! 박정규 새끼야!”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