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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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으로 살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아름다움은 선이고, 그 핵심은 동심이다.
-아동문학의 날 표어, 도스토옙스키의 말
지난 가을, 기억에 남을 만한 감동적인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초대한 분은 첫 동시집을 발간한, 세 자녀의 어머니이자 여섯 손자녀의 할머니인 동시인이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이들은 세 자녀의 시부모와 장인·장모를 포함한 가족, 초등학교 4학년 때 글짓기 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이셨던 원로 아동문학가, 같은 반이었던 남녀 동창들, 그리고 반달교실 글 벗들이었다.
막내딸인 사회자가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를 먼저 낭독한 뒤 식이 진행되었다. 삼남매가 준비한 출판기념회의 정점은 여섯 명의 손자·손녀가 할머니의 창작 동시를 낭송하고, 낭송 후에는 자신이 그 작품을 고른 이유를 설명하는하는 순서였다. 어린이들의 당당함과 할머니의 사랑이 전해져 실내는 미소와 따뜻함으로 가득했다.
해마다 노란 옷만 입는/ 민들레 꽃/ 내 그림에서 빨간 옷을/ 입혀 주었죠// 허리 굽은 할미꽃도/ 허리 쭉 펴고/ 파란 하늘 흰 구름을/ 올려다보게 했구요.// 우리 집 강아지/ 새하얀 털도/ 멋쟁이 얼룩무늬로/ 칠해주었죠.
—이풍자, 「내 그림에서」 부분
1학년 손녀가 할머니 동시집에서 골라 읽은 작품이다.
“저는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배가 하늘을 날기도 하고, 비행기가 바다를 떠다니기도 하지요. …상상으로 자유롭게 그린 이야기라서 골랐습니다”라고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녀를 포함한 가족, 노스승과 제자, 늦은 나이에 다시 만난 친구들, 함께 공부한 글 벗들이 모인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리인가. 오늘의 이 자리는 어린 시절 배웠던 글쓰기를 바탕으로 늦게 시작한 동시 창작이 가져다준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1976년에 창간된『아동문예』 잡지는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아동문학 전문지’를 헤드라인으로 내걸고 50년간 한결같이 발행되고 있다. 아동문학은 어린이와 어른이 공유하는 문학이라는 창간자의 취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아동문예출판사에서 출판한 동시·동화집에도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시·동화’를 헤드라인으로 쓰고 있는데, 같은 취지에서다. 어린이와 어른이 차등 없이 만나는 매개체의 역할을 많은 아동 잡지와 동시·동화집이 함께하고 있다.
아동문학은 어린이들만 읽는 문학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아직도 있다. 필자가 첫 동시집『손자님 오시는 날』을 발간하여 평소 존경하는 원로 시인께 설레는 마음으로 보내드렸다.
며칠 후 “증손자가 오는데 그때 증손자에게 주렵니다”라는 답을 받고 몹시 서운했다. 선생님이 읽으신 후 조언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며 생각하니 ‘내가 읽은 다음에’라는 말을 빠뜨리신 것이구나, 이제야 깨달음이 온다…. 선생님이 쓰신 ‘증손자’라는 말이 다가온다.
“어머니!”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말이 또 있으니, 그것은 ‘가족’이다. 나이 든 어른들에게 가족은 진한 그리움이다. 요즈음은 할아버지·할머니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 어린이도 있지만, 옛날에는 증조부모도 가족이었다.
가족 관계가 변하여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각자의 섬에 갇혀 사는 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멀리 떨어져 홀로 살며 ‘나도 가족일까?’를 되물으며 외로움에 빠진 조부모님도 계시다. 어린이들은 학원을 순례하느라 가족과 만날 시간이 부족하다.
제안하는데 가족이 모여 앉아 동화·동시를 읽는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어린이에게는 정서적 안정감과 뿌리 깊은 자존감을 심어 줄 것이다. 조부모는 잃어버렸던 동심을 회복하여 생기가 돋아날 것이다. 어린이의 맑은 목소리, 만족스러움이 묻어나는 할아버지, 어머니의 고운 음성이 온 집 안에 감돈다. 이때 가족은 깊은 관계가 맺어지고 가정은 밝아질 것이다.
“나는 왜 이 동시·동화를 선택했는가?”
이유를 말하며 대화를 나누고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그러다 보면 조부모님은 흐뭇해하실 것이고, 부모는 자녀를 앞에서 끌어당기려는 조급한 마음이 뒤에서 밀어 주는 느긋함으로 바뀔 것이다.
어린이들은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지고, 의사 전달도 자유로워져 그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들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책을 안 읽어.”
이 말은 이제 그만하자. 가족이 함께 모이기 어렵다면 어린이와 조부모, 어린이와 어머니 혹은 아버지, 두셋이라도 앉아 아동문학 작품을 읽고 소감을 나눠 보자. 횟수가 많아지다 보면 나도 동시·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린이의 생각이 담긴 짧은 글에 공감하면 어린이의 마음은 쑥쑥 자랄 것이다.
문학가를 포함한 어른들은 아동문학을 거치지 않은 이가 없다. 어린 시절에는 동화·동시를 읽고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자녀를 낳은 후에는 그림책 읽어 주기로 시작하여 그들이 성장함에 따라 독서에 흥미를 갖도록 노심초사 책을 고르며 함께 읽지 않았던가.
노년기에는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아간다. 우리는 이렇게 생애에 세 번 아동문학 시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아동문학과 친해졌다.
이런 단계를 거치신 조부모님, 손자·손녀들과 함께 아동문학에 풍덩 빠져 보고 싶지 않은가요?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자유와 희망을 안겨 주고, 어른들은 동심을 찾아 선하고, 맑아지게 하는 아동문학에.
우리는 누구나 오래 살기를 원한다. 오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동심을 잃지 않고 사는 기간을 말한다. 노년기에 동심으로 돌아가 어린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동심을 회복시켜 아동문학을 읽고 창작하는 삶은 오래 사는 길이자 하느님의 축복일 것이다.
필자는 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어린이에게는 꿈과 희망을, 노년기의 어른들에게는 동심을 찾아 주는 맑고 따뜻한 동시를 써야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지금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순간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