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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쌀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수자(과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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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싸락눈이 종일 오락가락하던 날 엄마는 달포째 누워만 계세요 동네 의원에 한번 다녀오신 뒤로 약 같은 약도 못 쓴 채 해가 일찍 떨어지자 동생들 배고픈 눈이 저만 빤히 쳐다봐요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외상값은 주렁주렁하지만 어쩌겠어요 네 살배기 막내를 들쳐업었지요 반 친구들 만날까 동네 골목 요리조리 피해 외상 쌀 구하러 나섰죠 집집마다 흘러 풍기는 된장국 개장국 냄새로 콧구멍과 뱃속이 난리예요 틈 벌어진 코고무신은 골목 하나 지나기도 전에 진탕물로 철퍼덕거려요 발걸음 잘 안 떨어지는데 막내가 제 등에 얼굴을 푹 파묻네요 옹그린 몸에서 추운 떨림이 전해져요 손바닥만 한 동네 점방 주인들은 언제 받을지 모를 외상을 또 주겠어요 그래도 막내를 업은 것이 신의 한 수! 동네 먼 쪽 쌀집 아줌마가 모르는 척 보리쌀 한 되 쌀 한 되를 누런 종이봉투에 담아 주는 거 있죠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하나도 생각 안 나요 혹시나 정신 번쩍 든 그 아줌마가 쫓아와 봉지쌀 빼앗을까 막내를 내려 손을 마구 잡아 끌었지요 품에 안은 봉지쌀 젖지 않게 겉옷 벗어 덮느라 허둥대는데 그런데 말이죠 제가 그때 막내의 눈동자에서 참 묘한 것을 보았네요 뭐랄까 슬픔보다는 기쁨보다는 너무 가여워 그런 실낱같은 웃음인지 울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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