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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사회

한국문인협회 로고 박종흡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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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햇살이 눈을 간질이는 조용한 오후다. 모처럼 마음이 한가하다. 같이 사는 아들 식구가 호주에 여행 간 터라 나홀로 집에 남아서다.

책장에 꽂힌 표지가 누렇게 바랜 책에 눈길이 갔다. 오래 전에 읽은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이라는 산문집이다. 집사람이 세상 뜬 후 홀로 살면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겪어온 나로서 홀로 사는 게 뭐 그리 즐겁다는 건지 새삼 궁금해서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읽어 보니 홀로 사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뜻이 아니라 즐겁게 홀로 살려면 외부와 단절되어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5년 전쯤인가 ‘플로라인’이라는 독일 청년과 내 집에서 6개월간 생활을 같이한 적이 있다. 그는 새내기 독일 변호사였다. 당시 변호사 일을 하고 있던 아들의 친구가 내가 큰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소개를 했다. 독일에서는 법관이나 변호사 임용에 앞서 일정기간 체험 활동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물론 숙식비는 전액 무료였다.

훤칠한 키에 미남 얼굴을 가진 그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붙임성이 남달라서 그런지 사람과의 친화력이 대단했다. 자유분방하다 못해 어떤 때는 한국 사람인 내가 보기에 도가 넘치는 것을 넘어 난잡한 것 같기도 했다. 한국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면 밤 12시가 다 되어야 얼근해서 집에 오기 일쑤였다. 어디에 갔었냐고 물어보면 이태원, 홍대 거리, 강남 등등 서울서 이름난 곳치고 안 쑤시고 다닌 데가 없는 듯했다. 얼마 안 됐는데도 한국 아가씨들과도 많이 사귄 것 같았다.

정들자 이별이라고 떠나는 날이 되었다. 공항까지 내 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하자 그는 걱정 놓으시라고 손사래를 친다. 집 밖으로 나와 보니 suv차 운전석에 한 어여쁜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친구 참 재주도 좋은 것 같았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플로라인으로부터 자기가 있는 곳으로 놀러 오라는 초청이 왔다. 아들과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을 갔었다. 그의 고향 바덴바덴은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이름난 아름다운 곳으로 88서울올림픽 개최지 결정 때 그곳에서 올림픽위원장이 ‘쎄울, 꼬레아’라고 선언하자 온 국민이 환호성을 질렀던 곳이다. 우리는 그의 덮개 없는 스포츠카를 타고 ‘흑숲(Schwarzwald)’을 달리고 마침 열리고 있던 자동차 전시회를 둘러보았다.

서울 있을 때 자랑삼아 얘기하던 여자친구 집도 가보았다. 교양 있고 성숙한 여자였다. 오래 사귀고 있다는데 왜 아직 결혼을 안 하느냐고 둘에게 물었다. 나에게 돌아온 그들의 답은 의외였다. 같이 살아보고 서로 확신이 들 때에만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울창한 숲속에 있는 그의 부모집에 가 정성 담긴 식사도 대접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저명한 정원사였다. 나는 플로리안 부모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플로리안은 언제 부모 곁을 떠나 혼자 따로 살고 있나요? ‘고등학교 재학 때부터 나가 삽니다. 여기 독일에서는 흔한 일이지요.’

내가 지금 독일 청년, 플로리안에 대하여 조금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우리 사회도 이미 플로리안처럼 사는 삶이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엄연한 현실을 깨닫기 위함이다. 홀로 생활하는 것이 급증하여 이제는 보편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2024년 행안부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의하면 총세대수 2400만 중 1인 세대수가 41.8%인 1002만이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20∼30대 청년층(320만)도 많다는 것이다.

홀로족의 증가 이유는 현대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숙명적 현상에 깔려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홀로 사는 인구는 늘어나면 늘어나지 좀처럼 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카스트 어웨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불의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에 떠내려온 척 놀랜드(톰 행크스 역)가 통나무로 얼기설기 엮은 조각배를 타고 표류하던 중 구조 직전 그의 유일한 친구였던 배구공이 파도에 쓸려나가 잃게 되자 ‘윌슨, 윌슨’을 슬프게 외치던 장면이 생생하다. 나 홀로일 땐 내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한다. 그 사람의 빈자리를 배구공인 윌슨이 대신해 줬다.

홀로 사는 사회에는 윌슨 같은 것들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반려견이나 반려식물이 그런 것일 듯싶다. 요새 젊은 사람들 사이에 돌인형이 유행이라고 한다. 변덕 없이 늘 같은 모습으로 곁에 있어 줘서 그렇단다.

홀로 산다는 것, 홀로 있다는 것은 결코 즐거운 일일 수 없다. 괴로울 뿐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홀로 사는 걸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즐겨야 하는 사회가 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즐겁게 홀로 살겠다는데 누가 뭐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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