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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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뒤로 결박하여
상투를 풀어 손을 묶는다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다
얼굴에 물을 뿌린다
그 위에 한지를 붙인다
다시 물을 뿌리고
한지를 다시 붙인다
또다시 물을 뿌리고
한지를 붙인다
달라붙은 숨결은 서서히 스러지지만
죽어서도
신앙은 살아 숨쉰다
백지사형(白紙死刑)*이다
누구는 한지에 그림을 그린다
누구는 한지에 글씨를 새겨넣는다
나는 오늘 백지에
무엇을 그리며 무엇을 쓰려 하는가
아니
누구의 손을 결박하고
누구의 얼굴에 창호지를 붙이고
물을 뿌리려 하는가
*무진박해 당시 천주교 신자들에게 가한 형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