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47
0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빨래터에 갔다. 개울에는 빨래하는 아낙네들이 보이고 자그마한 바위 사이에는 빨래 삶는 솥이 걸려 있었다. 어머니가 옷을 세탁하실 때는 비누 대신 볏짚 태운 잿물을 사용하셨다. 이불호청은 양잿물에 삶아 빨래방망이로 두드려 가며 뽀얗게 빨아 바위에 널어 놓으셨다. 나는 어머니 곁에서 손수건을 물에 적셔 빨래하는 흉내를 내다가, 심심해지면 자갈 사이에 피어난 풀꽃을 찾아다녔다. 개울가 너럭바위에는 어머니가 펼쳐 놓은 이불호청이 쨍쨍한 여름 햇살 아래 하얗게 바래져 갔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까만 벌집처럼 표면이 오톨도톨한 세숫비누를 사용했다. 그 당시 신제품으로 출시되어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거품이 잘 일지 않았다. 처음 쓸 때는 괜찮다가 몇 번 쓰다보면 물에 쉽게 물러져 까만색이 잿빛으로 바뀌었다. 비누를 절약하려는 마음으로 은박지를 뒷면에 붙여 사용했다. 머리를 감을 때는 샴푸가 흔치 않아 빨랫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머릿결이 푸석하고 거칠어졌다. 헹구는 물에 식초 한 방울 떨어뜨리면 알칼리 성분이 중화된다는 말을 듣고 따라했다. 머릿결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비누에 대한 불만을 들으신 어머니는 이따금 시장에서 미제 비누와 샴푸를 사오셨다. 손 안에서 잘 풀어지는 비누거품으로 얼굴을 씻고, 주홍빛 삼각통에 든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잠시 호사스런 기분이 들었다. 품질 좋은 국산비누가 언제쯤 나올까 생각하며 막연히 기다렸다.
결혼하고 주택에서 살 때였다. 동네시장에 갔더니 누렇고 네모난 빨랫비누들이 선반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폐유와 양잿물로 만든 재활용 비누도 구석진 곳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팔았다. 추운 겨울에는 연탄불에 물을 미지근하게 데워 비누로 손빨래를 했다.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는 세탁한 옷들이 동태처럼 꽝꽝 얼어붙었다. 따뜻한 실내에 놔두면 저절로 해동되었다. 지하실에는 연탄재가 쌓여 가고 매일 대문 밖 쓰레기통에 내다놓는 일이 힘에 겨웠다. 넓은 정원에 나무와 잔디밭도 재래식 부엌의 불편함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후 국산 세탁기가 생산되었다. 전기밥솥, 청소기와 함께 가사노동에 시달리던 주부를 해방시키는 획기적인 역할을 하였다. 세탁기에 사용하는 봉지에 담긴 가루세제가 불티나게 팔렸다. 세탁기에 가루세제를 넣을 때마다 가루가 날려서인지 서서히 사라지고, 지금은 액체세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주부에게 날개를 달아준 세탁기는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을 정도로 흔해졌다. 덕분에 비누로 손빨래 하는 이들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빨래비누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려났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색깔을 입히고 살균제를 첨가한 작은 비누로 다소곳이 앉아 있다. 코로나 펜데믹이 전 세계를 휩쓸 때 두해 반 동안 거의 폐쇄적인 생활을 했다.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면 세안 비누 대신 살균제가 들어간 거품비누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다양한 비누들이 마트와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품질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다 쓸 때까지 단단해서 좋다. 피부에 좋은 천연재료를 넣고 향기가 좋은 수제품 비누도 있다. 곡물비누인 녹두비누, 소금비누, 허브비누 알로에비누 등 갖가지 종류의 세안비누와 목욕비누들이 즐비하다. 개성적인 사람이 많아지고 생활수준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늘 가까이 있어 우리에게 친숙한 비누가 경제발전을 짐작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비누가 무르고 거품이 잘 일지 않았던 기억 때문일까. 새 비누를 사용할 때마다 품질변화에 민감한 편이다. 좋은 비누는 천연향이 나는 제품으로 실내에서 방향제 역할도 한다. 품질이 좋은 국산 비누가 어딘가에 있을 텐데, 아직 그런 비누를 만나지 못한 때문일까. 오래전 남프랑스에 여행 갔을 때였다. 니스 향수공장에서 사왔던 세숫비누가 여태 써 본 비누 중에 단연 향기롭고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힘든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나이가 되었다. 착한 이들의 고통과 슬픔은 비누로 말갛게 씻어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자들의 검은 마음은 비누로 박박 치대어 볕에 말리면 좋겠다. 비누는 인간에게 끝없이 헌신하고 끝내 조용히 스러져간다. 오물을 자신의 거품으로 싸안고 물과 함께 흘러내린다. 자신을 희생하고 무(無)로 돌아가는 비누의 뒷모습이 경건하고 아름답다.
오직 자식바라기를 하시던 어머니는 비누처럼 희생적인 분이셨다. 어머니는 생전에 풀냄새가 나는 화장품을 좋아하셨다. 봄비 그친 날 숲길을 걸어가거나 제초기로 무성한 풀을 깎을 때 풀내음이 코끝에 훅 스치면 어머니 생각이 떠오른다. 생전에 작고 잔잔한 꽃무늬를 좋아하시고, 대학교 신입생 때 학교 앞 양장점에서 처음 맞춘 인디핑크 투피스를 입은 내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시던 어머니, 지금도 그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던 풀냄새로 만든 세숫비누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세수할 때마다 풋풋한 향내를 맡으면 시공간을 초월해 어머니가 늘 가까이 계시는 것처럼 느껴질 테니 말이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자라는 싱그러운 풀을 재료로 한 천연향이면 더욱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