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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순간

한국문인협회 로고 안경숙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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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하기 힘든 일 앞에서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을 하곤 했다. 내 어린 시절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때. 그래도 부모는 자식 하나만은 번듯하게 키워 보고 싶어 했다. 별 따기처럼 어려운 ‘사’자든 사람 만드는 것이 꿈이 되고, 시험 한방 통과하면 세상이 부러워하는 판검사가 되던 시절이었다. 전공 불문 너도나도 고시를 보고, 합격자의 이름을 쓴 현수막이 고향 마을까지 나붙었다. 마치, 아무라도 개천에서 용 나고 하늘에서 별을 딸 수 있는 것처럼.
그땐 첩첩산골에서 여자아이의 상급학교 진학은 드물었다. 많은 이들이 주어진 만큼이 당연한 운명이려니 하고 살았으니까. 중학교라도 겨우 마치면, 중소도시로 공장살이를 나갔다. 그마저도, 자리를 잡은 언니들이 있다면 수월하나, 형제도 없던 내가 비빌 언덕은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엄마는 많은 이들과 달랐다. 엄마는 중학생이던 나를 서울로 전학시켰다. 남편 없이 딸 하나 키우며 남의 집 행랑채를 전전하던 살림이었지만.
결국,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다는 태산에 비겨 가며 자식의 형설지공을 꿈꾸었다. 보따리 장사였던 엄마는 도시로 오가며 도매 물건을 떼어다 시골에서 팔았다. 그러면서 세상 보는 눈이 생겼을까. 가끔 들려오는 누군가의 성공 소식이 엄마에게 꽁무니에 불을 단 미사일이라도 쏘아 올리는 꿈을 꾸게 한 것이었을까. 막상 당사자로 감당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짐작조차 어려운 일인데.
사람이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으니, 딸이라고 못할쏘냐. 하늘의 별을 따지는 못해도, 미관말직 공직엔 이름을 올리길 엄마의 바람이다. 서울에서 처음 자리 잡은 기회로, 이종 육촌의 복닥거리는 집에 얹혀살게 되었다. 청소년기의 반항을 겪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겨우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처음 4년제 대학생이 되었다고 엄마의 어깨는 한껏 올라갔고, 진학률에 목매는 읍내 중학교는 오래전 전학 간 학생임에도 교문 위 현수막에 내 이름을 올렸다. 그때는 그렇게 하늘의 별을 따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출세를 기대하던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낯선 서울 생활에 좀체 적응하지 못했다. 별을 따기는커녕 어둠의 구석을 헤매는 시든 청춘이 되고 말았으니. 판검사에서 외교관까지, 상상할 수 있는 선택지를 들고서 빛나는 별의 순간을 기다렸던 엄마는 그 기대에 비례하는 실망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중산층이라는 이름의 평균인으로 아들딸 낳고 가정을 이룬 나. 매달 꼬박꼬박 월급도 받아 보았고, 내 이름으로 된 집도 있으니 나름 성공한 것 아닌가. 그래도 엄마는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 한편에 아쉬움과 미련의 찌꺼기를 가지고 떠나셨다. 어린 손주가 주판을 튕길 땐 영재인 줄 알았고, 출세를 기대하던 손녀가 빵을 굽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며 가셨으니.
어떤 이들은 하늘의 별을 따려고 온 인생을 바치지만, 가슴에 달린 별이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격변기에는 누가 별을 따고 누구의 별은 떨어졌다고 소식이 분분하다.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드나들어 치욕의 별을 다는 사람도 생긴다. 국회의원의 가슴에서 빛나는 금배지, 장군의 어깨 견장은 실제 별처럼 무척 반짝인다. 한동안 ‘별의 순간’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입에 오르내렸다. 정치인이 결정적 운명의 순간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이 말은 점성술에서 빌린 말일 텐데, 인간이 태어날 때 별의 위치가 운명을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그것은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인기 작품 「인류 별의 순간」에서 나온 말이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다. 저자는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던 인물들을 중심에 두고 역사를 서술했는데, 운명의 순간에 내리는 역사적 결정이 훗날을 좌우한다는 의미다. 제대로 잡지 못한 순간들이 부질없이 지나간 세월 속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고 있다는.
내 인생에서도 얼마나 많은 별의 순간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던가. 자문해 보았다. 나도 몰래 순간적으로 작은 반란이 일어났다. 살면서 놓친 수많은 순간이 밤하늘의 별로 빛나고 있다면. 우등생으로, 고위층으로 세상에서 이름을 드러내고 사는 것만 과연 별의 순간일까.
어쩌면 처음 걸음마를 떼던 순간부터, 조그만 입으로 ‘엄마’라는 말을 내뱉던 때,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벅찬 마음으로 처음 입학식장에 섰던 그때야말로 가장 빛나던 순간이다. 첫사랑으로 잠 못 이루던 밤들, 첫 아이가 태어나던 날, 처음으로 마련한 집의 작은 들마루에 누워, 한여름의 밤하늘을 바라보던 순간은 어떤가.
요즘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내는 날들도 나만의 감동이고 감사한 일이 아닌가. 이 또한 빛나는 순간이 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애쓰지 않아도 눈을 뜨고 감는 순간까지 경이감을 가지고 숨 쉬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더 깊게 느끼려고 한다. 글을 읽고 또 시를 쓰는 문학인이 되었으니까. 아직 이루지 못한 꿈도 별 하나로 뜬다면, 캄캄한 밤길을 걷다가 고개 들어 그 별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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