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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의 추억·2

한국문인협회 로고 최찬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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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종일 잠을 잔다. 형과 누나가 들어오면 잠시 애교 좀 떨어주어 간식을 받아먹고는 산책하러 나갈 시간을 기다리며 다시 가물가물 꿈속으로 들어간다.
형과 누나가 결혼하면서 시골에 사는 집사의 곁을 떠나 내가 서울로 온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형과 누나가 결혼했다고 해서 근친혼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형과 누나는 성씨 자체가 달라 혼인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사람들이다. 다만 내가 갯과라서 멍멍이 촌수가 된 것뿐이다.
서울생활은 아늑하다. 춥지도 덥지도 않다. 시골에서와는 다르게 가끔 산에서 내려오는 짐승들 오지 말라고 자다가 깨어나 목에 핏대를 올릴 필요도 없고, 먹잇감 찾으러 다니는 길고양이들에게 내 영역이니 침범하지 말라고 으르렁거릴 필요도 없다. 평온한 삶 그 자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시골생활이 그립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싸고 싶을 때 쌀 수 있었던 시절. 집사도 그립고,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내던 누렁이도 그립다. 그런데 이 누렁이 생각을 하니 또 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 건방진 누렁이 때문에 하룻모기로 만들었다. 밤을 꼬박 빗속에서 석고대죄를 올렸던 생각을 하면…. 그 사건이 나를 모기로 만들었다.
누렁이는 나의 자손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아랫집에 잠시 놀러 갔다 왔는데, 그 집 누리의 배가 불러오자 아랫집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범인, 앗, 실수! 뱃속 아기들의 아빠로 나를 지목했다. 누리는 누렁이의 엄마다. 그런 연유로 우리 집으로 한 놈이 왔는데 바로 누렁이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놈을 내 밥을 나눠주며 커가는 걸 봐 왔다. 배변 교육과 사회성 교육까지도 내가 했다. 가끔 내 기분이 가라앉아 있을 때는 교육적 차원에서 살짝 으르렁거려 내 밥에 입도 못 대게 한 적도 있기는 하다. 그렇게 내 눈치를 살피던 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지 이놈이 내 으르렁거림에도 별로 겁을 먹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했다.
이 누렁이가 내 밥에 또 건방진 주둥이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3년 전,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으르렁, 경고하는데도 들은 척도 않는다. 내 오늘은 그 건방진 주둥이를… 하며 놈의 목덜미를 콱 물었다. 그런데 입 안이 허전했다. 누렁이가 오히려 내 목을 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세월의 물결이 나한테만 온 것인가. 놀란 집사가 달려와서는 누렁이를 내게서 떼어 놓았다. 내가 분이 풀리지 않아 계속 으르렁대자 집사가 내 목줄을 잡고 가만히 있으라고 나만 혼낸다. 배신감에 열이 올라 집사에게 목줄을 놓으라고 몸부림쳤다. 순간 입 안에 찝찔한 액체가 흘러들어왔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아얏! 집사가 나를 내동댕이치고서 자기 오른쪽 손목을 잡고는 지혈한다고 수선을 피웠다. 결국 응급실까지 가서는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돌아왔다. 열 바늘을 꿰맸다고 했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어 젓가락질이 안 된다며 엄살을 피웠다. 그 엄살이 반년은 간 것 같다. 내 이빨에 살짝, 정말 살짝 걸린 걸로 저렇게까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어쨌거나 일차적인 책임은 나에게 있다. 저 쪼잔한 집사한테 잘못 보였다가는 내 식사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자율배식에서 언제 밥을 주나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우리 집사 성격상 한 끼쯤 슬쩍 의도적으로 잊어버릴 수도 있다. 기분을 풀어 줘야만 했다. 그래서 그 비 오는 밤, 밤새 비를 맞으며 바깥에 있다가 집사가 나오면 벌 서는 자세로 서서 처량한 눈길을 보냈다. 그렇게 힘들게 나는 나의 밥그릇을 성공적으로 지켰다.
며칠 후, 집사의 지인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집사와 함께 오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짖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다. 그런데 주인이 지인들에게 나를 ‘모기’라고 소개했다. 지인들은 놀라며 손목을 다친 게 진짜 모기한테 물려서가 아니고 이름이 모기였느냐고 하며 놀랐다. 아니, 잠깐! 내 멋진 이름이 갑자기 왜? 쪼잔한 집사!
이유를 들어보니 참, 나 원.
집사가 손목에 붕대를 두르고 나가니 사람들이 어쩌다 다쳤는지를 물었다나? 같이 사는 풍산개가 그랬다고 했더니 그런 놈은 갖다 버리라는 험한 말을 하는 몰상식한 사람, 팽(烹)하라는 입에 올리기 민망한 더 험한 말을 하는 정말 몰상식한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 후로는 왜 다쳤느냐고 누가 물으면 모기한테 물렸다고 대답했다나? 무슨 모기가 그렇게 크냐고 물으면, 산모기라서 좀 크다고 대답했더니, 반쯤은 믿고, 반쯤은 긴가민가하는 눈치였다 했다. 나의 이름을 모기로 바꾸어 복수하는 이 속 좁은 집사의 쪼잔함. 그래도 몰상식한 사람들 말을 듣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요즘은 그 쪼잔하고 속 좁은 집사가 보고 싶다. 지겹던 누렁이도 그립다. 내 눈치를 살피며 멀리멀리 돌아가던 길고양이도 생각난다. 천방지축 내 마음대로 뛰놀던 시골생활이 눈에 선하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나 자신에게 끝없이 말하고 있지만, 시골생활이 자꾸 그리운 건 그때도 행복했기 때문일 것이다.
형은 내가 서울에서 생활하는 것이 훨씬 행복할 거라고 주장하고, 집사는 내가 시골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할 거라고 주장하며 서로 투닥거린다. 그런데 나한테는 묻지도 않는다. 나는 내 행복의 잣대를 빼앗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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