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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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새벽, 하늘엔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고요한 하루의 시작을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아파트 앞 황톳길은 벌써 맨발로 걷는 사람들과 운동하는 이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들 사이로 나는 경보하듯 빠르게 걸었다. 수영, 이 작은 시작이 오늘을 조금 더 다르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을 오래 안 하셨으니 한 달 정도는 물에 적응하는 게 좋겠네요.”
선생님은 킥판을 잡고 발차기부터 시작하자고 했다. 나는 기초반 맨 뒤에서 킥판을 양손에 꼭 쥐고 자유형 발차기를 반복했다. 머리를 들고 있을 땐 괜찮았지만, 물속에 넣는 순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25미터를 가는 동안 몇 번이고 멈춰야 했다. 기초반 수강생임에도 다른 이들은 어느새 중급반 수준으로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언젠가는 나도 저들처럼 멋지게 앞으로 쭉쭉 나가겠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몸을 물에 익숙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 수영은 자전거 타기처럼 한 번 배우면 잊지 않는다고 하지만, 몸이 물에 완전히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뒤에는 킥판을 잡고 팔을 번갈아 돌리며 호흡을 익히는 연습을 시작했다. 수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코로 내쉬고 입으로 들이쉬는 단순한 호흡법이지만, 순서가 어긋나면 금세 물을 먹는다. 동작에 맞춰 천천히 숨을 고르는 연습을 하며 나는 어느새 한 달을 물속에서 보냈다.
선생님은 기초반 수강생들에게 자유형을 두 바퀴 돌라고 말하고, 중급반 레인으로 건너가 버렸다. 나는 얼떨결에 일행을 따라 킥판을 놓고 자유형에 도전하게 되었다. 손과 발은 엇박자였고, 숨은 막히고, 팔은 무거웠다. 숨을 잘못 쉬어 코와 입에 물이 몇 번이나 들어갔다. 겨우 25미터를 건너고 나니 기진맥진했다. 되돌아갈 힘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다시 25미터를 헤엄쳐 돌아왔다. 그날 나는 킥판에서 벗어났다.
수영을 시작한 뒤로 몸이 조금씩 가벼워졌다. 건강검진에서 몇 가지 성인병이 진단된 이후 의사는 꾸준한 운동을 권했다. 관절이 좋지 않은 중년에게 수영이 가장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주 아프곤 했던 다리와 배도 많이 좋아진 느낌이다. 느리게, 수영은 내 몸을 다시 움직이게 했고, 내 마음을 다시 깨어나게 했다.
“손이 옆으로 빠지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떨어져요. 엄지손가락이 허벅지를 스치도록 신경 써주세요.”
S자 물잡기까지 열심히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내 마음속엔 ‘우린 아직 기초반인데요!’ 하는 말이 맴돈다. 밤마다 유튜브 수영 영상을 반복해서 보지만, 실제 물속에서는 마음처럼 쉽지 않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은 여전히 느리다. 선생님의 말씀을 곱씹으며 팔을 쭉 뻗는다. 오늘도 물 위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자유형 킥, 배영 킥, 평영 킥, 반복되는 연습 속에서 조금씩 나아진다.
맞은편에서 30년 전의 ‘나’가 힘차게 팔을 저으며 지나간다. 50미터 레인을 거침없이 오가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제 그녀를 잡을 수 없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본다. 어제의 ‘나’가 팔을 젓고 발을 차며 열심히 앞으로 간다. 나도 힘차게 팔과 다리를 움직인다. 그녀를 따라잡는다. 오늘보다 젊었던 어제의 ‘나’를 이기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수영을 마치고 헉헉거리는 숨을 고르며 샤워기 아래에 선다. 따뜻한 물줄기가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기분 좋은 노곤함이 온몸에 밀려온다. 새벽 공기의 싸늘함과 물속의 포근함이 교차하는 이 시간, 몸이 조금씩 새벽 루틴에 적응하고 있음을 느낀다. 호흡에 집중하며 수영하다 보면 어느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인생 중반의 나를, 물속에서 조금씩 만들어간다. 나만의 호흡으로 숨을 고르며,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