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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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가면서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고향을 한 번 생각해 본다. 고향을 떠난 지 어연 50년. 그러다 보니 내가 태어난 고향보다 현재 살고 있는 곳(서울)에서 더 많이 거주하면서 지방에 내려갔다가 서울에 오면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한 마음이 든다.
고향을 떠난 1970년대엔 고향이라는 주요 노랫가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때는 산업시대의 시작으로 교통이 발달되지 않아 웬만하면 하루가 걸렸다. 내가 충남에서 군생활을 할 때만 해도 경북 영덕이 고향인 전우에게는 다른 전우보다 휴가를 하루 더 주었다. 영덕 가는 길은 서울로 올라갔다가 다시 영덕인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아무리 멀어도 4∼5시간이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으나 이틀 걸리는 길이라서 전국에서 시간 거리가 제일 길었다.
고향 하면 우선 늙은 부모님, 형제자매와 집성촌이 많아 근처에 친척이 계시고 초등학교 동기생들과 싸우면서 자란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과 함께 냇물에서 송사리 잡고 봄에는 칡뿌리 캐고 찔레순과 진달레꽃 먹던 시절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얼마 전 고향(세종시 전의면)에서 초등학교 동창생을 만났다. 그 동창생은 풍요롭고 편리한 현재의 생활보다 옛날 집 앞 개천에서 민물고기를 그냥 잡아먹던 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점점 도시화되어 가는 오염된 개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십 년이면 산천도 변한다는데 옛적 흙먼지가 풀풀 나는 자갈길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설익은 과수원에서 애기복숭아를 서리하고 쑥개떡과 모래가 씹히는 까만 보리개떡을 먹고 한여름의 밀서리와 가을이면 콩서리 해 먹다가 입 언저리가 지저분해진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밭 언저리에 몇 그루 안 되는 밤나무의 풋밤을 따려다 주인에게 쫓기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밭 두둑 위로 솟아난 길가의 무밭은 뽑힌 자욱만 남아 있기 일쑤였다.
군 입대 전 설렘과 기대를 안고 명절이면 만원 열차를 타고 어렵게 고향에 내려갔으나 고향에서 옛 추억을 즐길 틈 없이 띄엄띄엄 다니는 기차를 기다림 끝에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장항선 선장역 근처에 내려 오리길의 논밭을 가르며 큰집으로 제사 지내러 가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아버님 말씀이 서러웠으나 명절에는 대목 장사라며 점포를 열어야 하는 아버지는 생업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에 대신 나를 보낸 것 같다.
농업이 주업이던 그때 농사 짓던 친구들 말을 들어보면 하필이면 학교에 안 가는 휴일이나 일요일을 택하여 아버지는 농사일을 시작한다며 원망 섞인 말을 들 적도 있다. 그때만 하여도 비좁은 3등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가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부모님과 추억을 같이한 친구들과 변하지 않은 산천이 나를 맞이하였다. 이젠 기억 안 나는 어린 시절을 제외한 고향보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옛 친구들은 도시화와 직업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산천도 많이 변한 고향보다 서울 생활에 익숙하다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면 편안한 마음이 든다. 교통의 발달로 지구촌이란 말이 생긴 지 오래이고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나라가 수두룩하니 시간 거리는 한없이 짧아진 것은 사실이다.
일본의 어느 도시계획 학자는 우리나라와 같이 영토가 작은 나라는 지방에 거점 도시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 적어도 800km 이상 떨어져야 자족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지방에서는 인구 부족으로 인한 편의시설이 점차 없어진 대신에 교통시설이 발전하여 앞으로는 웬만한 거리는 서울에서도 지방으로 하루길로 농사를 지으러 다닐 수도 있다고 하니 점차 고향이란 말은 들어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때는 고향보다 고달펐던 타향살이 때문에 고향이 그리워진 것일까. 사회 초년 시절 타향에서 야간 작업 등으로 고향의 아버님께 어려움을 호소하면 내려오라고는 하지만 마땅 내려가서 할 일이 없어 포기한 덕분에 어떻게든 버티려다 보니 자립이 빨라진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는 전보다 편한 생활을 하니 고향에 대한 애착이 멀어진 것일까. 그만큼 고달펐기에 젊은 시절 불렀던 고향 노래와 향수는 사라졌어도 연어가 바다에서 지내다 산란할 때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사람도 고향을 찾는 것 같다.
먼 훗날엔 한반도 또는 지구가 고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