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18
0
내 나이 종심이다. 불혹을 넘긴 자식들이 있어도 가끔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심정이 되어 서글퍼진다. 고향 옛집을 지도 앱으로 찾아서 도시계획으로 바뀐 도로와 길목을 옛 모습으로 복원하며 추억의 장소를 찾아 헤맸다. 사라진 건물도 많은데 50년도 더 된 고향 이층집이 건재하고 그곳 아래층은 약국과 약재상이 들어서 있다. 앞집은 일본 양식의 병원 건물로 우리 집과 빨간 벽돌 담을 공유했다. 도시계획으로 우리 집 마당과 부속 건물과 화단, 그리고 앞집 병원이 송두리째 도로가 되어버렸다. 내 감성을 건드렸던 달빛 스미던 감나무와 자주색 목련꽃은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도로가 삼켜버렸다. 삼복 한밤중에 이층 옥상에서 보이던 이웃집 노부부가 서로 등목해 주던 장면이 아련하다.
앱 지도를 엄지와 검지로 늘렸다 줄였다 반복하며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찾았다. 지표가 되어 줄 건물이 헐리고 도로가 생기는 통에 옛 자취를 찾아가는 게 쉽지 않다. 옛 기억을 더듬느라 그 밤 꼴딱 새우고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은 미완으로 남겨두고.
학교와 우리 집 사이 시장 빈터에는 약장수들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창극으로 판을 벌였다. 무대를 가설하고 <춘향전>이나 <심청전> <장화 홍련전> <흥부전>을 공연하며 모인 사람들에게 만병통치약을 팔았다. 하굣길 집 근처 시장 빈터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 동네 사람들 사이 엄마 곁에 앉아 나도 창극에 빠져들곤 했다. 여성 국극단으로 이루어진 그들은 우리 고장의 특산물인 합죽선을 손에 쥐고서 폈다 접었다 하는 발림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면서 극을 이어가서 중간에 일어나지도 못했다.
제일 인기가 있는 창극은 <춘향전>이다. 광한루에서 이도령이 그네 타는 춘향에게 반하여 방자를 시켜 만나게 하는 장면, 청춘 남녀가 사랑에 겨워 장난하며 춘향을 어르며 업고 노는 장면, 춘향의 걷고 웃는 태도 보기 장면, 몰래 첫날밤을 보내며 옷 벗기기 장면 등 중모리, 중중모리 장단으로 이어지는 창과 고수의 “잘헌다아”나 “얼씨구” 추임새.
“애, 춘향아, 우리 한 번 업고 놀자.”
“아이고, 부끄러워서 어찌 업고 논단 말이오? 건너방 어머니가 알면 어떻게 허실라고 그러시오?”
“너으 어머니는 소시 때 이보다 훨씬 더했다고 하드라. (개구멍도 뚫고 다녔다고 허드라.) 잔말 말고 업고 놀자.”
그러다 이별 장면에서는 관객 모두가 자기들이 춘향인 양 향단이나 월매인 양 눈물을 훔치고, 춘향이 이도령을 그리워하는 진양조의 창이 이어지면 여기저기서 울고불고, 고수는 “아” “하” 몸짓으로 더 부추기고….
<흥부전> 박 타는 장면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질 때 일제히 박수가 쏟아졌고, 놀부가 금은보화가 가득 들었다는 화초장을 아우에게 빼앗듯이 얻어 직접 짊어지고 가다, 개울을 건너면서 이름을 잊어버려 ‘장’ 자 돌림의 온갖 사물을 익살스럽게 나열할 때는 걸쭉한 욕과 함께 웃음이 터졌다.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화초장 얻었네∼. 얻었네 화초장 하나를 얻었구나. 얼씨구나 화초장 절씨구나 화초장∼”을 부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다가
“또랑 하나를 건너뛰다가 앗차 잊었구나 이것이 무엇이냐. 장은 장인 데 모르것다. 잡것이 거꾸로 붙여도 모르겄다∼. 초장화 화장초 아니여, 장초화 그것도 아니고. 간장, 고초장, 방장, 천장, 구들장∼.”
빠르고 경쾌한 중중모리 장단에 맞춰 우스꽝스럽게 놀부의 심술과 탐욕을 연기했던 팔자수염의 놀부를 떠올려 본다.
우리 집도 판소리가 늘 울려 퍼졌다. 아버지는 늘 양쪽으로 테이프가 돌아가는 레코드를 틀어 놓고 <심청전>이나 <흥부전>을 감상하셨다. 따로 책을 읽지 않고도 판소리 다섯 마당은 그 내용을 다 알 수 있었다. 내가 짜증을 내고 심술을 부리면 뺑덕어멈 닮았다고 하고, 별일도 아닌 것에 놀라면 심봉사 눈떴냐고 놀렸다. 놀부의 심술 타령은 “심술보 하나가 장기 궁짝만한 놈이 왼쪽 갈빗대 밑에 가 붙어”라며 놀부의 외모적 특성을 아니리로 엮어 가다 “애 밴 부인 배통 차고, 우는 아기 집어 뜯고, 애호박에다 말뚝 박고, 똥 싸는 놈 눌러 앉히고…” 몇십 가지 심술을 자진모리 장단으로 이어갔다.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 내 고향은 청포를 치자로 노랗게 물들여 황포묵으로 비빔밥에 얹어 꽃이 피어난 듯 장식한다. 집에서는 시루에 콩나물을 길러 나물과 국과 비빔밥을 만들어 먹고, 가정집 반찬이 이십여 가지가 기본으로 나오는 백반집이 많았다. 여름날, 수양버들 늘어진 전주천 한벽당 근처 평상에서 태극선을 부치며 오모가리탕을 먹는 것을 최고의 피서로 여겼다. 근처 한옥에서 연주하는 청아한 가야금 선율이 들려왔든지, 판소리 한 자락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가야금 반이 있을 정도로 가야금 연주와 장구 치는 소리는 골목길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다.
옛집을 구심점으로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동안 어린 시절 추억이 꽃처럼 피어난다. 나에게 꽃심을 심어준 내 고향은 언제나 어디서나 나를 지탱해 준다. 꿈에서라도 그곳에서 그때 그들과 엄마 밥상에 둘러앉아 웃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