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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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이면 우리 기타반은 연주회를 연다. 우리 동네 문화센터 기타반원에다 여타 지역 센터에서 기타를 배우는 이들이 함께하는 모임이다.
올해는 이천의 한적한 마을 어느 교회 앞 작은 공터 가설무대에서 열었다. 예년에는 실내에서 하더니 올해는 마땅한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청중은 연주자들의 가족이나 친지들이었고 어쩌다 교인들도 간혹 보이기도 했어도 연주자의 숫자와 엇비슷한 규모다.
이 연주회는 우리가 일년 내내 갈고닦으며 준비한 곡들을 실전하는 자리다. 자축 행사이니 거기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자신의 부담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여 마음을 죄게 하더니 그나마 오후가 되어 잠시 빗방울이 멈추었다. 우린 재빨리 모두 검은색 정장으로 차려입고 멋을 냈다.
이윽고 연주회의 단상에 올라갔다. 내 자리는 마지막 줄 구석이다. 자리라기보다 청중의 시선을 바로 받아도 되는 피난처에 가깝다. 앞줄에는 능숙한 회원들이 겹겹이 앉아 맑은 음을 쏟아낸다.
그런데 나는 기타를 잡은 마네킹처럼 박자를 잃고 어물거린다. 악보를 넘기는 척 코드를 잡는 척 손가락을 움직이는 척 이렇게 ‘척 연주’만 하다 보면 어느새 곡이 끝나곤 했다. 연습 때는 어영부영 어울리었는데 그날따라 손가락이 굳어 움직이질 않는다. 연주 내내 기타를 치는 흉내만 내면서 연주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내가 기타가 접하게 된 건 입학시험을 치르러 서울에 왔을 때이다. 학교에서 가까운 종로의 어느 하숙집에 며칠을 머물렀었다. 시험 전날이었을 게다. 읍내의 실업학교에서 덜컥 원서를 내두었으나 불안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정 너머서였다. 이웃집 담벼락을 타고 고요한 음악이 들려왔다. 무슨 곡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애절한 리듬이었다. 같이 동숙하던 어른에게 물었더니 기타라고 했다.
이 기타를 눈으로 본 건 그해 10월 교내 축제 때이다. 학과 친구 녀석이 4인조 클럽으로 기타를 들고 무대에 올라섰다. 당시 크게 히트 중이라던 팝송으로 운동장을 들썩여 놓았다. 녀석은 후에 베이징 대사로 있을 때 우리 동기들을 관사로 초청하여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예의 그 기타를 다시 켰다. 옛 축제 때의 엘비스의 곡이라면서 기타를 퉁겼다. 감미로운 선율이다.
그날 연주회가 끝나자 같이한 친구가 내게로 다가왔다.
“굿!”
그러면서 생긋 웃었다. 그는 재학 시절부터 기타를 친 베테랑이다. 전부터 기타를 함께해 온 우리 반원이기도 하다. 그의 굿이 무슨 의미인지 얼른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말석 구석 자리에서 긴 시간을 메우며 자리를 지켜 머릿수를 채워준 게 좋았다는 건지.
사실 우리에게는 오래된 버킷리스트 하나가 있다. 언젠가 기타 여행을 떠나는 거다. 그것도 가까운 곳이 아닌 저 먼 실크로드를 따라가는 여정이다. 둔황 고비사막 톈산산맥 파미르고원 타림분지를 지나 이스탄불 로마로 이어지는 길이다. 생각만 해도 가당찮다. 박자 하나를 제대로 맞추지도 못하는 말석 기타리스트가 사막에서, 이국의 고원에서 기타를 울리겠다는 낭만은 말이 되질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우린 막연히 믿고 있다. 언젠가는 중앙아시아의 드높은 고원의 밤바람 맞으며 타닥거리는 모닥불 앞에서 우리가 즐기든 아리랑을 켤 날이 올 것이라고.
요즈음은 연습하다 보면 마음에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전에는 박자를 놓칠까 보아서 손부터 떨렸는데 이제는 한 소절이라도 진짜 소리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박자가 늘어져 조금 늦게 울리는 음이라도 내 기타에서 나오는 소리는 꽤 정겹다. 실크로드로 향한 설레는 꿈이 나를 무대 앞으로 끌어당기고 있는지 모른다.
이 해가 저물어 간다. 새해 어느 날인가 연주회는 다시 열릴 것이다. 그때도 내 자리는 분명 뒷줄 코너의 말석일 것이다. 아마도 어느 소절에 가서는 박자를 놓쳐 허둥거릴 것이고 그리 멀지 않은 자리의 친구가 그 예의 생긋할지 모르겠다.
그래 이번 연주에는 ‘척’만은 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한 소절을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재빨리 다음 소절을 찾아 더듬어 들어가리라. 더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간 마디에서라도 제대로 소리를 만들어야지.
콘스탄티노플의 황혼녘 바닷가를 거니는 기타를 멘 우리의 영상이 떠오른다. 오늘도 말석에서 한 음씩 연습을 쌓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