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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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여러 갈래의 길을 만나게 되었다. 그 길을 선택함에는 늘 희비가 엇갈렸다. 어릴 적엔 논밭두렁 멋대로 구부러진 길을 놀이터 삼아 자랐다. 고모댁에서 중학교 다닐 때부터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 적응하느라 힘들었다. 시내의 길과 집들은 모두 낯설지만, 신기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 부모님은 왜 힘든 농사일만 하고 시내에 살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 집도 시내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장날이면 키만큼 자랐던 기억이다.
돌아서면 나무 절구통이 있던 초가집 헛간에 멈춰 선다. 놋숟가락으로 감자를 긁어까던 어머니 모습. 외양간에서 꿈뻑거리던 어미소의 눈망울. 강아지와 뛰던 사랑채. 공기놀이, 사방치기, 고무줄의 추억도 모두 끊어져 버린 마당. 그곳에서 내 사랑과 웃음 행복이 자랐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이젠 소꿉놀이에 겨워서 같이 졸던 야트막한 담장도 꿈속에 희끗하다.
동네 친구들과 놀다가 우물물을 두레박에 퍼올려서 입 대고 들이키던 일. 그 순간들이 멈출 수 없는 그리움이고 인생길이 될 줄이야. 그때가 찐행복이라고 여길 말할 수 있다.
우리 인생길도 각자 다른 산책로를 걷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잘 닦여진 길이 무조건 좋은 길이 아니라는 걸 진작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남들이 가는 길이면 지름길인가 싶었다. 아이가 어릴 적엔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옆집이나 같은 반 친구 엄마가 보내는 곳에 함께하는 것을 부모 노릇이라 여긴 탓이다. 서투른 부모로 아이의 성향과 인성보다 경쟁의 길이 아닐까 느꼈을 땐 후회와 마주했을 뿐이다. 대입을 앞두고서야 적성에 맞는지 암담했지만, 제 갈 길 찾아간 아들들에게 박수만큼 미안함이 남는다.
자전거를 타는 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체력에 맞게 호흡도 조절하며 쉬어 가는 게 힐링임을 알게 됐다. 자동차로 달리면서 놓친 풍경들이 보이는 것을 여유라 부른다. 때와 장소에 맞는 길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하면 멈춰서 두리번거림의 순간도 쉼이었고 모두 치유가 되었음이다.
바쁘게 달려온 길목에 서서 돌아보면 멈칫거릴 때가 많았다. 살다 보면 지난 시간들이 한없이 작아지게 한다. 지난해도 그랬다. 급한 성격이 무엇이든 서둘렀고 조급했다. 이제는 어떤 일도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마음 내려놓고 실수 없이 가련다.
운동하는 산책길의 풍경도 다르게 칠한다. 스치는 바람과 하늘빛도 다른 색으로 보정하며 포토샵 하나로 생기를 찾는다. 여백의 공간에 색 다른 풍경을 들이는 것으로 맑은 기운이 솟고 여유를 찾게 된다.
요즘엔 길섶으로 누운 벼들과 주말농장의 넉넉한 풍경을 만난다. 내 삶이 힘들 땐 그렇게 눕고 싶은 순간도 지냈다. 예측이 힘들 땐 주눅으로 웅크린 채 살았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삶은 변화무쌍함을 견디는 길임을 공부시키고 일깨워주었다.
사업 후유증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도 그랬다. 가라앉으면 공허함인지 우울 속에 갇혀서 허우적거렸다. 무너져 버릴까 봐 ‘이 순간도 지나간다’는 그 말 되짚으며 보냈다. 두려움 속에서 그 모퉁이를 어찌 보냈는지 모른다.
때로는 걸어온 길이 어디쯤인지, 얼마나 더 걸을 수 있을까 한다. 생각의 꼬리를 물리면 두려움만 커진다. 그런 날은 그냥 앞서는 이 뒷모습 쫓으며 같이 한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인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머뭇거리지 않는 길. 그냥 일방통행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선호한다. 오르막 내리막길보다는 평범한 길,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새로운 길을 더 걸어도 좋겠지만, 남과 비교하지 않으리라. 원하는 길 찾으려고 원치 않던 길에서 방황했던 만큼 여유를 갖고픈 것이다. 젊을 땐 그냥 맞서 싸웠다. 이젠 바람 소리에도 놀란 발길이 조심스럽다. 어쩌겠는가 삶의 무게만큼 힘껏 내딛어 가야지.
틀에 갇힌 일상이 외로울 땐 자전거가 효자다. 호호 아들이 사줘서 그런가. 마주 안겨드는 바람도 좋고 막혔던 일도 잘 구르는 기분이다. 늘 곁에서 친구가 되고 힐링을 일깨우게 해주는 자전거. 언제나 치유받는다는 생각이 되는 건 무한한 감사이고 축복이다.
‘어제 같은 오늘, 밤사이 별일 없음이 행복이라 하지 않든가’. 내게 딱 맞는 인생길도, 딱 맞는 사람도 없는 것이다. 환경에 순응하며 평범한 일상 속에 사랑도 찾고 행복도 찾아내리라. 서로 좋아하는 걸 해줄 수 있음도, 싫어하는 걸 하지 않음도 바람직한 길이리라.
내 삶의 끝자락에서 다시 걷고 싶은 길이 어딘가를 생각해본 적 있다. 어릴 적 수없이 오르내리며 나뭇가리 하던 아버지의 산등성마루. 내 눈이 가슴이 꿈인 듯 기억해도 점점 뚜렷하게 보이는 그곳. 아직도 낯익은 아버지 목소리가 바람에 섞여서 들리는 곳. 파주 심학산 언덕빼기 아래 자리한 늙은 소나무 한 그루. 아버지 지게 위로 새소리 풀벌레 소리 함께 따라오던 곳. 졸졸 흐르던 옹달샘 길에 멈춰서, 샘물 한 옹큼에 행복은 덤으로 한 지게 지고 내려오던 길. 들깨 둥치가 누웠던 텃밭이 가까워지면, 초가집 지붕 위에 박넝쿨이 춤추고 반겨주던 집. 굴뚝에선 밥 짓는 연기가 구름처럼 흩어지던 하늘. 사랑채 툇마루에 외아들 기다리던 할머니의 쪽진머리. 들깨 멍석에 참새들 잔치 벌이던 그때의 햇살. 형제자매들 웃음소리 묻혀 있을 울퉁불퉁한 마당. 모깃불이 매캐하던 흙마당 언저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