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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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선물로 자전거 선물을 받았다. 나는 자전거를 제대로 탈 줄 몰랐다. 남편은 장안공원이나 수원종합운동장 주차장 주변에서 자전거 강사가 되어 잡아주고 밀어주곤 했다. 내가 조금씩 자전거를 타게 되자 함박웃음으로 좋아했다. 아이들이 처음 자전거를 배울 때 흐뭇해하던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보는 듯했다. 환갑이 넘은 부부의 자전거 연습은 한 달이 가기 전에 혼자 탈 정도가 되었다.
한 번은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데 몸과 생각이 겉돌아 넘어졌다. 이빨이 부러졌나 싶었다. 입 주변이 얼얼하였다. 겨우 혼자 타게 되었는데 넘어지자 무서워서 자전거를 못 탈 것 같았다. 그때 남편은 지금 극복하지 못하면 앞으로 자전거를 영영 못 타게 된다며 다그쳤다.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올랐다. 누가 전직 교사 아니랄까 봐 직업정신이 발동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제법 타게 되었을 때는 뿌듯했다.
자전거를 가지고 나가서 실습을 하기로 했다. 첫 나들이는 속초 영랑호 한 바퀴 돌아보기였다. 속초에 도착하자 비가 내리려고 있어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자동차로 돌아보며 길을 익히고 거리를 가늠했다. 첫 번째 시도인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속초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기다렸다. 다음 날 거짓말처럼 속초의 하늘은 맑게 개었다.
자전거가 한 대라 빌리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대여점의 문이 닫혀 있었다. 결국 자전거 하나로 산책 삼아 영랑호를 돌아보기로 했다. 비 온 뒤라 영랑호 주변을 걷는 사람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드물었다. 내가 자전거를 타면 그는 걷고 그가 타면 나는 걸었다. 자전거 뒷좌석에 앉아 함께 타는 것도 재미있었다. 영랑호 둘레길은 호수와 호수 주변의 풍경이 아름다워 한 바퀴 도는 내내 즐거웠다.
다음에는 시화호 자전거도로로 나갔다.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며 바닷바람에 머릿결을 휘날렸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탈 수 있을까. 수없이 의심하며 콩닥거리는 마음을 달랬다. 드디어 안장 위에 올랐다. 자전거길을 따라 규칙을 지키며 내가 갈 길로만 달렸다. 속도가 느리면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나를 추월해 나가고 나 또한 앞사람의 속도가 답답하면 앞서 나갔다. 나는 내 속도에 맞춰 기분 좋게 달렸다. 자동차길처럼 오가는 길이 정해져 있어 질서 있게 움직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하던 자전거를 타고 많은 무리 속에서 내 길을 간다는 게 신기했다.
바닷바람은 상쾌했다. 바람이 얼굴을 스쳐 가면 부드러운 촉감에 나도 모르게 씩 웃기도 했다. 천천히 달리면 살살, 빨리 달리면 더 세게 부딪는 바람의 속도를 느끼며 속도를 늦췄다, 빠르게 하기를 반복하며 자유로움을 즐겼다. 마음껏 달리자, 해방감에 속이 후련해졌다.
몇 주가 지난 11월에는 춘천호 둑길을 자전거로 달렸다. 대여한 2인승 전기자전거는 힘들이지 않아도 씽씽 잘 나갔다. 늦가을의 쌀쌀함도 잊은 채 자전거 데이트는 청춘처럼 웃을 수 있어 좋았다. 자전거길이 잘 되어 있는 강둑을 따라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사근사근한 춘천의 바람, 그 바람은 보송보송 얼굴에 부딪는 정다움이다. 2인용 자전거는 기다랗고 무거운 느낌이지만 전기자전거라 페달을 살살 밟아도 제법 잘 나갔다. 남편은 앞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고 나는 뒷자리에 덤으로 앉아 강물과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 순간에 빠져 들었다. 이런 행복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자전거 여행은 세 번을 끝으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자전거를 배우고 세 번의 나들이. 그것이 전부였다. 이제 자전거 타는 것을 잊었다. 몇 년째 한 번도 타지 못하고 세워 둔 자전거. 나는 자전거를 탈 수가 없다. 자전거를 타는 게 서툴면 잡아주고 밀어줄 남편이 자전거와 나를 남겨 놓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고 곁에 없다.
자전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에게 손뼉 쳐 주는 엄마가 아니라 함께 즐기는 엄마였으면 좋았을 텐데. 겁 많은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막내는 엄마랑 같이 자전거를 타고 싶다며 내 뒤를 밀어주고 잡아주며 애를 썼다. 하지만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났다. 되돌아갈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자전거를 배워 온 가족이 장안공원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몇 번이고 달려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
마당 한 편에 자전거가 외롭게 서 있다. 나를 둘러싼 내 삶의 그림자, 녹슬어 가는 자전거처럼 내 마음도 조금씩 녹이 슬어 가는 건 아닌지. 바퀴는 굴러가야 바퀴의 역할을 하건만 무심하게 세워만 두었다. 자전거 바퀴는 굴러야 한다는 사명도 잊은 것으로 보인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고 모른 척했다. 자전거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먼지가 쌓여 엉망이 된 자전거에 다가갔다. 손으로 어루만지자 먼지가 뽀얗게 묻었다. 걸레로 자전거를 깨끗하게 닦았다. 바퀴를 살펴보니 바람이 빠져 푹 주저앉아 있다. 바퀴에 바람을 넣어 주고 자전거를 보살피며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이제 남편의 부재를 딛고 자전거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이다. 나 스스로 자전거 안장에 앉아 페달을 다시 밟는 날, 비로소 내 꿈도 활짝 기지개를 펼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