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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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늘 쉼 없이 움직이셨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무얼 그리 하시는지 그 모습을 하나하나 뚜렷이 떠올릴 수 있으며, 특히 웃음 짓는 표정에서 눈물 글썽이던 모습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들을 아련하게나마 되새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아직도 나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있다. 깊은 밤 목욕재계하고 하얀 대접에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두 손 모아 치성 드리던 모습은 나의 어머니상(像)으로 영원히 남아 있다. 시계의 초침보다도 더 바지런히 삶을 사신 어머니! 그 속에서 나는 유년 시절을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었다. 어머니의 헌신 덕택에….
어느 여름날 삼경(三更)이었을까? 밤하늘은 유리알처럼 투명했고 별들은 은빛으로 빛났다. 어머니와 나는 멍석에 앉아 북두칠성 자리, 견우 자리 직녀 자리 손가락 끝으로 하나하나 밤하늘에 별 이름을 심어 주다가 산등성이로 성호를 그으며 사라지는 별똥별을 보았다. 어머니 무서워요. 나는 배 위에 건져 올려진 새우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당신의 무릎 위에 내 머리를 끌어다 누이고, 부드러운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무서워 마라 애야, 별이 지는 건 수명이 다해 지는 거란다. 사람도 이 세상 아니 우주 삼라만상도 마찬가지란다. 그리고 그 지는 별은 다음에 더 튼실한 별로 태어나기 위해 기꺼이 지는 거란다” 하시면서 자장자장 나의 잠을 불러오셨다.
오늘은 어머니를 뵈러 산소에 가는 날. 간밤을 어머니 생각으로 늦도록 몸을 뒤척였다. 오늘 아침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댔다. 아들놈과 딸년은 성년이 되어 이미 내 곁을 떠나고, 아내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울에 남겨둔 채 나 홀로 어머니를 뵈러 간다. 당신이 계신 고향에 간다. 마치 유년 시절 여름날의 하굣길처럼.
내가 자라던 그 시절 모든 부모님들이 다 그러하셨겠지만 내 어머니도 유독 아들의 공부만은 서울에서 시키고 싶으셨다. 서울은 유서 깊은 곳이고 팔도인이 모이는 중앙의 무대니 그럴 만도 하였다. 배움의 기관들이 널브러져 있는 탓도 있겠지만 당신 생각과 판단은 사람은 대저 큰 도회지로 나가 몸소 세상사를 부딪치고 견문을 쌓아야 장차 사회에 큰 쓰임이 있을 거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지금도 귓전에서 윙윙거린다.
호기심과 야망을 꿈꾸며 상경을 감행했던 동안(童顔)의 소년은 이내 머리 위에 하얀 실타래를 얹어 놓은 야속한 만큼이나 세월은 굽이굽이 수많은 고개를 넘었다. 호기심은 무더운 여름날의 갈증처럼 알아도 안 만큼의 의문들을 더 키워냈고, 푸른색의 고색창연한 젊은 날의 꿈들은 오색 무지개만큼이나 더욱 하늘 높이 떠 오늘 두 발 딛고 서 있는 나의 발을 마냥 저리게 한다. 오늘은 다만 존재할 뿐, 산다는 것은 어제와 내 일을 유영하는 것이라 하던가. 삶의 햇수로 보면 고향에서의 삶보다는 서울에서의 삶이 몇 갑절이나 많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이란 단어는 바람결에 풀풀 날아가는 보푸라기처럼 왜 이리 가볍고도 정이 안 드는 것일까?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나의 도회지 삶은 꼭 수초 같다.
사람에 치여 염증을 느낄 때면 나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부딪칠 수밖에 없다. 선연도 있고 악연도 있다. 정을 나누며 살기도 하고 싸우며 살기도 한다. 싸움은 짐승들이나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언제나 나의 잠언이었다. 싸우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이를 먹어 가면서 ‘떠남’에 대한 단어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비어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그 여름날 밤을 생각한다. 어머니의 숨결과 손결이 느껴진다. 이내 허허로운 내 생이 충만해지고 무심했고 무관했던 것들에 대하여 눈길 주고 마음 써 주는 여유가 비로소 생겨난다.
이 무미건조하고 답답한 도회지 생활에 가끔씩 대자연의 호연지기와 안식을 주는 ‘고향’이 떠오른다. 고향은 어머니와 같다. 삶이 지난하고 고단하여 찾아간 고향은 어머니의 품만큼 따스하고 너그럽다.
어머니 산소는 패랭이꽃의 세상이다. 아쉬운 이승에서의 삶을 꽃들이 달래주는 것일까? 어머니가 좋아하신 안개꽃을 상석에 올려놓고 불초한 아들이 찾아뵈었노라고 절을 한다. 온기가 느껴진다. 시간이 잠시 멈춰지고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사라진다. 하 많은 가슴속 언어들이 잠자리 떼만큼 오고 간다. 눈을 뜨면 ‘고향에 계시고 눈을 감으면 나와 함께’ 사시는 나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