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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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여행객들 팀에 낀 문우와 나는 짧은 베트남 여행을 마쳤다. 비록 처음 방문한 낯선 땅이고 주마간산 격이었지만 우린 그런대로 흡족해하였다. 사흘째 되던 날, 마지막 여행지인 이웃 나라 캄보디아로 날아가 첫 목적지인 시장을 둘러본 것은 오후 다섯 시쯤이나 되었을 게다.
가이드가 우리 여행객을 안내한 곳은 서울 남대문이나 동대문 시장처럼 번화하진 않되 꽤 큰 규모의 건물이었다. 쇼핑을 유도하기 위한 관광 회사의 전략이라고 할까. 여러 가지 옷들이며 액세서리, 생필품을 파는 곳이어서 추억에 젖어들게 하였다. 비록 문화의 형태가 다르고 풍습도 다르지만 시장이란 곳은 누구에게나 친밀감을 갖게 하는 장소라 여겨진다.
문우와 내가 건물 안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팀에 속한 사람들이 건너편 야시장이 열리는 쪽으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육교를 건너가고 있었다. 우리도 자연스레 육교에 올랐다. 아직 따가운 햇살인데 조악한 물건을 내놓으며 이방인들의 도움을 외치고 있는 여인들과 소녀들을 눈으로 훑으며 지나치던 중이었다.
다리 중간쯤이었을 게다. 열두어 살이나 되었을 법한 소녀 하나가 파란 세숫대야에 네댓 살로 뵈는 알몸뚱이인 남자아이를 앉혀 놓고 있지를 않는가. 이럴 수가…. 십 년이 다 된 지금도 원색의 파란 세숫대야와 대비되던 아이가 선명하게 어른거린다. 육교에 막 올라온 듯 소녀는 숨을 고르는 중이었고, 가무잡잡한 남자애는 좁은 대야에 몸을 맡긴 채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며 눈을 껌벅이고 있었다. 눈망울이 큰 아이는 필시 소녀의 동생이었을 터이다. 가슴이 뜬금없이 방망이질을 하였다. 못 볼 것을 본 양, 잰걸음으로 육교 끝까지 와버리고 말았으니. 문우도 필시 그 광경을 보았으련만 묵묵히 나를 좇아왔을 것이다.
그때 갑자기 문우가 뒤로 돌아섰다.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아요, 원 달러를 주고 와야겠어요, 한다. 측은함이 묻어 있는 목소리. 나는 두 번째 적선의 기회가 왔으련만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가. 가슴이 떨리는 걸 참고서 딴 데를 바라보며 묵묵히 기다리고 서 있을 뿐이었다. 옆 나라 베트남을 여행했을 적에는 마음문을 열었다. 궁핍한 아이들이 손을 벌리거나, 이동하는 관광버스 앞에서 천 가방을 들고 애절한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그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다. 천 가방도 사주고,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그 나라 잔돈이나 소액의 달러를 꺼내 주곤 했는데 어찌 캄보디아에선 그처럼 몰인정했는지 알 수가 없다. 마음에 긍휼함이 사라졌던 것일까. 아무래도 누나에 대한 얄미움, 원망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몽골에 갔을 적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엔 여행 가방에 연필 같은 문구류를 갖추었다. 어린아이들을 만나면 주고 싶은 단순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필히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살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수필가들과 함께하는 나들이에 설렘만 안고 동승하였던가 보다.
막상 우리가 어린아이를 마주친 곳은 유목민이 거주하는 벌판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난 아이는 일곱 살짜리 소녀였다. 그 애가 자신의 거주지인 겔에서 나왔을 때 나는 마침 좋은 기회라고 여겼는지 백 속에 넣어 둔 연필을 만지작거렸다. 우리와 인사를 하기도 전, 용감하게 말을 타더니 바람을 가르며 멀리 있는 들판으로 가축을 돌보러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기하였다. 순간 내 무지함을 깨달았다. 그 아이는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유목민의 후예였던 것이다. 허허벌판에 무슨 배움터가 있어 어린아이들이 연필을 잡으며 종이가 필요했을까. 말 탄 소녀가 번개같이 돌아왔을 때, 선물이랍시고 연필 몇 자루와 노트를 손에 쥐어주면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다음부터 가난한 나라를 여행할 때엔 1달러짜리나 그 나라의 낮은 가치를 지닌 지폐를 준비하였다. 생활이 곤궁한 사람들을 돕는 지혜, 우리가 헤쳐 왔던 지난날을 회상해 보는 값진 체험이란 것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교만이 아닌 겸손으로 그들을 돕자는 마음도 들어 있다. 한데 나는 캄보디아에서 중요한 기회를 두 번이나 잃어버렸으니 두고두고 후회를 하였다. 가족의 끼니를 위해 오죽하면 제 남동생을 견본품으로, 아니 구걸을 넘은 애걸 품목으로 내놓았을까 하는 상념이 지금도 뇌리 속에서 가시질 않는다.
오랫동안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자선단체들에게 지불하고 있는 몇 푼의 돈. 나는 지금 그들에게 달마다 소액을 기부하며 캄보디아 어린 남매를 돌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보상이라 여기고 있다면 잘못일까. 양심이 마비되지 않았음을 감사히 여기며 산다.
마침 유엔난민기구에서 카톡 문자가 날아든다. 미얀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고통당하는 백성을 도와 달라는 간곡한 호소이다. 어찌 눈을 감고 있으랴. 그곳에서도 웃음을 잃어버린 어린이들과 어머니들이 한 끼 식사를 달라고 부르짖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