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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골 이야기

한국문인협회 로고 아이콘 박연화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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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버섯을 따는 날이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날 소복소복 올라온 표고버섯을 따는 마음이 드물게 흐벅지다. 먹지 않고 보기만 하는데도 그랬다. 무뚝뚝한 참나무 토막에서 저리도 앙증맞은 버섯이 나오다니 그럴 수가. 자그마한 지붕처럼 우산처럼 보기만 해도 탐스럽다.

몇 해 전 토막 낸 참나무 그루터기 몇 개를 뒷산 언저리에 세워 두었다. 그리고 종균을 넣었는데 처음에는 버섯이 나오지 않았다. 포기하고 이태가 지나도 소식이 없다. 그러다가 올 봄에 그리 탐스럽게 달렸던 거다.

부랴부랴 따고 보니 한 광주리가 넘었다. 산해진미를 들여놓은 것처럼 마음이 넉넉하다. 끓는 물에 데치면서 그냥 먹는데도 솔솔 녹는다. 새참이 지났다. 뒤미처 저녁이 되었다. 감자와 함께 찌개를 끓여 놓으니 불고기 밀어놓고 먹는다. 고량진미가 따로 없다.

표고버섯이야 시장에만 나가도 흔히 볼 수 있으나 종균을 넣어서 인공적으로 재배한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식으로 종균을 넣었지만 참나무 토막을 던져둔 곳은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려오는 숲 한가운데였다.

밤이면 더구나 별이 빛나고 달빛이 비껴가는 곳 아니었던가. 하늘은 푸르고 풍경도 훨씬 아름다운 곳에서 자랐으니 맛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보물 중에 보물을 보는 것 같다. 버섯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식품이라는 게 실감이 간다.

특별히 버섯은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았다. 토막 친 나무를 던져 둔 곳은 가파른 언덕이었다. 좀 더 가면 평평한 곳도 많고 풀이 우거진 곳도 흔했다. 훨씬 더 따스하고 안락한 곳이 많은데 그 자리만 어둡고 습습했다.

얼마쯤 자랐나 싶어 이따금 둘러볼 때도 알 수 없는 냉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대낮에도 햇볕은커녕 어두컴컴하지만 그래서 더 잘 자랄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여타 식물로서는 자랄 수 없는 악조건인데도 그런 속에서 크는 버섯의 한살이가 놀랍다.

우리도 그런 자리에서 힘들게 사는 경우가 있지만 달게 참을 수 있어야겠다. 우리를 키우는 것은 순조로운 과정이 아닌 악조건에서 힘들고 허덕일 때였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은 고난의 풀이다. 바람에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영광의 꽃을 달고 소망의 열매를 맺는다.

힘들어지면 습관적으로 불평하는 자신을 돌아본다. 그게 우리의 본성이라 하지만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버섯이 따스한 곳에서 자랄 경우를 봐도 그랬다. 버섯은 누가 뭐래도 앙바틈하게 커야 맛있는 식품이다. 갑자기 볕이 들어서 훌쩍 커버리면 맛이 떨어진다. 싱거운 것은 물론 특유의 향이 없어진다.

인생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물도 가다 보면 장애물이 있다. 여울에서는 돌아가야 하고 가물 때는 잠시 멈췄다가 흐르기도 한다. 추울 때는 얼어붙은 채 겨울 삼동을 나기도 했다.

까까비알 낭떠러지를 만나면 눈앞이 핑핑 돌만치 곤두박질치는 과정을 치르기도 한다. 천길 절벽은 바라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것 같다. 그런 곳을 더구나 물구나무를 서는 것도 아닌데 거꾸로 떨어지는 게 어디 보통 일이랴.

하지만 그렇게 흘러 흘러야 바다에 이르는 것이다. 사는 게 어디 쉬운 길만 있던가. 자갈밭은 물론 가시덤불을 만나서 찔리고 긁히면서 상처투성이가 되지만 극복하고 나면 영광의 상처가 되는 것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어둡고 습한 곳에서 참고 견디면서 소복소복 예쁘게 돋아나는 표고버섯들처럼 그렇게. 우리들 살아가는 것도 풍파를 잘 이겨내고 또한 많은 것에서 열정으로 살다 보면 그 뒤에서 잘 살았다고 잘 살아왔다고 하는 평안이라는 안식이 되듯이.

하지만 표고버섯에도 알레르기가 있다. 알레르기 유발성분인 렌티난은 열에 약한 편이기 때문에, 완전히 익혀 먹으면 반응이 줄어들 수 있으나 165도 이상 고온에서도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알레르기가 있다면 아예 섭취를 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우리 삶에도 알레르기 같은 부작용은 있을 테니까.

나 자신 무던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어지간한 것은 그냥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라도 서로 간의 인내가 이 버섯의 우직함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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