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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치기와 수학 공부

한국문인협회 로고 한윤이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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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을 나선 윤구는 집이 아닌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공원은 숲속 도서관과 나무숲이 있어 체험학습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고, 공원 근동의 아파트 주민들이 너나없이 즐겨 찾는 곳으로, 바로 옆 학교 학생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이제, 아름답게 단풍졌던 공원의 숲은 썰렁했고 을씨년스러웠다. 쓸쓸해 보이는 공원의 벤치를 찾아 웅크리고 앉은 윤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침부터 찌부드드하던 하늘은 회색빛으로 낮게 드리워져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윤구는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집에 가기 싫은 걱정 등의 생각, 저 생각 궁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찬바람과 추위에 더 앉아 있기가 괴로워진 윤구는 결심을 하고 벤치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제 집에 걸거다!”
그러나 집을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윤구는 발에 걸리는 돌멩이를 화풀이하듯 힘껏 내질렀다. 공원 저쪽 아파트 신축 공사로 모래와 자갈을 실어 나르는 트럭에서 굴러 떨어진 돌멩이들이 공원 길과 학교를 오가는 길목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윤구는 천천히 집을 향해 걸으며 선생님 얼굴을 떠올렸다.
“모든 건 숫자로 통한다. 세상에 숫자로 통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숫자란 우리 생활과 떼려야 떼를 수 없는 밀접한 연관성으로 밀착되어 있다.”
수업 시간의 선생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 울려오는 듯했다. 
선생님은 장장 한 시간이나 숫자 이야기를 계속했다.
“…숫자에 둔한 사람은 그만큼 생활에 뒤진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 수학을 못하는 사람은 그만큼 늦은 사람이다. 중학교에 가서도 그렇고 고등학교 때는 말할 것도 없다. 대학에 진학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선생님은 생활과 대학 진학이라는 말을 특히 강조했다.
그러고 보면 선생님의 말씀이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모든 게 숫자로 통하지 않는 게 없다. 우선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돌멩이를 봐도 그렇다. 공원의 나무도 한 그루 두 그루, 날짜도, 햇수도, 나이도…. 어디 그뿐인가. 출석 번호도 그렇고, 시험 점수도, 아파트 동 호수도, 지하철도 1호선, 2호선…. 평가도 1등급, 2등급…. 모든 건 숫자로 통하고 있다.
젠장! 윤구는 다시 발에 걸리는 돌멩이를 내질렀다. 두 번째 발에 채인 돌멩이는 떼굴떼굴 굴러 눈앞에서 사라졌다. 몇 번이나 굴렀을까? 한 번, 두 번… 칫! 이것도 숫자네.
“이놈, 장윤구!”
종례를 마친 담임 선생님은 윤구를 특별히 교무실로 불러들였다. 
“5학년이나 되는 놈이 수학 점수가 영점이라니?”
윤구는 선생님 앞에 죄인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여러 가지를 물으셨다.
나이, 생일, 함께 사는 가족 구성원, 친한 친구들, 학교를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선생님은 또박또박 대답하는 윤구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내 질문에 대한 공통점은 무엇이지? 대답해 봐.”
그러나 윤구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내일까지 생각한 답을 가지고 와. 숙제다.”
윤구가 기분이 나쁜 건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 아니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영점짜리 수학 시험지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거기에 아버지 도장을 받아 오라고 전체 학생들에게 명령했던 것이다. 그것이 윤구의 마음을 무겁고 또 어둡게 만들었다. 공원을 찾은 건 집으로 가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영점짜리 시험지에 도장이라니. 이건 아예 죽으라는 이야기와 꼭 같다. 하기야 윤구가 수학을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가족들 사이에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른 과목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수학은 정말 못한다. 셈이라면 질색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1학년 때부터 아예 수학이라면 거들떠보기도 싫은 과목이었다. 그렇다고 오늘처럼 영점을 맞아본 적은 없었다. 찍어서라도 한두 개는 맞았다. 재수가 좋으면 대여섯 개까지…. 그러니까 윤구의 수학 시험은 순전히 그날 운수에 달려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본 수학 시험은 완전히 주관식 출제였던 게 문제였다. 아직 나눗셈도 방정식도 어렵기만 한 윤구는 두 손을 번쩍 들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이렇게 수학을 못할까?’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숫자로 통한다. 숫자로 통하지 않는 것이 세상엔 없다.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서 뱅뱅 돌았다.
윤구는 줄곧 영점짜리 시험지에 어떻게 아버지의 도장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틀림없이 호된 야단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학원 이야길 꺼낼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식처럼 학원에 가는데, 윤구는 집으로 간다. 어째서인지 학원 가는 걸 끔찍이 싫어해서 윤구에게 학원 공부란 없었다. 학원도 안 간다, 과외 선생도 싫다는 윤구의 막무가내 황소 고집을 누구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대학까지 꼭 갈 테니까 걱정 마셔요! 유학도 갈 거예요!”
윤구의 큰소리에 허허 헛웃음하시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수학을 못하는 건 어쩜 부전자전인지도 모르겠다. 아빠도 학교 다닐 때 수학을 젤 못했으니까. 그때보다 많이 어려워진 수학이니 더욱이나 아빠는 널 가르칠 실력이 안 된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 아빠의 수학선생이 되어 준다면 좀 좋겠니? 그렇게 해 보아라.”
그러나 하기 싫은 수학 공부를 마음 다잡고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니 아예 내팽개쳐 둔 결과는 수학 점수 영점이었다.
‘낸장! 도대체 어느 누가 숫자라는 걸 만들어 냈을까? 숫자라는 게 애초부터 없었다면 내가 오늘 이처럼 괴롭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에이, 나쁜 숫자들….’
윤구는 괜한 투정을 부리면서 숫자들을 때리듯 발을 쿵쿵 굴렀다. 
윤구는 학교에 가기 전에 더하기 빼기를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놀면서 저절로 터득한 것이었다. 딱지치기나 삼치기에서 수를 모르면 안 되기 때문이다. 딱지치기나 삼치기에서는 동네 또래들 중 으뜸이었다. 윤구의 손가락은 언제나 셈을 헤아리는 데 사용되었고, 열 손가락이 안 되면 발가락까지 동원되었다.
그러다 서른을 알고 마흔을 알고 백까지 알게 되었다. 백자리가 넘으면서 윤구의 머리는 더는 발전을 보여주지 않았다. 백 더하기 이십칠은 알겠는데, 백 빼기 이십칠이면 도무지 그 해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거기서부터 수학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곱셈과 나눗셈, 방정식을 배우면서부터 윤구의 수에 대한 머리는 아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집합이니 분수니, 지금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도대체가 골치가 아파 수학 시간이면 도망가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고는 했다.
‘앞으로 수학을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수학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좀처럼 그에 대한 해답이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윤구는 하나, 둘, 셋…. 셈을 헤아려 보았다.
숫자란 참 신기하고 묘한 것인 것 같다. 우리 생활의 모든 것들이 다 숫자로 통하니 말이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윤구의 마음은 더욱 무겁고 불안했다. 빵점 맞은 시험지를 내놓자니 무서운 아버지가, 안 내놓으면 벌을 세울 호랑이 선생님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쩌면 내일 반 아이들 앞에서 매를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학이 싫을 뿐인데…. 그런데 매 맞는 데도 그놈의 숫자가 빠지지 않는다.
종아리 걷어!
숫자를 헤아려!

 

“형, 1학년 수학부터 다시 시작해 봐! 형은 충분히 수학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거야!”
언젠가 3학년인 동생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자식이 수학 공부하는 데는 나보다 낫다.
‘그래 볼까? 하아, 1학년 책부터 어떻게 하지….’
한숨 내쉬던 윤구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 시작해 보는 거다. 그렇게 하면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거야. 그것은 딱지치기, 삼치기를 하듯, 그러니까 수학 공부를 놀이로 보고 놀이하듯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면 얼마나 재미가 있을까?
윤구는 선생님이 질문한 물음에 대한 공통점을 얼른 생각해 냈다. 그건 바로 딱지치기, 삼치기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갑갑했던 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함을 느낀 윤구는 발걸음도 가볍게,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나풀나풀 흩날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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