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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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와 문학평론은 본래 휴머니즘을 지향하였다. 자본 문명에 왜곡된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그늘에 묻힌, 중심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현실을 드러내고 그들을 위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대안 방식으로 성찰과 통찰을 제시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시는 먼저 스스로를 바라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구하고자 하였다. 평론도 궤를 같이하였다. 존재 방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실존의 문제를 궁구했다. 그런 까닭에 『휴머니즘 구현의 미학』이라는 첫 평론집을 펴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시와사람』의 생태주의 담론을 기획하면서 인간 중심적 사색이 깃든 ‘휴머니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근대 이후 끊임없이 논의되고 발전해 온 휴머니즘이 왜곡된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작동하면서, 나는 소외되고 버려진 계층에 대한 연민과 함께 지금까지 자각하지 못했던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휴머니즘에 대한 담론들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비평이 근대를 극복하고 자연과 모든 인간이 상생하는 유토피아를 지향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비평은 텍스트를 해석하고 규명하는 일이다. 작가의 작품을 새롭게 독해함으로써 작가가 미처 보지 못한 지점을 살피게 하고, 독자들에게 텍스트를 다양하게 이해하도록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평가의 인식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 까닭에 비평가만의 텍스트 독해 방식과 개성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다 보니 뻔한 비평은 진부하다. 나는 늘 자신만의 시선이 깃든 문체와 인식을 염두에 둔다. 나의 글을 통해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비평이 탈근대를 지향하게 된 배경은 단연 생태주의 담론에 관심을 두면서부터다. 1990년대 생태주의 바람이 불어올 때 자연을 재화적 가치로만 여겨 온 인간의 탐욕에 대해 성찰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인간 중심적 사고로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지구 생태계와 환경이 건강해야 한다는, 지금으로선 당연한 비평을 쓰게 됐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 민속에서 그 대답을 얻고자 민속학적 생태론을 연구하였다. 이른바 ‘까치밥’, ‘고시레’ 그리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온 선조들의 삶의 방식에서 생태주의에 대한 방법론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10여 년 전부터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고자 학부 때의 전공인 서양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문학과 미술’이라는 말은 본래 우리 선조들이 시서화(詩書畵) 삼절을 함께해 온 것을 떠올리게 하고, 나는 근대 이후 각각의 장르로 분리되고 해체된 문학과 미술의 융복합에 대해 연구하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친연성을 가진 문학과 미술이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모색은 참으로 즐거운 작업이었다. 『시와사람』에 ‘문학과 미술의 만남’을 6년 동안 연재하며 한국 현대 시인들의 시 중 미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시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살펴보는 일은 나의 본래 전공인 미술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며 오래 허허롭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가령 최승호의 시 「붉은 고깃덩어리」는 렘브란트의 그림 <도살된 황소>를 통해 유년기 춘천 공지천 모랫둑에서 살며 집 근처 도살장에서 죽어 가며 비명을 지르는 소의 절규를 듣고 시적 발화를 한다. 유년의 기억과 렘브란트의 그림이 충돌하며 자신만의 시를 쓰게 된 것이다. “걸레 같은 창자를 입에 물고 서로 찢느라 퍼덕거리는 까마귀들의 싸움”이라며 탐욕에 어두운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문학과 미술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점차 확대되어 ‘문학과 미술의 상호 텍스트성’에 이르렀다. 미술가의 그림이나 조각 등 조형물을 통해 시적 발화를 한 텍스트를 시로 형상화한 것에서, 또는 시인의 시를 미술 작품으로 창작한 것에서 서로의 텍스트를 바라보는 수용 미학 관점을 적용하기도 하고, 텍스트 간의 상호 관계성에 관점을 두어 문학과 미술이라는 이질적인 장르의 관계를 모색하였다.
시를 서예로 쓴 텍스트도 이러한 관점으로 살펴보고 있다. 누군가의 시를 서예가나 동료 시인들이 붓이나 펜 등의 문구를 이용해 쓴 글씨 텍스트가 지닌 각각의 글씨체에는 글을 쓴 사람마다의 감정과 표정이 깃들어 있다. 거기에는 누군가의 시 텍스트의 내용과 정서를 해석한 글씨를 쓴 사람의 총체성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렇듯 시와 서예라는 텍스트와 시인과 글씨를 쓴 사람의 상호 관계성이 글씨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살피는 것이 내가 즐기는 비평의 내용이며 방식이다.
그리고 또 하나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시와 노래가 어떻게 만나고 서로에게 작용하는지도 내가 살펴보는 비평의 영역이다. 시가 산문화되고 있는 오늘날 갈수록 ‘시는 노래였다’는 것을 잃어가고 있는 듯하여 시가 노래로 불리고 소통되고 소비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발로이다.
앞으로 내 비평의 관심이 어디로 향할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뻔하고 낡은 비평, 그래서 지루한 비평에서 벗어나 나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 줄 낯설고 흥미로운 비평을 찾아갈 것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