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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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 어쩌다 나는 어떤 방에 딸린 다락을 발견하였다. 그 방은 빈 방이었는데 사람의 출입이 없었다. 어떻게 해서인지 다락에 올라가 보니 그곳에는 책들로 가득 차 있었다. 주로 문학 작품들이었다. 어두컴컴한 다락은 한쪽 문을 살짝 열어 놓으면 책을 읽을 수 있는 빛이 들어왔다. 그곳에서 나는 좀벌레처럼 1년여 동안 처박혀 책들을 읽어 치웠다. 부모님은 내가 안 보이면 다락에 있는 줄 알았다.
어느 날 다락을 뒤지다가 『모란꽃』이라고 쓰여 있는 문집을 발견했다. 세계 유명 시인들의 시를 만년필로 필사해 놓기도 하고, 자신의 시를 적어 놓은 것 같았다. 시 편편마다 그림을 그려 문집을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나는 지금도 다락에 있는 책과 『모란꽃』 문집의 주인을 알지 못한다.
문학인 강경호는 이처럼 어두운 다락의 양수와 어머니의 탯줄에 이어진 수많은 책들을 먹고 잉태되어 다락방에서 태어난 셈이다. 누에고치처럼 다락을 방으로 삼아 스스로의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읍내에 서점이 하나 들어섰다. 나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서점을 들락거리며 책을 사거나 빌려다가 읽었다. 학교 공부보다 책 읽는 것이 즐거워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때 나는 그림에도 관심이 많아 오래된 화집들을 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날마다 연재 만화를 그려서 학교에 오면 그림 속 이야기를 궁금해한 친구들이 내 곁으로 몰려왔다.
이 무렵 전남일보(현재의 광주일보)에서 개최하는 ‘호남예술제’에 참가하여 매번 상을 탔다. 한 해는 학교 그림 대표로, 또 다음 해에는 문학(시) 대표로 출전했는데, 학생들로 가득한 운동장에서 교장선생님이 상장을 수여할 때 나는 우쭐해졌고 그림이나 글을 잘 쓴다고 착각하였다.
중학교 3학년 때인 1972년 10월, 이어령 선생이 주간을 맡은 『문학사상』 창간호를 마주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잡지에 밑줄을 그어 가며 읽었다. 이 책의 창간사가 내 삶의 물꼬를 틀 줄은 그때는 몰랐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라고 쓰인 이어령 선생의 창간사는 열네 살짜리 소년에게 깊은 메시지로 다가왔다. 훗날 내가 『시와사람』을 창간하게 한 밑불 같은 것이었다.
1992년 서울에서 신문사 기자를 하던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문예지를 준비하였다. 곽재구, 고재종, 이지엽, 신덕룡 등 당시 광주에서 문창과나 국문과 교수를 하던 선배이거나 동년배들과 의기투합하여 마침내 1996년 5월 18일 『시와사람』을 창간하였다. 당시 광주는 1980년 광주민중항쟁 이후 울분과 분노, 절망의 언어로 문학을 소비하고 있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감정을 배설하는 광주 문학을 경계하며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소모적인 문학을 철저히 배제하고 한국 문학의 흐름에 합류하였다.
나는 서울에서 내려오기 전에 『문학세계』를 편집 대행하고 있었고, 박재삼, 황금찬, 김남조, 최은하, 이재호, 박현령 시인을 모시고 ‘보리수 시낭송회’의 간사를 맡고 있었다.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고 한 권일송 시인과 박재삼, 최은하 시인에게 시를 배웠다. 그 무렵 『문학세계』를 통해 문학 평론에 당선되었다.
『시와사람』은 내 문학의 자궁이며 산실이다. 그때 나는 우리 문단을 휩쓴 생태주의에 관심을 가졌다. 매번 봄호에는 생태학적 상상력에 관한 담론을 싣고, 이를 뒷받침하는 현장의 시를 실어 생태주의 문학을 이끌었다. 오늘에 와서는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느라고 우리 문학의 주된 관심에서 소외된 듯하여 아쉽다.
그럼에도 나는 생태주의 시와 문학 비평에 주된 관심을 갖고 글을 써 왔다. 1997년 정진규 시인이 이끌어 가고 있던 『현대시학』에 시인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5권을 펴내었다. 물론 문학 비평가로, 미술 비평가로서 더 많은 논저를 펴내었지만, 스스로가 시인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내년에는 여섯 번째 시집을 출간하여 시인의 체면을 세울 계획이다.
『시와사람』 편집실에 25평 정도의 나의 서재가 있다. 지난 30여 년간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날마다 문학 비평에 몰두하는 일이다. 시 원고 청탁마저 모두 소화해 내질 못할 정도로 여유가 없어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나는 ‘시인’으로 남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 때문에 초조하다.
시 전문지 『시와사람』은 나의 놀이터이다. 이곳에서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 나가며 문청들의 작품을 첨삭하며 후학들을 가르치는 즐거움이 크다. 그리고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늘 참신한 문예지를 기획하기 위해 머리가 지근지근하지만, 문예지를 만드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생태주의 관련 원고를 청탁하고, 호남시의 원류를 찾고, 광주민중항쟁에 관한 다양한 담론을 발굴해 왔다. 더불어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 시인의 취미생활 등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들을 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며 시적으로 형상화하는지에 대해서도 시인들의 시선을 주목하게 하였다. 그리고 1999년부터는 ‘전국계간문예지 편집자대회’를 결성하여 각 지역을 대표하는 문예지와 함께 서울 중심이 아닌 지역 문학 확장과 로컬리즘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 오고 있다.
나의 가장 커다란 관심은 문학을 중심으로 한 인접 예술과의 융복합을 통한 소통이다. 다행히 미술과 문학을 모두 전공한 덕분에 ‘문학과 미술의 친연성’과 ‘문학과 미술의 상호텍스트성’에 관한 글들을 써서 문학 외에는 문외한인 문학인들에게 인접 예술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전해 주어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상상력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나의 관심은 서재에 미술 작품이 가득하게 하였다. 미술 전공자이면서도 30여 년 동안 문학의 마당으로 물꼬를 틀었던 나를 발견하고, 향수처럼, 그리움처럼 미술 비평과 문학과 미술을 융합하고자 한다. 그러다가 요즘 나의 눈은 ‘시가 본래 노래였다’는 것을 기억해 내며 시와 음악에 대한 담론과 ‘문학과 미술의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글들을 쓰고 있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은 낯선 영역을 찾아가는 길이 외롭고 버겁지만, 지적 호기심 하나로 즐겁게 내 길을 가고 있다.
[강경호]
1992년 『문학세계』 평론, 1997년 『현대시학』 신인 발굴 시 등단. 문학평론집 『휴머니즘 구현의 미학』 『서정의 양식과 흔들리는 풍경』 『문학과 미술의 만남』 『미술의 상상력을 통한 시적 발화』 『박덕은의 문학적 상상력과 추상미술 세계』 외, 미술평론집 『영혼과 형식』이 있으며, 시집 『함부로 성호를 긋다』 『휘파람을 부는 개』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등.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월간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시 2회, 평론 1회). 현재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계간 《시와사람》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