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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알까?

한국문인협회 로고 유자효

시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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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게 됐다. 직장을 따라 영등포와 여의도를 옮겨 다니다가 지금 사는 서초동으로 온 때가 50대 중반이었으니 20여 년 만에 거처를 옮기게 된 셈이다. 사는 집이 팔리고 새로 들어갈 곳의 입주 날짜가 정해지면서 이사 준비 작업이 본격화됐다.
나이 들어 하는 이사는 부부 사별 다음의 스트레스를 준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우선 우리 부부가 함께 살아온 50년 가까운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일이 보통이 아니었다. 버릴 것과 가져갈 것을 분류하는 일도 힘들었다. 또한 낡은 살림살이들을 버리고 새로 장만하는 일도 복잡했다. 신혼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늙은이들의 새살림 준비라 힘만 들었다. 그밖에 준비해야 할 행정 절차들도 수월찮았다.
이 모든 일을 거의 혼자 처리하던 아내가 마침내 몸져누웠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동안 바깥 일을 핑계로 이사 준비를 아내에게 맡겨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내게 시집와 고생만 한 아내인데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런 곤욕을 치르게 하다니…. 나는 즉각 대부분의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아내가 전담해서 하던 일을 나누어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 학교에 근무할 때 후배 여교사가 이사를 준비하더란다. 희망에 부풀어 이사 준비에 열중하던 그녀가 병으로 쓰러졌단다. 그리고는 힘들여 마련한 가구들로 치장한 새집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한 채 숨졌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물론 이사 준비가 병의 원인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힘든 일이 이사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환갑 넘어 이사는 하지 말랬다지만, 나는 고희 넘어 이사는 말리고 싶다.
내가 이사 준비를 맡아 하면서 맨 먼저 부닥친 과제가 책의 처리였다. 내게 그렇게 책이 많을 줄 짐작도 못했었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책들의 대군단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가운데는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책들과 다시는 찾지 않을 듯한 책들도 많았다.
견적을 내러 온 이삿짐센터 직원이 책을 보고는 입을 딱 벌리더니 책장 여섯 개 분량을 줄여주지 않으면 하루 이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내가 쓴 글들이 실려 있는 책들과 저자들의 서명이 들어 있는 증정본을 제외하고는 과감하게 버리기 시작했다.
책을 처리하면서 발견한 것은 전집류가 많다는 것이었다. 한국문학 전집, 세계문학전집 같은 벽돌책들이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또한 백과사전류도 많았다. 그 책들은 내가 젊었을 때 할부로 구입한 책들이었다. 그리고 보니 당시 전집류를 팔러 다니던 할부 책장사들이 많았던 생각이 났다.
백과사전들을 펼쳐 보니 상당 부분이 지금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이미 구문이 된 내용도 많았고, 대부분이 다음이나 네이버, 또는 챗GPT나 구글 제미니 같은 인공지능으로 더 상세하고 업데이트된 정보를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무 소용도 없이 책장만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수십 년 동안 내가 그 백과사전류를 열어 본 적도 없었다. 나도 그 책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를 계기로 나는 벽돌 책들과의 이별을 단행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는 길이라는 이별사를 읊조리면서….
요즘 인공지능이 세계적인 화제다. 그 가운데서 인공지능을 이용한 창작의 가능성이 문학과 관계를 갖는 부분일 것이다.
한 달에 두 번 시를 써 와서 합평하는 모임에서 한 참석자가 인공지능이 쓴 시라고 들고 왔다. 제목과 내용 그리고 길이를 제시해 주자 금방 시 한 편을 써내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 시를 보자 기가 막혔다. 인공지능이 쓴 시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면 그럴듯한 작품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만든 시를 놓고 사람들이 합평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질 뻔했던 것이다.
나는 요즘 시 쓰기의 어려움을 절감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며 메말라 가는 감성과 잡다한 일상사들에 파묻혀 시를 거의 쓰지 못하고 있다. 원고 청탁에 떠밀려 반강제적으로 시를 쓰려고 해도 옛날처럼 잘 써지지 않는다. 몇 날 며칠을 끙끙대고도 시 한 줄 못 써 이제 그만 작파해야 할 때가 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시를 써내다니….
그런데 문제는 인공지능이 쓴 시에 있었다. AI의 기능이 이미 입력된 자료를 종합하는 것이라, 요구하는 형식대로 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를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구절들로 엮여 있었다. 주제에 가장 가까운 자료들을 나열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AI의 횡행이 창작의 세계에서는 표절의 횡행으로 번져갈 위험이 크다고 보았다. 예술의 생명은 감동인데 그런 작품들로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을까? 또한 AI로 시를 쓰게 하고 그 시에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결정적인 것은 AI에는 영감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AI가 하는 작업은 자료의 종합일 뿐 창작이 아니다. AI는 창작을 돕는 보조 수단은 되지만 창작을 할 수는 없다. AI의 순기능을 잘 활용하면 장애인들의 활동을 돕고 사람의 목숨을 건질 수도 있겠지만 창조의 세계는 다르다. 나는 창조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절필을 할지언정 시에 AI를 개입시키지 않을 작정이다.
나는 이번에 스무 권째의 신작 시집을 냈다. 여기에는 19시집『시간의 길이』이후에 쓴 시들이 주로 실려 있지만 오랜 시간 동안 시집 수록을 망설여 오던 작품들도 일부 수록하였다. 그것은 나를 정리하고 싶어서였다. 나 스스로에 대한 부담을 모두 털고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는 정성을 다해 첫 발을 떼는 아기처럼 스물한 권째의 시집을 위한 출발을 시작하였다.
누구는 말한다. “너는 시인이냐? 언론인이냐?”고. 나는 답한다. 시는 내가 어렸을 때 자연 발생적으로 내게 왔다고, 그리고 평생을 함께 살고 있다고…. 나는 직업으로서 언론을 택했고, 역시 평생을 함께 살고 있다고…. 인생의 석양에 이르자 그것이 두 길이 아니라 결국 하나였다고….
세상의 소중한 가치들은 한곳에서 만나게 되는 것임을 나는 체험하였다. 그것은 영혼의 가르침이다. AI가 이것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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