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4년 7월 6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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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시 너는 바람의 언덕 웃자란 그리움이다
살굿빛 혹은 순백의 잠 못 드는 안나푸르나
가릴 것 있었나 보다 손바닥만큼 그만큼
안양천 따라온 봄도 발가락이 아픈가 보네
이토록 명치끝에 자리를 펴신 그대들
세상은 거추장한 낭만 당당하게 벗었다
네덜란드 아니라도 동대문시장 속옷 가게
유전자까지 오려 만든 색상들의 대반란
옥탑방 빨랫줄에서 온 세상을 흔든다
서울에 둥지를 튼 지 한참 만이니 산천도 변했으리라.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 했던가? 그것은 나를 반기는 삶의 무대가 있기 때문이다. 새벽 안양천 마라톤 10km를 달리는 길가엔 패랭이꽃, 갈대꽃, 벚꽃, 튤립꽃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눈짓을 보낸다. 그중 가장 마음을 흔드는 꽃은 역시 화중지울금향(花中之鬱金香)인 튤립꽃이다. 그것은 바람의 언덕이었고 한때 웃자란 그리움이 아니었던가? 살굿빛 혹은 순백의 잠 못 들던 추억은 너무도 거룩한, 그래서 오르지 못한 안나푸르나쯤은 되었나 보다. 튤립은 그 신비를 보일 듯 보이지 않게 감추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나는 땀방울로 달리고 있어도 따라온 봄은 지쳐서 여기에 자리를 펼쳤네. 그리고 세상은 거추장한 낭만이라며 훌훌 벗어 던졌으니, 이 넘치는 무한의 자유를 어쩌랴. 지난날 잔세스칸스에서 만났던 이국의 튤립꽃이 이제는 동대문시장 속옷 가게에 넘치도록 피어 있다. 유전자를 오려 만든 먼셀환 색상들의 대반란이 옥탑방의 빨랫줄에 걸려 출렁거린다. 튤립 브라자의 특권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